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23화 (823/892)

823화. 인간의 도리는 약하지 않다

한편, 남황주에서는 검의 형체를 지닌 빛 한 줄기가 상공에서부터 급속도로 하강해 계연이 머무는 객사로 향했다.

이때 계연은 뜰 안의 어느 나무에 기대어 앉아 서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검광 한 줄기가 그를 베어버릴 듯한 속도로 낙하하자, 그가 왼손을 들어 그것을 붙잡았다. 계연이 쥔 것은 투명하고 작은 검이었는데, 검을 손에 쥐자 그 안에 담긴 신의(神意)가 계연에게로 전해져왔다.

이 검은 천기각의 현기자가 보낸 것으로, 천우주의 최근 상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연백평은 천기각에 전해 내려오는 술법으로 천기동천에 소식을 보냈고, 그것을 현기자가 다시 계연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투명한 비검(飛劍)에 담긴 신의를 다 읽자 계연은 비검을 다시 하늘 위로 던졌다. 천우주의 상황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계연은 자신의 추측이 옳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인간의 도는 절대로 약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잠입한 우패천은 소식을 단 한 번 전했을 뿐이지만, 그 소식이 때마침 무척 관건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간의 도는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라 큰 타격을 입었을 수도 있었다.

“역시 인도의 힘 그 자체만으로도 요마와 대등하게 겨루는 게 가능하구나. 만약 좀 더 도움이 되는 힘을 지니게 되면 더욱 출중해지겠지……. 다만, 그들이 무언가 알아냈는지 모르겠군.”

계연이 중얼거린 첫마디에는 천우주의 인간 세력이 요마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다른 수선자들의 추측과 달리, 인간들은 요마에게 한번 맞서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는 존재가 아니었다. 비록 개인만 놓고 보면 차이가 컸지만, 군대를 이루고 적절한 도움만 받는다면 상당한 수의 요마들을 능히 상대해낼 수 있었다. 마지막 한마디는 바둑돌을 움직인 배후의 인물이 이번 ‘탐색’에 대한 결과를 얻었는지에 대해서 한 말이었다.

건원종을 필두로 한 천우주의 수행 세력들은 국면을 통제하고 사불압정(*邪不壓正: 삿된 무리는 정도를 걷는 이들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을 유지할 실력이 충분했다. 그간 조용히 관망하던 수행 세력들도 차례로 속세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신령들도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자면, 이번 일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정도 세력의 결집이었다.

이런 곤란한 상황을 마주친 배후의 존재는 과연 물러나려 할까? 아니면, 상대는 이미 지금의 결과를 예견했을까? 만약 그가 여기서 멈춘다면, 천우주의 정도 세력이 능히 지금의 국면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계연은 이에 대해 약간의 모순을 느끼고 있었다. 계연이 가지 위에 내린 눈꽃을 바라보며 갖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찰 안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더니 누군가 서둘러 이곳으로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반년 전에 비하면 여풍은 머리 하나가 더 자랐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3살 아이의 범주 안이었다. 이제야 자라는 속도가 보통 사람과 같아진 것 같았다. 여풍은 서책을 두 권 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이곳으로 오고 있었는데, 왜인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진사에 들어온 후에는 기분이 좋아져 걸음마저 경쾌해졌다.

“선생님, 저 왔어요!”

여풍이 뜰을 향해 달려오자마자, 나무 아래 앉은 계연이 보였다. 계연도 추위를 이겨내고자 여러 겹의 옷을 껴입어 뚱뚱해 보이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뜰 문 앞에 서자, 계연은 여느 때처럼 웃으며 아이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여풍은 그것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활짝 웃으며 계연을 향해 뛰어갔다. 아이는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두꺼운 옷의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손수건에 감싼 간식거리였다.

“선생님, 제가 간식을 좀 가져왔어요!”

여풍이 신이 난 얼굴로 계연에게 다가오자, 계연은 보던 책을 땅에 내려놓고는 손수건을 조심스레 펼쳐보았다. 그 안에는 잔뜩 눌리고 부서진 소병(*酥餠: 바삭바삭하게 구운 과자)이 있었다.

“응, 냄새가 좋구나. 잘 먹으마.”

계연은 여풍의 손에서 손수건을 건네받아, 다시 서책을 무릎 위에 올리고는 부서진 소병을 한 조각씩 집어먹었다.

여풍은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계연이 커다란 소병을 전부 먹어치우는 걸 보았다. 소병을 다 먹은 계연은 손수건째로 입에 가루를 털어 넣고는, 깨끗해진 손수건을 다시 그에게 내밀었다.

“선생님, 제가 여기다 코 풀었을까 봐 걱정 안 되세요?”

그러자 계연이 손수건을 여풍의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아이의 이마를 콩 때렸다.

“가자,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여긴 추우니까.”

“어……. 선생님, 선생님은 왜 항상 나무 아래 앉는 걸 좋아하세요?”

“음, 아마도 집에 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그런 것 같구나. 집에 있을 때는 자주 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었거든…….”

계연이 고개 숙여 여풍을 바라보더니, 추위에 빨개진 뺨을 쓰다듬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니?”

“아니요……. 좋, 좋은 일이에요…….”

여풍은 계연을 한번 바라보더니 다시 푹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어머니가 제 동생을 가지셨어요. 아주 기쁘게 웃으셨어요……. 저는,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어요……. 아버지도 무척 기뻐하시고, 저택의 하인들도…….”

“그럼 너는?”

계연의 물음에 여풍도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아주 기뻐요!”

계연은 살짝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젓다가 여풍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참지 말렴.”

객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계연은 아이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이내 옅은 악한 기운이 적잖이 흩어졌다.

계연은 객사의 방문을 닫고는 여풍을 데리고 작은 탁자 앞으로 향했다. 탁자 아래에는 방석이 아니라 부드러운 깔개가 깔려 있었는데, 깔고 앉을 수도 있었고 보온을 유지하기에도 좋았다. 특히나 계연이 탁자 곁에 오래된 면 이불 두 채를 놓아두었기 때문에, 앉은 채 다리를 덮어 따뜻하게 할 수 있었다.

“앉으렴, 내가 손난로를 가져오마.”

계연은 여풍을 자리에 앉힌 뒤, 눈가의 눈물 자국을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방 한쪽에서 목탄과 손난로를 꺼냈다. 구리로 제작한 손난로는 여씨 집안에서 보내온 것으로,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손난로는커녕 목탄조차 쉽게 구하지 못했다.

숯가루를 균일하게 뿌리고 목탄을 넣은 뒤,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작은 나뭇가지에 불씨가 붙었다. 계연은 그것을 이용해 목탄에 불을 붙인 뒤, 손난로를 여풍에게 가져갔다. 여풍은 마침 간식거리를 감싸는 데 썼던 손수건으로 코를 풀고 있었다.

계연이 손난로를 가져오자 여풍은 얼른 손수건을 접어 넣은 뒤,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선생님, 좀 전에는 손수건에 코 푼 적 없어요.”

“들고 있으렴. 곧 따뜻해질 거야.”

여풍이 손난로를 여풍에게 건네고는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여풍은 손난로를 받은 뒤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주 작은 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제, 제 옆에 앉으시면 안 돼요?”

계연은 아무런 말 없이 일어나 여풍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그의 손등을 가볍게 문지르며 서책을 펼쳤다.

“여기 앉을 테니, 조금 이따 시험 칠 때 몰래 책을 보면 안 된다.”

“네!”

여풍은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는 집보다 이곳 객사에 오는 것을 더 좋아했다. 특히 오늘은 더욱 자신과는 무관한 기쁨이 넘쳐흐르는 집안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다.

“선생님, <의겸자(議謙子)>는 이미 다 외웠어요. 지금 외워볼게요!”

여풍은 계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내용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계연은 처음에는 서책 앞부분을 속도에 맞춰 넘기다가 나중에는 그저 가만히 듣기만 했다.

오늘처럼 이렇게 기분이 울적한 날에도, 여풍은 글을 욀 때 무척 자신이 넘쳐 보였다. 여풍은 계연이 만났던 여러 아이 중에서 가장 자아 확립이 잘 된 아이였다. 그 누구도 아이에게 무얼 해야 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었고, 아이는 그것이 맞든 틀리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나가고 싶어 했다.

이런 성격은 성인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이었지만, 3살 아이가 이런 성격을 지녔다면 상황에 따라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여풍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는 아마도 계연뿐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저 다 외웠어요!”

여풍은 자신이 책 내용을 다 왼 뒤에도 계 선생님이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자 그의 소매를 당기며 말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 숙여 여풍을 바라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구나, 점점 발전하고 있어.”

여풍은 기쁜 듯이 웃더니, 탁자 위에 내려앉은 종이학을 보고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언제쯤 제게 술법을 가르쳐주실 거예요?”

여풍도 바보가 아니었으므로 계연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게다가 부친에게서 계 선생님이 아주 아주 대단한 인물이라는 걸 듣기도 했었다. 여풍은 최근 부친이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실은 자신을 통해 계 선생님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술법을 배우고 싶니?”

계연이 살짝 미간을 찡그린 채 말을 이었다.

“확실히 한두 가지 대단한 술법을 부릴 수 있긴 하지. 하지만 기술은 쉽게 전하지 않는 법이라는 옛말처럼 나도 그리 쉽게 가르쳐줄 수는 없단다. 게다가 너는 아직 어리니, 그런 생각은 좀 이른 듯하구나.”

“네…….”

여풍은 탁자 위에 앉아 털을 고르는 종이학을 보면서 실망한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계연이 곧 덧붙인 한 마디에 아이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너는 본디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났으니, 내가 설령 술법을 가르쳐주지 못하더라도, 그 힘을 어떻게 통제하고 적절히 쓰는지는 알려줄 수 있지. 연습하면 할수록 네게 좋을 거란다.”

계연은 물길을 막느니 흐르게 하는 법이 낫다는 이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오늘 계획했던 일정을 바꿔버렸다.

“오늘은 내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좌선하는 법을 알려주마. 심성을 가다듬고 정서를 함양하는 데 좋단다.”

“심성을 가다듬고 정서를 함양한다고요……. 선생님, 그게 무슨 도움이 되나요?”

“당연히 도움이 되지, 바로 이렇게 말이다.”

계연은 아이를 설득하려면 도리를 설파하는 것보다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손을 뻗어 여풍이 들고 있던 손난로를 가리킨 뒤, 손가락을 구부려 위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수많은 불꽃이 손난로의 구멍 사이로 빠져나오더니, 계연의 손가락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그것은 뱀 같은 모양이 되었다가 다시 나비 같은 형상으로 변하더니, 날갯짓하는 와중에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와, 너무 예뻐요! 저도 배울래요!”

“그래, 마음을 잘 통제하기만 하면 염력(念力)만으로도 이렇게 할 수 있단다.”

계연은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그가 보인 것은 단지 염력으로 영기를 움직이는 장면일 뿐, 영기를 체내로 흡수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흥분에 찬 얼굴이었다.

“저도 해 볼래요!”

여풍은 숨을 몇 번 깊이 들이마시더니, 호흡을 참고서 정신을 집중해 손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계연이 했듯이 손난로에 손가락을 대고서 무언가를 끌어 올리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불씨 몇 개가 밖으로 빠져나왔으나, 계연이 불러낸 것처럼 매끄럽고 자유자재로 움직이진 못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계연을 놀라게 하기는 충분했다.

게다가 주위의 영기가 자발적으로 여풍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만약 칙령이 걸려있지 않았다면 이 순간 여풍의 몸은 환하게 빛났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아이는 어둠 속의 등불처럼 도행이 높은 존재들의 눈에 단번에 띄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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