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5화. 살고 싶어요
계연의 눈빛이 여 부인의 배에 닿자, 그는 태아가 뱃속에서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동시에 태기도 더욱 강렬하게 변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보니, 계연은 그 태기가 품은 불길한 느낌이 실체를 갖추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마치 끝없이 변화하는 오로라처럼 기괴하여 종잡을 수가 없었다. 계연조차 약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한순간 계연은 거의 선검을 불러낼 뻔했다. 태아의 본질에는 아무런 선악의 개념도 없었고 악의가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그 불길하고 불안한 감각은 계연의 이해를 넘어서는 종류였다.
“해치, 느껴지세요?”
계연이 속삭이듯 묻자, 소매 속에서부터 해치의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느껴지지 않겠냐. 안 그래도 네가 저 여씨 놈한테 왜 그리 신경을 쓰나 했더니, 이걸 알아봤던 모양이지.”
“태아의 상황이 어떤가요?”
그러자 해치가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대꾸했다.
“모르겠다. 잘 보이지도 않고.”
계연이 내내 입을 다물고 있자, 여씨 집안사람들도 감히 방해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침상 위에 누워있던 여 부인이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선생님……. 제, 제가 살 수 있을까요……?”
계연이 그녀를 바라보니, 무척 괴로운 듯 눈가에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노부인의 눈에 자신은 뱃속의 기괴한 태아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계연은 여 부인의 뱃속 태아를 향한 두려움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어쩌면 하루하루, 조금씩 자신의 생명이 빨려 나가는 걸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걱정하지 마세요. 살 수 있어요!”
계연의 힘 있고 평온한 목소리에는 듣는 이를 안심시키는 힘이 깃들어있었다. 그래서 침상에 누운 여 부인은 크게 안심이 되어 호흡마저 차분해졌다.
“선생님, 정말입니까? 모, 모자 둘 다 무사하겠습니까?”
여평도 계연의 말을 듣고 감격한 듯 이렇게 물었다.
“제가 반드시…….”
그때 누군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저택 전체에 울렸다.
“선재 대명왕불, 노승 마운, 여 대인을 뵈러 왔습니다!”
“마운 성승(*聖僧: 높은 경지에 이른 승려를 이름)? 국사 대인!”
여평이 깜짝 놀라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얼른 계연에게 양해를 구했다.
“선생님, 국사께서 오신 모양입니다. 저는 나가서 국사를 모셔오겠습니다! 선생님께선…….”
계연은 여 부인의 배에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쩌렁쩌렁한 불호(*佛號: 부처의 명호(名號). 불교도들이 염불하는 ‘阿弥陀佛’(아미타불) 등을 지칭함)에서 느껴지던 선의(*禪意: 무아적정의 경지에 도달하는 불교에서의 깨달음)가 그리 높지 않은 걸 보니, 저 승려의 불법(佛法)도 그리 고명하진 않았다. 최소한 계연이 눈을 돌려 관심을 기울일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자 여평이 더 말을 잇지 않고 얼른 방을 나갔고, 그의 첩들과 여 노부인도 뒤를 따랐다. 그러자 방안에는 계연과 여 부인, 그녀의 측근 시녀만이 남았다. 물론 밖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호위들과 의원도 남아있었다.
그러자 침상 위의 부인이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입술을 가늘게 떨었다.
“선생님,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 저들은 반드시 아이를 살려달라고 할 거예요. 하지만 저도, 저도 살고 싶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부인께서는 죽지 않을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저 태아가 태어나면 부인은 그 순간 거의 죽게 될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계연이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는 두 생애를 사는 동안 자신이 한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
* * *
한편, 여평을 비롯한 여씨 집안사람들은 다급히 대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속도는 계연을 따라 후원으로 들어갔을 때보다 빨랐으면 빨랐지, 절대 느리지 않았다.
그렇게 대문 앞에 이르자, 두 번이나 거의 뛰다시피 한 여평은 온 얼굴이 땀으로 가득했다. 놀랍게도 여 노부인도 그리 뒤처지지 않아서, 여평이 의관을 단정히 바로잡고 있을 때 그를 따라잡았다.
그들이 의관을 정제하고 손수건으로 얼굴에 흐른 땀을 닦은 뒤 문가에 이르자, 곧이어 바깥에 서 있는 자비롭고 선한 인상의 노승이 보였다. 노승은 붉은 바탕에 금실로 수가 놓인 가사(*袈裟: 승려가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치는 법복(法服))를 입고서, 손에 염주를 든 채 눈을 살짝 내리깔고 불경을 외고 있었다.
“어르신…….”
대문가에 서 있던 하인이 여평에게 예를 올리며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여평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는 등 뒤의 모친과 첩들을 한번 살펴본 뒤, 마지막으로 의관을 정제하고 문지방을 넘었다. 그리고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 노승에게서 두 발짝 떨어진 곳에 멈춰서서 예를 올렸다.
“초민(*草民: 평민 백성이 자신을 일컫는 말) 여평, 국사 대인을 뵙습니다!”
“민녀(*民女: 평민 여성이 자신을 일컫는 말)가 국사 대인을 뵙습니다!”
여평의 인사에 뒤따라 여씨 집안사람들이 모두 허리 숙여 노승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노승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선재 대명왕불. 여 대인, 그리고 신도들 모두 어서 일어나십시오. 노승 마운, 영부인의 병을 치료하라는 황상의 명을 받고 도성에서 왔습니다.”
“성상께서 아직 저를 기억하고 계시다니……. 여모(某)는 고작해야 일개 초민 일진대, 성상께서 이리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시다니, 만 번 죽어도 갚을 길이 없나이다!”
여평은 감정이 격해져 도성이 있는 방향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여러 번 읍했다. 그리고는 눈가의 눈물을 닦고서 국사를 향해 말했다.
“국사 대인, 대인께서 오셨으니, 제 부인과 아이는 이제 모두 살았습니다…….”
여평은 이렇게 말하며 서둘러 하인들에게 분부를 내렸다.
“어서 주방에 일러 채소 요리를 준비하라고 해라.”
“예!”
마운은 여씨 저택을 둘러보는 순간에도 계속 불경을 외고 있었다. 저택에서 솟구치는 기운이 웅장하고, 특히나 자손의 기운이 왕성한 것을 보니 범상치 않은 아이인 듯했다. 처음 여 부인이 아이를 품은 지 3년이 됐다고 들었을 때, 그는 속으로 사실을 의심했으나 저택의 기운을 읽은 지금은 어느 정도 믿음이 생겼다.
“국사 대인, 저를 따라 안으로 드십시오. 일단 머무실 거처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건 급하지 않으니 일단 영부인을 먼저 뵙는 게 좋겠습니다. 황상께서 이 늙은이에게 반드시 모자 둘을 무사히 지켜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여평이 다시 한번 허리 숙여 예를 올렸다.
“자비로우신 국사 대인, 그럼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입니다!”
여평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마운은 그의 뒤를 느긋한 걸음으로 뒤따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이들도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자신의 정처가 묵는 원락에 가까워지자, 여평은 그제야 계연을 떠올리고는 마운을 향해 이렇게 설명했다.
“참, 국사 대인, 여모가 부인의 상태 때문에 그간 자주 명의와 고인들을 청해왔는데, 지금도 부인의 방에 제가 모셔온 고인 한 분이 계십니다. 그러니 그분이 있는 걸 보더라도 부디 널리 이해해주십시오.”
노승은 눈꺼풀을 아래로 내린 채 불경을 외다가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에 여평은 마음을 내려놓았으나 곧 다시 무언가 떠올라, 옆에 있던 호위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호위도 즉시 그 뜻을 알아듣고 걸음을 서둘러 먼저 떠나갔다.
이때 여 부인의 측근 시녀가 조심스럽게 부인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 순간, 저택 호위의 우두머리가 여 부인의 원락에 서둘러 들어오더니 문 앞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늦췄다. 그는 국사 대인에 대해 듣기만 했지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는 알지 못했다. 반면 눈앞의 저분은 진짜 신선일 가능성이 컸으므로 절로 공손한 태도가 갖춰졌다.
“계 선생님, 조정의 국사인 마운 성승께서 성지를 받고 부인을 치료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신데, 혹 괜찮으신지요?”
그러자 계연은 그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계연의 이런 태도에도 아무런 반감이 일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크게 한숨을 돌렸다.
호위가 물러가자 계연이 여 부인을 향해 물었다.
“여 부인, 이제 마음이 좀 편해지셨습니까?”
“예! 제가 울어서 추태를 보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저도 부인께서 괴로우시리란 걸 잘 압니다. 자, 과육은 먹고 씨는 물고 계세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소매 속에서 초록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커다란 대추알을 내밀었다.
“이건, 대추가 아닙니까?”
대추는 알이 굵어서 아주 귀해 보였다. 입맛을 잃은 지 오래되어 그저 살기 위해 밥을 밀어 넣던 여 부인은 어쩐 일인지 대추를 보자마자 침이 나왔다. 그래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허약한 마른 팔을 뻗었다.
계연은 그녀를 도우려던 시녀의 행동을 제지하고는 직접 대추를 건넸다. 여 부인이 대추를 손에 쥐자 희미한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고, 이내 그녀가 대추를 한입 베어 물었다.
파삭!
아삭한 과육을 베어 먹는 소리와 동시에 맑은 향기가 퍼져나가, 곁에 서 있던 시녀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아주 달고, 아삭하네요…….”
여 부인은 어디서 갑자기 힘이 생겼는지, 몇 입 만에 달걀만 한 크기의 대추를 전부 먹어버렸다. 과육이 뱃속으로 들어오자 맑은 기운과 따뜻한 열기가 몸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무거운 느낌과 통증이 훨씬 줄어들었다. 입에 물고 있는 대추 씨에서는 계속해서 옅은 단맛과 맑은 기운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러자 여 부인의 얼굴에 맨눈으로 보일 정도의 속도로 혈색이 올라왔다. 그녀는 여전히 마른 가지처럼 바싹 말랐지만, 그래도 이제 더는 무서울 정도로 죽은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 이제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음.”
계연은 내키는 대로 대답한 뒤, 한 쌍의 회백색 눈으로 여 부인의 배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저 아이를 비교적 안전한 방식으로 탄생시킬 수 있을까 생각 중이었다.
한참 관찰하다 보니 계연은 뭔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태아는 불길한 기운을 가졌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의 모친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부인은 진작에 영양분이 빨려 죽었을 것이다.
물론 이는 태아 스스로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날뛰면, 모친이라는 의지할 곳이 없어질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계연은 최대한 좋은 쪽으로 믿고 싶어 했다.
“국사 대인, 이쪽입니다. 제 부인은 방 안에 있습니다!”
여평의 목소리가 먼저 바깥에서 들려왔고, 뒤이어 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가장 먼저 계연을 향해 인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계 선생님, 저희 조정의 국사이신 마운 성승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옆쪽으로 몸을 돌려 마운 성승을 계연이 있는 방향으로 안내했다.
“국사 대인, 이쪽은 계 선생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제 부인의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오신 고인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대사.”
계연이 국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마운도 그에게 불교식으로 인사했다.
“선재. 안녕하십니까, 계 선생.”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계연은 일개 범인일 뿐이었으므로, 그는 속으로 계연이 온갖 수단을 부려 명예를 탐내는 자라 여겼다. 그저 자기 생각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반면 계연은 이 노승의 법력과 신광(神光)을 비교적 훤하게 꿰뚫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