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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811화 (811/892)

811화. ‘탐색’의 목적

하지만 이때 계연의 두 눈이 보고 있는 것은 작은 탁자 위에 놓인 바둑판이었다. 위에 놓인 바둑돌은 수십 개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바둑돌을 내려놓은 위치도 마치 흑과 백이 서로 싸우는 모양새가 아니라,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이 아무렇게나 놓인 모습이었다.

그때, 뜰의 아치문 밖에서 승려 하나가 다급히 뛰어왔다.

“계 선생님, 지난번에 오셨던 시주께서 다시 오셨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네 분과 함께 오셨는데 만나보시겠습니까?”

그러자 계연이 바둑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수고스럽겠지만 스님께서 이리로 모셔와 주세요.”

“예.”

승려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백평과 현기자가 건원종 수사 세 명을 데리고 함께 계연이 머무는 뜰에 들어섰다.

건원종 수사 세 사람은 바둑판에 시선을 고정한 푸른 장삼을 입은 선생을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는 눈빛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저 선생에게서 마치 평범한 인간처럼 아무런 기운도 읽어낼 수 없었음을 깨달았다.

계연의 위명은 선도의 고인들 사이에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수행이 낮은 수사들은 오히려 그를 알지 못했고 자연스레 계연을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을 데려온 두 명의 장수옹도 저 선생이 누군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세 사람은 모두 속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분이 바로 현기자 선배께서 말씀하신 절세의 고인이시구나. 대체 어떤 분이실까?’

그들이 계연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현기자와 연백평이 세 사람을 향해 눈짓하더니, 무척이나 깍듯한 태도로 계연을 향해 예를 올렸다.

“후배 연백평,”

“후배 현기자,”

“선생님을 뵙습니다!”

사형과 사제는 이구동성으로 스스로를 후배라고 칭했고, 건원종 수사들은 아무 말 없이 예를 올렸다.

계연은 마침 바둑돌로 연마한 회색 돌을 바둑판 위에 내려놓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단순한 바둑판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한참 후에 그가 고개를 들자, 그의 회백색 눈에는 천지의 묘연함이 담겨 있었다. 이를 마주한 이들은 마치 광활한 천지를 대면한 것처럼 자신이 너무나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다행히 그런 감각은 순식간에 사라져서, 뻣뻣이 굳은 다섯 명의 수선자도 이내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이리 와서 앉으세요.”

연백평과 현기자는 다시 한번 서로를 바라본 뒤, 건원종 도우들에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함께 계연이 앉은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작은 탁자 곁에는 사각형 걸상 몇 개가 놓여 있었는데, 계연도 그와 비슷한 모양의 걸상에 앉아 있었다. 그러니 현기자를 비롯한 이들도 당연히 의자를 까다롭게 고르지 않고 단정히 허리를 세워 앉았다.

하지만 그들이 앉은 뒤, 계연의 시선은 다시 눈앞의 바둑판으로 향했다. 이에 연백평과 현기자, 건원종 수사 세 사람도 저도 모르게 바둑판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바둑판은 그들이 못 알아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법기(法器)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 위에 펼쳐진 대국이 신묘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바둑돌은 아무런 의미 없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그중에는 괴이한 회색 돌도 있었다. 이 대국은 누가 봐도 괴이했지만 계 선생님은 어쩐 일인지 내내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설마 무슨 선초묘국(*仙招妙局: 신선 같은 묘수가 담긴 신묘한 대국) 같은 걸까?’

연백평이 자신의 사형을 바라보자 현기자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전음을 보내지 않아도 현기자는 자신의 사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형제 두 사람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이 잘 통했다.

다만 건원종 수사들은 그렇게 차분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수선자들이 고요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고 해도, 그들이 맞닥뜨린 사태가 너무 급했기 때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건원종 수사가 먼저 운을 뗐다.

“선배님, 저희 세 사람은 천우주의 어원산에 있는 건원종 수사들입니다. 이번에 천기각에 도움을 청하러 왔다가, 두 분 장수옹의 말씀에 따라 선배님을 뵙고 가르침을 들으러 왔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눈을 들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계모(某)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차 좀 드세요.”

계연이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바둑판이 사라지더니, 그와 동시에 찻잔 6개가 탁자에 놓이며 손에 찻주전자가 나타났다. 그는 손님들을 위해 직접 김이 나는 뜨거운 차를 따라준 뒤, 탁자 중앙에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연백평이 얼른 이렇게 말을 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도우들. 계 선생님과 귀종(*貴宗: 건원종을 정중히 이르는 말)의 한 고인께서는 막역한 사이십니다.”

“아, 어느 고인이신지요?”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존함이 노염생이신 노 선생님입니다. 속세를 떠도는 걸 좋아하는 분이신데, 귀종의 장교와 사형제라더군요. 하지만 서로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 노 선생님께서는 밖을 떠돌고 있습니다.”

“아 노 장로 말씀이시군요. 저희도 일찍이 어느 고인께서 속세를 떠돌고 계시며, 저희 장교 어른과는 사형제 사이였다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혹시 노 장로께 대신 연락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현재 저희 건원종에 닥친 일이 많아, 만약 그 어르신께서 돌아와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텐데요…….”

그러자 계연이 의아한 눈길로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법안에는 세 사람에게 남은 노염생의 기운이 보였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이미 만난 모양인데, 모르셨나 보군요?”

“예?”

건원종 수사들은 서로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그중 한 여수선자가 무언가 떠오른 듯, 소매 속에서 투명하게 빛나는 작은 옥패를 꺼냈다.

계연은 그 옥패를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이 태허옥부는 노 선생님께서 주신 모양이군요.”

“아, 그 선배께서 바로 노 장로셨군요. 저희가 그때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노 장로를 알게 된 건원종 수사들은 계연 같은 신비로운 고인과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계연이 거두절미하고 먼저 이렇게 물었다.

“건원종 일은 이미 연 도우께서 말씀해주셨어요. 하지만 오늘 이렇게 직접 오셨으니, 건원종과 천우주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알려주세요. 아무래도 천기가 혼란스러워 직접 듣는 게 더 정확할 것 같군요. 참, 귀종의 장교께서 천기각 도우들께 전서를 보낸 일은 계모도 알고 있습니다.”

건원종의 여수선자가 차를 한입 마시자 입안에 달콤한 맛이 감돌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러시다면 저희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 천우주에는 사악한 기운이 들끓고 기운이 혼란스러워져 인도(人道)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속세에서는 각종 천재 인화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천우주 곳곳에서는 요사한 존재들이 현신해 각국이 혼란에 빠진 상태입니다.

벌써 온갖 재난으로 인해 죽은 백성이 부지기수이고, 그들이 남긴 원념에 의해 더욱 삿된 존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토록 요마가 들끓다 보니 인도의 기운도 불안정합니다…….”

원래도 천우주의 속세는 그리 태평한 지역이 아니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안정된 형세였는데, 최근 몇 달간 요사한 존재들과 천재지변이 들끓으면서 각종 재난이 일어난 것이다. 각국의 인심이 흉흉해지며 탐욕과 집념이 강해지자, 적지 않은 나라에서는 전쟁이나 내란이 벌어졌다.

건원종에서는 바깥에 나가 있는 제자들에게 신변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당부했으며, 제자들을 속세로 파견해 조사하게 했다. 하지만 아직 이 안에 숨겨진 내막을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건원종 장교는 진선(眞仙)으로서 본래 천도(天道)를 깨닫기 위해 폐관수행을 하다가 무언가 감응을 느끼고 출관했는데, 한마디 당부만 남기고 직접 산을 나가 속세를 조사하고 오기까지 했다. 그는 돌아온 뒤 건원종의 여러 장로들과 반나절을 상의한 끝에 진산종을 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날 진산종이 아홉 번 울리자 건원종의 모든 제자가 깜짝 놀라 무언가 큰일이 벌어졌음을 알았습니다. 이에 건원종 제자와 저희 종문에 속한 다른 이들은 각자 조를 나눠, 장교께서 미리 말씀하신 요혈(*要穴: 풍수지리에서 용맥(龍脈)의 정기가 모인 자리)에 가서 그곳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도(邪道)의 무리와 수차례 전투가 벌어졌고요…….”

건원종 수사의 설명을 들으며 계연은 미간을 여러 번 찡그렸다.

건원종 수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건원종 장교는 이미 이 일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수련하던 중 천인합일(天人合一)하여 어떤 교감을 느낀 듯했다. 다만 천기가 어지러워 건원종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고, 이에 천기각으로 도움을 청한 모양이었다.

“천기각 도우들께서는 이미 저희를 돕겠다고 약조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혹 무슨 견해가 있으신지요?”

계연은 더는 겸손해야 할 상황이 아님을 깨닫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연백평과 현기자를 한번 쳐다보고는 건원종 수사들을 향해 말했다.

“돌아가서 귀종의 장교 진인께 요마들이 정도(正道)를 공격하여 천우주 대세를 이끌려는 것은 그저 표상일 뿐이고, 배후에는 또 다른 목적이 숨겨져 있다고 알려주세요.”

“어떤 목적입니까?”

계연이 이렇게 물은 여수선자를 향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천우주는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 정도가 사도보다 강합니다. 배후의 삿된 무리들은 지금 천우주의 정도를 뒤흔들려는 게 아니라…… 인도의 근간을 해치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아예 천우주 인도 전체를 궤멸시키려 할지도 모릅니다.”

계연은 전부 다 말할 수 없어 인도가 입을 피해까지만 이야기했다. 이를 들은 다섯 사람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중에는 깊은 생각에 잠긴 이도 있었고 의혹에 찬 얼굴을 한 이도 있었다.

계연은 절대 근거 없는 말을 뱉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서 있는 각도가 다른 이들과 다르니 보는 것도 자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에 정체 모를 바둑돌이 나타났을 때, 강제로 엿보게 된 옛 풍경 때문에 계연은 이것이 배후의 인물이 바둑돌을 움직여 일어난 변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목적은 무엇일까? 건원종에 대항하기 위해서?’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건원종처럼 큰 종문은 장교는 무려 진선이었고 그 외에도 고인이 적지 부지기수인 데다 산문(山門)도 난공불락이었다.

‘그렇다면 이 ‘탐색’의 목적은 무엇일까?’

계연은 바둑돌을 쥔 자가 탐색하려는 것이 정도의 세력이 아니라 이 ‘천지(*天地: 하늘과 땅, 세상)’ 자체임을 알고 있었다. 손가락 열 개를 다 다치게 하는 것보다 그중 하나를 자르는 게 더 반응이 빠른 법이었다.

계연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상당한 범위의 세상을 탐색해 보려면, 당연히 가장 세력이 크고 눈에 띄는 이들을 노려야 했다. 그리고 속세의 인간이야말로 바로 수행 각계의 주류가 공인한 대세를 점한 이들이었다. 그러니 속세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거나 인도를 완전히 궤멸하면 천지의 반응을 볼 수 있었다.

계연이 생각하기에는 건원종과 그에 속한 여러 종파, 그리고 천우주의 다른 정도 세력이 바로 천지가 보이는 반응의 일종으로 보였다. 게다가 그 반응은 무척 민첩하고 극렬했다.

건원종 장교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천우주의 인도가 맞닥뜨린 위기를 생생하게 느낀 듯했다. 그러니 그렇게 과감하게 진산종을 아홉 번 울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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