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21화 (821/892)

821화. 백옥을 통해 소식을 전하다

한편, 홍수를 겪었던 성안에서는 몽춘루의 낭자들도 당연히 재난을 피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들은 모두 비교적 얇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몽춘루 내부에는 곳곳에 난로가 있어 봄처럼 따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때 꽃과 옥처럼 아름다운 낭자들은 하나같이 덜덜 떨고 있었다.

이 여인들은 기루에 몸담고 있었으므로, 평소에 손님들이 간이라도 내줄 듯 정성스레 대해주는 것에 익숙했다. 하지만 이런 재난이 닥치자 누구도 그녀들에게 신경 써주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어느 막 되어 먹은 놈들은 이런 상황을 틈타 낭자들에게 손을 대려고 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기루의 주인장이 이 요전수(*搖錢樹: 신화 속에 나오는, 흔들면 돈이 떨어진다는 나무)들을 아낀 탓에, 주인장은 곧장 성 곳곳으로 사람을 보내 그녀들을 대부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에 그녀들은 이때 그나마 온전한 건물 안에 모여 열기를 쬐고 있었다.

그중 몽춘루의 유명한 기생은 자신의 의자매들과 한곳에 모여 앉아, 차가워진 팔을 연신 문질러댔다. 그러다 가슴께로 손을 넣더니 붉은 끈이 매인 동그랗고 윤기 나는 백옥을 끌러, 천천히 문지르며 그 따스함을 느꼈다.

“언니, 참 좋은 옥이네요.”

“응, 이게 바로 평안구(*平安扣: 중국에서 옥으로 만드는 장식품으로, 삿된 것을 쫓고 평안을 불러온다고 함)라는 거야. 조각이 섬세하진 않지만, 대신 옥질이 아주 뛰어나지.”

“언니, 대체 누가 준 거길래 이렇게 고이 간직하고 있는 거예요?”

대개 이런 것들은 손님에게서 받은 것이었는데, 기녀들은 정말 좋아하는 물건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 그런 선물을 상자 안에 고이 보관했다. 옆에 있던 기녀가 놀리듯이 이렇게 묻자, 평안구를 매고 있던 기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백옥을 그녀에게 준 사람은 농부처럼 순박한 인상의 건실한 사내였는데, 어쩐 일인지 쉬이 잊히지 않았다.

“그, 그 사람은 힘이 아주 세고, 또 아주 다정했어…….”

이렇게 말하던 기녀는 돌연 평안구를 쥔 손이 델 정도는 아니지만 뜨거워진 걸 느꼈다. 이에 고개를 내려보니, 백옥에서 희미한 빛이 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곁에 있던 기녀들은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듯했다. 옥패 위에는 ‘놀라지 마시오(勿驚)’라는 두 글자가 떠올라 있었는데, 흠칫 놀란 기녀가 다시 봤을 때는 어느새 글자가 사라져 있었다.

놀란 기녀가 멍하니 넋이 나가 있다가 마침내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을 때, 백옥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붉은 끈만이 목에 남아있었다.

“왜 그래요, 언니?”

“아, 별일 아니야…….”

왠지 모르게 여인은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끼며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 * *

한편, 성 중앙에서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청장년들을 지휘하며 건물을 수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 무언가를 느끼고 시선을 내려보니, 동그란 백옥 하나가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 위로 작은 글자가 떠올랐다.

‘건원종 노염생 친전(*親展: 편지를 받을 사람이 직접 펴 보라고 편지 겉봉에 적는 말).’

“허억!”

노인은 얼른 손바닥의 백옥을 움켜쥐더니, 주위를 둘러보고는 어느 청년에게 말했다.

“크흠, 시간이 늦어 이 늙은이는 이만 쉬어야겠네. 자네들도 얼른 일 끝내고 식사하러 가게나. 충분히 쉬어야 내일 또 일하지. 이 늙은이는 이제 몸이 더 버티지 못할 듯하니 먼저 가서 쉬겠네.”

“예.”

“류(劉)씨 어르신, 그럼 어서 가보세요.”

“제가 부축해 드릴까요?”

“아니, 아닐세! 내 아직 걷지도 못할 정도로 늙진 않았네!”

노인은 지팡이를 짚으며 골목길로 접어들더니, 다른 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자 황색빛을 내뿜으며 사라져버렸다.

이 지방의 토지인 그는 수재(水災)가 일어난 후 성안에 가장 먼저 현신한 신령이었다. 그러니 그는 당연히 건원종 수사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토둔술을 써서 곧장 성의 반이나 되는 거리를 뛰어넘어 무너진 성문 밖으로 향했다.

성문 네 곳의 거대한 문짝은 그 난리 속에서도 다행히 크게 파손되지 않아, 지금은 가져와 성문을 막는 용도로 쓰고 있었다. 물론 전처럼 열었다 닫았다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산에 사는 맹수들이 성안으로 들어올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성문 밖, 성벽 아래에서는 수선자 두 명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때 바닥의 흙이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한 줄기 연기가 솟아나며 지팡이를 짚은 토지신이 땅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두 분 선장을 뵙습니다.”

토지신은 두 수선자를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예를 올렸다. 이 두 사람은 건원종에서 온 상선(上仙)으로, 그 수행의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채 눈을 떠 토지신을 바라보더니, 그중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를 거두세요, 토지공.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노인은 뜸 들이지 않고 곧장 소매에서 둥근 백옥을 꺼내 두 손으로 내밀었다.

“조금 전에 이것이 별안간 제 손안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감히 늑장을 피울 수가 없어 즉시 두 분 선장을 뵈러 온 것입니다. 만약 귀 선문에 정말로 노 선장께서 계신다면 이걸 대신 전해주십시오.”

이에 두 수사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그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토지공에게 가볍게 예를 취한 뒤 평안구를 받아들었다.

“이건…….”

평안구를 받아든 수사가 무언가 말을 하려다 멈추었고, 다른 수사는 그의 손에 든 백옥을 잠시 바라보더니 토지신을 향해 물었다.

“이 옥을 처음 받았을 때 다른 기운을 느끼진 않으셨습니까?”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토지신이 이렇게 대답하며 두 수선자의 표정을 보니, 백옥 위에 나타난 이름을 지닌 수선자가 정말로 존재하는 게 확실했다.

“알겠습니다. 토지공께서는 계속 성안의 복구 상황을 이끌어주세요. 이 옥은 저희가 대신 전해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토지신은 별말 없이 예를 행한 뒤 곧장 사라져버렸다. 두 수사는 토지신이 떠나길 기다렸다가, 한 사람은 계속 자리에 앉아 수행을 이어갔고, 다른 한 사람은 곧장 하늘로 날아올라 바람을 타고 떠나갔다.

* * *

반나절 뒤, 성에서 출발한 건원종 제자는 어느 자그마한 산에 내려앉았다. 산의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이곳은 추운 겨울에도 녹음이 푸른 데다 신령한 기운이 흐르는 천이 흐르고 온갖 꽃이 핀 모습이었다. 산 곳곳에서는 건원종 제자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고, 산 바깥에는 자연히 건원종의 보물을 이용한 금제가 걸려 있었다.

작은 산 한가운데에는 정교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있었는데, 방도 몇 칸 되지 않고 누각도 그리 높지 않았지만, 건원종 고인들이 임시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였다.

수사가 느긋하게 중앙의 뜰로 들어서자, 노염생과 도원자는 물론이거니와 연백평과 천기각의 또 다른 장수옹 한 사람이 탁자 앞에 앉아 동전 몇 닢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사는 뜰 안에 앉은 이들이 움직이지도 않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잠시 망설이다 결국 그들을 향해 정중히 예를 올리며 인사했다.

“제자 고당(古堂), 장교 진인과 노 장로를 뵙습니다.”

그러자 노염생과 도원자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노 장로께서 친히 확인하라는 글자가 적힌 물건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누가 남긴 것인지는 모르나, 그 성의 토지신 손안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합니다. 옅은 향기가 나는 걸 빼고, 다른 특별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 것이라고?”

노염생은 도원자를 흘끗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수사가 건넨 옥패를 받아들었다. 그 위에는 과연 ‘건원종 노염생 친전’이라는 글자가 나타나 있었다.

“사제야, 그간 싸움이 벌어져도 너는 직접 나선 적이 없어서 네 행적은 남들도 알지 못할 텐데, 대체 누가 보내온 것이냐?”

“보면 알겠지요.”

노염생은 옥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다 코에 대고 냄새를 맡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물건은 여인의 손에 있었나 봅니다. 속세 여인들이 사용하는 연지 냄새가 나는군요.”

노염생은 이내 정신을 집중해 백옥에 담긴 기운을 느껴보았다. 그러자 내부의 간단한 금제가 부서지더니, 우패천이 남긴 내용이 천천히 펼쳐져 그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곧이어 노염생이 미간을 찡그린 채 도원자를 바라보았다.

“사형, 이건 믿을 만한 이가 보내온 거요. 담긴 정보가 많진 않지만, 확실히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이군. 보아하니 천계맹 놈들은 정말로 천벌이 두렵지 않은 것 같소.”

“그게 무슨 뜻이냐?”

노염생이 대답 없이 문가에 서 있는 수사를 향해 손짓하자, 평안구를 가져온 수사는 눈치 있게 인사하며 떠났다.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노염생은 뜰 안의 탁자 앞으로 돌아오더니, 동전으로 만든 진(陣)을 향해 손을 뻗어 남쪽에 있던 동전 두 닢을 반대로 뒤집은 뒤 그중 하나를 세웠다.

“허어…….”

“감히 그런…….”

연백평과 또 다른 장수옹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고, 도원자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는 천인교감(*天人交感: 하늘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두 명의 장수옹보다 더욱 그 변화를 강렬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노염생을 향해 정말이냐고 묻지 않았다. 동전에 변화를 주자 내내 모호하던 천기(*天機: 모든 조화를 꾸미는 하늘의 기밀)가 훨씬 또렷해졌을뿐더러, 천인교감을 통해 그들도 마음속으로 이 소식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마의 행동은 원래부터가 일반적인 논리로 추측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천계맹에 구미호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일전의 싸움에서 만나지 못한 게 아쉽군요.”

도원자는 자신의 사제가 지닌 보물이 대단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에 내심 한번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으나, 저 비렁뱅이 놈은 보물을 손에 쥔 채 보여주기만 할 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도원자는 이렇게 말한 뒤, 뜰 밖으로 걸어 나가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건원종 제자들은 들어라. 이 시간부로 평범한 사람 앞에서 행적을 드러내는 걸 꺼리지 말고, 요마를 만날 때마다 즉각 사살하도록 하라. 이 명령을 각파, 종, 도, 동에 알려 더욱 많은 제자를 연해 지역으로 보내 순찰하도록 하고, 속세의 나라들에도 사자를 파견한다. 이상, 명을 따르라.”

그의 목소리가 작은 산 전체에 퍼지는 동시에, 도원자의 손에서 여러 갈래의 광선이 퍼져나갔다.

잠시 후, 장교의 명을 받든 이들로 인해 산 위로 선광(*仙光: 신선의 기운이 어린 빛)이 솟구쳤다. 이들은 흐르는 빛처럼 하늘로 치솟더니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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