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2화. 불안한 마음
“그럼 지금 아궁이 두 개를 전부 쓰고 있으니, 언제쯤 끝나겠습니까?”
그렇게 묻는 호위의 어조는 조금 불퉁했다. 그 말에 계연은 불길을 잠시 살핀 뒤 “잠시면 되겠네요.”라고 대답했다.
짧은 시간이 흐르자, 계연은 부뚜막 옆에 놓인 선반에서 탕 그릇을 꺼낸 뒤 솥뚜껑 두 개를 동시에 열었다.
그 순간, 기이한 향기가 찻집 전체로 퍼져나가 이를 맡는 이마다 그 향기에 도취 되어 군침을 흘릴 정도였다. 다만 그 향기는 몇 초간 퍼져나가다 순식간에 약해졌다. 물론 여전히 향긋하긴 했지만, 전처럼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드디어, 드디어 완성됐구나! 하하, 어서 식탁 위로 가져가자!”
해치는 생선 머리로 끓인 탕을 다급히 식탁 위로 옮겼고, 계연은 생선 살이 가득 담긴 그릇을 들어 올렸는데, 그 그릇은 척 봐도 세숫대야였다. 그 안에는 불그스름한 양념에 윤기가 흐르는 생선 살이 담겨 있었다.
“양이 저렇게 많으니 둘이서는 다 못 먹을 텐데…….”
“그러게……. 꿀꺽.”
계연은 깨끗한 찻잔 하나를 들어 찻물을 부은 뒤, 바깥쪽에 앉은 유학자 차림의 남자에게 직접 건네려 했다. 하지만 호위가 그를 막아섰기 때문에, 찻잔은 호위에게 건넬 수밖에 없었다.
“이 차는 계모가 드리는 겁니다. 저 생선 요리는 보기에는 많아 보이나 실은 그렇지 않아서요. 제가 조금 나눠드렸다간, 어떤 분이 무척 불만을 가질 겁니다. 게다가 저 생선은 보통 생선이 아니라 제가 쉬이 나눠드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는 인간사가 얽힌 일이라, 제 고의가 아닙니다.”
“흥!”
해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계연, 속세의 평범한 인간들과 그리 많은 말을 해서 무엇 하려고? 어서 와서 먹자. 안 그러면 내가 다 먹어버릴 테니!”
“네, 갈게요.”
계연은 자리를 떠나 해치가 앉은 식탁 앞에 앉았다.
반면 해치의 말을 들은 남자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설마 저 두 사람은 은거하는 고인들인가? 아니면, 아예 평범한 인간이 아닌 건가? 인간사가 얽힌 문제라…….’
한편 젓가락으로 생선 살을 집고 있던 계연은 마음에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점점 강해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그는 곁눈질로 계속 그 중년의 남자를 살폈다. 상대방은 어떻게 봐도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해치는 ‘안 그러면 내가 다 먹어버릴 테니!’라고 했던 말이 전혀 농담이 아니었던 듯, 계연은 신경 쓰지도 않고 바삐 요리를 먹고 있었다. 계연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와 보니, 양이 확 줄어든 게 보였다. 환술로 만들어낸 남자의 얼굴 위에 걸린 그림에는 해치가 바삐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해치는 환술로 얻은 손으로 젓가락을 이용해, 커다란 생선을 집더니 그림 속으로 가져갔다.
“음, 맛있구나. 냄새부터 군침이 도는데 먹으면 더 맛있군. 계연, 네 손맛은 대단한 신통력 그 자체다! 물의 정수가 변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선이 이토록 맛있게 변하다니. 다만 이게 상대를 제압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신통력이 아니라는 게 아쉽구나. 그래도 맛있다, 정말 맛있어! 쩝쩝……. 음…….”
해치가 찬탄을 금치 못하며 환술로 만들어낸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리고는 충분히 맛을 음미한 후 빠르게 씹어 목구멍으로 삼켰다. 동시에 계속해서 “음, 음!” 하며 감탄했다.
계연은 미소 짓는 얼굴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신통력이 유용하지 않다고?’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계모(某)의 솜씨가 자랑스레 내놓을 만한 것은 아니라 내심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제발 천천히 좀 드세요, 그래도 체통은 지키셔야 할 것 아니에요.”
“하하하……. 난 그런 것 신경 안 쓴다. 계연 너는 이것저것 따지는 게 너무 많아.”
계연의 말에도 해치의 젓가락질은 더욱 빨라져만 갔다. 그는 살코기를 두세 점은 입에 넣은 뒤에야 씹기 시작했고, 씹기 시작한 후에는 이미 다음 목표물을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계연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걸 보고 바삐 젓가락을 놀렸다. 그가 먹는 모습은 무척 우아했으나 젓가락을 움직이는 속도는 해치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도 그간 많은 수련을 닦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이 자리는 해치에게 생선 요리를 접대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적게 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계연은 자신의 주의력을 3할 정도 부귀한 유학자 차림의 남자에게로 쏟고 있었다. 그래서 젓가락질 내공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맛있구나, 맛있어! 이제 탕을 맛봐야지!”
해치는 살점을 씹으면서 커다란 탕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봉인이 풀린 것처럼, 농밀하고 짙은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희미한 빛이 그릇 주위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절묘하구나! 이 생선의 정화(精華)는 모두 이 탕 안에 들어있었군!”
해치가 다급히 국자를 들어 자신의 그릇에 탕을 가득 따랐다. 그리고는 젓가락으로 지느러미에서부터 아래로 이어진 쪽의 살점과 생선 대가리의 살점을 떼어냈다.
그러자 계연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해치를 쳐다보았다.
“해치 당신, 그리 오래 잠들어있던 것치곤 먹을 것에 아주 조예가 깊군요!”
“하하, 과찬이시오!”
해치는 이렇게 대답한 뒤 조심스레 국물을 떠서 맛보았다. 그러자 그림 속 신수(神獸)에게서 은은한 붉은 빛이 솟구쳤고, 그의 얼굴 위로 한껏 도취된 듯한 표정이 드러났다.
“이건 내가 먹어본 가장 맛있는 요리 중 하나로군, 대단하구나……. 이런 국물을 맛볼 수 있다니, 지금까지 갇혀 있던 것도 그리 억울하지 않구나!”
그러자 계연이 마찬가지로 환하게 웃으며 “과찬이세요.”라고 대답하고는 이렇게 농담조로 덧붙였다.
“이 생선은 저도 딱 두 마리뿐이에요. 그렇게 아부해도 더는 없어요.”
“하하하하하!”
그러자 해치가 진심으로 즐거운 듯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요리에도 무척 만족했지만, 계연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더욱 유쾌해졌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감히 자신에게 ‘아부한다’라는 말을 쓸 수 있겠는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물의 정수로 이루어진 생선도 이렇게 맛있게 만들었는데, 후에 내가 더 대단한 것들을 잡아 오면 어떨까? 내가 재료를 구하고 네가 요리를 하는 거지. 재밌지 않겠느냐?”
그러자 계연이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물었다.
“더 대단한 것들이라니요?”
그러자 그림 속의 해치가 계연에게 더욱 가까이 걸어오더니, 위엄이 가득 서린 얼굴을 바짝 갖다 대며 말했다.
“예를 들어, 난새(*鸞鳥: 봉황과 비슷한 전설 속의 영조(靈鳥))의 알이나 천룡의 힘줄, 산고(*山膏: 돼지와 비슷한 전설 속 짐승으로, 욕을 잘한다고 함)의 발이나 혀, 녹촉(*鹿蜀: 말의 모습에 호랑이 무늬를 지닌 전설 속 짐승)의 다리, 구여(*犰狳: 아르마딜로) 고기…….”
그 말에 계연이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만약 육체와 정신에 대한 통제력이 강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땀이 뚝뚝 떨어졌을 것 같았다.
“그건 됐어요. 게다가 저와 응 선생님은 막역한 사이인데, 용의 힘줄을 어떻게 먹나요? 또 제가 만든 <봉구황>도 봉황이 알려준 것인데, 난새의 알을 어떻게 먹겠어요?”
그러자 해치가 진지한 얼굴로 계연을 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구나. 그럼 용과 봉황 쪽은 건드리지 말자!”
계연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고개를 내려보니, 생선 살이 또다시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확 줄어들어 있었다. 보아하니 해치는 말을 하면서도 먹는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은 것 같았다.
한편, 그리 치울 것도 없이 깨끗한 부뚜막을 다시 치운 호위들은 마차에서 요리 재료를 꺼내 밥을 짓기 시작했다. 한편 유학자 차림의 중년 남자와 그의 권속 몇 명은 계연과 해치가 먹는 생선 요리에 정신이 팔려 계속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도 자연히 해치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물의 정수라느니, 그런 말은 전혀 알아듣지도 못했고, 용이나 봉황을 먹자는 말에는 놀라 식은땀이 다 났다. 게다가 세숫대야만큼 거대한 그릇에 꽉 찬 생선 살이 이미 확 줄어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배가 전혀 부풀어 오르지 않아, 보고 있던 이들은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르신……. 저 두 사람은, 고인이 아니라면 아예 사람이 아닌 듯싶습니다. 지금 바로 손을 쓰는 게 어떨까요?”
호위를 이끌던 우두머리는 조금 전에 자신이 계연과 해치에게 무례하게 대했던 것을 떠올렸다. 저 두 사람은 척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움직임이 무인(武人)같지도 않았다. 남황이라고 해서 온갖 요마들이 매일같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반 백성들은 그들의 존재를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히 그런 존재를 피해갈 수 있는 각종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바로 모른 척하고 얼른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남자는 계연이 건네준 아직 따뜻한 찻잔을 쥐고 있었다. 그는 손을 흔들어 호위에게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전했다. 사실은 그도 조금 전까지 저들의 정체를 우려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곧장 떠날 생각이 없어졌다.
“내가 보니 저 두 분 선생은 필시 고인(高人)이 분명하다. 그러니 조금 이따가 가서 도움을 청해볼 생각이다. 참, 챙겨온 술도 꺼내고, 어제 잡은 사슴고기도 잘 요리하여 저분들께 접대하거라.”
“예!”
호위는 명을 받든 뒤에도 여전히 두 사람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저 두 사람이 고인일 수도 있지만, 삿된 존재일 가능성이 좀 더 컸기 때문이다.
“참, 어르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호위는 서둘러 마차가 있는 곳으로 가서, 천이 씌워진 무언가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그것을 탁자와 일행에 의해 모습이 가려지는 바닥에 놓은 뒤 천을 걷었다. 덮개 안에는 새장이 있었고, 새장 안에는 금사작(*金絲雀: 카나리아) 두 마리가 있었다.
호위는 새장 입구를 통해 금사작 한 마리를 잡은 뒤, 은침을 계연이 건넨 찻잔에 넣었다가 금사작의 입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새는 차향을 맡고는 다급히 은침을 입에 물었다.
그들이 금사작에게 찻물을 맛보게 할 때, 계연과 해치도 이미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저 신경 쓰지 않을 뿐이었다.
금사작은 원래도 영성(靈性)이 뛰어난 새로, 무언가가 지닌 기운에도 무척 민감했다. 그래서 독성이 있는 것을 판별하는 데에도 능했다. 게다가 이 두 마리는 법사가 전문적으로 훈련 시킨 새들이라 더욱 뛰어났다. 이들이 독을 판별하는 방식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직접 맛을 보는 것이었다.
찻물을 머금은 새를 다시 새장 안에 넣고 기다려보았지만, 아무런 이상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새의 두 눈이 밝게 빛나며 더욱 활발히 움직였다.
“어르신, 찻물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남자는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차를 맛보았다. 그러더니 두 눈을 반짝 빛내며 찻물을 한 번에 다 비웠다. 찻물을 삼키자 차향을 따라 따뜻한 기운이 사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좋은 차로구나.”
차를 마신 남자는 자신이 고인을 만났음을 확신했다. 어쩌면 이 고인은 일부러 여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일전에 어느 법사가 말하기를, 진정한 고인은 찾기 어려운 존재라 시정에서 볼 수 있는 이들은 열에 아홉은 전부 도행이 얕고, 그중 상당히 많은 이들은 전부 사기꾼이라고 했었다.
이에 남자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계연과 해치를 향해 다가간 뒤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
“소인은 여평(黎平)이라 하고, 한때 양산(陽山)의 군수(郡守)였으나 지금은 관직에 몸담고 있지 않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소인이 몇 년째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있어, 오늘 두 분 고인을 만난 김에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해치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네가 관리였든 아니든 그걸 우리에게 말할 필요가 있느냐?”
그 말에 남자가 깜짝 놀라더니 곧 민망한 듯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계연이 상황을 수습하고자, 젓가락을 쥔 채 그를 향해 인사했다.
“그리 예를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무슨 일이 있으시면, 저희가 식사를 마친 뒤에 다시 이야기하시지요.”
“그래, 세상에 먹는 것보다 중한 일이 어딨느냐!”
해치는 이렇게 대꾸하면서도 입과 손은 조금도 쉬지 않았다.
“예!”
남자는 다시 물러나 근처 다른 식탁 곁에서 기다렸다. 그러다 호위가 다가오자 얼른 물러나라며 손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