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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787화 (787/892)

787화. 짙은 마기(魔氣)

북목에게는 예전에 도사연을 구출하려고 저 금갑 신장 하나를 상대하는 데에도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자가 넷이나 나타났다. 그러니 육오도 그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진짜 몸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자신은 그저 가만히 있다가 필요한 순간이 되면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계연의 앞에서 했던 약속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육오를 희생하는 것 따위는 북목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북목은 곧이어 다른 생각을 할 새가 없어졌다. 육 산군이 천천히 본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북목의 입이 점점 크게 벌어지며, 북목은 그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멀리 산 위의 형체를 바라볼 뿐이었다.

검은 연기가 끊임없이 상공으로 솟구치며, 마치 화염이 불타오르는 듯한 광경을 연출해냈다. 그 검은 연기는 일반적인 요기(妖氣)가 아니라 육 산군의 요기에서 비롯된 산물로, 무척 괴이한 동시에 비범하기까지 했다.

육 산군은 점점 크기를 키우더니, 그가 뿜어내는 검은 연기보다 더욱 괴이한 괴물로 변신했다. 먼저 그가 입은 옷의 색깔이 흑황색(黑黃色)으로 바뀌다가 그것이 마침내 털가죽이 되었으며, 팔다리의 관절과 근육이 툭툭 불거지는 동시에, 어깨는 점차 넓어지고 등에서는 척추가 솟아오르며 거대해졌다.

그의 짙은 요기는 주위의 뜨거운 공기를 비틀며 검은 연기를 주위에 잔뜩 피웠다.

육 산군이 본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은 무척 느린 듯했으나 실제로는 한순간이었다. 육 산군은 고층 건물만 한 크기의 괴물이 되었는데, 호랑이도 아니고 마귀도 아닌 괴이한 생김새였다. 거대한 호랑이의 몸에 자세히 보면 사람의 이목구비가 드러나 있었다. 살랑살랑 내젓는 꼬리에는 잔상이 감돌아 마치 꼬리가 여러 개처럼 보였다.

그의 무궁무진한 요기가 하늘로 솟구치며 지켜보는 이들의 눈에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마치 사방팔방 번져가는 화염과 같아서, 온 하늘에 검은 바람이 일고 검은 불길이 불타오르는 듯했다.

그렇게 육 산군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육 산군의 수행이 아직 원만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그의 본모습이 드러나자 지켜보는 이는 모두 경악에 빠졌다.

북목은 먼 상공에서 정신을 바짝 집중한 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육오의 모습과 같은 요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척 보기만 해도 보통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저건 일반적인 생령(生靈)이 수행을 닦아 될 수 있는 요괴가 아니었다. 아마 천계맹 내부에서 사정을 좀 아는 이들은 육 산군을 보고 그가 상고 시대에 살았던 종류이며, 거의 비슷한 형태를 갖출 정도로 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곤목성도 마찬가지로 입을 떡 벌린 채, 멀리 공중에 떠서 새로 나타난 요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저게 대체 무슨 흉악한 요괴지……?”

유일하게 육 산군의 변화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은 네 명의 금갑 역사뿐이었다. 모든 이들이 경악에 차서 육 산군의 본모습이 무엇일까 추측하는 와중, 금갑 역사들의 공세가 다시 한번 휘몰아쳤다.

육 산군은 원래 모습을 드러낸 후 체격이 거대해졌기 때문에, 금갑 역사들도 암묵적으로 그를 따라 크기를 키웠다. 하지만 그 둔중한 걸음에도 그들 발아래의 돌은 단 하나도 깨지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광풍을 일으키며 새로 모습을 드러낸 요괴를 향해 덤벼들었다.

“하압-!”

“허엇!”

금갑 역사들이 기합을 넣으며 돌진하자 그들의 어깨에 두둥실 걸친 황건(黃巾) 표대가 길어지며, 각기 다른 네 방향에서부터 육 산군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육 산군의 사지가 팽팽히 부풀어 오르더니, 육 산군은 한순간에 하늘 위로 솟구치며 바람을 부려 높이 올라갔다.

슈욱- 슉! 슈슛!

네 갈래의 표대는 마치 노란 빛처럼 육 산군이 솟구친 방향을 따라 날아갔다. 그것들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소리에는 무시무시한 힘이 담겨 있었다. 육 산군은 그 공격을 피하려고 잽싸게 산과 산 사이로 뛰어다녔다.

육 산군은 금갑 역사들이 하늘을 잘 날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직 이대로 자리를 뜨고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벌써 도망칠 순 없지!’

자신을 칭칭 감으려는 듯이 날아오는 황색 표대를 피한 육 산군은 이렇게 생각하며, 어느 산봉우리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 순간 그는 금갑 역사 중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근처에서 금빛이 번져오는 걸 느낀 육 산군의 동공이 단번에 수축했다. 뒤이어 그는 금갑 역사 하나가 온몸이 옅은 자색(紫色)의 전류에 휘감긴 채 나타난 걸 발견했다. 금갑 역사의 속도는 조금 전보다 몇 배는 더 빨랐고, 이미 그는 오른팔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그를 산산조각 낼 듯한 괴력과 강력한 바람이 더해져 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이미 늦었다! 도망칠 수도 없어!’

이는 육 산군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다. 이때는 도망치기에도 늦었을 뿐만 아니라 완벽히 피하기에도 늦은 후였다. 이에 그는 다른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온몸에 샘솟는 요기를 끌어 올리며 움직일 때마다 잔상을 남기는 꼬리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한순간 모든 잔상이 하나로 합쳐졌다.

금갑의 옅은 보랏빛 전류가 흐르는 붉은 손바닥이 육 산군의 꼬리와 닿았다.

치직-!

퍼엉!

기류가 짧게 진동하며 한순간 밝은 빛이 확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육 산군이 서 있던 산기슭이 폭발하듯 터져나가자, 광풍이 불어와 하늘이 돌멩이와 흙먼지로 부옇게 흐려졌다. 주위 10장(약 30m) 이내의 나무들은 모두 뿌리까지 들린 후였다.

이번 충격에 금갑조차 살짝 원래 있던 자리에서 뒤로 밀려날 정도였고, 육 산군은 꼬리가 마비된 듯이 얼얼하게 느껴졌다. 그는 꼬리를 날리는 반동을 이용하여 순간적으로 광풍을 일으키며 뒤로 멀리 날아갔다.

육 산군이 날아간 방향에는 이미 금갑 역사 세 명이 나타나 있었다. 그들은 광풍이 불어오는 와중에도 발이 땅에 착 붙은 듯,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육 산군이 움직이는 방향을 막고 서서는 동시에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 초식은 금갑이 조금 전에 썼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육 산군은 이 세 사람의 힘이 조금 전 금갑 역사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세 사람의 손바닥이 휙 날아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머리털이 주뼛 서는 것을 느꼈다.

그는 즉시 발을 굴리며 공격을 피해 하늘로 솟구쳤고, 그가 일으킨 진동으로 산기슭 전체가 흔들리며 세 명의 금갑 역사들이 딛고 선 땅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세 명의 금갑 역사들은 천성적으로 전투적인 본능을 타고난 이들이었다. 이에 그들은 육 산군이 상공으로 솟아오르는 순간, 등 뒤에 걸치고 있던 노란 표대로 단단히 중심을 잡고서 앞쪽의 표대를 날려 육 산군의 다리를 각기 하나씩 잡아챘다.

“크르릉……!”

공중에서 끌어내려진 육 산군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고, 서늘한 빛이 감도는 요력(妖力)을 끌어올려 자신을 잡아당기는 표대를 떨치려 했다. 하지만 표대는 기름 덩이처럼 미끄러워 아무런 공격도 먹히지 않았다. 이에 육 산군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치고 지나가더니, 그는 금갑 역사를 향해 곧장 발톱을 휘둘렀다.

펑……! 퍼엉! 펑!

그의 발톱이 세 명의 금갑 역사를 훑고 지나가자, 불꽃이 사방으로 튀며 커다란 소리를 만들어냈다. 이에 금갑 역사들이 각자 반보 정도 물러서자, 육 산군의 다리를 감고 있던 황색 표대에 살짝 힘이 풀렸고, 이를 느낀 육 산군이 곧장 빠져나왔다.

휘익-!

그 순간 귓가에 바람 소리가 들리자 육 산군의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는 굳이 쳐다보지 않고도 이중 가장 힘이 센 그 금갑 역사가 다시 나타난 것임을 알아차렸다.

이에 육 산군이 본능적으로 조금 전에 휘두른 오른발을 뒤쪽을 향해 휘두르자, 금갑이 뻗은 왼팔과 부딪혔다.

펑……!

“크르르……!”

그 순간, 육 산군이 공중에서 몸을 회전하더니 금갑의 뒤쪽에 자리 잡았다. 그는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하고, 양팔로 각기 금갑의 어깨와 머리통을 단단히 잡은 채 입을 쩍 벌리고 금갑의 어깨를 물었다.

끼긱…… 끼기긱……!

흉포한 요기가 점점 더 짙어지며 육 산군의 요력도 강해졌다. 이는 그가 발휘하는 힘이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빨이 금갑의 목 안에 박힌 것을 느꼈으나, 금갑은 무지막지한 힘으로 조금씩 육 산군의 발톱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이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육 산군은 자신이 마치 산맥과 힘을 겨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금갑 역사가 몸에 달고 있는 황색 표대가 다시 한번 감겨온 것이었다. 저것에 한 번 붙잡히면 달아나기 어려울 테니, 육 산군은 어쩔 수 없이 금갑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뒤쪽으로 뛰어오르는 동시에, 꼬리를 휘둘러 금갑의 등을 때렸다.

퍼억-!

고막이 울릴 정도의 굉음이 나자 금갑의 몸이 살짝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가 육 산군이 날아간 방향으로 몸을 돌리자, 다른 세 명의 금갑 역사가 금갑의 곁에 다가왔다. 그렇게 네 사람은 일자로 나란히 서서 멀어진 요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되자 이제는 금을, 금병, 금정마저 저 요괴를 처리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금갑은 눈을 가늘게 찌푸린 채, 다른 세 형제와 달리 좀 더 인간적인 표정 변화를 보였다. 이는 육 산군이 오늘 금갑 역사를 마주친 후, 처음으로 발견한 표정 변화였다.

다른 세 명의 금갑 역사들은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지만, 금갑은 턱을 살짝 치켜든 채 눈앞의 요괴를 다시 한번 가늠해보고 있었다.

한편 상공에 떠올라 있던 북목은 이미 말문이 턱 막힌 상태였다. 조금 전, 그 전광석화 같던 대치에 주위의 산봉우리 여러 개가 무너져 내렸으며, 네 명의 금갑 신장과 팽팽히 대치하는 육오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육오……. 저놈이 저렇게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하다니. 설마, 저 신장은 듣던 만큼 대단한 존재는 아니었나?’

북목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크거나, 아예 금갑 신장의 위력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그는 도사연을 구하러 갔던 이들의 무능을 합리화시키고자 했다. 도사연은 팔미호였지만, 산 아래에 깔린 후로 원기가 크게 상한 데다 이미 담이 작아져 아마 제대로 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떠올린 북목은 자신도 한번 시도해보자 싶어서, 한쪽에서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있는 곤목성을 바라본 뒤 모습을 숨겨 날아갔다.

그때, 자아가 없는 세 명의 금갑 역사들이 다시 한번 힘을 폭발시켜 육 산군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들의 갑옷 앞에 달린 황색 표대는 자유롭게 펄럭였고, 뒤쪽에 달린 것은 땅에 딱 붙어 끌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무궁무진한 지력(地力)이 그들을 향해 물 밀듯 밀려들자, 금빛이 더욱 환하게 빛났다. 오직 금갑만이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육형, 저자는 내가 상대할 테니 남은 건 자네가 처리하게!”

북목의 마음(魔音)은 아주 작았으나 이상할 정도로 귀를 찔렀다. 이왕 금갑 역사 세 명이 육오에게 향했으니, 그는 육오에게 크게 물려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자에게 덤벼들 생각이었다. 그편이 좀 더 안전해 보이기도 했다.

금갑은 그 마음을 듣지 못한 듯, 그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육 산군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 짙은 마기(魔氣)가 가까워지자 곁눈질로 북목을 흘끗 살폈다.

그것은 경멸과 오만, 그리고 잔잔한 와중에 은은한 살기가 담긴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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