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22화 (822/892)

822화. 천벌도 꺼리지 않다

우패천과 육 산군은 당연히 노염생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 어느 천계맹 동료에게서 대단한 거지 노인을 만났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 특징만 가지고도 어느 정도 추측을 해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맡은 임무와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담아 소식을 전한 것이었다. 설령 그자가 노염생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백옥은 어떻게든 건원종 고인의 손에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우패천이 맡은 임무는 동료들과 함께 ‘접인(接引) 진법(*어딘가와 이어지도록 설치된 통로의 역할을 하는 진법)’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간 천계맹에서는 계역 나룻배를 빌려 여러 곳에서 혼란을 조장했고, 계역 사이 영혈(*靈穴: 땅에 있는 영험한 혈자리)이 있는 곳을 찾아냈으며, 남황, 흑황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암암리에 요마가 이끄는 사도(邪道)의 그물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돌연 천우주에 큰 도박을 걸어버린 것이다. 하늘을 대신해 천지의 때와 오염을 씻어내고 질서를 재정립한다는 말은 듣기엔 그럴싸했지만, 실은 양황(*남황과 흑황) 땅의 요마들과 천계맹과 유대를 나눈 여러 지역의 요마들을 천우주로 불러 모은 것이었다.

그들은 천수(天數)나 천벌을 꺼릴 필요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뭐든 할 수 있었다. 그저 무슨 방법을 써서든 대지의 기운을 연약한 인간들의 손에서 뺏어오기만 하면 되었다. 하늘을 대신해 벌이는 일인데, 꺼릴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우패천은 아직 천계맹에 몸담고 있어 조심해야 했으므로, 평안구에 모든 정보를 자세히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상당한 정도의 경고를 담아 보냈으므로, 선도의 고인이라면 그를 토대로 추론해낼 수 있을 것이다.

* * *

그로부터 십여 일이 지난 어느 아침, 천우주 남쪽에 자리한 어느 나라의 황궁 대전에서는 조회가 열리고 있었다.

일국의 군주는 황좌에 앉아 이마를 문지르면서 한창 논쟁을 벌이는 대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동안 전쟁, 재해, 전염병, 심지어 요괴들이 일으키는 각종 요사한 사건 사고로 인해 제왕은 숙면에 들지 못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는 스스로가 혼군(*昏君: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은 아니라고 자부했는데, 대체 올해 왜 이리 많은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폐하, 지금은 내우외환의 시기이므로 마땅히 정벌을 멈추고 곡식을 풀어 민심을 어루만져야 하옵니다. 일단 숨을 고르며 내실을 다진 후 다시 싸워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 신도 육(陸) 대인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병사들을 징집하여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이런 내우외환의 시기에, 강적이 외부에 있으니 저희가 전쟁을 멈추고 싶다고 멈출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게다가 현재 나라 안에서도 비적이 들끓고 요괴가 소동을 부리는데, 무력을 기르지 않으면 어찌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겠습니까?”

“하긴…….”

“일리 있는 말이구려…….”

“헛소리! 내보낸 군대를 철수시키면 국토를 지키는 데에는 충분하고도 남소! 우리가 전쟁에 우세를 점하고 있으니, 먼저 화친을 요청하면 그쪽도 당연히 동의할 것이오!”

대신들이 다시 논쟁을 시작하자 황제는 연신 이마를 문질렀다. 그도 이 상태로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좋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으나 어찌하면 좋을지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적국의 상황은 이쪽보다 더욱 나빠서, 곧 적들을 무너트릴 수도 있을 듯했다.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국고가 넉넉해질 테니, 나라 안의 우환을 완화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물러나면 여태까지 싸운 것이 전부 헛된 게 되는 것이었다.

“다들 싸울 필요 없소이다.”

그때 누군가의 맑은 목소리가 대전의 소음을 뚫고 들려오자, 대신들의 시선이 대전의 입구로 향했다. 그곳을 지키던 시위들은 모두 심장이 철렁해서 무의식적으로 칼자루로 손을 뻗었다.

“당신은 누구길래 감히 대전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는 것이오?”

시위 하나가 이렇게 소리치며 그를 압박하려는 듯이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남자가 시위를 흘끗 쳐다보자, 시위는 그가 내뿜는 위압감에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나는 어원산 건원종의 수선자로, 폐하와 여러 대신께 말을 전하러 왔소이다. 여기서 당장 정벌을 멈추고, 대군을 이용해 비적 떼를 소탕하고 요사한 존재를 척살하여 국내의 혼란을 안정시키도록 하시오…….”

그가 걸음을 떼자 그의 뒤로 잔상이 생기며 그는 순식간에 대전 중앙에 이르렀다.

“그와 동시에 폐하께 청하노니, 제단을 설치해 나라 안의 모든 신령과 귀신, 토지신에게 일러 속세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잠시 무시하고, 건원종의 명을 따라 인간의 도를 돕도록 하십시오.”

대전 안의 모든 이들이 어리둥절하거나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남자가 소매를 한번 떨치자 은은한 금빛을 내는 두루마리가 나와 스르르 펼쳐졌다. 선술로 인한 광채를 내뿜는 그것은 곧장 황제의 손으로 날아갔다.

“제단을 설치한 뒤 그 내용을 천하의 신령에게 알리면 모두 승낙할 것입니다!”

말을 전한 수선자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발아래에 구름을 일으킨 뒤 곧장 대전을 나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대전 안의 모든 이들은 신선이 나타났다며 놀라워했고, 황제는 자신의 손에 날아온 두루마리를 보며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이내 그 위에 서린 신의(神意)가 전해지자 황제는 많은 사건을 단번에 깨닫게 되었다.

수선자가 떠난 뒤, 은은한 광채가 나는 두루마리를 손에 든 황제의 멍한 얼굴에는 약간의 흥분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손에 든 이것은 말 그대로 선인이 내린 칙서였고, 이는 명명백백히 황제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나라 안의 귀신들에게 명령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제왕의 위엄과 선인이 내린 칙서가 있으면 귀신을 호령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어느 대신이 즉시 앞으로 나와 비위를 맞췄다.

“폐하께서는 하늘의 위엄을 지닌 천자이시니 당연한 일이옵니다!”

그러자 몇몇 무관이 이 기회를 타 다시 의견을 냈다.

“선인께서 칙서를 내리다니 이는 그야말로 나라의 흥성함을 증명하는 것이옵니다. 그러니 적국은 절대 우리 조정에 맞설 수 없을 것이옵니다! 폐하, 선인의 말씀에 따라 국내의 혼란을 잠재우려면, 반드시 서둘러 적국을 궤멸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폐하! 어서 징병을 늘려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 일은 반드시 서둘러야 합니다!”

그러자 언관이 그들을 째려보더니 즉시 중앙으로 나와 예를 올리며 간언했다.

“폐하,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전쟁을 멈추는 것이옵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선인께서는 칙서를 내리기 전에 제단을 설치하여 천하의 신령에게 알린 뒤, 군대를 회군시켜 나라 안의 소란을 평정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일이니, 응당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황제는 미소 띤 얼굴로 은은한 빛을 내는 두루마리를 바라볼 뿐, 대전에서 벌어지는 논쟁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대신들을 향해 명령했다.

“짐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 군대는 즉각 공격을 멈추겠지만, 물러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하루빨리 신병을 소집해 훈련을 시킨 뒤, 그들로 하여금 국내의 소란을 평정하게 하라. 동시에 예부에 제단을 설치하라고 명한 뒤, 도성을 비롯한 근방의 법사들을 청해오도록 하라.”

“폐하! 전쟁을 멈추지 않으시는 겁니까?”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언관을 비롯한 대신들을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군사를 물린다 쳐도 적국은? 그들은 우리말을 듣지도 않을 것이고, 만약 우리가 군사를 물린 틈을 타 다시 공격해오면 어찌할 것이냐? 그때는 지금처럼 좋은 형세를 취하지 못할 것인데 어찌 막아내려고? 되었다, 짐은 이미 명령을 내렸다!”

황제의 말에 대신들은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황제의 말에 반박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황제가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황제의 결정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고, 지금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곳 대전에서 황제가 명령을 내리고 있을 때, 수많은 수선자도 서둘러 각국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건원종에서 일부를 맡았고, 다른 종파나 선문에서도 일부를 맡아 단시간 내에 이들은 대부분의 나라에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하려는 일은 말을 전하거나 조정에 선인의 글을 내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여러 신령의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황제가 제단을 설치해 귀신들에게 명령한다고 쳐도, 그들이 모두 현신하리란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당연히 바람에 돛 단 듯이 순조롭진 않았다.

첫째로, 속세는 원래 복잡한 곳이었고 사람의 마음은 더욱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조정의 일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고, 각국의 집권자들도 하나 같이 믿을 만한 이들이 못 되었다. 어떤 이들은 자기들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난 줄 알고 각종 황당한 일을 벌였다. 그들은 전보다 욕망이 더욱 커지거나 불로장생의 영약을 구하고 싶어 했다.

둘째로, 각국의 군주들이 제단을 설치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신령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에, 이는 인간의 도에 얽힌 기운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큰 움직임은 자연히 천계맹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으므로, 요마들은 그때부터 평범한 인간과 선인을 가리지 않고 더욱 활개 치고 다니며 혼란을 일으켰다.

* * *

얼마 전 일어난 급격한 날씨 변화로 인해, 이번 겨울은 예년보다 더욱 길고 추웠다. 그래서 음력 섣달이 지난 후에도, 많은 백성은 돌아다니기보다는 집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편을 택했다.

한편, 이런 엄동설한의 날씨에도 신(神)과 선인(仙人), 그리고 불문(佛門) 세력의 일부는 건원종을 필두로 하여 수개월 만에 셀 수 없이 많은 요마를 척살했다.

그런 와중에 여러 나라에서 평범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군사는 대부분 큰 힘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몇몇 정예 군사들은 놀랄만한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들은 호신 부적과 정도(正道) 세력의 도움 아래, 남다른 기백과 살기로 상당한 수의 요마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까지 했다. 만약 군중에 도행이 높은 수행자가 있으면 더욱 놀랄 만한 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천우주의 상황은 그렇게 빨리 호전되지는 못했다.

맨 처음, 건원종에서 속세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규율을 깨고 엄청난 속도로 요마들을 처리하기 시작했을 때 천계맹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는 그들에게 있어 그저 움직이기가 좀 더 까다로워진 것뿐으로, 이렇게 큰 대륙을 수선자들이 전부 살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천우주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요마들이 나타났는데, 천지의 혼란 속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이들도 있었고, 이곳의 혼란에 한발 끼어들려고 오거나 구경하러 온 자들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소속도 목적도 없이 움직였는데, 요괴 중엔 선량한 이가 없고 마귀는 모두 악하다는 말처럼, 이들은 그저 기회만 잡았다 하면 자신의 기운을 드러내며 욕망을 채우려고 했다.

정도 세력의 노력과 인도 세력이 맞서 싸운 덕분에, 상당 부분의 지역은 요마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천우주 전체로 보면 그야말로 정(正)과 사(邪)가 난전을 벌이는 형국이었다.

한 주(洲)의 땅은 너무나 광활하기에, 아무리 많은 정도의 수선자들이 나서도 전부 감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요마 중에도 수행이 낮지 않은 이들이 많아서, 그들은 천기(天機)를 속이거나 자신의 기운을 감추는 데 능했다.

그러니 가장 좋은 소식이라 할 만한 것은, 거의 반년 동안의 대립 덕분에 나라 간에 있었던 모든 은원 관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요마와 맞서 싸우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