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화. 폭풍전야
노염생은 선광을 빛내며 단번에 지룡을 따라잡은 뒤, 지룡의 머리 위에서 잠자리처럼 휙 떨어져 내리며 오른손 손바닥으로 지룡의 이마를 가격했다.
콰앙……!
그러자 공중을 날던 지룡의 몸 전체가 진동했고, 노염생은 즉시 빛으로 변해 상공으로 솟구쳤다. 곧이어 지룡이 지닌 일곱 가지 구멍에서 오염된 피가 솟구쳤으나, 지룡은 위태롭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계속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음? 이놈이 추락하지 않다니?”
노염생은 의아한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원래대로라면 이 엄청난 위력을 지닌 장법에 맞았으니 지룡은 곧장 땅으로 추락해야 했다. 그러다 노염생은 지룡의 시체가 비록 살아있는 지룡처럼 뛰어난 능력은 없었지만, 대신 고통에는 강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또 때리면 되지!’
펑……! 펑! 퍼억……!
노염생은 처음처럼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속으로 세 번을 때렸다. 지룡은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없어 계속해서 오염된 물을 내뿜었지만, 용의 기운을 끌어올려 그의 장법을 견뎌냈다.
그러더니 지룡은 노염생을 산채로 휘감으려는 듯, 발과 꼬리를 휘둘러 그를 공격하는 동시에 주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그러자 노염생은 이 지룡이 비록 죽었지만, 아직 여의주를 품고 있고 덕분에 그 정기(精氣)와 원기(元氣)가 흩어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지룡은 마치 자신에게 남은 정기와 원기를 전부 끌어다 쓰는 듯했다. 그가 천년 간 쌓아온 수행력이 둑이 터져나간 물살처럼 폭발하고 있었다.
콰지직…… 콰직! 우르릉……!
그러자 노소유와 양종이 법력을 펼쳐 지룡을 향해 계속해서 벼락이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용족은 본래부터 벼락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존재들이었고, 더욱이 이 지룡은 온몸에서 사기(邪氣)를 내뿜고 있어 별 타격감이 없었다. 그저 겉으로 보기에 지룡의 몸에 전류가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사부님, 멀리 사람의 화기(火氣)가 왕성한 걸 보니, 곧 백성들이 모여 사는 곳에 가까워질 겁니다!”
그러자 이 지룡이 의식적으로 속세를 향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노염생이 퍼뜩 놀랐다. 이는 되살아난 지룡의 사체가 어느 정도 생각을 할 수 있거나, 누군가 먼 거리 혹은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이 지룡을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노염생은 놀란 마음이 가시자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분노가 극에 달해 웃음을 터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하하하, 아주 대단하구나, 대단해!”
노염생은 상대가 자신의 도행이 높다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을 얕잡아 보고 있다는 걸 느끼고는 순간적으로 노기가 치솟았다.
“너 같은 시룡(*尸龍: 강시가 된 용을 일컬음)이 속세에 가도록 놔두면 이 노염생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느냐?”
노염생은 더는 용을 공격하지 않고 둔술을 펼쳐 삽시간에 지룡을 따라잡았다. 그리고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시룡의 머리 위, 용의 뿔 사이에 내려섰다.
“크르르-!”
시룡은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었으나 노염생의 두 발은 마치 제자리에 뿌리라도 내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주위에 감도는 혼탁한 기운은 노염생에게 닿기는커녕 그의 선광(仙光)에 흩어져 버렸다.
“흥!”
크게 코웃음 친 노염생은 본래도 남들의 눈을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곧장 허리띠를 끌러 한쪽 끝을 용의 머리 쪽으로 크게 던졌다. 그러자 허리띠가 바람에 맞아 길이가 늘어나더니, 용의 머리 아래를 지나 각도를 틀고는 다시 위로 올라와 노염생의 왼손에 안착했다.
그러자 노염생이 한쪽씩 틀어쥔 허리띠에 폭발적인 힘을 가하며 위로 당겼다.
“크릉……!”
그러자 시룡이 포효하며 노염생이 끌어올리는 힘에 따라 하늘 높이 치솟았고, 속도도 이전보다 배는 더 빨라졌다. 지룡의 몸은 수직으로 뻣뻣하게 곧추세워져, 마치 누군가 하늘에서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였다.
“너희들 잘 봐라, 오늘 이 사부님이 거중약경(*擧重若輕: 무거운 물건을 가볍게 든다는 뜻으로, 어려운 일을 손쉽게 처리할 때 쓰임)이 무언지 친히 보여주마.”
동시에 노염생이 허리띠를 쥔 손에 힘을 살짝 풀어 그대로 용의 목을 따라 미끄러지더니, 용의 중상부쯤 되는 위치에 도달하자 다시 팽팽히 허리띠를 당겼다.
이번에 그가 당긴 힘은 전보다 훨씬 세서, 허리띠에 졸린 지룡의 몸통이 다른 곳과 비교해 반은 얇아졌을 정도였다. 이내 노염생의 손에 흰빛이 떠오르더니, 지룡의 몸을 팽팽히 조이고 있는 허리띠 전체가 빛에 휩싸였다.
“올라가라!”
쿠웅……!
하늘에 한 차례 굉음이 울리더니, ‘빛의 고리’가 노염생의 손에서 빠져나와, 용의 비늘을 역으로 뒤집으며 목으로 쑥 올라갔다.
퍼엉……!
그러자 한 차례 오수(汚水)가 뿜어져 나오더니, 수직으로 뻣뻣이 일어선 모습의 용에게서 옅은 황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구슬이 함께 튀어나왔다. 바로 지룡의 여의주였다.
노염생은 여의주를 뱉어내게 한 다음에도, 별다른 표정 없이 허리띠를 채찍처럼 다시 하늘을 향해 뻗더니 곧장 여의주를 잡아챘다.
“어흥……!”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까지 고작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전광석화라고 할 수 있는 속도였다. 시룡의 울음은 여전히 쩌렁쩌렁했으나, 그가 지닌 힘은 여의주를 뱉어낸 순간 이미 몇 단계는 하락해 있었다. 노염생은 손에 여의주를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다시 용의 머리를 세차게 가격했다.
퍼억-!
그러자 이번에는 시룡이 곧장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콰광……!
지면에서는 용이 뱉어낸 오염된 물과 혼탁한 기운이 폭발했고, 이내 그것은 용이 떨어진 충격으로 인해 일어난 흙먼지와 섞여들었다. 그 사이로 허약한 용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노염생이 지면에 일어난 짙은 흙먼지를 향해 공중에서 손을 내리누르자, 거대한 압력이 전해져오며 순식간에 흙먼지와 혼탁한 기운이 가라앉아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깊이 파인 구덩이 안에 누워있는 지룡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오염된 물과 혼탁한 기운에 휩싸인 용의 비늘이 공중에서 비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투둑, 투두둑……!
되살아난 지룡의 사체 위로 깊게 파인 자국이 나타나 있었는데, 상공에서 바라보면 그것이 거대한 손바닥 모양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손바닥 자국에서는 은은한 빛이 나고 있었다.
노염생이 손에 쥔 여의주를 바라보니, 막 용의 입안에 나타났을 때는 세숫대야만큼 컸었는데, 그가 뱉어내던 순간에는 법력에 의해 오리알 만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이 여의주는 상등급의 호박(*琥珀: 황색의 투명하고 광택이 있는 광물)처럼 투명하고 매끄러웠고, 안쪽에는 황토색으로 빛나는 연기 같은 물질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는 여의주가 아직 완전히 오염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보통 용족이 죽고 여의주가 훼손되지 않았을 경우, 대부분의 원기가 여의주로 모여 더욱 비범한 힘을 갖게 된다. 하지만 시룡이 이미 상당한 힘을 쏟아낸 후였으므로, 노염생이 쥔 여의주에 남은 힘은 지룡의 원래 힘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다.
“머어…… 음머……!”
아래쪽의 시룡은 계속해서 꿈틀대며 어떻게든 속박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져, 노염생이 공중에 대고 한 손으로 가볍게 누르기만 해도 지룡은 조금도 반항할 수가 없었다.
노염생은 여의주와 되살아난 지룡의 사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듯했지만, 사실은 내내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며 여의주를 이용해 혹시 이 지룡을 해친 존재가 근처에 있는지를 점치고 있었다. 그의 두 제자는 원래 상공의 구름 위에 있다가, 노염생의 전음을 듣고서 혹시 모를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반각(7~8분) 뒤, 노염생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노소유와 양종도 얼른 구름을 몰아 그의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여전히 꿈틀대는 지룡의 곁에 거의 동시에 내려섰다.
“사부님, 찾지 못하신 겁니까?”
“그래, 아마 도망간 듯싶다. 사태가 생각한 대로 풀리지 않는 걸 보고 곧장 도망간 모양이지. 하지만 이 지룡의 몸에 남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저것이 꼭 그때 들은 것과 비슷하구나…….”
노염생은 예전에 계연과 응굉에게서 광동호에 살던 검은 교룡이 죽은 일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계연도 교룡의 몸속에서 저것과 비슷한 것을 제거했다고 들었다.
‘여기는 운주에서는 너무 멀리 떨어진 천우주인데…….’
노염생은 심란해 보이는 얼굴로 여의주를 쥔 채 꿈틀대는 지룡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가볍게 입으로 숨을 내뱉자 화염이 분출하더니, 여의주를 한 바퀴 감싼 뒤 더욱 강력해진 기세로 시룡의 눈, 귀, 입, 코, 그리고 비늘이 떨어져 상처가 난 부위로 침투했다.
“음머— 크르르……!”
이내 자신이 내뱉은 오염된 물속에서 구르던 황토색 지룡의 몸이 점차 붉게 변하기 시작했고, 주위의 온도도 순식간에 상승했다. 그러다 마침내 표면이 타는 듯한 붉은색이 되었고, 지룡은 전보다 더욱 거세게 꿈틀대며 끊임없이 포효했다.
그렇게 반각이 지나 노염생이 지룡을 짓누르던 술법을 풀었지만, 지룡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룡의 몸에서는 작은 불씨가 새어 나오고 있었고 온몸은 이미 전부 빨갛게 그을린 후였다.
그러다 불씨가 마침내 용의 시체를 뚫고 나와 주위로 번지더니, 용이 뱉어낸 모든 오염 물질마저 태워버렸다.
노염생은 여의주를 가볍게 가늠해보다가 대충 봉인한 후 품에 넣었다. 그는 이제 용왕 하나를 벗으로 두고 있었으므로, 용족 앞에서 이 일을 해명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塵歸塵, 土歸土).”
탄식 섞인 노염생의 목소리와 함께, 지룡의 몸이 점차 원래의 황토색으로 돌아가더니 천천히 지면 아래로 잠기기 시작했다. 주위의 흙은 마치 고운 모래처럼 저절로 용이 누운 구덩이로 쏟아졌고, 천천히 용의 모습이 사라졌다. 지룡의 사체는 아직 용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여의주의 힘을 담은 화염에 타버렸기 때문에 실제로는 무척 취약한 상태였다. 만약 누군가 또다시 지룡의 사체를 건드린다면 그때는 곧바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일을 마친 세 사람은 다시 구름을 몰아 강시로 변한 지룡이 가려고 했던, 인간이 뿜어내는 화기(火氣)가 왕성한 방향으로 향했다.
세 사람이 나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채 반 시진도 되지 않아 이미 여러 마을과 성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지방은 바로 조금 전까지 갑자기 찾아온 재난을 겪고 있었다. 지룡이 지력을 움직여 촉발한 지진으로 인해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깔려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대낮이었고 노염생이 제때 개입한 덕분에 지진이 더 커지지도 않았고 지속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덕분에 피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서, 백성들이 힘을 합쳐 서로 상처를 치료하거나 건물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게다가 일반 백성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는 토지신 등의 터주신이 나와 일손을 돕고 있었다.
그런데도 노염생의 눈에는 곳곳에서 꿈틀대는 악한 기운과 슬픔이 보였다. 그에 더해 양화(*陽火: 태양과 같이 강렬하고 뜨거운 기운)도 그리 왕성하지 않은 걸 보니, 인심이 흉흉하고 백성들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젊은이가 많지 않네요.”
돌연 양종이 이렇게 한마디 하자, 노염생과 노소유도 즉시 이를 알아차렸다.
“사제,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러지 양종이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사부와 사형을 향해 설명했다.
“양화가 약하다는 건, 어떻게 보면 인심이 불안정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체 강건한 젊은이가 적다는 뜻이죠. 아무래도 조정에서 병사를 징집한 모양입니다. 인심이 흉흉한 데에는 천재지변도 원인이 되지만, 전쟁도 그 원인이니까요.”
황제를 했던 몸이라 그런지, 그는 방관자의 시각에서 남들보다 더욱 중점이 되는 문제를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자 노염생도 안타까운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는 분명 배후의 누군가가 고의로 벌인 일이었지만, 일이 이 지경까지 왔으니 속세의 인도(人道)도 이제 시련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노염생이 주위를 둘러보니 특히나 서남쪽이 정오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이는 그가 잘못 본 게 아니라, 선도(仙道)의 고인으로서 느껴지는 일종의 감응이었다. 바로 천우주의 폭풍전야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노염생의 담담한 두 눈에 암담한 잿빛이 비쳤다. 그것은 마치 저 멀리, 남황주의 어느 작은 사찰 안에 있던 계연의 눈과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