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26화 (826/892)

826화. 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고자 한다면 반드시 비바람을 거쳐야 한다 (2)

연비는 다른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는 그를 잘 아는 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춘행루에서 아직 멀어지기도 전에, 어느 작은 골목에서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호에 그 명성이 대단한 비검객께서 이토록 풍류를 즐기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자 연비가 미간을 찡그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피부가 희고 멀끔한 젊은이가 서 있었는데, 차림새가 그리 부귀해 보이진 않았지만, 옷을 지은 원단이 꽤 상등급이었고 조금의 때나 먼지도 묻지 않았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젊은이가 입을 열기 전 연비는 상대가 거기 있는 줄도 몰랐다는 데 있었다. 그는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는데, 자신이 무표정으로 주시하고 있어도 안색조차 바뀌지 않는 걸 보니 무공에 자신이 있는 듯했다.

“당신은 누구요?”

“저는 위 씨로, 일부러 대협을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간밤에 찾아왔었다면 좋은 시간을 방해할 뻔했군요. 하하, 농담입니다. 저도 연 대협께서 간밤에 여기서 묵지 않은 걸 알고 있습니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 금방 나오셨잖습니까.”

그러자 연비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오랫동안 우패천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연비는 눈앞의 남자가 하는 말을 어떻게 들어도 곱게 들리지 않았다.

“누가 보낸 것인가? 연모(某)는 무슨 일로 찾는 것이고?”

“아, 누가 저를 보냈는지 맞혀보세요! 그리고 무슨 일인지 말씀드리기 전에, 일단 연 대협과 한번 겨뤄보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위원생의 말과 동시에 소매 속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검이 나타났다. 그 검은 전형적인 단검이 아니라, 장검 한 자루를 그대로 축소 시켜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위에 서린 날카로운 기운은 심상치 않았고, 검은 나타난 동시에 그윽한 빛을 내뿜으며 연비 자신을 향해 찔러왔다.

‘빠르다!’

연비는 깜짝 놀라는 동시에 저자의 내력이 심상치 않음을 간파했다. 상대가 연비를 공격하려는 순간, 연비는 곧장 무공을 펼치며 칼을 뽑았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검을 뽑도록 만들 수 있는 인물은 무림에도 얼마 되지 않았다.

챙-!

두 사람의 검이 교차한 순간, 연비는 손목을 돌려 검을 살아있는 뱀처럼 매끄럽게 움직이더니 위씨 성의 젊은이를 향해 찔렀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전광석화 같았고, 그 어떤 살기나 기운도 읽히지 않았다. 눈앞에 검 끝이 나타난 순간에야 상대를 압도하는 기세와 날카로움이 펼쳐졌을 뿐이었다.

위원생은 연비의 일검에 놀라고 당황하여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이것은 연비의 눈에 ‘곧 죽을 이’의 전형적인 반응으로 보였다. 그의 검 끝이 위원생에게서 불과 손바닥 하나의 거리도 남지 않았을 때, 상대의 모습이 돌연 모호해지더니, 상대는 마치 귀신처럼 1장(약 3m)이 넘는 거리를 물러나며 살상범위를 벗어났다.

“후우……. 후……. 깜짝 놀랐네…….”

연비는 제자리에 서서 검을 쥔 채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상대가 저렇게 피한다고 해도 그의 능력으로는 충분히 쫓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연비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에게서 1장 거리 밖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군?”

위원생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툭툭 치고 있었다. 사실은 그도 자신이 거리를 벌린 뒤에도 연비의 검의(劍意)가 여전히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머리 위에 검 끝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 검이 떨어지고 말고는 전부 상대의 손에 달려 있었다.

‘무공도 이 정도 경지에 오르면 상대를 두렵게 하기 충분하구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위원생은 다시 연비에게 한 발짝 다가서더니, 양손을 맞잡으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소인 위원생, 연 대협을 뵙습니다. 연 대협의 실력은 과연 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대단하시군요. 속세에서는 적수가 더 없으시겠습니다.”

“과찬이오.”

연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겸손히 대답했다. ‘계 선생님’이란 말을 꺼내자마자 그들 사이의 표면적인 분위기는 많이 부드러워진 후였다.

“대협, 이야기를 나눌만한 곳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연비가 위원생의 시선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니, 두 사람이 골목 입구에서 한두 번 맞붙었기 때문에, 온갖 구경꾼들이 몰려든 상태였다. 두 사람은 이제 누가 봐도 더 싸울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몰려든 구경꾼들은 그리 쉽게 흩어질 것 같지 않았다.

“음, 그럼 성 밖으로 나갑시다.”

* * *

좌무극은 체격이 건장하고 우람했으나 얼굴에는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었다. 그가 옷을 갖춰 입고 방에서 나오니, 작은 장원의 뜰에서는 이곳을 관리하는 부부가 빨래를 널고 있었다. 육승풍은 한겨울에도 짧은 윗옷만 입고 권법을 연습했다. 그의 주먹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파공성과 함께 주위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잠시 후 육승풍이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진기(眞氣)를 가라앉히자, 그의 주위로 하얀 수증기가 솟아올라 그를 안개에 휩싸인 신선처럼 보이게 했다.

“휴우, 무살원강은 과연 절세의 무공이로구나. 늦게 접한 게 아쉽군…….”

“넷째 사부, 큰 사부님은요?”

좌무극의 목소리에 육승풍이 아쉬움을 가라앉히고는 미소 띠며 대답했다.

“연형은 낙경성으로 갔다. 듣자 하니 어느 형님의 부탁을 받아, 낙경성에 오면 그분의 홍안지기(*紅顔知己: 막역한 여성 친구)들을 대신 살펴보겠다고 약속했다더구나.”

‘홍안지기들? 한둘이 아닌가?’

좌무극은 머리를 긁적이다 이내 그 문제를 잊어버렸다. 넷째 사부가 커다란 석쇄(*石鎖: 돌로 만든 운동 기구의 일종) 두 개를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자, 일단 참장(*站樁: 중국 무술의 기본자세로, 양발을 벌리고 서서 두 팔을 앞으로 뻗어 서 있는 자세)을 하거라. 내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최소한 반 시진은 해야 아침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예!”

좌무극은 조금도 투정하지 않고 뼈와 근육을 풀고 진기를 운용한 뒤, 육승풍에게서 각기 백 근(斤) 중량의 석쇄 두 개를 받았다. 그는 석쇄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서 대지와 평행을 이루게 팔을 뻗고는, 마보장(*馬步樁: 팔을 앞으로 뻗고 양다리를 넓게 벌린 뒤 엉덩이를 낮춘 자세)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얼마 후 좌무극의 몸에서 하얀 수증기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한편 육승풍은 한쪽에서 술이 담긴 조롱박을 들어 올려 거침없이 입에 쏟아부었다. 마치 이렇게 해야만 갈증을 풀 수 있는 듯이 말이다.

좌무극이 자세를 취한 지 한 시진(약 2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조롱박을 껴안고 나무 아래 누워 잠든 육승풍은 전혀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좌무극은 주방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를 맡으며 잠든 육승풍을 힐끗거렸다.

“사부, 넷째 사부, 반 시진(약 1시간)은 한참 전에 지났는데요…….”

육승풍은 규칙적인 호흡을 내쉴 뿐 눈을 뜨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넷째 사부, 취하신 건 아니죠……?”

육승풍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좌무극은 양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으나 감히 석쇄를 내려놓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육승풍이 돌연 눈을 뜨더니 나무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이내 그는 연비와 어느 낯선 이가 이곳으로 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다 보니, 어디선가 본 듯 낯선 이는 낯이 익었다.

위원생도 육승풍을 발견한 듯 멀찍이서 손을 흔들었다.

이들 모두는 위원생은 몰라도 ‘웃는 얼굴의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강호에서 유명한 위무외는 모두 들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 모두 계연과의 관계로 묶여 있었다. 곧이어 이들은 위원생이 자신들을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자네 말은, 멀리 바다 건너 어느 대륙에 인간과 요마가 서로 목숨을 걸고 혼전을 벌이고 있단 말인가?”

육승풍이 술을 한입 마신 뒤, 눈초리를 가느스름하게 뜨며 물었다. 연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좌무극은 쉴 새 없이 입안으로 고기만두를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러자 위원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인도(*人道: 사람의 도)의 세력이야말로 천지의 대세이고, 무도(武道)는 본디 인도의 힘에 속하는 것이지요. 마침 여러 대협의 무공은 초월적인 경지이나, 벽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모자라서일지도 모릅니다. 소위 흙을 눌러 벽돌을 만들고, 쇠를 두드려 강철을 제련한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만약 이대로 요마가 대지를 혼란스럽게 하면, 속세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또 만약 정도(正道)가 사도(邪道)를 누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연비가 웃으며 탁자 위에 올려놓은 장검에 손을 뻗었다.

“무도를 연마하긴커녕 조금의 발전도 이루지 못한다 해도 연모는 가겠소.”

“나 육승풍도 비록 실력이 낮고 얕으나 견식을 넓히러 가보고 싶소.”

“저, 저, 저도요! 저는 천하제일 고수가 되고 싶어요. 저도 가겠습니다!”

“당신도 말입니까?”

위원생이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뭐라 말하려던 순간, 육승픙과 연비가 동시에 대답했다.

“좋다!”

두 사람이 보기에 그들 두 사람은 이미 한계가 명확했지만, 좌무극은 무도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무도의 꿈나무를 잘 자라게 하려면 온실이 아니라 갖은 비바람을 거치며 자라도록 해야 했다. 설령 광풍과 폭우에 그 가지가 꺾일지라도 말이다.

그러자 좌무극이 더욱 흥분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언제 가면 되나요? 어떻게 가야 하지요? 저희 말고 또 다른 사람도 있나요?”

위원생은 겉은 다 자란 성인처럼 우람하지만, 실은 아직 어린 소년일 뿐인 좌무극을 바라보았다. 그는 연비와 육승풍의 기백을 믿었지만, 저 소년은 아직 평범한 인간이 요마를 상대하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너무 오래 끌 수는 없습니다. 이틀 후 가까운 선항(仙港)에서 천우주로 돌아가는 나룻배가 있는데, 그것은 천우주 태운종(泰雲宗)이라는 선문의 보물입니다. 아시다시피 천우주 전체가 위기라 태운종에서도 그들의 법보를 돌아오게 할 모양이더군요. 아마 한동안은 천우주로 향하는 나룻배가 없을 테니, 그걸 놓치지 않으려면 오늘 출발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원래는 그 옛날 9명의 소협 중 다른 이들도 찾아가려 했었는데, 위원생이 점괘를 쳐보니 시간이 너무 빠듯할 듯했다. 어쨌든 관건은 연비가 가느냐 마느냐였으므로 그다지 큰 상관은 없었다.

위원생이 그렇게 말하자 연비와 육승풍도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강호인들은 모두 호방하여 그리 따지고 드는 이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좌무극은 그 순간 무언가 떠오른 듯 다급히 물었다.

“그럼 둘째 사부와 셋째 사부께 서신 한 통만 쓰고 바로 출발해도 될까요?”

“그러려무나.”

육승풍은 좌무극이 쓰지 않더라도 자신이 서신을 보내려 했었기 때문에 선뜻 동의했다. 왕극은 대정국의 조정을, 두형은 무림을 대표하는 동시에 조월국에 속했던 무림까지 대표하는 이들로 언제나 바쁜 이들이었다. 그러니 서신을 남겨 어디로 가는지 알리는 것만으로 족할 것이다.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던 부부는 새로 끓인 찻물이 담긴 찻주전자를 들고 오다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황급히 물었다.

“연 대협, 곧 떠나십니까?”

그러자 연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부를 향해 말했다.

“만약 점심 식사 준비가 다 되었거든 좀 더 서둘러 주시오. 어쩌면 먹고 바로 떠날 듯싶소.”

“예, 예. 밥은 이미 다 되었으니 식사도 금방 내오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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