783화. 야심만만한 천계맹
“육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함께 일하는 건 그리 좋지 않은 생각인 듯하네. 다음부터는 각자 움직이도록 하세, 나로서는 자네를 어찌할 수가 없으니.”
“호오, 알고 보니 자네는 나를 이토록 미워하고 있었군. 사실 육모는 그래도 마두 중에서 자네가 꽤 마음에 들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마음이 아프군. 하지만 무슨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든 그건 전부 상관없고, 육모가 관심 있는 건 오직 수행의 한계를 타파하는 것과…… 불로장생뿐일세!”
육 산군이 북목을 향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수행에 더는 막힘이 없고 모두가 불로장생할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천계맹에서 그와 우패천을 끌어들일 때 했던 말이었다. 이는 요괴들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유혹적인 제안이었다.
그러자 북목이 눈초리를 가느스름하게 뜬 채 그를 관찰했다. 육오는 천계맹에서 약속한 이 두 가지 사항에 대해 그다지 믿음이 없어 보였다. 하긴, 그 두 가지 제안 모두 조금 현실성이 없게 들리긴 했다.
“육오 자네는 나로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천부적으로 출중한 자질을 갖고 태어났지. 하지만 자네는 행실이 너무나 극단적이고 충동적이어서, 지금으로서는 아직 알 자격이 없네.”
“아, 그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네. 수행에 막힘이 생긴다 해도 충분히 혼자서 돌파할 수 있으니까.”
육 산군이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자 북목의 눈에 잠시 숨길 수 없는 증오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육오의 말이 무척 가능성 있다는 걸 알았다. 육오는 그야말로 ‘나는 나만의 길을 걷는 수행자로, 선악과 생사는 내 도심(道心)을 거스르지 못한다.’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요괴였다.
육오와 같은 요괴는 도를 찾거나 구할 필요가 없이, 이미 마음에 스스로의 도를 품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정도(正道)나 사도(邪道)에서 일컫는 의미의 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만의 도를 관철할 수 있는 이였다. 그는 본질적으로 선량함과 사악함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수행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원수에게 원한을 품지는 않지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반드시 복수했고, 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지는 않았으나 반드시 은혜를 갚는 성정이었다.
육오가 지닌 이런 종류의 순수함 덕분에, 천계맹에서 지위가 높은 이들도 모두 그의 잠재력을 높게 쳐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진짜 몸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었다. 비록 전에 호랑이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긴 했지만, 그 모습에는 숨겨진 것이 많았다. 그와 같은 요괴들은 대부분 요족(妖族) 중에서도 높은 경지에 이르곤 했다.
북목은 속으로 여러 생각을 거듭하다가 망설이는 태도로 운을 뗐다.
“말은 그렇지만, 사실 나는 자네에게 알려줘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네. 어쨌든 자네가 지닌 자질로는 머지않아 천계맹의 높은 지위에 오를 테니까. 어쩌면 천계(*天啓: ‘하늘이 열리다’라는 뜻) 이후에는 요직에 앉을 수도 있겠지. 왜 평범한 인간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친우가 많을수록 도움을 받을 길이 더욱 많아진다(多个朋友, 多條路)’는 말도 있잖은가.”
‘천계 이후?’
육 산군은 북목의 말에서 민감하게 요점을 짚어냈다. 그는 속마음과 달리 겉으로는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고서, 냉정한 얼굴로 북목을 바라보았다.
“친우가 많을수록 도움을 받을 길이 더욱 많아진다? 하, 북목 자네가 무슨 일을 하든, 나는 자네를 친우로 여기지 않을 걸세. 나는 다만 내가 은혜 입은 일을 잊지 않을 뿐이지.”
“하하하하……. 육오, 내 비록 대체로 자네를 싫어하긴 하지만, 그 성격만은 꽤 마음에 든다는 걸 부정하지 않겠네! 자자, 가세! 적당한 곳을 찾으면 자세히 이야기해주도록 하지. 너무 놀라지 말게나!”
이곳 남황주에는 원체 남황대산에 자리 잡은 요족이 많았고 그 외 다른 이유 등으로 인해, 평범한 인간들이 세운 나라에도 온갖 요마, 귀물, 정괴 등의 밀도가 다른 곳보다 훨씬 높았다.
북목과 육 산군은 어느덧 성 밖 관도(官道)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흙 담장을 쌓은 작은 초막 찻집에 와 있었다. 찻집 안에는 요기(妖氣)와 싸움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얼마 전에 어느 수사가 여기서 요괴와 맞붙었거나, 요괴가 홀로 큰 소동을 부린 것 같았다. 그런데도 찻집이 대체로 멀쩡한 것이 퍽 신기했다.
찻집 안은 무척 썰렁해서, 주인조차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이 들어오자 찻물과 다과를 탁자에 올리고는, 다시 흙으로 쌓은 계산대 위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찻집 안에는 북목과 육 산군 외에 다른 손님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문과 가까운 가장 바깥쪽 자리에 앉았다.
북목이 천계맹에 대해 늘어놓을수록 육 산군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의 냉정한 표정이 무너지며 경악한 표정을 내보였다.
그의 이런 모습에 북목은 무척 흡족해하며 ‘저놈이 이런 표정을 짓는 일은 정말 드물지.’라고 생각했다.
육 산군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는,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자네 말은 정말이지 너무나 황당하군. 게다가 자네 같은 마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나로서는 그다지 믿기지 않네. 하지만 자네가 날 속일 이유도 없고…….”
육 산군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북목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천계맹의 소위 옛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자는 이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엄청나군. 요족을 으뜸으로, 마족을 보좌로 하여 천상의 궁궐을 건립하고, 천지의 조화를 빼앗아, 중생 만물의 생멸(生滅)을 손에 넣는다? 천상의 궁궐이라……. 좀 너무…… 너무 천진난만한 이상 아닌가?”
그러자 북목의 눈에 예리한 빛이 반짝이며, 대마(大魔)인 그의 얼굴에 광적인 열정이 드러났다.
“육오, 자네가 모르는 게 있네. 아주 오랜 옛날, 하늘에는 정말로 궁궐이 있었어. 게다가 요족이 그곳을 다스리고 있었지. 지금 인간들이 스스로를 영장(靈長)이라 일컫지만, 그 옛날 요족과는 비교도 되지 않네!”
육 산군은 천궁(天宮)이 있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되려 비꼬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요족이 예전에 천상의 궁궐을 다스렸다곤 하나, 그게 자네 같은 대마두와 무슨 상관이 있지?”
“하하, 육형, 요마는 서로 편을 가르지 않는다는 말도 있잖은가. 소위 사마왜도(*邪魔歪道: 정당하지 못한, 비뚤어진 도(道))라는 말은 지금의 정도에서 그렇게 정한 것뿐이지. 일단 천지의 질서가 변하게 되면, 누구 주먹이 더 큰지는 그들도 알게 되겠지. 우리 마도(魔道)가 정도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잖은가?”
육 산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홀로 생각에 잠겼다. 마도 특유의 사람 마음을 홀리는 등, 괴이하고 음험한 갖가지 수단은 정도의 수행자는 물론이고 요족 중에서도 싫어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소위 ‘마(魔)’는 질서라는 단어와 반의어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였다.
육 산군이 아무 말이 없자, 북목은 자신의 찻잔과 육 산군의 잔에 찻물을 따라 한입 마신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찌, 아직도 믿기 어려운가? 하하, 곧 믿게 될 걸세. 인도(人道)를 교란하고, 중생의 원력(愿力)을 억압하며, 인간 세상의 천재(天災), 인화(人禍), 역병, 원한을 이용하여 인도를 사분오열하면, 인도가 주가 되는 지금의 형세도 자연히 와해 되겠지. 양황과 온 세상의 요마들은 그저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네. 우리 천계맹은 그동안 뒤에서 계략을 짜고, 천천히 천지를 뒤집을 힘을 쌓을 것이니! 물론, 육형은 전도가 유망하니, 장래에 반드시 천궁의 높은 지위에 오를걸세.”
북목은 육 산군을 향해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물론, 자네가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말이지.’하고 중얼거렸다.
“정말 놀랍군. 하지만 지금의 정도 세력은 장식이 아니지 않은가? 계 선생 한 사람만도 천계맹에서는 당해낼 자가 없을 텐데?”
그러자 북목은 동공이 살짝 수축하더니, 고개를 숙여 찻잔을 들어 올렸다.
“천지의 대세(大勢)에는 누구도 맞설 수 없는 법이네. 그자의 도행이 아무리 높다 해도, 대세를 돌릴 만큼의 힘은 없을 걸세. 한사람으로 안 되면 열 사람, 열 사람으로도 안 되면 백 명, 천 명을 보내면 되는 일이지. 비록 그가 진선(眞仙)이라고는 하나,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요왕 또는 천요(天妖), 진마도 수없이 많네.”
그 순간 북목은 육 산군의 눈빛이 한쪽으로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자는 줄 알았던 찻집 주인이 한 손으로 계산대에 턱을 괸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물 놈들이 하는 말이 제법 간담이 서늘하군!”
북목은 그자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었기에 속으로 깜짝 놀랐다. 게다가 상황을 보니 육오도 몰랐던 듯했다. 그렇다면 저자는 필시 보통 수행자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육오, 저자는 보통이 아닐세. 최대한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겠어!”
“내가 그걸 모를까 봐?”
두 사람은 전음을 통해 이렇게 대화하면서도 이미 공격할 준비를 마친 후였다. 육 산군은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절대 순순히 물러나선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사존(師尊)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상황에서 정도의 고인들은 그를 요사한 존재로 보고 일단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평범한 인간들의 거주지역과 너무 가까우니, 여기서 싸우면 많은 사상자가 생길 걸세.”
“맞네!”
북목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그가 아직 사람으로서의 품성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수많은 평범한 인간을 다치게 하는 건 금기를 거스르는 일이었고, 인도(人道)의 반격하는 힘도 얕볼 만한 게 못 되었다. 심각한 경우에는 천겁(天劫)을 불러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짧은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안색을 바꾸지 않고서 찻집 점원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어쩐지 이곳에 희미한 요기(妖氣)가 남아있다 싶더라니, 고인(高人)께서 지키고 계신 곳이었군요. 보아하니 그자들은 불운한 일을 당한 모양이지요?”
육 산군은 아무런 말 없이 앉아, 담담한 눈빛에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살기를 내뿜지도 않고 신광(神光)을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왜인지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이 느껴졌다.
육 산군과 북목은 속으로 잔뜩 경계한 채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칠 준비를 마쳤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이를 내보이지 않았다. 한편 부뚜막 근처에 서 있는 순박한 얼굴의 찻집 주인은 마음도 표정도 정말로 담담한 상태였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를 불운하게 만든 일이 없소. 소위 화복(禍福)은 사람이 자초하는 법이오. 그들이 불운을 당한 것도 악업을 쌓았기 때문이겠지.”
그는 부뚜막 뒤편에서 걸어 나오며, 어깨에 걸고 있던 지저분한 행주로 온몸의 먼지를 툭툭 털었다.
“자, 주동적으로 따라올 테요, 아니면 내가 ‘모셔’가야겠소?”
남자는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모셔 간다’는 말에 특별히 더 힘을 주어 발음했다. 그러자 육 산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차를 한입 마신 뒤 이렇게 물었다.
“어디로 말이오?”
육 산군의 동작을 본 북목은 조심스레 준비를 마쳤다. 그와 육 산군은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함께 싸운 경험이 많아 서로 간에 암묵적인 이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