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6화. 진정한 고인을 만나다
두 사람은 서로 예의를 갖춰 인사했고, 노승은 자신의 법목(法目)을 운용해 여 부인의 기색을 살펴본 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녀의 복부를 본 순간 두 눈이 반짝 빛나며 저도 모르게 몇 발짝 가까이 다가섰다.
“태상(胎相)이 아주 좋군요, 이 아이는 태어나면 필시 비범한 인물일 겁니다!”
국사가 이렇게 말하자, 여씨 집안사람들은 자연히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여평은 이 순간에도 분별을 잃지 않고, 우려 섞인 기색으로 계연을 바라보다 다시 국사에게 물었다.
“국사 대인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다만 제 부인은 이미 몸이 너무 허약해진 데다가, 태아는 계속해서 태어날 조짐이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음? 영부인께서는 비록 마르긴 하셨지만, 혈색이 불그스름하니 아주 좋아 보입니다. 충분한 식사로 영양분을 보충하고, 약재로 몸을 보하면 원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혈색이 좋다고?’
여평과 여 노부인은 그 말에 어리둥절해, 침상 가까이 다가가 여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웬일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표정이 평온해 보였고, 얼굴에도 혈색이 돌았다.
여 부인은 아직도 입에 대추 씨를 물고 있었지만, 그런 상태도 개의치 않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계 선생님께서 약을 주셔서 조금 나아진 거예요. 조금 전까진 무척 아팠었어요.”
여 부인이 이렇게 입을 열자, 입에 물고 있던 대추 씨 덕분에 그 은은한 향기가 주위로 퍼져나갔다. 이를 맡은 이들은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이에 노승이 주의 깊게 살펴보니, 여 부인의 입에서 나는 기이한 향기는 무척 특이했다. 그 향기에는 영험함이 서려 쉬이 흩어지지 않았고, 다른 이의 호흡에 섞여 들어간 것 외에는 다시 부인의 입속으로 돌아와 타액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이는 절대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이 대추는 계연이 특별히 고른 것이었기 때문에, 그도 이미 이 대추 씨에 특별한 영기가 서려 흘러나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승은 곧장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리고는, 즉시 계연을 향해 합장하며 허리 숙여 예를 올렸다.
“소승이 고인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부디 아량을 베풀어 용서해 주십시오. 선재 대명왕불!”
그러자 계연도 그를 향해 짧게 양손을 맞잡아 인사하며 대답했다.
“대사께서는 제게 그 어떤 실례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그리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씨 집안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지만, 속으로는 흥분이 더해 가고 있었다. 한쪽에 서 있던 호위대장은 역시 저분은 고명한 선생이었다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사 대인이 어째서 이를 처음부터 알아보지 못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여 부인을 어떻게 도우실 생각입니까?”
계연의 시선이 여씨 집안사람들에게 머물자, 노승은 즉시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여 대인, 여 노부인, 저는 선생님과 먼저 상의를 할 일이 있으니, 잠시만 밖에 나가 주십시오. 여 부인을 돌볼 시녀 한 명만 남기고 가시면 됩니다.”
“아, 그럼, 저희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여평을 비롯한 이들은 자리에 남아있고 싶었지만, 명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령 두 사람이 각기 선도와 불도를 대표하는 고인의 신분이 아니었더라도, 그들을 쫓아내는 데는 국사의 관직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자, 노승은 계연을 향해 낮은 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일이 까다롭겠습니까?”
상대는 그의 눈에도 평범한 인간으로 보일 정도의 도행을 지녔다. 그런 자가 지금 미간을 찡그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고, 부인에게 무슨 영묘한 단약을 먹인 걸 보니, 태아에 관해 손대기 곤란한 문제가 있는 듯했다.
“네, 뱃속 태아의 태기가 너무 강해서 이미 위험한 지경이에요. 오래 끌면 끌수록 산모가 위험할 테니 최대한 빨리 아이를 낳아야 해요. 게다가 제가 보니 이 집안사람들은 부인보다는 아이를 살리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어, 여 부인 쪽은…….”
“으…… 우우…….”
계연이 이렇게 말하던 순간, 여 부인의 뱃속 태아가 부인의 피부를 뚫고 자그마한 소리를 냈다. 그녀의 부풀어 오른 배 위로 작은 손바닥 모양 두 개가 찍혔다. 그 강렬한 태기 때문에 여 부인의 복부 위에 은은한 연기가 서릴 정도였다.
“우으…… 우웅…….”
연기는 곧 태아의 모양을 만들어내더니, 울음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계연과 노승이 엄숙한 얼굴로 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 여 부인과 그녀의 시녀는 서로 손을 맞잡은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아…… 흐윽……. 아아……. 선생, 선생님, 배가 아파요. 너무 아파요…….”
조금 전까지 괜찮았던 여 부인은 이때 배가 무언가에 꿰뚫리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는, 시녀의 팔을 꽉 잡은 채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부인? 부인, 왜 그러세요?”
그러자 계연과 노승이 침상 가까이 다가갔고, 계연은 손가락으로 영기를 움직여 그녀의 요혈을 봉인했다.
“아이가 태어나려고 하나? 어째서 지금이지?”
마운이 이렇게 중얼거리자, 계연은 어떤 가능성이 떠올라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쩌면 그가 건넨 대추 덕분에 여 부인의 상태가 좋아져 충분히 아이를 낳을 수도 있을 듯했다.
“태아가 크게 움직이는 걸 보니 곧 태어나려는 것 같습니다. 시간을 더 끌면 좋지 않을 듯한데, 계 선생님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마운의 말에 계연은 하고 있던 생각이 뚝 끊겼다. 침상에 누운 여 부인은 계연이 혈을 봉인한 덕분에 고통이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더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태아를 떼어낸다거나 하는 수를 쓰기에도 늦은 상황이었다.
비록 이 자리에 계연과 마운이 있긴 하지만, 아이는 그들 두 사람이 손을 몇 번 휘두른다고 태어나는 게 아니었다. 특히나 여 부인 뱃속의 태아는 말할 것도 없었으니,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아이를 받는 게 적합할 듯했다. 어쨌든 여 부인의 몸에 법력을 펼쳐서 자극을 주는 것도 좋지 않았다.
한편 마운이 미리 손을 써두었기 때문에, 침실 밖에 서 있던 여평과 여 노부인은 안쪽의 비명을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방 안의 상황을 알지 못했지만, 국사와 계 선생을 노하게 할까 봐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들이 방 안의 상황을 추측하고 있을 때, 시녀가 문을 쾅 밀고 뛰쳐나왔다.
“어르신, 노부인, 부인께서 곧 아이를 낳으려 하십니다. 계 선생님과 국사 대인께서 어서 산파를 불러오라 하셨습니다!”
여평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뜰에 모여선 하인 중에서 어느 나이 든 노파가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어이쿠, 여기 있습니다, 제가 산파입니다!”
일 년여 전부터 시작해 여 부인의 상태가 나빠질 때마다 산파는 여씨 집안에 툭하면 불려온 상태였다. 대부분은 한번 오면 며칠간 머물렀는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이곳을 오고 가며 적지 않은 돈을 받았지만 내내 아이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산파는 계속해서 여 부인의 상황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아이가 태어난다는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흥분해 큰 소리를 내고 만 것이다. 그녀는 원래도 농가의 아낙이었기 때문에, 전에 들었던 여씨 집안의 규율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은 규율에 엄격한 여 노부인마저 산파를 꾸짖을 정신머리가 없었다. 이에 여평이 얼른 그녀를 재촉했다.
“그럼 어서 들어가지 않고 뭘 하는가!”
“예! 참, 뜨거운 물, 수건, 대야, 가위가 필요하니, 준비되면 서둘러 들여보내 주십시오!”
여평이 즉시 하인들을 향해 분부했다.
“멍하니 뭘 하고 섰느냐, 어서 가서 준비하거라!”
“예!”
산파와 시녀 몇 명이 함께 안으로 들어갔고, 하인들은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여평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한쪽에 앉아 있던 여 노부인이 그를 잡아끌었다.
“지금 뭘 하려는 게냐?”
“저도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규율을 뻔히 아는 애가, 지금 저 안쪽은 음기로 가득 찼단 말이다! 게다가 황상께서 여기까지 국사를 보내오신 걸 보니, 다시 관직을 내리실 수도 있단 뜻이다. 원래도 산방 안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지금은 더더욱 아니 된다!”
그러자 여평도 즉시 그 뜻을 깨닫고 초조한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모친처럼 차분히 주랑 난간에 앉아 있을 여유가 없었다.
잠시 후에 대야 가득 끓인 물과 여러 장의 수건, 깨끗이 소독한 가위들이 차례로 방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에서부터 문이 닫혔다.
밖에 있던 사람도 초조했지만, 방 안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긴장 상태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긴장에 더해 놀라기까지 한 상태였다. 경험이 풍부한 산파마저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여 부인의 배는 계속해서 솟아올랐다가 수축했다가 반복하고 있었고, 뱃가죽 아래로 아이의 손과 발 모양이 나타났다. 게다가 괴이한 빛이 배 안쪽에서부터 새어 나와, 뱃속 태아의 형태를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이, 이게 대체……?”
산파가 너무 놀라 앞으로 다가가지 못하자, 계연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진정시켰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설령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저와 국사 대인이 대신 나서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모자 모두 다치지 않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주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산파 아낙은 마음을 굳게 먹고, 커다란 붉은 덮개로 여 부인의 다리 위를 덮었다.
마운은 염주 팔찌를 휘둘러, 침상 곁의 휘장 한쪽을 뜯어낸 다음 여 부인의 몸 반쪽을 가렸다.
산파는 먼저 뜨거운 물에 손을 씻은 후, 여 부인을 진정시켰다.
“부인, 다리를 구부리세요……. 너무 숨을 빨리 쉬면 좋지 않습니다. 여러 번 숨을 내쉰 다음, 숨을 참고 한 번에 힘을 주세요…….”
“아악!”
배 속 태아도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듯 여 부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에 산파가 신속히 여 부인의 속바지를 벗겨 보니, 이미 양수가 흘러나오고 있는 게 보였다.
“아아……!”
여 부인의 비명과 동시에 붉은빛이 그녀의 뱃속에서 번쩍 빛났다. 그러자 이를 발견한 산파의 하얗게 질린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푸욱-!
순간적으로 핏빛이 튀자, 산파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두 눈을 가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과 몸에 튀는 피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마운이 법력을 펼쳐 그들 사이를 가려놓은 휘장마저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이때가 되자 산파는 오히려 안정을 되찾았다.
“어서, 수건을 주시오!”
시녀가 놀라 굳은 것을 보고, 산파는 스스로 대야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수건을 가져온 다음 여 부인의 하반신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수건을 빨기 시작했다. 여 부인의 시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다가와 그녀를 도와주었다.
“으윽……!”
여 부인은 고통에 차 비명을 지르는 통에, 하마터면 입안에 있던 대추 씨를 뱉어낼 뻔했다. 이를 본 계연은 허공에 손을 뻗어, 그 대추 씨를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영기가 여 부인의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갔고, 가루는 곧장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음이 밝고 깨끗하면 자유롭고, 걱정과 근심을 잊으면 안정을 찾을 수 있노라. 안정을 구하고 평온함을 구하면, 신혼(*神魂: 정신과 넋)의 안녕을 찾을 것이다…….”
마운은 쉬지 않고 염주를 굴리며, 여 부인과 다른 이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담담한 목소리로 불경을 외고 있었다. 계연은 대추 한 알을 다시 꺼내 부순 뒤 그 안의 영기를 과육으로 잘 감싸, 여 부인의 입안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