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8화. 진마의 마음을 가지고 놀다
목숨을 잃고 도(道)가 흩어져 버리는 것도 두려웠으나, 정말로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면 마운은 이를 대면할 용기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선경이 훼손되어, 마도(魔道)에 떨어지게 될 거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공황 상태가 되었다. 자신이 어찌 자신의 그런 모습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이 공황은 진마가 주는 실질적인 두려움 때문이었다. 마운 노승은 자신이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그 때문에 이토록 공황 상태가 된 것이고, 이렇게 되면 그가 진마를 직면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기만 할 뿐이었다. 이는 생각하면 할수록 깊이 파고들기만 하는 죽음의 고리였다.
마운의 모습을 본 계연이 가볍게 소매를 휘두르자, 맑은 바람이 일면서 그의 어두운 기운을 흩어버렸고 마운도 곧 그를 감싸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진마가 오기도 전에 스스로가 만들어낸 심마에 집어 삼켜질 가능성도 있었다.
“대사의 말씀이 맞아요. 여씨 집안 소공자에게 손을 뻗으려면, 대사를 먼저 처리해야겠죠. 그리고 심마로 변해 승려의 마음에 파고드는 일은 진마가 가장 좋아하는 짓이고요…….”
이렇게 말한 계연은 주랑 바깥쪽에 서서 떨어지는 빗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계연의 손등에 닿은 빗물은 작은 물보라를 일으킨 뒤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진마는 변화가 자유자재라 알아채기도 잡기도 힘들지만, 심마로 변해 대사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건 진마 스스로에게 구속을 거는 일이기도 해요. 그러니 우리가 손을 쓰기 아주 적당한 곳이죠!”
계연은 밖으로 뻗은 손을 가져오며 다시 마운을 바라보았다. 마운은 멍한 표정으로 계연을 바라보다, 조금 전까지 빗물에 닿았던 계연의 손에 시선을 내렸다. 빗물은 전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지 않고, 어느새 얼음이 되어 그의 손안에 쥐여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마운의 물음에 계연이 막 입을 떼려던 순간, 그의 소매 속에서 교활한 웃음소리와 함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이 승려가 이렇게 우둔할 줄이야. 계연의 말뜻은, 진마를 사로잡을 덫을 놓자는 거다. 그가 일이 뜻대로 풀려가는 줄 알고 득의양양하게 놔두다가, 마침내 자신이 함정에 갇힌 것을 알게 하는 것이지. 허허, 그럼 우리는 진마의 마심(魔心)을 갖고 놀게 되는 것이로군, 하하하하, 재미있게 되겠어!”
‘이건 누구의 목소리지?’
마운 노승이 깜짝 놀라 가슴이 서늘해졌다. 만약 이 목소리가 계 선생님의 소매 속에서 들려온 게 아니라면, 그는 진마가 이미 이곳에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마운도 서서히 그 말뜻을 알아듣게 되었다.
“덫을 놓는다는 말은, 즉 소승이……?”
“그래, 네가 바로 그 덫이 되는 것이지! 하하하하…….”
계연은 마운 노승의 안색이 다시 뻣뻣하게 굳는 걸 보고, 얼른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마운 대사. 진마가 사람의 마음에 침투하는 일은 확실히 물 만난 고기와 같은 상황이지만, 심신(心神)을 겨루는 데 있어 계모는 아직 누군가를 두려워해 본 일이 없거든요. 그러니 대사의 수행이 무너지지 않도록 제가 지켜드릴 겁니다. 음, 해치, 당신도 참여하고 싶은가요?”
해치의 “우리는 진마의 마심(魔心)을 갖고 놀게 되는 것이로군.”이라는 한 마디에 이미 이 일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러자 과연 계연의 예상대로 해치가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렇게 재밌는 일은 항상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 참, 그 진마 말이야, 내가…….”
“먹어도 되냐고요?”
계연은 해치가 이렇게 물어올 거라고 진작부터 예상하였다. 이놈은 그야말로 도철(*饕餮: 전설 속 흉악하고 탐식하는 야수)과 영혼이 바뀐 게 틀림없었다.
“하하하하, 속내를 들켜 버렸군. 그래도 지금 내 상태로는 곧장 진마를 삼키기 어려울 테니, 계연 네가 도와줘야 한다. 잘못해서 곧장 베어버리지 말고!”
계연은 별다른 대꾸 없이 웃은 뒤,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마운 노승을 바라보았다. 그는 계연의 소매 속에 있는 게 누구인지 묻지 않았지만, 저렇게나 여유로운 태도로 계 선생과 함께 어떻게 진마를 처리할지 이야기하는 걸 보니, 불안하던 마음이 다시 차분해졌다.
“이번에 나와 계연이 너를 덫으로 삼아 그 진마를 사로잡으려 하니, 실은 네 힘을 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네 마음속에서 진마를 처리하게 되면, 후에 네가 불법을 수행하는 데 있어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너도 복에 겨운 소리는 하지 말아라.”
해치의 말은 마침 계연이 하고 싶던 말이었다. 다만 계연은 좀 더 완곡하고 격려를 담은 방식으로 말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해치의 말에도 틀렸다고 할 만한 점은 없었다.
“선재 대명왕불. 이왕 계 선생님께서 계책이 있으시다니, 소승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명을 따르겠습니다.”
마운은 반쯤 눈을 감고 두 손을 합장한 채 이렇게 대답했다. 계연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반응은 과도하게 흥분하거나 긴장한 것보다 훨씬 나았다.
마운은 계연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해치는 아예 알지도 못했다. 그러니 그들이 정말로 진마를 상대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 미지수인 상태에서, 이런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때, 여평과 한 호위가 다급히 뛰어오더니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국사 대인, 유모 셋이면 충분하겠습니까? 어, 국사 대인, 선생님은 어디 계십니까?”
여평은 마운 노승의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계연이 보이지 않자 다시 방 안을 살펴보았지만, 그곳에도 계연은 없었다. 주랑 바깥은 온통 비의 장막에 가려져 있었다.
“선재 대명왕불, 이제 영부인께서 순조롭게 공자를 낳으셨으니, 본디 세외(*世外: 세상 밖이란 뜻으로, 속세를 벗어남을 이름) 고인인 선생께서도 떠나신 것이지요. 염(念)이란 본디 헛된 것이니, 사념을 벗어던지십시오. 여 노야, 선생님에 대해서는 더는 생각지 마시지요!”
노승의 목소리에는 선의(*禪意: 무아적정의 경지에 도달하는 불교에서의 깨달음)가 담겨 있어 여평의 귓가에 울리며 그의 마음에 메아리쳤다. 그뿐만 아니라 여씨 저택 모든 이들의 귓가에도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여씨 저택 내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 계 선생의 인상이 모호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완전히 잊혀 그들의 뇌리 깊은 곳에 감춰졌다. 이는 마운이 불법을 닦으며 깨달은 망공(忘空)에 관한 신통력으로 무척 신비한 술법이었다.
이렇게 하면 진마에게 덫을 놓을 때 생길 수 있는 구멍을 빈틈없이 틀어막을 수 있었다. 이미 태허(*太虛: 크고 넓은 하늘, 공허하고 적막한 경지) 속에 숨은 계연도 이를 보고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마운 승려도 한번 굳게 마음을 먹은 후로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달은 것 같았다.
* * *
여 부인, 산파, 그리고 아이를 받았던 시녀를 제외하면 여씨 집안 위아래 모두가 소공자가 태어난 기쁨에 젖어 들었다. 물론 세 명의 첩실은 남몰래 질투를 감추고 있었다.
한편, 마운 노승은 이번 일로 연회 자리에서 가장 존귀한 상석에 앉게 되었다. 마운 성승(聖僧)은 여 부인이 순조롭게 소공자를 낳도록 도왔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국사의 신분을 지녔으므로 본디 존귀하기 이를 데 없는 신분이었다.
하지만 마운 노승은 객청으로 가서 쉬지 않고, 원래 머물던 원락의 상방(*廂房: 곁채)에 앉아있었다. 원래 이곳은 시녀가 머무는 곳이지만, 잠시 그가 선방(*禪房: 승려가 참선하는 방)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마운은 이곳에서 불경을 외며 더러운 기운을 내쫓고 싶다는 핑계를 구실로 삼았다.
이에 여평과 여 노부인도 자리를 옮길 기분이 나지 않아, 또 다른 상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만약 국사가 머무는 곳에서 무슨 동정이 생기면 그들에게 알리도록 하인들에게 분부했다.
그렇게 채 해가 지기도 전에 유모 세 명이 부자연스러운 안색으로 저택 관사를 따라 들어왔다. 마침 차를 마시던 여평과 여 노부인은 그들을 보고 기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어떤가, 우리 손자가 젖을 잘 먹던가?”
유모 세 명은 모두 젖이 넉넉해 보이는 체형이었는데, 안색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여 노부인의 물음에 그중 한 유모가 애써 정신을 다잡고 대답했다.
“그…… 노부인께 아룁니다, 소공자께서는, 식성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 그렇습니다. 식욕이 좋으신 듯합니다.”
“예…….”
세 유모는 차마 여평과 노부인 앞에서 소공자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은 소공자의 모습에 간담이 다 서늘해진 후였다.
“그럼 모두 물러가서 계속 소공자를 돌보게나.”
“예!”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 모자는 그제야 서로를 향해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늘이 우리 여씨 집안을 보우해 주시는구나! 며칠 뒤에 어미가 절과 사당을 돌면서 환원(*還愿: 신령에게 발원한 일이 이루어져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 기도를 올리마.”
“그럼 저도 가서 향을 올리겠습니다.”
탁자 위에는 차와 다과가 풍성히 차려져 있었고, 두 사람은 모두 기분이 좋아 입맛까지 좋아졌다.
여평과 그 모친과 달리, 가까운 선방 안에 앉아 불경을 외던 마운대사는 그리 침착한 상태가 아니었다.
방 중앙 탁자가 있던 위치에는 노란 방석이 놓여 있었는데, 마운대사는 그 위에 가부좌를 트고 앉아 불경을 외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거의 혼잣말처럼 가벼웠는데, 그런데도 선음(*禪音: 불교의 가르침이 담긴 소리)이 울려 퍼져 여씨 저택의 삿된 기운을 진정시켰다. 덕분에 여 소공자는 영기를 주로 흡수할 수 있었다.
이미 반 시진이나 지났는데도 마운대사는 여전히 입정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땀이 나는 이마를 연신 소맷자락으로 닦으며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지만, 전처럼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휴……. 선재 대명왕불!”
노승은 두 손을 합장하며 불호(*佛號: 부처의 명호(名號). 불교도들이 염불하는 ‘阿弥陀佛’(아미타불) 등을 지칭함)를 외친 뒤, 목에 걸고 있던 염주 목걸이를 끌러 방석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손에 든 작은 염주와 품속에 있던 금강저(*金剛杵: 불교에서 악을 내쫓을 때 사용하는 법기)도 전부 방석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다 마운은 마침내 매듭을 끌러, 입고 있던 가사마저 고이 접어 방석 옆에 두었다. 그리고는 벗어놓은 염주와 금강저 등을 가사 위에 올려놓았다.
“자비하신 부처님!”
마운은 다시 한번 작은 소리로 불호를 중얼거린 뒤, 바깥의 빗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고 합장한 채 입정에 들었다. 불문(佛門)의 모든 법기를 벗어놓았으니 이는 자신을 보호하는 힘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벗어던진 마운은 외려 그 어떤 잡념도 없이 선정(*禪定: 불자가 모든 심상을 없애고 고요한 상태에 드는 것)에 들 수 있었다.
한편, 여씨 집안 전원(前院)에 있는 어느 건물의 처마 위에는 태허옥부(*太虛玉符: 모습을 숨길 수 있는 옥회산의 부적)에 스스로의 법력을 더해 완전한 태허(*太虛: 크고 넓은 하늘, 공허하고 적막한 경지)에 녹아든 계연이 한쪽 다리는 처마 밑에 늘어뜨린 채로 앉아 있었다.
태허옥부를 가장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는 물론 이를 만든 옥회산의 수사들이었지만, 그런 그들조차 진마의 앞에서 이 부적을 사용해 완전히 모습을 숨길 수 있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계연은 그들을 뛰어넘는 법력이 있었으므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이때 계연은 <봉구황> 악보를 들고 있었는데, 마운대사가 모든 법기를 내려놓은 그 순간 후원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들어가겠는가(我不入地獄, 誰入地獄: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愿經)>에 나오는 구절로, 남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함을 뜻함)? 마운대사가 지닌 선경(*禪境: 불법을 닦아 고요한 마음의 경지)이 대단하구나. 설령 진마가 오지 않더라도 수행에 큰 진보를 이루겠어.”
“지옥?”
해치는 이전에 천궁(天宮)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옥이란 곳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