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1화. 무공으로 겨루면 너는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구경꾼들이 하는 말 중에는 듣기 어려울 정도로 저속한 말도 있었고, 단순한 비방도 섞여 있었다. 심지어 호색가들은 이때 여인의 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렇게 변하자, 처음에는 계연이 왜 다짜고짜 따귀를 때리고 욕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여인은, 지금에야 점차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욕을 퍼붓자, 진마는 보통 사람들이 무리에서 고립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이건 아주 비정상적인 감각이었다.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모함할 수가 있어요! 보아하니 책을 좀 읽은 분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저같이 연약한 양갓집 규수를 이렇게 모함해도 되는 건가요? 저는 분명 아직 출가하지도 않은 규수인데, 당신 때문에 제 명예가 땅에 떨어졌잖아요! 당신…… 당신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서생의 이름을 더럽히는 존재군요!”
여인이 계연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을 뻗자, 계연은 휙 고개를 틀어 피한 뒤 여인의 목을 향해 오른손 손날을 날렸다. 손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들어도 이미 그 초식에 담긴 힘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에 여인은 조건반사적으로 뒤로 날아오르더니, 치마 속에서 한쪽 다리를 뻗어 계연의 손을 막아낸 뒤, 다른 다리로 계연의 머리를 차려 했다.
계연은 공격이 막히자 뒤로 물러나 날아오는 여인의 발을 피했다. 그리고는 즉시 여인을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쳤다.
“여러분 모두 보셨습니까? 이게 ‘연약한 양갓집 규수’의 모습입니까? 발을 드러내고 사찰 내부를 걷고, ‘실수로’ 서생의 품속에 쓰러지고, 이제는 저렇게나 날렵한 몸짓으로 저를 공격했습니다. 이것만 봐도 고강한 무공을 지닌 여인이 분명한데, 이래도 제가 저 여인을 모함하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계연은 분노에 찬 얼굴로 두 손을 뒷짐 진 채 여인으로 변한 진마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갔다. 그러자 진마는 꺼리는 바가 있어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이렇게 이야기를 멋대로 지어내고 염치를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서 있는 것만으로 불문의 성지를 욕보이는 것입니다! 당신 집안사람들이 내게 당신을 데려와 달라 부탁했으니, 순순히 따라오시오!”
계연은 몇 마디만으로 진마의 말문을 막은 후, 오른손으로 여인의 목을 잡아채려 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진마는 더는 연기를 이어가지 않고 곧장 뒤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고명한 무인 그 자체의 모습으로 경공을 펼쳐서 단번에 어느 불전(佛殿)의 처마 위에 올라서더니 지붕 위를 날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계연, 여기서는 나도 네가 두렵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란 본디 유혹을 이길 수 없는데, 네가 뭘 어쩔 수 있겠느냐? 마운은 곧 내 손아귀에 떨어질 것이다!”
여인의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전해졌으나, 그 모습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계연은 굳이 그녀를 뒤쫓지 않고 구경꾼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조금 전 양측의 싸움 때문에 뒤로 물러나 있었는데, 그래도 좋은 구경을 놓칠 수는 없어 그리 멀리 물러나진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리에 남아있었다.
계연은 구경꾼들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낭랑한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저 여인은 성격이 완고해, 일찍이 시집가 남의 부인이 된 신분임에도 아직도 본분을 지키지 않고 사내들과 정을 통하고 다닙니다. 약관의 소년부터 아이를 둔 남자까지 가리지 않으며, 정숙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건 물론이고 한곳에 마음을 두지 못하는 성정입니다. 특히나 남의 가정을 깨는 걸 좋아하니, 그야말로 강간범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자 구경꾼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의견이 분분했는데, 여인들은 감히 그런 일을 상상도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으며, 나이가 좀 있는 이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저렇게나 염치를 모르고 가풍을 해치는 사람이 있다니…….”
“저런 여인은 침저롱(*浸猪籠: ‘저롱’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기다란 통으로 이곳에 죄인을 집어넣어 강물에 빠뜨렸는데, 주로 간통죄를 저지른 여인에게 적용함)에 처해야 하오!”
“맞습니다, 침저롱에 처해야 마땅합니다!”
“모두들 주의하는 게 좋겠소. 이후에 저 여인을 또 만나면 멀찍이 피해 다녀야 하니!”
“맞습니다, 게다가 저 여인은 무공까지 할 줄 아니까요!”
물론 이 중에서 어떤 사내들은 겉으로만 분노한 척할 뿐, 속으로는 무척 흥미롭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계연의 계획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계연은 곧이어 완벽한 이야기를 지어낸 다음, 여인의 이름이며 시집간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그간 얼마나 많은 사내를 꾀어냈고 또 얼마나 많은 가정을 깨뜨렸는지, 여인의 부군이 아직도 그녀가 마음을 돌리길 기다리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조리 있는 이야기에 엄숙한 표정과 점잖은 서생 같은 모습이 더해지자, 그의 말은 무척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는 구체적인 장소나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저 상대 남자들을 난처하게 할 수 없어 말할 수 없다고 하자 누구도 의아하게 여기지 않았다.
곧이어 사찰 안의 승려들과 향을 올리러 온 고관 귀족들 몇몇도 구경꾼 사이에 섞여들었다. 그러자 이곳에 오지 않은 이들도 곧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이 일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는 조금 전의 그 서생을 찾아 물어보기까지 했으므로 더욱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견맥(甄陌)’이라는 이름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는 재빨리 퍼져나갔다. 백성들은 이번 일을 식후의 화젯거리로 삼을 게 분명했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멀리, 더욱 넓게 퍼져나갈 것이다.
반 시진 뒤, 계연이 사찰에서 나오자 해치가 이렇게 물었다.
“이렇게 수고롭게 애를 썼는데, 진마가 다른 형상으로 변해버리면 소용없는 것 아닌가? 비록 여기서는 전처럼 법력을 쓸 수 없다고는 해도, 모습을 바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텐데.”
“설령 모습을 바꾼다 해도, 아무런 영향도 없진 않을 거예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뭐 하러 이렇게 큰 힘을 들였겠어요.”
계연은 사찰을 나와 골목을 통과하기도 하며, 어딘가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듯이 거침없이 걸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작은 주루 안에 들어오자, 사찰 안에서 보았던 서생이 지인과 식사를 하는 게 보였다.
“저 사람은 마운이 아니라며?”
“네, 아니에요. 하지만 마운은 분명히 그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았다면 저 사람이 저렇게 특수한 기운을 가지지 못했을 테니까요. 진마가 그를 잘못 봤을 리 없으니, 저 사람은 예전의 마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거나,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일 거예요.”
계연이 주루의 입구에 들어서자, 서생도 마침 그를 발견한 듯 표정이 조금 어색해졌다. 한편 그와 함께 앉아 있던 친우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웃으며 그를 놀렸다.
“하하하, 이(李)형, 자네가 여복이 있군!”
“그러니까 말일세, 듣자 하니 그 여인이 염치는 모르지만, 자태가 그리 빼어났다며? 이형도 그 순간 아주 흡족했겠군?”
“맞아, 맞아. 하하하, 내심 아주 행복했겠어?”
그러자 서생이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부러 소리 높여 이렇게 대꾸했다.
“성현의 책을 읽는 사람이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나. 나도 그저 난처했을 뿐, 그 외의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네. 그러니 이제 그만들 하게!”
식탁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짓궂게 웃더니, 그중 하나가 잔을 든 채 팔꿈치로 그 서생을 툭 찔렀다.
“에이, 괜한 척하지 말게. 그날 이춘원(怡春院)에 갔을 때 보니, 자네가 제일 신나게 놀던걸.”
“켁켁……!”
마침 술을 마시던 서생은 그 말에 사레가 들려 연신 기침을 했다.
계연은 이때 그들 가까이 다가와 있었으므로 온화한 목소리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세 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계모(某)가 여기 함께 앉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일이 아니라, 여기 이씨 성의 서생께 여쭐 것이 있어서요.”
“선생은 누구신지요?”
그중 누군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렇게 묻자, 이 씨 서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신 대답했다.
“이쪽은 조금 전에 그 행실이 천박한 여인과 맞붙었던 선생일세. 이리 앉으시지요!”
“고맙습니다!”
계연은 정중히 인사한 뒤 자리에 앉아 식탁 위에 놓인 요리와 이를 둘러싼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런 뒤 주루 안팎을 한번 둘러보았지만, 이 서생 외에 특별한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제게 묻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고요?”
“아, 그저 견맥과 어떻게 마주쳤는지 물어보려고요. 그 여인은 무척 위험한 데다,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을 성정입니다. 어쩌면 아직도 당신을 노리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이 씨 서생은 속으로는 내심 기뻤으나, 일부러 엄숙한 얼굴로 근심 어린 표정을 내보이며 대답했다.
“그, 그럼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보아하니 그 여인은 무공 고수인 것 같던데, 저는 닭 한 마리 잡을 힘도 없는지라…….”
그러자 계연이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설령 그 여인에게 붙잡힌다 해도, 그저 뜻에 따라주기만 하면 목숨의 위험은 없을 겁니다. 일단 어떻게 그 여인과 부딪혔는지부터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평상시 생활 습관이나 자세한 개인 사정도요. 그 여인이 왜 당신을 목표로 삼았는지 추측해보려고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계연은 척 보기만 해도 학식이 깊어 보여, 왠지 모르게 훈장과 비슷한 느낌을 풍겼다. 그래서 서생은 계연에 대해 어떤 악감정이나 경계심도 없이, 어쩌다 그 여인과 마주치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훈장님을 앞에 둔 사람처럼 자신의 가정사와 그간 학문을 닦아온 경력을 이야기했다.
이씨 서생은 자신에 대해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그의 친한 벗인 다른 두 서생도 때로 설명을 보충하기도 했다. 마치 학당 훈장님의 질문에 대답하듯 아주 진지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계연이 서생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게 되었을 즈음, 서책 몇 권을 품에 안은 아이가 바깥에서부터 서둘러 뛰어 들어왔다.
“아버지, 저 왔어요. 어? 이 형, 서원에서 돌아오셨나 보네요. 잘됐다!”
아이가 입은 옷으로 보아하니, 어느 학당에 다니는 학생인 듯했다. 이씨 성의 서생도 아이와 무척 가까운 관계인 듯, 곧장 아이를 품에 안아 다리 위에 앉혔다.
“하, 소두(小杜), 네 형이 오늘 하마터면 여적(女賊)에게 해를 입을 뻔했단다!”
“예? 여적이요?”
“그래, 남색(男色)을 밝히는 여적 말이야. 까딱 잘못했다간 네 형님이 그 여인과 함께 침저롱에 처해질 뻔했다고.”
그러자 아이가 이씨 서생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도 들었어요, 아녀자의 도리를 지키지 않고 다른 이의 가정에 해를 끼치고 다닌다는 견맥이라는 여인 말이죠? 방장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이네요. 과연 여색(女色)은 사람을 해치는 것이군요. 선재 대명왕불!”
계연은 이씨 서생이 자신에게 따라준 술을 마시다가, 아이를 슬쩍 보고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러다 갑자기 젓가락을 집어 위쪽을 향해 던졌다.
솨앗-!
젓가락 두 개가 유성처럼 천장을 향해 날아갔다.
콰앙……!
딱, 딱!
그 순간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더니, 단도 두 자루를 들고 있는 여인이 젓가락을 쳐내는 동시에, 구멍을 통해 아래로 뛰어 내려왔다.
“알고 보니 저 서생은 마운이 아니었군. 그래도 내가 바짝 따라붙어서 다행이지. 계연, 오늘 일은 오늘로 끝내자! 내가 조금 전에 말싸움에서는 졌지만, 여기는 법력이나 신통력이 앞서는 곳이 아니다. 게다가 무공으로 겨루면 너는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힘이 남들보다 세다는 것 정도로는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