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94화 (794/892)

794화. 여(黎)씨 저택의 태기

“선, 선장, 소인의 집은 규남군성(葵南郡城)에 있습니다, 여기서 천 리 정도의 거리입니다.”

“네, 알고 있어요.”

계연은 이렇게 대답한 뒤, 법력을 펼치거나 법결을 외지도 않고, 그저 마음의 변화만으로 일행을 데리고 구름을 몰아 규남군성으로 향했다.

여평의 일행은 조심스레 하늘을 둘러보다 아래로 스쳐 지나가는 산과 하천을 관찰했다. 그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흥분은 말로 채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지금 자신들이 어느 상공에 떠 있는지 저마다 추측해보기 시작했다.

여평은 자신이 진정한 선인을 만났음을 깨닫고 마음속의 희망이 더욱 크게 불어났다. 이에 그는 계연과 말이라도 몇 마디 나누고 싶었지만, 고소공포증이 심한 데다 계연과 감히 말 붙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두 호위의 부축을 받으며 흘러가는 풍경을 구경하기만 했다. 뒤쪽에서는 하늘을 날게 되어 잔뜩 흥분한 하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아래쪽 풍경의 변화가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실제 그들의 속도는 여평 일행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들이 저마다 저 아래가 어디쯤일지 추측하고, 전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얼마나 걸려 왔는지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규남군성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올라탄 구름의 고도가 천천히 낮아지자, 그제야 속도가 실감이 났다. 얼마 후, 계연은 일행과 함께 여씨 저택 바깥의 대로에 내려섰다. 길을 지나던 행인들은 그들 일행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걸 보지 못한 듯,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저택 대문 앞의 두 문지기마저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계연이 다시 소매를 크게 떨치자, 마차와 말들이 저택 밖 공터에 나타났다. 마차는 전과 다름없이 온전했고, 말들은 조금 놀란 듯 계속해서 발을 굴렀다. 그러자 호위 몇몇이 재빨리 다가가 고삐를 잡으며 말들을 안정시켰다.

여평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해,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여씨 가문의 편액을 발견하고는 그제야 이곳이 자신의 집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여 노야, 어서 가보세요.”

그때 계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여평이 꿈에서 퍼뜩 깨어난 듯 대답했다.

“아, 예.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선장. 지금 가서 문을 열겠습니다. 참, 다른 선장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구름에 오르신 후로 사라진 걸 봤는데…….”

“선장이라고 부를 필요 없이, 전처럼 선생이라고 부르시면 돼요. 그 도우는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자러 갔어요. 괘념치 마세요.”

“예, 예. 그렇다면 소인도 마음이 놓이는군요!”

여평은 고개를 끄덕인 뒤, 하늘을 나는 동안 긴장해 흘렸던 땀을 닦으며 대문을 향해 다가갔다.

“뭘 하고 서 있느냐? 내가 돌아온 게 보이지 않느냐?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느냐?”

그의 목소리에 여씨 저택 앞의 문지기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대문 앞에는 어느새 마차와 많은 일행이 서 있었다. 바로 자기 집 노야와 함께 길을 떠났던 저택 하인들이었다.

“어허, 설마 지금까지 졸았느냐?”

“어이쿠, 어르신!”

“어르신께서 돌아오셨군요!”

“어르신, 소인이 어찌 된 일인지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자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됐다, 됐어. 어서 정문이나 열거라. 저택 안에 우리가 돌아왔다고 알리고, 연회 준비를 하라고 전해라!”

“예!”

주인이 더 꾸짖지 않자 문지기들은 얼른 명을 받들어 대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여평은 다시 계연의 곁으로 돌아와, 안쪽으로 손을 뻗으며 그를 이끌었다.

“선생님, 어서 드시지요!”

“네.”

계연이 법안을 열어 저택의 기운을 살펴보니, 후원 쪽에서 아주 짙은 태기(胎氣)가 보였다. 그 기운을 보자, 마치 포동포동하고 귀여운 아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게 보이는 듯했다.

태기에는 아무런 사악한 기운도 도사리고 있지 않았지만, 계연은 어쩐지 심상치 않은 불길함을 느꼈다.

‘과연 저 아이에게 문제가 있었어!’

“선생님, 어서 들어오시지요!”

여평이 다시 정중한 태도로 손짓하자, 계연이 그제야 대문을 향해 걸음을 뗐다. 그러자 말과 마차를 살피는 호위만 제외하고 모두 그 뒤를 따랐다.

여평은 더는 관리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체 높은 신분이었으므로, 저택 내부도 크고 정교하게 지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때 여평은 집안 곳곳을 소개할 기분이 아니었으므로, 대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계연을 떠보듯 물었다.

“선생님, 일단 주방에 식사부터 올리라 할까요?”

그들은 얼마 전에 막 점심을 먹었으므로, 그가 이렇게 묻는 데에는 다른 뜻이 있다는 걸 계연도 알았다.

“가죠, 일단 부인부터 만나봐야겠어요. 제가 여기 밥을 먹으러 온 건 아니니까요.”

“예, 예. 저를 따라오십시오. 너는 어서 가서 선생이 방문하실 거라고 부인께 전해라.”

여평은 그를 따르던 하인에게 이렇게 명령을 내린 뒤, 계연을 데리고 후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후원과 전원(前院)이 이어지는 화원에 들어서자, 소식을 듣고 나온 여평의 첩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중에는 하인들의 부축을 받고 서 있는 노부인도 있었다.

“어르신, 돌아오셨군요!”

“어르신!”

첩실들이 그에게 인사를 올렸고, 노부인은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여평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여평도 얼른 다가가 노부인의 팔을 잡았다.

“아들아, 도성까지 길이 먼데, 어찌 이리 빨리 돌아왔느냐?”

여평은 자신에게 인사 올리는 첩들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모친의 물음에 대답했다.

“어머니, 제가 빨리 돌아온 것은 도중에 고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도성으로 떠난 것도 성상께 청을 올려 국사를 모셔오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진정한 고인을 만났으니 뭐하러 도성에 가겠습니까?”

노부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풍채가 비범한 계연을 바라보았다. 그쪽에는 전부 자기 집 하인들뿐이고, 낯선 얼굴은 계연뿐이었기 때문에 그녀도 아들이 말하는 고인이 계연임을 즉시 알 수 있었다. 노부인이 계연을 향해 가볍게 인사하자, 계연도 노부인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노부인은 계연에게 정중한 태도로 인사한 뒤 낮은 소리로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아, 저분이 진정한 고인임이 확실한 것이냐?”

“어머니, 저희가 어떻게 돌아왔는지 한번 맞혀보시겠어요?”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여평은 굳이 뜸을 들이지 않고 하늘을 가리켰다.

“저희는 계 선생님을 따라 구름을 타고 날아왔습니다. 갈 때 2주가 걸렸던 그 천 리 길을 순식간에 돌아온 겁니다!”

그러자 노부인이 멍한 표정으로 아들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에 그녀는 살짝 힘을 주어 아들을 밀어내고는 다시 계연을 향해 예를 올렸다. 이번에는 예를 올리는 태도가 훨씬 정중했다.

“저희 여씨 집안은 몇 대째 독자만 태어났는데, 지금은 영낭(玲娘)의 뱃속 태아만이 유일한 아이입니다. 부디 선생께서 고명하신 술법으로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도록 지켜주십시오. 그리해주시면 반드시 선생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노부인은 나이가 많아 예를 올릴 때도 몸이 불안정하게 떨렸다. 하지만 계연은 처음처럼 예를 행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법력을 움직여 기류로 하여금 노부인을 부축하도록 했다. 계연은 뒤이어 평온하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아이만 지키면 되나요?”

계연의 목소리는 가벼웠고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여평과 노부인은 그 물음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계연은 이미 후원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러자 여평과 노부인이 얼른 그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선생님, 잠시만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평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자 계연이 담담히 대꾸했다.

“어디인지 알고 있습니다.”

저택은 크기가 컸지만, 규격에 맞게 지어져 있었으므로 정처(正妻)가 머무는 곳이 어딘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굳이 이렇게 추측할 필요도 없이, 그의 법안에 보이는 태기는 마치 한밤중의 불길처럼 강렬하여 길을 잃는 게 불가능했다.

몇 군데의 원락을 지나고 다시 주랑(*走廊: 기둥이 늘어선 복도)을 따라가자 어느 내원으로 이어지는 아치문 앞에 하인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보아하니 저곳이 바로 여평의 부인이 머무는 곳인 듯했다.

“선생님, 바로 저깁니다.”

여평이 서둘러 그를 따라잡자, 아치문 앞에 서 있던 하인들이 이쪽을 향해 예를 올렸다.

“어르신!”

“음, 너희들은 일단 물러나 있거라.”

계연은 걸음이 빨랐기 때문에, 여평과 몇몇 호위만이 그를 따라잡았을 뿐, 노부인과 세 명의 첩은 한참 뒤처져 있었다.

호위와 남자 하인들은 여평의 말에 물러나고, 시녀 몇 명과 나무 상자를 짊어진 의원처럼 보이는 이만 남았다. 시녀 두 명이 가볍게 문을 밀어 열자, 계연은 문밖에 얌전히 서 있다가 내부가 눈에 들어오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실내에 켜둔 촛불이 문이 열리면서 생긴 바람에 의해 위태롭게 흔들렸다. 안쪽의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시녀 한 명만이 침상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이때 태기는 그 존재감이 더욱 강렬해졌다. 하지만 계연은 태기보다는 침상에 누운 부인에게 더욱 관심이 쏠렸다.

이 부인은 평범한 인간이었는데도, 뱃속의 태기로 인해 계연의 눈에도 무척 또렷하게 보였다. 그녀의 안색은 누렇게 뜬 채 어두웠고, 마른 장작처럼 뼈가 불거지고 바싹 말라 있었다. 이미 ‘안색이 안 좋다’는 정도로는 형용할 수가 없는 단계여서, 지켜보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그녀는 불룩 솟은 배 위에 이불을 덮은 채, 몸을 옆으로 뉘여 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윽…… 어…… 어, 어르신…….”

계연은 고개를 돌려 여평을 바라본 뒤, 막 아치문 앞에 이른 노부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평은 면목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노부인은 걸음을 서두른 관계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어쩐지 저 노부인이 아이에만 관심을 쏟더라니.

아이 모친의 모습을 보니, 집안사람들이 그녀를 살릴 수 없으리라 생각한 것도 이해가 갔다.

여평은 계연의 눈빛에 겁이 났지만 그래도 가까이 다가가 이렇게 설명했다.

“선생님, 영낭이 이 상태에 이른 것은 절대 저희의 고의가 아닙니다. 그간 온갖 진귀한 약재를 구해와 부인에게 먹였고, 고인에게 구해온 단약도 전부 먹여봤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3년이 되도록 태어나지 않아, 결국 이렇게…….”

계연은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 없이 어두운 실내로 발을 들였다.

“창문은 왜 열지 않는 건가요?”

여평이 함께 들어온 의원을 바라보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여 부인께서는 몸이 허약하셔서 바람을 맞으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는 날에는 나가서 햇빛을 쐬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반년 동안 부인의 몸이 점점 나빠지는 통에 이제는 움직이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계연이 아무런 말 없이 여 부인 가까이 다가가자, 곁에 서 있던 시녀가 여평의 손짓을 보고 뒤로 물러났다. 여 부인은 계연이 여 노야가 청해온 명의 혹은 법사라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

“여 부인, 아무 말도 하실 필요 없어요.”

계연은 그녀의 상태를 살피다가 이불이 덮인 부근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초여름이라 아직 날씨가 덥진 않았지만, 그래도 결코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이불을 덮은 여 부인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찰싹 붙어있는 걸 보니 더워하는 듯했다.

침상 근처에는 붉은 실이 달리거나 부적이 적힌 장식품 같은 것들이 달려있었는데, 그중에는 보통 사람들은 볼 수 없는 희미한 빛을 내는 것도 있었다. 보아하니 여씨 집안사람들이 구해온 보호용 부적인 듯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여 부인의 배를 좀 봐도 되겠습니까?”

“예!”

여평이 이렇게 대답하며 직접 침상 가까이 다가가, 가볍게 이불을 걷어냈다. 그러자 높이 솟아오른 여 부인의 배가 드러났다.

그 크기는 안에 세쌍둥이가 있다 해도 믿을 법한 크기였다. 하지만 그 안의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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