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화. 마음속 세계에서의 말싸움
아무래도 마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계연의 은폐술이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계연을 볼 수 있었지만, 그가 어떻게 여기 나타났는지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이 선생이 원래부터 여기 있었다고 여겼다.
계연은 곧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고는, 웃으며 행상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소매 속을 뒤적였다. 그러다 곧이어 그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
그는 신념으로 변해 들어온 것이었으므로 자연히 돈이 없었다. 물론 법전을 꺼낼 수는 있었지만, 그것으로 배를 살 수는 없었다. 이에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배를 팔던 남자를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집을 나오면서 돈을 갖고 나오는 걸 잊은 모양이에요.”
그러자 행상하던 남자는 약간 실망한 얼굴이었다. 그는 이 선생이 필시 돈이 있으리라 여기고 배를 팔려고 다가온 것이었다.
“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남자는 짬을 내 휴식을 취한 셈 치고, 다시 멜대를 지고는 특유의 경쾌한 걸음으로 떠나갔다. 그리고는 가는 내내 배를 사라며 크게 소리쳤다.
이것만 봐도 마운의 마음속 풍경이 더없는 현실성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걸 보니 진마도 이 세계 안에서는 법력을 크게 운용하지 못하겠네요.”
계연이 이렇게 중얼거리자 해치의 목소리가 다시 크게 울렸다.
“환술로 동전 몇 개를 만들면 되지 않나? 그 정도 법력은 쓸 수 있을 텐데?”
“모든 일에는 해도 되는 게 있고 해선 안 되는 게 있는 법이에요.”
계연은 이렇게 대꾸하며 걸음을 서둘러 인파가 밀집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여기는 마운대사의 마음속이니 자연히 가장 떠들썩한 곳으로 가야 했다.
“허, 참.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진짜도 아니고, 동전 몇 개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게 뭐 어떻다고?”
“그렇게 치면 여기 있는 배도 어차피 진짜가 아닐 텐데, 뭘 그리 애석해 하나요?”
해치 같은 신수(神獸)가 어떻게 입씨름으로 계연을 이길 수 있겠는가? 이에 그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조용히 소매 속에서 대기했다.
주위의 행인들은 대부분 그 떠들썩한 곳을 향해 걷고 있었으므로, 계연도 굳이 길을 묻지 않고 그들을 따라 걸었다. 곧이어 눈앞에 비교적 큰 광장이 나타났는데, 광장 앞쪽이 인파가 가장 밀집한 곳이었다.
가까운 곳에 이르자, 계연은 인파가 이토록 몰린 이유가 바로 이 새로운 사찰이 문을 여는 첫날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찰은 규모가 작지 않고 기세도 웅장했는데, 일반 백성은 물론이고 문인묵객(*文人墨客: 먹을 다루는 사람들, 지식인 전체의 통칭)과 고관대작들도 와 있었다. 그들 모두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향불(頭柱香: 보통 아침 일찍 올리는 첫 번째 향불을 일컫는 말로, 가장 영험하다고 함)’을 올리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에 사찰 입구는 자연히 참배객들로 붐볐고, 계연 혹시 누군가 인파에 밟혀 죽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 사찰에서 모시는 신상(神像)이 이 열정적인 참배객들을 보호해줄지는 모를 일이었다.
“사찰 안에 들어가면 승려들이 있을 테니, 진마도 분명 이 근처에 있겠지.”
그러자 계연이 인파를 따라 앞으로 향하며 작은 소리로 대꾸했다.
“승려인 게 확실해요?”
그 말에 해치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마운은 승려잖아?”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다시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승려도 보통 백성들처럼 태어나 출가하는 이들이에요. 마운대사는 현재 승려이지만, 여기서는 아직 아닐 수도 있죠. 그러니 아직 출가하지 않은 아이일 수도 있고 청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도 있으니 모두 가능성 있어요.”
그러자 해치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이렇게 물었다.
“무슨 특이한 기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도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찾으려고?”
“느낌대로 찾으면 되죠. 저는 항상 운이 좋았거든요. 최소한 그 진마보다는 좋을 거예요, 전혀 급하지 않아요.”
계연은 마음속의 걱정을 누르고 일부러 여유 있는 태도로 대답했다. 지금 그는 자신의 법력이 바깥에서보다 훨씬 희미하게 느껴졌는데, 마치 수선자가 되기 전 보통 사람일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이에 계연은 진마도 그와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 그러니 여기서 진마와 맞붙는다면 자연히 그 형식이 조금 달라질 것이었다.
즉, 이 세계를 난폭한 방식으로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두 사람이 끌어올 수 있는 법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계연은 이 세계가 진마를 배척하도록 해야 진마를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마운의 마음까지 함께 다칠 가능성이 있었다. 진마 쪽은 어떻게 해서든 계연보다 먼저 마운을 손에 넣으려 할 것이다.
계연은 이 점을 깨달은 후에는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의 이런 자신감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것이었다.
계연은 이제 수행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그리 다를 바 없게 변했지만, 그런데도 북적이는 인파 사이를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이리저리 부딪히고 발을 밟힐 때도, 그는 언제나 비교적 여유 있는 공간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사찰 안으로 들어오자 자연스레 인파가 갈라져, 행인 사이에 충분한 공간이 생겨났다.
“이봐요, 당신, 거기 멈춰요!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당신이 방금 내 신발을 밟았잖아요!”
“예?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어떤 여인이 한 서생을 향해 노기 띤 얼굴로 소리쳤다. 여인의 한쪽 발에는 버선만 남아있고 신발은 없었다.
서생도 아마 발을 밟았을 때 느꼈던 듯, 전혀 부인할 생각 없이 약간 황망한 얼굴로 얼른 사과했다.
“실례라고 하면 다예요? 여기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내 신발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어떻게 찾으라는 거예요!”
“아……. 낭자, 그럼 제가 새로 신발을 사드리면 되겠습니까?”
서생은 생김새가 점잖았으나, 여인과 단독으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듯했다. 게다가 이 여인은 몸매가 굴곡지고 목소리가 부드러워, 일부러 교태 섞인 자태를 내보이는 게 아닌데도 서생의 얼굴은 자연스레 달아올랐다.
“좋아요. 당신 입으로 약속한 거예요. 반드시 새 신발을 사줘야 해요!”
여인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자, 서생이 이를 보고 더욱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마침 약간 떨어진 입구에 서 있던 계연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그러자 계연과 익숙해진 후 말이 많아진 해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저 서생이 마운인가? 젊었을 땐 저렇게 준수했었군. 게다가 사찰 안에서 여인을 꼬드길 줄이야.”
계연은 서생을 잠시 관찰한 뒤, 곧이어 시선을 여인에게로 돌리더니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저 여인의 행동거지는 그리 이상한 데가 없었지만, 하얀 피부와 굴곡진 몸매가 드러나도록 딱 붙는 옷을 입고, 신발이 사라진 한쪽 발을 내놓고 있는 모습이 누가 봐도 저 서생을 유혹하는 것이었다.
“저 서생은 마운이 아닐 거예요. 하지만 저 여인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네요.”
계연은 이렇게 대답하며 여인과 서생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한창 서생과 뭐라고 말을 하던 여인은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계연을 바라보자마자 여인의 동공이 수축했다.
하지만 여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한 얼굴로 다시 서생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그에게 손가락을 뻗으며 소리쳤다.
“무르기 없기예요!”
그리고는 서생을 향해 다가가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린 듯 기우뚱했다.
“에고!”
여인은 짧게 소리치더니 중심을 잃은 채 서생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그렇게 서생의 몸에 올라탄 채 함께 넘어졌고, 여인과 눈이 마주친 데다 부드러운 촉감을 느낀 서생은 경악한 와중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계연, 서둘러라. 마운이 정신이 혼미해져 색욕에 빠지게 되면 다시 불념(佛念)을 갖기가 어렵게 될 거다. 마음속에 부처가 없으니 어찌 불법을 닦겠느냐? 그러니…….”
“저 서생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긴 하지만, 마운은 아니에요.”
계연이 땅에 쓰러진 두 사람 곁에 다가가 보니, 여인은 입꼬리에 웃음을 머금고 서생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진마는 계연보다 좀 더 빨리 들어온 것뿐인데, 이 세계에서는 이미 2주 차이가 났다. 그래서 그는 계연보다 자신이 이곳에 대해 더 많이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계연이 대단하긴 하지만, 진마는 이제 그가 자신을 일검에 벨 수 없다는 걸 알았으므로 두렵지 않았다. 진마의 예상에 의하면, 계연은 분명 자신과 마운을 찾기 위해 경쟁할 터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목적은 완전히 반대였다. 자신이 지금 쓴 방법은 어찌 보면 간단하고 조잡했으나, 가장 효과적이기도 했다. 이에 진마는 자신이 기선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설령 이 서생이 마운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인파가 이렇게나 많은 곳에서 계연이 자기 같은 ‘연약한 여인’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계연은 엄숙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단숨에 여인을 서생의 몸에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여인이 채 입을 떼기도 전에 뺨을 올려붙였다.
짝!
그 차진 소리에 근처 참배객들의 시선이 전부 이곳으로 쏠렸다.
한편 뺨을 얻어맞은 여인은 귓가가 윙윙 울려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이런 방식으로 싸우자는 건가?’
그때 계연이 분노에 찬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천한 것! 당신 상공은 온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데, 대체 몇 번이나 바깥에서 정을 통하고 다니는 것이오! 역시 오늘도 마찬가지였군!”
계연의 목소리는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쩌렁쩌렁했으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여인이 맞은 뺨을 부여잡은 순간, 계연이 다시 반대쪽 따귀를 내리쳤다.
짝!
“염치없는 것!”
계연은 이때 온 힘을 실어 뺨을 때린 것이었으므로, 만약 진마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었다면 첫 번째 따귀에 이미 머리가 180도는 돌아갔을 것이고, 두 번째 따귀에는 아예 머리가 몸과 분리되었을 것이었다.
진마는 자연히 보통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한순간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진마는 뺨을 감싼 채 경악한 얼굴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계연은 그녀에게 입을 뗄 기회조차 주지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왜? 나는 노려봐서 뭐 하시오? 염치없다는 내 말이 틀렸소? 염치를 아는 이였다면, 남과 몰래 정을 통했어도 이 순간 할 말이 있었겠지. 게다가 오늘은 심지어 불문(佛門)의 성지에서 이런 방탕한 짓을 저지르다니, 타향에 와서 다른 이들이 못 알아볼 줄 알았던 것이오?”
여인에 의해 땅에 쓰러진 서생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없이 군중 사이로 몸을 숨겼다. 소위 미인을 아끼는 마음 같은 건 지금 상황에서는 쓸 데가 없었다.
그러자 주위 참배객들이 얼굴을 감싼 여인을 향해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 여인이 정말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참말인가? 저 여인이 그토록 방탕하다고?”
“저 꼴을 좀 보게, 누가 봐도 거짓으로 보이진 않는군.”
그중 나이가 꽤 있는 한 노부인은 특히나 이런 여인들을 업신여겼으므로, 코웃음 치며 이렇게 말을 더했다.
“조금 전에 서생의 품 안으로 뛰어들던 걸 보니 분명히 고의였네!”
“맞아요, 저도 봤어요! 정말이지 수치를 모르는군요!”
“하하, 다들 못 들었나? 저 여인이 몰래 정을 통한 게 한두 번이 아닌가 본데. 게다가 가슴을 보니 집안에 아이도 있는 듯하네.”
“나중에 아이 앞에서 어떻게 어미 노릇을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