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07화 (807/892)

807화. 위엄을 떨친 노염생

먹구름이 부서지던 순간, 몇 갈래의 요사스러운 빛이 원혼들과 함께 빠져나와 온 하늘을 뒤덮은 원령 사이를 날아다녔다. 그렇게 반경 수십 리가 전부 원혼으로 뒤덮이자, 노염생 일행의 주위 전체가 어둠에 휩싸였다.

노염생은 경악한 얼굴로 이렇게 많은 원령이 모여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생명이 잔혹하게 목숨을 잃었으며, 그 후 누군가에 의해 거둬졌다는 뜻임을 떠올렸다.

노염생의 두 제자도 이때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특히나 양종은 제위에 앉아 천하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적도 있었으나, 그는 금으로 치장된 전각 안에서 명령을 내리기나 했을 뿐,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이렇게나 많은 생명이 원한을 품고 죽은 것은 본 일이 없었다.

그때 멀리서 여러 갈래의 선광이 노염생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노염생은 그들을 막지 않고 가까이 다가오도록 놔두었고, 그들은 몇 장 밖 거리에 멈춰서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무리는 남자 둘, 여자 하나였는데 셋 다 건원종 제자의 옷을 입고 있었다.

“건원종 제자들이 종문(宗門)의 선배님을 뵙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실례지만 선배님께서는 어느 항렬의 고인이신지요?”

그들은 구름 위에 서 있는 꾀죄죄하고 남루한 옷을 입은 일행을 향해 조금도 낮잡아보는 기색 없이 공손한 태도로 예를 올렸다.

그러자 노염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하늘을 뒤덮은 원령들을 바라보았다.

“저 요사한 것들이 원기(怨氣)를 엄호로 삼아 모습을 숨기고 있었으니, 처리하지 않을 수 없겠군. 다만 저렇게 많은 원령들이 어쩌다 모이게 되었을까?”

노염생은 상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화제를 다시 현재 상황으로 돌렸다. 그러자 건원종의 제자들도 더는 캐묻지 못했다.

중간에 서 있던 여인은 노염생의 말을 듣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모두 천우주의 생령(生靈)이 변한 거예요. 원령들이 지닌 원념과 불결한 기운이 너무 강한 탓에, 가까이 다가가면 원신(*元神: 육체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생겨나, 수행을 시작하면 혼백을 주관하는 역할을 함. 사람이 죽은 후 환생하는 근간이 됨)을 교란하지요. 그렇지만 않았다면 저희도 이렇게 도망치진 않았을 겁니다. 어원산에서 출발할 때는 저희 사형제 여덟이 함께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저희 셋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만약 선배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저희도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여인은 분통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선인이라고 해서 칠정육욕(*七情六慾: 사람이 지닌 7가지 감정과 6가지 욕정)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욕망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고, 드러내는 감정이 비교적 담담하다는 것뿐이었다.

“자네들은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노염생이 이렇게 물으며 인을 맺어 법력을 움직였다. 원령들이 흩어지지도 공격하지도 않는 걸 보니, 요물들도 지금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새로 나타난 선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없어 함부로 나서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또 도망치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모습은 노염생이 바라던 바였다.

노염생은 이렇게 많은 원령을 놓아주고 싶지도 않았고, 그 안에 숨은 요물들이 도망치게 놔두고 싶지도 않았다.

노염생의 물음에 수염 없는 얼굴에 약간 통통한 체격의 수사가 나서서 대답했다.

“선배께 아룁니다. 저희는 명을 받고 천기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남황주에 도착해야 하는 때인데, 저들이 저희의 행적을 점쳤는지 도중에 매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일정이 많이 늦어진 상황입니다…….”

‘천기각에 간다고?’

노염생은 그 순간 무언가를 깨닫고는 현재 종파가 처한 상황이 더욱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의 장교 사형의 도행으로도 천기각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정도라니?

“그러면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어서 가게!”

노염생이 갑자기 이렇게 소리치자 수사들이 깜짝 놀랐다. 이내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 다시 노염생을 향해 예를 올리며 말했다.

“선배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잠깐!”

노염생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다급히 세 사람을 멈춰 세웠다. 그가 잠시 법결을 중단하자 왼손 손가락 끝에서 법광이 서서히 모습을 감췄다. 그가 힘을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일반적인 수선자들은 이미 펼친 술법을 중도에 멈추는 게 불가능했다.

노염생은 가슴 언저리가 훤히 드러난 남루한 옷 사이로 오른손을 넣더니, 이를 잡듯 몇 번 긁적이다가, 작고 정교한 양지옥(*羊脂玉: 양의 기름 덩이같이 빛나고 윤택 있는 흰 옥)으로 된 부적을 꺼냈다. 뒷면에는 신령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앞면에는 ‘태허(*太虛: 하늘, 혹은 우주의 본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자, 이걸 잠시 빌려줄 테니 건원종에 돌아간 후에 다시 돌려주게. 이게 있으면 천기각까지 가는 길이 안전할 테니.”

이미 한번 공격을 당했는데, 만약 또다시 어떤 무리를 마주치게 되면 그들은 어쩌면 천기각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건……?”

중간에 서 있던 여인이 조심스럽게 옥 부적을 받아들었지만, 아무리 살펴도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 이건 옥회산의 태허옥부라는 것으로, 무척 희귀한 물건인데 몸을 숨기는 데 아주 유용하지. 옥회산에 있는 내 친우가 준 것일세. 다만 이걸 쓸 때는 태허경(*太虛境: 태허의 경지)을 유지하는 것 외에 너무 많은 법력을 써서는 안 되니 되도록 천천히 날도록 하고. 뭐, 알아서 융통성 있게 쓰도록 하게. 어서 가보게!”

“예! 후배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세 사람은 다시 한번 예를 올린 뒤, 둔광을 일으키며 멀리 날아갔다.

그 순간, 수많은 원령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검은 광풍이 되어 떠나는 세 사람을 뒤쫓으려 했으나, 어느 정도 거리에 이르렀을 때 어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듯 뒤로 튕겨 나갔다. 반면 저 앞의 세 사람은 아무런 방해 없이 날아간 후였다.

“저들을 뒤쫓고 싶다면, 먼저 이 늙은이의 의견부터 물어보는 게 좋을 거다!”

먹구름을 부순 후에도 건원화법은 완전히 흩어진 게 아니었으므로, 노염생은 신념(*神念: 수행자의 의지, 기억, 생각을 가지며 입정 후에 활성화되는 것으로, 영혼과 비슷함)을 둘로 나눠 반경 수십 리에 걸친 원령들을 뒤덮은 금제를 유지했다.

만약 저 배후의 요사한 존재들이 금제를 강제로 돌파하려 한다면 별것 아니겠지만, 개별 혹은 적은 무리의 원령들은 절대 저 금제를 돌파할 수 없었다. 물론 저들은 이 금제가 그리 강하지 않다는 걸 몰랐으므로, 원령들이 튕겨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란 상태였다.

노염생이 예상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자 그는 잠시 멈췄던 법결을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손으로 인을 맺자, 손바닥에서부터 건조하고 뜨거운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부님, 이렇게 많은 원령은 제도(濟度)하지 못할 텐데요.”

노소유의 말에, 노염생이 무얼 하려는지 이미 알아차린 양종이 이렇게 설명했다.

“위기에는 극약 처방을 쓰는 법이라지. 어차피 모든 일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는 없으니, 차라리 저들을 천지에 돌려보내는 것이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 나을 거야. 저 요사한 무리도 함께 처리할 수 있고.”

하늘을 뒤덮은 원령들은 원래 어지럽게 날아다니다가, 어떤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방향을 돌려 노염생 일행이 서 있는 흰 구름을 향해 돌진했다. 갖가지 감정이 담긴 비명과 포효는 마치 고장 난 스피커 소리처럼 고막을 찢을듯했다.

그러자 노소유와 양종은 각기 앞뒤로 서서 법력을 펼쳐서 보호막을 만들더니, 수많은 원령이 부딪히는 충격을 막아냈다.

노염생은 전혀 서두르지 않는 기색으로 원령들의 공격에도 개의치 않았다. 마치 두 제자를 단련시킬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럼, 여기는 너희 둘에게 맡기마.”

이내 노염생의 모습이 두 사람의 눈앞에서 점차 흐릿해지더니 아예 사라져 버렸다. 노소유와 양종은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눈앞의 원령들을 막아냈다. 그들은 법기(法器)의 힘을 빌리지도 않고, 오직 자신의 손바닥과 법력을 이용해 대적하고 있었다.

그때, 원령들이 가장 밀집된 중심에서 돌연 불씨 하나가 나타났다. 그곳을 지나던 원령은 자신이 지닌 원기 때문에 몸에 불씨가 옮겨붙었고, 원령은 삽시간

에 화염에 싸인 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불의 공이 되었다.

“하악……!”

화앗- 확-! 화앗!

그렇게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며 점점 더 많은 원령에게 불이 옮아 붙으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반경 수십 리가 불바다로 변해, 수많은 원령이 그 속에서 울부짖었다. 다만 그들이 지닌 원기가 너무 짙어, 단시간 안에 불에 타 사라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불씨는 원령에게만 효과가 있어, 점점 더 많은 원령이 불길에 뒤덮이자 그 뒤에 숨어있는 몇 갈래의 요기(妖氣)와 사기(邪氣)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중 노염생조차 본 적이 없는, 새카만 진창 같은 모습을 한 괴물 곁에는 요괴 몇 명이 함께 달라붙어 있었다. 그 진창 같은 괴물은 밖으로 계속해서 검은 액체를 토해내고 있었는데, 마치 연못에 고여 썩어버린 물처럼 짙은 악취를 풍겼다. 그 액체에 맞은 원령들의 몸에 붙은 불씨는 꺼졌지만, 어째서인지 원령들은 더욱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다 괴물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주위에 광풍이 일며 수많은 원령이 그 괴물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럴수록 괴물의 몸은 더욱 비대해졌고, 그가 뿜어내는 원기와 살기가 순간적으로 몇 배가 늘어났다. 그러자 이제는 노염생도 진지하게 괴물을 상대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저게 대체 무슨 괴물이지?”

경악에 찬 노염생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상대가 자신의 기운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걸 느끼자 더는 다른 데에 정신을 팔 수가 없었다.

그때, 주위의 요괴들이 무언가 전음을 보낸 듯이 새카만 진흙탕 같은 괴물이 한쪽으로 검은 액체를 토해냈다. 그렇게 삼엄해 보이던 노염생의 금제가 무너지자, 순식간에 요광 여러 갈래가 괴물만 뒤에 남긴 채 도망쳤다.

노염생이 도망치는 요광을 향해 움직이려 할 때, 수많은 원혼을 집어삼킨 괴물이 악취를 풍기며 노염생을 향해 돌진해왔다. 그것은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무척 빨랐고, 그 크기 덕분에 공격 범위도 넓었다.

“크릉……!”

그렇게 순식간에 괴물이 노염생을 뒤덮더니, 곧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부님-!”

노소유가 놀라 소리치자, 양종은 즉시 올라탄 구름을 몰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제, 미쳤어? 당장 돌아가야 해!”

“사부님께선 신통한 법력을 지니셨으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우리가 저기에 남아있으면 사부님께서는 오히려 마음 놓고 공격할 수가 없어. 사형,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느껴봐…….”

노소유는 그 말에 흥분을 진정시키고 마음을 가라앉혔다가 곧 깜짝 놀랐다. 저 멀리 혼탁한 기운 속에서 사부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이어 그의 마음속에서는 자신과 양종이 무슨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느껴지곤 했던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다만 그 감각이 이번에는 자기들을 가리키고 있지 않을 뿐이었다.

“이 하루살이 같은 것이 감히 건방지게……!”

곧이어 무척이나 분노한 노염생의 호통소리가 들려오며, 혼탁한 기운을 뚫고 한 줄기, 한 줄기씩 흰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그 안에 작은 태양이 있는 듯했다.

펑……! 콰앙-!

하늘을 뒤덮은 혼탁한 기운은 화염과 흰빛에 의해 증발하며 이내 흰 연기가 되어 상공으로 솟구쳤다. 그 중심의 노염생은 스스로 발열하는 것처럼, 온통 흰빛에 휩싸여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진노한 천신(天神)처럼 보였다.

원령들을 처리한 동시에, 그에게서는 흰 무지개 같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스스로 영성(靈性)을 지닌 것처럼 요괴들이 도망친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이 늙은이가 좀 봐주었더니 나를 병든 고양이로 아는 모양이지! 소유, 소종, 가자!”

“예!”

흰 무지개 같은 빛을 날린 뒤, 노염생은 도망친 요괴들을 신경 쓰지 않고 제자들을 불렀다. 두 사람이 구름을 몰아 노염생 가까이 다가가자, 곧 노염생이 내뿜는 빛에 휩싸여 순식간에 한 줄기 흐르는 빛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천우주를 향해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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