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8화.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지룡(地龍)
노소유와 양종은 노염생의 제자로서, 굳이 전에 도망친 그 요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 요괴들은 도망친 속도도 무척 빨랐고, 사부님도 고작 단 한 번의 일격을 날렸을 뿐이므로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두 제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노염생은 더욱이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계속해서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저 요마들이 감히 수선자들을 습격하는 대담한 행동을 벌였고, 그에 더해 그럴만한 능력이 있었던 것에 놀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십만 단위가 넘어가는 원령들을 보고는 더욱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런 와중에 노염생이 아무리 천우주와 건원종의 상황을 점쳐 보아도 약간 복잡한 일이 벌어졌다는 결과만 나왔을 뿐이었다. 이는 확실히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어쩐지 장교 사형이 천기각으로 사람을 보내더라니.’
“사부님, 천우주에서 명성이 높은 정도(正道)의 수행 세력은 또 어느 곳이 있습니까? 그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을 리가 없잖습니까? 건원종에서도 분명 그들에게 상황을 알렸을 텐데요. 곳곳의 신도(神道) 세력과 산수의 정령에게도요.”
양종은 황제로서 말년에 성정이 변덕스러워졌긴 했지만, 제위했던 기간 전체로 보면 혼군(*昏君: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이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황제를 해 봤던 자여서 그런지, 어떤 문제를 대할 때도 전체적인 국면을 고려하곤 했다. 그는 수행자들 대부분이 어떤 일에 맞닥뜨려도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선도대회가 열릴 때 빼고는 서로 왕래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같은 정도에 속한 세력으로서 심각한 위기가 닥치면 저 살고자 모래알처럼 흩어지진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음, 천우주에서 이름을 떨치는 정도 세력은 적지 않지. 그들 중 대부분이 건원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거나 건원종을 따르고 있고. 총 9파(派) 13동(洞) 22도(島)인데, 천우주 곳곳에 퍼져 있다. 여기 속하지 않는 다른 정도 세력들도 건원종의 체면은 세워줄 정도지. 만약 건원종의 진산종이 아홉 번 울렸다면, 그들도 반드시 그 소식을 들었을 거다.”
노염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되었다, 너희 둘도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 없다. 설령 하늘이 무너져도 너희 대신 받쳐 들 선배들이 많으니까. 설령 이번에 정말로 어떤 위기를 맞닥뜨렸다 해도, 건원종은 능히 견뎌낼 것이다! 그저 어떤 놈이 이런 사태를 일으켰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지.”
노염생은 원령을 집어삼키던 괴물을 잠시 떠올리다가 다시 잡념을 떨치고 제자들을 데리고 속도를 올렸다. 그는 강풍이 부는 바람층으로 숨지도 않고, 일부러 온몸에서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천우주로 향했다.
발밑의 망망대해는 마치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듯하여, 노염생이 아무리 법력을 아끼지 않고 속도를 내도 천우주에 가까워지기까지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는 그제야 눈에 띄지 않는 황량한 섬 한 곳에 내려서서, 제자들이 설치한 안전한 금제 아래에서 하루 동안의 회복 시간을 가진 뒤, 해가 떠오르는 시각에 다시 천우주 대륙을 향해 날아갔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육지를 보니 이곳은 결코 섬이 아니었다. 노소유가 자신 옆에서 선인의 광채를 내뿜고 있는 노염생을 향해 물었다.
“사부님, 저희는 건원종에 가나요?”
“그건 급하지 않다. 여기 와서 느낀 감응에 의하면 건원종에는 별일이 없어. 그러니 문제가 생긴 건 분명 천우주다. 일단 가서 보고 다시 얘기하자.”
어원산 쪽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노염생도 굳이 가서 사형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으므로 천우주를 둘러보는 것을 택했다.
노염생은 눈에 띄는 선광을 거둬들이고 두 제자와 함께 천우주로 날아갔다. 그렇게 천우주에 도착한 지 며칠 만에 세 사람은 이미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했다.
천우주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그들이 며칠 동안 여러 국경을 지나며 상공에서 관찰해본 결과, 곳곳이 물난리, 메뚜기떼에 의한 피해, 가뭄, 전염병을 겪고 있었고 그중 많은 나라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란에 휩싸여 있었다. 모두 이웃 나라와 전쟁 중이거나 국내에서 내란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 상상을 벗어난 속세의 혼란에는 온갖 기운이 섞여 있었는데, 노염생 같은 고인조차 이를 보고 초조함과 짜증을 느낄 정도였다.
세 사람은 고도를 낮추지 않고 최대한 눈으로만 아래의 산과 하천을 관찰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안정된 세태를 유지하는 지방은 거의 없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는 요사한 존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거나 상황 자체가 요사한 존재들을 끌어당기는 법이었다. 그래서 천우주의 속세는 천재(天災)와 인화(人禍)를 겪고 있는 와중에, 요사한 존재들이 일으키는 혼란까지 겪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간 곳곳을 관찰하면서, 세 사람은 선광이 지나가거나 신광(神光)이 밝게 빛나는 것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이는 정도의 수행자들이 속세에 간섭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했지만, 세 사람은 여전히 아래로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하늘이 또 어두워졌네.”
노소유가 서쪽 산으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노을은 아직 환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어떤 곳에는 이미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응.”
양종은 가볍게 대답한 뒤 이미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 지역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빠르게 사기(邪氣)로 뒤덮여가고 있었고, 벌써부터 도깨비불이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백성들은 일찍이 집에 돌아가 불을 껐고, 밖에 돌아다니는 이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종아, 어찌 생각하느냐?”
양종은 어쨌든 황제 노릇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속세의 혼란을 대할 때 그만의 견해가 있었다.
“사부님, 현재 이곳의 여러 나라는 전화에 휩싸여 있는데, 이는 속세의 관점에서 보면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 야심만만한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도의 관점으로 보면, 분명 어떤 삿된 존재가 뒤에서 인간들을 선동해 이런 사달을 일으킨 게 확실합니다.”
“음, 네 말에 일리가 있구나. 하지만 이건 선동에 그칠 정도로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노염생은 다시 얼마 전에 마주쳤던 괴물과 요괴들을 떠올렸다. 보아하니 건원종에서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뒤에서 조종하는 인물과 맞붙은 적이 있는 듯했다. 그러니 건원종에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내보낸 수사들이 추격을 당한 것이다.
“사부님, 저쪽으로 가보시죠!”
“음!”
노소유가 가리킨 곳은 이미 어둠에 뒤덮인 구역이었다. 노염생은 고개를 끄덕이곤 두 사람을 데리고 함께 그곳을 향해 날아갔다.
원래도 그들은 잠시 이곳에 멈춰서 쉬려고 했었다. 노염생이 이 구역의 산맥이 비록 웅장하진 않지만, 대신 지하를 통해 이어진 산맥은 무척 거대해 주위 각국의 용맥(*龍脈: 풍수설에서 산의 기세(氣勢)와 기복(起伏))과 관련되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향하는 구역은 주위 다른 곳에 비해 가장 일찍 어두워졌고, 반경 천 리 이내의 사기(邪氣)가 다른 곳보다 훨씬 짙었다.
세 사람이 소리 없이 어느 산에 내려서서 관찰해보니, 주위의 사기가 짙긴 했지만, 아직 요사한 것이 스스로 생길 정도는 아닌 듯했다. 노염생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어느 산등성이를 발견하고는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는 그곳을 가리키며 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소종, 소유, 저곳을 3장(약 9m) 깊이로 파서 숨겨진 것을 갖고 오거라.”
“예!”
두 사람은 곧장 사부의 명에 따라 그곳으로 날아갔다. 대체 무엇이 있길래 그러시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3장을 파보면 알게 될 일이었다. 그들이 술법을 부려 부지런히 흙과 돌을 뒤집어 파내자, 마치 모래처럼 계속해서 흙이 구덩이로 쏟아졌다. 그래도 둘은 계속해서 그 범위를 넓혀갔다.
마침내 3장 깊이에 물항아리만 한 너비의 구덩이가 파이자, 그 안에 미약한 빛을 반사하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노소유가 그 물건을 향해 손짓하자, 그것이 스스로 회전하며 날아오르더니 그의 손안에 떨어졌다. 두 사람은 그것을 멀지 않은 산꼭대기에 서 있던 노염생에게 전달했다.
그것은 황토색의 비늘 조각으로, 보통 사람의 손바닥 두 개를 붙인 크기였다. 촉감은 부드럽고 매끄러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오래되어 바싹 마른 것처럼 보였다.
“사부님, 이게 용의 비늘입니까?”
양종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황제였을 때 그는 속세에서 진룡이라 여겨졌고, 제왕은 실제로도 용의 기운을 지니고 있기도 했으니, 용과 관련된 사물을 보자 자연히 더욱 관심이 갔다.
“그래, 지룡(地龍)의 비늘이다.”
“지룡이요?”
양종과 노소유는 멀뚱히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지룡이라는 용족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지룡이 몸을 뒤집는다(地龍翻身: 옛날 중국에서 지진을 일컫는 표현)는 말은 들어봤겠지?”
그 표현은 모든 이가 알고 있었으므로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노염생은 손에 쥔 비늘 조각을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다.
“소위 지룡이 몸을 뒤집는다는 건, 지력(地力)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 파괴력이 생겨나는 걸 일컫는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성격이 느긋한 어떤 용들은 산맥의 기운이 비교적 강한 곳에서 수련하는 걸 좋아하지. 특히나 용맥이라고 알려진 곳은 더욱 선호된다. 그런 용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니, 천천히 산세(山勢)와 연결되다 마침내는 지룡으로 변하게 되지. 그들이 가끔 몸을 뒤집을 때마다 주위 지력이 함께 움직이니, 지룡이 몸을 뒤집는다는 표현의 유래가 여기서 온 것이다. 다만 이 지룡은…….”
노염생은 주위에 짙게 깔린 삿된 기운을 관찰하며, 용족 중에도 사룡(邪龍)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지룡들은 이런 기운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떠올렸다.
“가자, 내려가서 직접 봐야겠다!”
노염생은 이렇게 말하며 두 제자를 데리고 토둔술을 이용해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감각에 의지하여 어떤 방향을 따라가더니, 반각(약 7-8분) 뒤 대략 1000장(약 3km)깊이의 지하에 도달했다.
산맥과 물길이 뒤얽힌 틈새에 도달한 세 사람은 토둔술을 펼칠 때 나는 신령한 빛을 내며 자리에 멈춰 섰다. 노소유와 양종은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고, 노염생은 안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지룡 한 마리가 가만히 누워있었는데, 길이는 대략 2, 30장(약 6-9m)은 되어 보였고 몸통도 무척 굵었다. 다만 지룡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상태였고 외부 세계와 기운을 주고받고 있지도 않았다.
“사부님, 저 지룡은 죽은 건가요?”
“그래, 죽었구나!”
이렇게 대답하는 노염생의 두 눈은 은은한 법광(法光)을 빛내고 있었다. 이 지룡은 죽었을 뿐만 아니라, 시체에는 강한 원기(怨氣)가 남아 계속해서 악하고 삿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주위 산세와 용맥을 물들인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