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3화. 불길함의 근원
계연은 잠시 식사를 들다가 탕을 두어 번 떠먹고는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해치 홀로 실컷 먹도록 한 후, 남자를 향해 다가가자 기다리던 남자가 얼른 허리 굽혀 예를 취했다.
“제가 여기 앉아도 되겠지요?”
“예, 선생님 편한 대로 하십시오!”
“음, 그럼 말해보세요. 무슨 일이시죠?”
계연이 식탁 옆에 앉아 어딘가를 향해 손짓하자, 요리 그릇 옆에 있던 찻잔과 주전자가 천천히 이쪽으로 날아왔다.
남자는 더욱 마음을 굳게 먹고 자신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희 여씨 집안은 몇 대째 외아들뿐이었는데, 제 대에 이르자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자손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전에 제 처와 세 명의 첩이 연이어 몇 차례 회임했으나, 모두 번번이 유산을 해버렸습니다. 이에 수많은 고인을 청해와 법사도 열어봤고, 비바람을 부린다는 신선을 청해도 봤는데, 모두 저희 집안의 복록이 깊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만 하더군요. 그중 누구도 제게 자녀가 없는 연유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계연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제가 기운을 읽어보니, 지금은 자손의 기운이 서려 있는데요.”
“예, 맞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입니다. 지금 제 처가 회임한 상태이긴 한데, 그것이…… 다른 이들은 아이를 10달 품지만, 제 처는 벌써 3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런데도 아직 아이가 태어날 기미가 없어서…….”
그 말에 계연은 내내 품고 있던 불안감이 확 부피를 키우는 게 느껴졌다. 점괘를 쳐볼 필요도 없이, 그 태아는 무척 불길한 존재임이 분명했다.
“3년이 되어도 태어나지 않는다니, 귀태(*鬼胎: 귀매(鬼魅)에 의해 탄생한 태아)가 아닌가?”
해치는 계연이 요리를 남겨두고 가버리자 전처럼 입맛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생선을 씹으면서도 계연 쪽의 동정에 귀를 활짝 열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히 여평의 말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다만 그의 말에는 상대의 감정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여평은 해치의 말을 듣더니 당연히 안색이 나빠졌다. 하지만 감히 화를 낼 수는 없어, 쉬지 않고 젓가락질을 하는 해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께서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그간 많은 명의가 부인을 진맥해왔는데, 모두 태맥(*胎脈: 임산부의 맥)이 평안하다고 하였습니다. 더불어 청해온 법사들도 모두 부인의 상태가 좋고, 복중 태아도 건강하다고 했습니다. 그저…….”
“그저 태어나지만 않을 뿐이란 거죠?”
계연이 이렇게 말을 잇자 여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태어나질 않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곧 3년이 다 되어가는데, 비록 부인의 배가 과도하게 커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안사람들 모두 걱정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온갖 명의와 법사를 청해온 거로도 모자라, 일전에는 도성에 주청도 드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런 회신이 없어, 직접 도성에 가서 성상을 뵈러 가는 길입니다.
그저 제가 반평생 조정을 위해 일했던 노고를 기특히 여기시어, 국사(國師)인 마운(摩雲)성승(*聖僧: 높은 경지에 이른 승려를 이름)을 보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계연은 여평의 말에 그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는 관직이 없었기 때문에, 확실히 관기(官氣)가 어두웠다. 하지만 계속 흩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보니, 후에 다시 관직에 오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아직 황제의 마음에 그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여 노야께서는 지금 도성으로 가시는 길인가요?”
“그렇습니다. 길이 멀어 이미 집을 떠난 지가 2주가 되었습니다. 이제 강구성에 다 와 가니, 한 달 정도만 더 가면 곧 도성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 두 분 고인을 만났으니, 어쩌면 도성에 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여…….”
이렇게 말한 여평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혹 소인의 집에 가서 부인을 한번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노야께서는 어찌 계모(某)가 부인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가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여평은 사실 도성에 가도 8할 이상의 확률로 황상을 뵙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단지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아 이 자그마한 동아줄이라도 잡아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저 무척 정중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선생님! 저는 두 분 선생님께서 무척 비범하신 분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선생님은 선인의 수단임이 분명한 격공취물(*隔空取物: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옮기는 것)을 선보이셨지 않습니까? 그것만 봐도 소인이 그간 만나 보았던 법사들보다 도행이 훨씬 높으신 것이 분명하지요. 제발 한 번만 저희 여씨 집안을 도와주십시오! 일이 되든 안 되든,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겠습니다!”
여평은 이렇게 말하면서 계연을 향해 다시 대례(大禮)를 올렸다. 그의 대답과 공손한 태도에는 조금도 흠잡을만한 데가 없었다.
계연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여전히 바삐 젓가락을 놀리고 있지만 실은 이쪽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해치를 한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여평에게 고개를 돌려 허리 숙인 그를 일으켜 세웠다.
“어서 예를 거두세요. 안 그래도 저도 마침 가보려고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노야의 일행이 식사를 마치면 함께 돌아가도록 하죠.”
그러자 여평이 확연히 기뻐하는 얼굴로 다시 한번 허리 숙여 예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집안에서도 반드시 보답할 겁니다. 만약 일이 잘 풀리면, 두 분 선생의 크나큰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허, 계연이 도와주는 건데 나랑은 무슨 관계냐? 나는 빼거라.”
해치는 가볍게 코웃음 치며 말한 뒤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그러자 여평은 감히 말대꾸할 수 없어 어색한 얼굴로 웃더니, 감사하다는 듯한 얼굴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 담긴 감격은 계연이 보기에도 꽤 진정성 있어 보였다.
“알겠어요, 그럼 일단 앉으세요. 차도 좀 드시고요. 이 차는 무척 진귀한 것이라, 보통 사람은 마시기 어려운 거예요.”
계연이 찻주전자를 들어 여평에게 차를 따라주자, 여평이 얼른 자리에 앉아 차향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첫 잔을 마신 뒤로 꽤 지났는데도 여전히 온몸이 따뜻했다. 그것만 봐도 법사나 선사들이 제련했다는 단약보다 훨씬 귀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계연은 여평이 차를 다 마신 후에도 다시 잔을 채워주지 않았다. 여평도 감히 찻주전자를 향해 손을 뻗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니 이 찻물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주위에 있는 모든 이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부뚜막에서 식사가 준비되었다. 비록 계연의 요리보다 향긋하지는 않았지만, 양이 무척 풍성했고 고기와 채소 등이 골고루 올라와 있었다.
“어르신,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이쪽으로 와서 식사하시지요!”
하인이 요리를 한쪽에 있는 식탁 위에 차린 뒤 그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그러자 여평은 계연과 해치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청했다.
“두 분 고인, 제 쪽에 좋은 술과 요리가 있는데, 좀 더 드시겠습니까?”
그러자 계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더니 해치가 앉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위에는 이제 남아있는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반면 해치는 여평의 일행이 먹는 식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므로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함께 먹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여평의 일행도 곧 식사를 시작했다. 계연과 해치는 함께 앉아 남은 생선 요리를 먹다가, 거의 바닥이 보일 때쯤부터 해치가 갑자기 우아한 자세로 천천히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계연은 해치의 이런 모습을 보고서, 서둘러 다 먹어버리면 남이 먹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짓궂게 추측했다.
여씨 집안 일행은 당연히 맛을 음미하고 할 새도 없이, 서둘러 식사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는 돌아가는 길을 준비하며 호위들끼리 앞으로의 일정을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인인 여 노야가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다가와서 이렇게 보고했다.
“어르신,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갈 터이니, 오후에 속도를 내서 움직이면 저번에 머물렀던 곳에 다시 묵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분 고인은 만약 따로 짐이 없으시다면 말을 타셔도 되고, 아니면 뒤쪽의 마차에 타셔도 될 것입니다. 마차에 타면 좀 더 편하실 겁니다.”
호위들은 이제 막 마주친 저 고인들이 자기 주인과 한 마차에 타길 원하지 않았다. 그때 계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돌아가는 데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까요. 식사를 마친 듯하니 지금 바로 가시죠.”
말을 마친 계연이 한쪽에 세워진 말과 마차를 향해 소매를 휘두르자, 한순간 그의 넓은 소맷자락이 끝없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한 차례 맑은 바람이 지나간 후, 마차 두 대와 십여 필의 말이 모두 계연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마차 곁에 서 있던 호위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고, 다른 이들도 모두 멍한 얼굴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사실, 부인 뱃속의 태아가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요. 서둘러 가서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러자 여평이 여전히 멍한 얼굴로 계연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희 마차와 말은 다 어디로 간 겁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여 노야. 전부 제 소매 안에 멀쩡히 들어있으니까요. 자, 여러분 모두 준비되셨나요?”
그 말에 호위 통령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준비 말씀이신지요?”
“하하, 당연히 바람을 타고 날아갈 준비 말이지요. 만약 겁이 나면 눈을 감으세요.”
계연은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한 줄기 맑은 바람이 불어와 찻집 안팎의 모든 이들에게 불어닥쳤다.
곧이어 일행은 발아래가 가벼워지며 중심을 잃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공중으로 떠올라 계연을 따라 함께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아악!”
“으악-! 내려갈 수가 없잖아!”
“날, 날고 있어!”
사람들이 저마다 비명을 질렀고, 어떤 이들은 흥분한 얼굴이었으나 어떤 이들은 아예 눈을 꽉 감아버리기도 했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순식간에 아래의 찻집은 보이지도 않게 되었고 이에 아래를 내려다보면 더욱 겁이 났다.
“선장, 선장…… 조심, 조심하십시오…….”
여평은 흥분한 동시에 공포를 느끼며 연신 이렇게 애걸했다.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서세요!”
계연의 생각이 바뀜에 따라, 갑자기 일행의 발아래에 안개가 끼더니 이내 흰 구름이 되었다. 사람들은 드디어 발아래에 무언가 디딜 데가 생긴 느낌이 들었다. 비록 푹신푹신하여 땅바닥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마음이 훨씬 안정되었다.
해치는 한발 늦게 따라와, 아래쪽에서부터 날아올라 계연의 옆에 섰다. 그는 온통 흥분한 얼굴의 사람들은 쳐다도 보지 않고, 곧장 푸른 연기로 변해 흩어졌다. 뒤이어 그림 족자가 저절로 계연의 소매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