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85화 (785/892)

785화. 네 명의 금 씨 호법

수사는 이때 마음이 급했다. 비록 자신이 감지한 그 신장(神將)의 정체를 알지는 못했지만, 이 신통력의 기본 원리는 강한 자일수록 먼저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마음속에 금갑을 입은 신장의 법상(法相)이 먼저 떠오른 걸 보니, 그가 성황신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이에 수사는 법결을 바꿔 자신의 신념(*神念: 수행자의 의지, 기억, 생각을 가지며 입정 후에 활성화되는 것으로, 영혼과 비슷함)을 불어넣고 법력을 더욱 끌어올려 금갑 신장을 불러오려 했다. 상대가 응답하기만 하면, 일종의 약속을 맺게 되는 것이니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호법신(護法神)의 현신(現身)을 청하나이다, 호법신의 현신을 청하나이다!”

* * *

계연은 천기동천에 머물고 있었으나, 종이학은 이때 동천에서 나와 계연이 알려준 대략적인 방향을 따라 육 산군에게로 가고 있었다.

종이학은 이제 더는 종이로 된 학 형상이 아니었고, 머리만 실제 학의 형태를 갖추던 단계를 넘어서서 몸 전체가 실제 학으로 변한 후였다. 다만 크기는 여전히 손바닥만 한 ‘미니 사이즈’ 학이었다. 그러나 안에는 오장육부가 전부 자리했고, 머리 위의 붉은 볏, 긴 부리, 뾰족한 발톱, 흰 깃털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종이학은 홀로 나온 게 아니라, 날개 밑에 금갑 역사 부적을 숨기고 있었다. 금갑 외에, 금을, 금병, 금정까지 모두 데리고 나왔다. 물론 그중 제일 대단한 실력을 지닌 것은 금갑이었고, 진정한 자아를 지닌 것도 금갑뿐이었다. 다른 금갑 역사들은 아직 자아를 깨닫지는 못했지만, 계연이 강제로 이름을 주입하여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었다.

계연이 종이학에게 지시한 임무는 바로 육 산군에게 가서 그가 전해오는 소식을 갖고 오는 것이었다. 만약 북목이 아직도 육 산군에게 천계맹의 내막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곧장 해치를 통해 북목을 상대하게 할 생각이었다.

종이학은 크기가 작았고 대단한 법력을 지닌 것도 아니었으나, 날개로 영풍(靈風)을 움직여 날갯짓 한 번에 넓은 거리를 날아갈 수 있었다.

종이학은 이때 날개 아래쪽이 근질근질한 것을 느끼고는 날개를 위로 홱 들자, 돌돌 말린 역사 부적 몇 장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중 한 역사 부적은 즉시 금가루 같은 빛을 내며, 종이학 앞에서 거대한 금갑 역사의 모습으로 변했다.

금갑도 그간 마찬가지로 수행에 진보가 있었기 때문에, 공중에 있다고 해서 바로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떠 있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의 비거술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정도에 그쳐서, 속도를 올려 날아가려면 자신이 지닌 힘을 많이 끌어다 써야 했다.

금갑이 모습을 드러낸 것과 달리, 다른 세 장의 역사 부적은 찬란한 금빛을 내뿜고 있었지만, 역사로 변하지 않고 가만히 공중에 떠올라 있기만 했다.

“짹?”

종이학이 금갑의 머리 위에 앉아 의혹 어린 목소리로 소리 내자, 금갑이 살짝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본 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나와 형제들을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짹!”

“응, 가겠다.”

금갑이 진중한 태도로 대답한 뒤 살짝 눈을 감았다. 곧이어 그의 머리 위에 있던 종이학이 날아오르자, 금갑의 모습이 희미해졌다. 동시에 종이학은 공중에 떠올라 있던 세 장의 역사 부적에게로 날아가서 부리로 한 번씩 부적들을 쪼았다.

학의 부리가 닿자 세 장의 역사 부적은 곧장 금갑 역사로 변하더니, 금갑과 마찬가지로 형체가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 * *

한편, 수백 리 떨어진 곳의 작은 산중에서는 육 산군과 북목과 대치하고 있는 수사의 등이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그의 호법들만으로는 이미 저 두 요마를 상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바람과 불, 벼락 등 각종 술법은 물론이고, 산령(山靈)의 힘을 빌려오기까지 했으나 겨우 버텨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의 법력 대부분은 신령을 소환하는 데에 써버려서 더 끌어낼 힘이 없었다. 게다가 이 되돌릴 수 없는 감각은 상대가 자신의 부름에 동의했다는 뜻이었다. 다만 무슨 일인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으르렁……!”

육 산군의 입에서 맹호와 같은 울부짖음이 터져 나오자, 수사를 지키려고 앞을 가로막은 호법의 몸이 뻣뻣이 굳어버렸고, 그가 내뿜던 신광(神光)마저 위태롭게 흔들릴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산중의 복잡한 지형을 이용해 둔술로 도망치던 수사도 그 소리에 자신의 법력이 꽁꽁 얼어붙은 듯이 느껴졌다. 이는 법력이 얼어붙었다기보다는, 원신(*元神: 육체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생겨나, 수행을 시작하면 혼백을 주관하는 역할을 함)이 흔들려 교란된 것이라고 봐야 했다.

“호법신께 현신을 청하옵니다! 제발 서둘러 현신해 주십시오!”

‘계속 오지 않으면 오늘 나는 여기서 죽겠구나!’

그 순간, 수사는 동공이 잔뜩 오그라든 채 새카만 마귀의 발톱이 한쪽 산을 통과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3장(약 9m) 거리까지 가까워졌을 때, 그는 자신이 펼친 호신 술법이 뚫리리라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그때, 수사는 가슴이 떨림과 동시에 자신의 묘법(妙法)이 응답을 받았음을 느꼈다.

‘왔구나!’

이를 깨달은 순간, 그의 눈앞에 금빛이 밝게 터져 나왔다.

콰앙……!

금빛이 비친 순간, 3장 밖의 산봉우리가 금빛 잔상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게 보였다.

뒤이어 북목의 모습이 육 산군 옆에 또렷하게 나타났다. 그는 진중한 얼굴로 멀리 흙먼지 사이로 나타난 금빛과 돌이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육오, 저자가 무언가를 불러온 모양이군?”

그러자 육 산군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엄숙해졌다. 조금 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힘과 북목 이놈이 도망쳐온 속도를 보니, 이번에 소환된 소위 호법신이라는 존재는 저 흰빛에 휩싸인 놈들보다 더 대단한 자들인 듯했다.

“설마 어느 곳의 대성황이라도 모셔왔나?”

“아니. 음기도 느껴지지 않고, 향불의 힘에서 느껴지는 단향(檀香) 냄새도 나지 않네.”

먼지가 점점 가라앉자 금빛 사이로 새롭게 소환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사가 그를 부를 때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금갑 역사는 이곳에 나타난 순간 모습이 불안정했다. 곧이어 금갑이 수사의 앞에서 천천히 몸을 곧게 폈다.

금빛 갑옷을 입고 앞뒤로는 황색 표대(*飄帶: 어깨나 팔에 거는 장식용 띠)를 흩날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장(神將) 그 자체였다. 뒤이어 그 신장의 곁에 그와 똑같이 생긴 3명의 신장이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금갑 신장들은 보통 사람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컸으며, 체격이 몇 배는 더 우람하여 아무런 병기를 들고 있지 않아도 자연히 위엄이 넘쳐 보였다. 그들은 특유의 냉정하고도 상대를 깔보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청해 온 수사를 바라보았다.

수사는 이때 놀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이 호법신들이 나타나던 순간, 그 기운만으로도 그는 이미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거대한 산봉우리와 같은 금갑 신장들이 눈앞에 서자 그들이 가져오는 압박감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주위의 지령(*地靈: 토지의 정령, 땅의 신령한 기운)들은 주동적으로 그들과 가까워지려 했다.

“너는 누구인가?”

금갑이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자신들이 불려오던 순간, 상대가 바라던 것은 “삿된 것을 물리쳐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군지는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소인은 곤목성(昆木成)이라 하고, 형산에서 수행을 닦고 있습니다. 우연히 실력이 대단한 요마를 만나 곤경에 처하게 되어, 여러 신장께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신장들께서는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러자 네 명의 금갑 역사는 곤목성을 내려다보다가, 똑같은 자세로 천천히 몸을 돌려 먼 곳의 북목과 육 산군을 바라보았다.

“내 이름은 금갑이다.”

“내 이름은 금을이다.”

“내 이름은 금병이다.”

“내 이름은 금정이다.”

“주인이신 어르신을 지키고 있다.”

금갑 역사들이 동시에 대답하는 표정과 동작은 완전히 일치했다. 이름도 고작 한 글자 차이로 다를 뿐이고, 게다가 이구동성으로 말했기 때문에 곤목성은 하마터면 그들의 이름을 듣지 못할뻔했다.

그때, 멀리 떨어진 북목과 육 산군은 이쪽을 바라보면서 새로 나타난 호법 신장들의 실력을 가늠해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의 마음에 흥분이 일었다. 북목은 두려움에 한 줄기 흥분이 섞였고, 육 산군은 흥분에 기쁨이 서려 있었다.

천계맹의 고참인 북목이 이토록 특징이 명확한 금갑 신장을 몰라볼 리가 만무했다. 금갑 역사가 나타난 순간부터 그는 이미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금갑 신장이 대단하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런 존재가 무려 네 명이나 함께 나타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북목은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이는 계 선생님께서 육오를 잡아가고자 보내신 것일 테니, 그는 여기 서서 육오가 무사히 잡히는 것을 두 눈으로 봐야 했다.

반면 육 산군이 사존(師尊)이 부리는 금갑 역사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금갑 역사가 나타난 것을 보니, 아마 사존께서도 근처에 계시는 모양이군?’

두 사람은 각자 셈이 따로 있어서,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고 서로를 속이기로 했다.

“육형, 또 다른 호법이 넷이나 나타났네! 전에는 은빛이더니 이제는 금빛이라. 보아하니 저 수사도 이 정도 수단밖에는 부리지 못하는가 보군.”

육 산군은 북목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가 보군. 뭐, 전처럼 똑같이 상대해주면 되지. 오랜만에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해볼 수 있겠어.”

“육형은 신통력이 뛰어나고 요기(妖氣)도 강대하니, 조금 전까지 하던 대로, 나는 숨고 육형이 공격하는 게 좋겠어!”

“동의하네, 하하하하……!”

“하하하하……!”

두 사람은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육 산군이 먼저 요풍(妖風)을 이끌고 잔상이 되어 금갑 신장을 향해 덤볐다. 이참에 금갑 역사의 실력을 한번 가늠해볼 생각이었다.

“크르릉……!”

육 산군의 눈에 기이한 빛이 떠오르더니, 그의 포효에 주위의 공기가 진동했다. 뒤에 있던 북목마저 가슴이 쿵쿵 뛸 정도였다. 보아하니 육오가 이번에는 진정한 실력을 내보일 참인 듯했다.

네 명의 금갑 역사는 이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놀라움도 두려움도 없었다. 육 산군을 막으러 가장 먼저 나선 것은 금갑이었다.

“요물아, 죽어라!”

금갑이 가볍게 주먹을 쥐고 내뻗자, 기류가 금갑의 주먹에 찢겨나가며 주위로 강풍이 몰아쳤다. 이에 제대로 맞서 보려던 육 산군의 동공이 확 수축했다.

‘저 주먹에 맞으면 안 돼!’

솨앗-!

아슬아슬한 순간, 육 산군이 몸을 피하는 동시에 금갑의 팔을 틀어쥐자 그 위로 불꽃이 튀었다. 곧이어 금갑이 다른 손으로 주먹을 날리자 육 산군은 얼른 물러났다.

휘잉-!

훅-! 콰앙……!

지면이 한차례 크게 흔들리더니, 금갑의 첫 번째 주먹이 광풍을 일으키고, 두 번째 주먹은 땅에 닿지 않았음에도 지면에 커다란 구덩이가 움푹 파였다. 그 충격에 주위로 흙먼지와 돌가루가 우수수 휘날렸다. 그런데도 금갑 신장의 두 주먹에는 아무런 법력의 흔적이 없었다. 오로지 그가 쓴 것은 순수한 힘뿐이었다.

그러자 육 산군의 이마에는 살짝 땀이 배어 나왔다.

‘이게 바로 사존께서 만들어내신 호법들이구나! 하지만 종이로 오려낸 것으로 기억하는데? 게다가 여섯 장이 아니었나?’

이들을 불러낸 곤목성도 마찬가지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신장을 불러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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