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799화 (799/892)

799화. 덫에 빠지다

소공자가 태어난 지 채 한 시진도 되지 않아, 태양이 서쪽으로 이동하며 하늘이 어두워졌다. 오늘은 해가 이상스레 일찍 지는 느낌이었다.

이미 연회 준비를 마친 주방은 서둘러 요리를 시작했고, 계연과 마운대사를 위해 마련했던 연회는 원래의 목적 외에도 자손이 태어난 축하연의 의미도 더해졌다. 물론 여씨 집안사람들은 이제 계연이란 인물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고작해야 자신이 무언가를 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 비가 그치고 태양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계연은 여전히 어느 처마 위에 앉아 천두호를 입에 대고 술을 마시면서 서쪽으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더는 비바람이 불지 않았고, 비가 그친 후의 무지개도 뜨지 않았다. 여씨 저택에 모여든 삿된 기운은 마운대사의 불경 외는 소리에 흩어졌고, 눈에 띄는 요기(妖氣)나 마기(魔氣)도 없었다. 하지만 계연은 진마가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었다.

“왔구나.”

계연은 조용히 중얼거린 뒤 처마 위에서 일어났다.

그때, 마운대사의 선방 밖에서는 어느 하인이 다가와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은 뒤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국사 대인, 어르신께서 식사가 준비되었다며 대인을 식당으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마운 노승은 천천히 눈을 뜨며 이렇게 대답했다.

“알겠네, 여 대인께 노승(老僧)이 곧 가겠다고 전해주게.”

“예, 그럼 밖에 서 있는 아랫사람에게 식당으로 안내해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소식을 전한 하인은 문밖을 지키고 서 있던 시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몸을 돌려 떠나갔다.

멀리 처마 위에서는 계연 소매 속의 해치가 낮은 소리로 웃었다.

“저놈이 네 앞에서는 자신을 ‘소승’이라 일컫더니, 여씨 집안사람들 앞에서는 ‘노승’이라는군. 하하, 웃기기도 하지.”

해치의 웃음에도 계연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비록 마기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계연은 그 익숙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더해 등 뒤의 넝쿨검도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은 바로 넝쿨검이 예전에 남긴 옅은 검의(劍意)였다.

이는 진마가 이미 가까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보아하니 전에 자신이 입힌 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듯했다.

그때, 마운이 선방의 문을 열고 나오니 시녀 한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사 대인, 저를 따라오시지요.”

“음.”

마운은 방안에 남겨둔 가사와 염주 등을 한번 바라본 뒤, 결연히 문을 닫았다. 그렇게 몇 걸음 걷던 그는 돌연 걸음을 우뚝 멈췄다.

“국사 대인, 왜 그러십니까?”

길을 안내하던 시녀는 마운이 돌연 걸음을 멈추자 고개를 돌려 이렇게 물었다. 마운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여 부인의 거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마운의 귓가에 여 소공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아, 히히히……. 헤헤헤헤……!”

“소공자를 먼저 보고 가겠네.”

마운은 이미 무언가 느껴지는 게 있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아이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 있던 시녀는 그를 따라오지 않는 듯했고 그가 여 부인의 거처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주위는 이상하게도 고요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방문 앞에 이르자, 여씨 가문 소공자의 앳된 웃음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끼익-.

마운은 안쪽에 대고 아무런 말도 전하지 않고 곧장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있는 하인들이 한눈에 보였다.

침상 위의 여 부인은 정신을 잃은 듯했고, 그 곁의 소공자는 강보에 싸인 채 웃으며 손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한편, 이 방 안에서 유일하게 서 있는 사람은 침상 곁의 한 남자였다.

남자는 검은 바탕에 금실이 들어간 옷을 입고 있었는데, 긴 머리는 위로 묶지 않고 자연스레 늘어뜨린 채였다. 그는 손을 뻗어 여 소공자와 놀아주고 있었다.

“선재 대명왕불, 귀하는 누구십니까? 여씨 집안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나 말이오?”

남자가 고개를 드니 그의 두 눈에 어두운 빛이 반짝였다. 그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문 앞의 승려를 바라보았다.

“본인은 그저 한가로운 떠돌이일 뿐이오. 소요(*逍遙: 아무런 구속 없이 거니는 것)이자 자유로움이며, 당신이 동경하는 성불의 길이며, 내심 끊을 수 없었던 욕망이오. 또한, 당신이 좋아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지. 스님, 내가 누구인 것 같으시오?”

전에는 진마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만, 한 차례 선정에 들고난 마운대사는 더는 생사를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약간의 두려움을 섞어, 두 눈을 부릅뜬 채 위엄 넘치는 얼굴로 소리쳤다.

“어디서 온 요괴이냐! 감히 노승의 앞에서 이토록 방자하게 굴다니! 명왕제법, 조아항마(明王諸法, 助我降魔: 명왕의 법력으로 마귀를 내쫓는다는 뜻)!”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방 전체에 쩌렁쩌렁 메아리쳤고, 마운은 거의 한 걸음 만에 방 안으로 뛰쳐 들어 침상 앞의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한 쌍의 손바닥은 금빛에 휩싸였고, 주위에는 부처의 위력이 담긴 불음(佛音)이 울려 퍼졌다.

푸욱-!

그의 손바닥은 분명 남자의 몸을 뚫고 들어갔지만, 아무런 반응이 되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마운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손을 빼고 싶었지만,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흑발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뻥 뚫린 가슴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마운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는 마운의 얼굴에서 경악과 함께 미약한 공포를 엿볼 수 있었다. 이것은 진마인 그가 가장 즐기는 감각이었다.

“네놈은……?”

“나는 네 마음속의 마(魔)다!”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곧이어 그의 모습이 스르르 무너지더니, 검은 연기가 되어 마운 노승의 눈, 귀, 입, 코의 일곱 구멍으로 파고들었다.

마운 노승의 공포와 경악 어린 표정은 7할은 진심이고 3할은 꾸며낸 것이었다.

마기가 마운의 온몸에 스며들었을 때, 금빛 나는 끈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의 온몸을 위아래로 칭칭 감았다.

“하하하하……. 곤선승이 바로 가쇄(*枷鎖: 죄인의 목에 씌우던 칼과 발목에 채우던 쇠사슬)로구나!”

해치의 교활한 웃음소리와 동시에 계연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때 마운대사는 안색이 퍼렇고 두 눈은 굳게 닫혀 있어 마치 졸도한 것처럼 보였다.

진마는 마운의 마음속에 파고들었기 때문에, 아직 마운의 육체가 곤선승에 감긴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어서 따라가죠!”

계연은 이렇게 말한 뒤 소매를 휘둘러 방문을 닫았다. 뒤이어 계연이 유몽술을 펼치자 그의 강력한 신념(*神念: 수행자의 의지, 기억, 생각을 가지며 입정 후에 활성화되는 것으로, 영혼과 비슷함)이 빠져나오더니, 희미한 두루마리 한 부를 들고 마운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진마는 남다른 존재였기 때문에, 곤선승이 마운의 육체를 사로잡던 그 순간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고 곧장 다시 밖으로 나가려 했다.

펑……!

기이한 형상과 다양한 색채, 온갖 변화로 가득 찬 마음속 세계의 변두리에서는 한 줄기 마기가 금색 빛무리에 부딪혀 반대로 튕겨 나갔다. 곧이어 꿈틀대는 마기 사이로 연기로 이루어진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더니, 금색 빛무리 위의 여러 가지 무늬를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음양오행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천지가 이어져 만들어진 벽 같기도 했고, 천지 간에 똬리 튼 거대한 금룡(金龍) 같기도 했다.

‘이게 뭐지? 이게…… 설마…… 망했다! 곤선승이잖아!’

진마는 머릿속으로 재빨리 판단을 내리더니, 거의 곤선승에 부딪힌 그 즉시 마운 노승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으로 도망쳤다.

진마는 이제 자신이 이 노승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이 승려가 죽는다면, 곤선승은 곧장 진마인 그의 진신(眞身)을 포박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스스로의 힘에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홀로 곤선승을 벗어날 수 있다는 데에 도박을 걸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곤선승이 여기 있다면, 계연도 여기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설령 자신이 부딪힌 것이 곤선승이 아니고, 이곳에 있는 게 계연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 이 수단만 봐도 상대는 곤선승에 버금가는 보물을 지닌 고수라는 뜻이었다.

진마가 마운 노승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들었을 때, 계연과 해치는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그들은 한적한 정원을 걷듯, 내키는 대로 걷고 있었다.

“계연, 저 진마가 물고기도 죽이고 그물도 망가뜨리는(*魚死網破: 어사망파. 싸우는 쌍방이 함께 죽는다는 뜻) 방식으로 마운을 죽일까 봐 걱정되지 않나?”

“저 진마가 그렇게 멍청할 리가요. 게다가 곤선승이 마운 노승의 심신(*心神: 마음과 정신)을 봉쇄했으니, 그가 강제로 손을 쓰고 싶다 해도 그리 쉽지 않을 거예요. 여기서는 바깥에서처럼 쉽게 상대를 죽일 수 없거든요.”

계연은 현재 깜깜한 어둠 속을 걷고 있었는데, 오직 그의 몸만이 또렷하게 보였고 주위는 텅 빈 듯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운 노승의 마음이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곳은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외곽지대일 뿐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계연이 그다지 이동한 것 같지 않지만, 실은 어마어마한 거리를 건너뛰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저 멀리 보이는 자그마한 광점(光點)이었다.

전방에 보이는 곳은 마운의 마음 깊은 곳이었다. 계연이 광점에 이르러 한발을 들여놓자, 마치 어떤 문을 통과한 것처럼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지더니 만물이 생겨났다.

계연이 서 있는 곳은 거리 한 가운데였는데, 주위는 장사꾼, 여행객, 행상인, 젊은 낭자와 공자, 서생 등이 오가며 시끌벅적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여기는? 진마가 한 짓인가?”

해치는 선악과 시비를 가리는 데 능했지만,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것이 진마의 수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계연은 이런 방식이 익숙했으므로 고개를 저으며 설명해주었다.

“아니에요. 여기는 마운대사의 마음속이니, 이 모든 것도 그의 마음속 풍경이에요. 이곳은 그의 마음이 상상해낸 곳일 수도 있고, 예전의 기억 일부일 수도 있어요. 또 마운대사의 화신(化身)도 이 안에 있을 거예요.”

“그럼 진마는? 나는 들어오면 곧장 그놈과 마주쳐 한바탕 붙을 줄 알았는데!”

“곧 그렇게 될 거예요. 하지만 그는 지금 저를 피해서 마운대사의 마음속 깊이 숨어있어요. 그러니 이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운대사를 이용하려고 할 거예요.”

마운대사의 마음속 세계가 크면 클수록, 진마는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었다. 이왕 모습을 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뭐하러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겠는가?

계연은 언제나 자신의 상대를 얕보지 않았고, 게다가 이번 상대는 변화에 능한 진마이기까지 했다. 비록 그가 어디 있는지는 잠시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도 마운대사의 화신을 찾으려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아삭한 배 있습니다, 크고 아삭한 배 팝니다! 선생님, 배 좀 사가세요. 1근에 5문입니다. 맛이 아주 달답니다!”

계연이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어느 행상인이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에 계연이 의아한 얼굴로 광주리를 멘 농민 차림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를 부르신 건가요?”

그러자 배를 팔던 남자가 광주리를 내려놓더니, 목에 걸고 있던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웃는 얼굴로 대꾸했다.

“예? 당연히 선생께 드린 말씀이죠! 제가 파는 배는 우리 집 배나무에서 갓 따온 거예요. 보기에 그리 예쁘진 않지만, 맛은 제가 보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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