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28화 (828/892)

828화. 무도의 조화

수없이 많은 산과 바다를 넘어, 밤이 되자 계연은 객사에 눈을 감고 누워있다가 점차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본인의 꿈속을 거닐고 있다가 비몽사몽 간에 무슨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아주 미약했으나 뒤로 갈수록 또렷해졌다. 하지만 두 눈은 납을 부은 듯 무거워 떠지지 않았고, 몸조차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그 옛날, 황폐한 산중에 세워진 사당에서의 그날 밤 같았다. 다만 그때는 들을 수만 있을 뿐 지금과 달리 아무런 힘도 없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착각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계연은 사실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즉시 눈을 뜰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들리는 이 소리는 분명 착각이 아니었는데, 마치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지금처럼 멀리 떨어진 누군가의 상황이 마치 감응하듯이 눈 앞에 펼쳐진 적이 몇 번 있긴 했다. 이러한 현상은 매번 달라서, 계연의 의지만으로 상황을 전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점괘를 칠 수도 있고 도행도 높아졌기 때문에 계연은 어찌 된 일인지 곧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딱!

좌무극은 고기도 썰 수 있을 만한 단도로 손에 든 찐빵을 내리쳤으나, 그 소리는 마치 돌덩이를 내리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너무 단단히 언 것 같은데요…….”

육승풍은 찐빵을 하나 집어 곧장 입에 넣고는 까드득까드득 얼음 씹듯 깨문 뒤 술을 한입 머금었다. 그러자 연비가 좌무극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내 것은 구워서 주렴.”

“예, 큰사부. 일단 불부터 피울게요!”

이를 본 만 리 밖의 계연은 입가에 한 줄기 미소를 띠었다. 그는 세 사람의 상황이 어떤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감각이 점점 흐려지더니, 물웅덩이에 돌멩이가 던져진 듯 파문이 일며 완전히 사라졌다.

‘또 버려진 사당이네. 어쩌면 세 사람 모두 오늘 밤에 편히 쉴 수 없겠어…….’

계연은 매번 자신이 버려진 사당에 묵을 때마다 무슨 일이 났던 것을 기억했다. 이번에는 멀리서 감응을 느낀 것뿐이지만, 그래도 무언가 일이 일어나리란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연비의 일행이 천우주에 막 도착했는데도, 계연은 이들의 바둑알이 모호한 상태에서부터 실체는 없지만, 바둑알의 형상으로 굳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만 봐도 이번에 움직인 수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일은 저 세 사람과 무도(武道)의 조화(*造化: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신통하게 된 일)에 달려 있었다.

* * *

강호인이라면 부싯돌은 필수적으로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었으므로 좌무극도 당연히 갖고 있었다. 그는 사당 안의 의자와 밖에서 모아온 나뭇가지를 손으로 가르거나 부순 다음, 그중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두세 번 만에 불씨를 붙였다.

마을을 순찰하던 이들은 그들에게 찐빵을 주었으나, 어떤 것은 거의 만두에 가까워서 안에 소가 적잖이 들어있었다. 게다가 단단히 얼어붙은 덕분에 쉬어있지도 않을 것 같았다.

불을 붙인 뒤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굽자, 곧 밀가루 냄새가 퍼지며 단약보다 훨씬 식욕을 돋우었다.

“큰 사부, 여기요.”

“넷째 사부, 하나 더 드세요. 이건 소도 있어요.”

좌무극은 연비와 육승풍에게 잘 구워진 찐빵을 하나씩 건넨 뒤에야 자신의 것을 굽기 시작했다. 이들이 받아온 만두는 세 사람이 나눠 먹기에는 충분치 않았지만, 그래도 배를 좀 채울 수는 있었다. 이에 좌무극은 내일은 어디 가서 멧돼지나 사슴이라도 잡아다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좌무극은 세 사람 중 가장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육승풍은 술만 있으면 되는 사람이었고, 연비는 그 무엇을 먹어도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오직 좌무극만이 허겁지겁 맛있게도 찐빵을 씹어먹었다.

“아, 아직 한참은 더 먹을 수 있는데.”

좌무극은 마지막 남은 찐빵을 먹고도 양에 차지 않아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당에 깔린 건초를 모아 누울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비는 바깥을 살펴보고는 육승풍을 흘끗 살핀 뒤 다시 좌무극에게 말했다.

“무극아, 오늘 밤에는 자지 말아라.”

그러자 좌무극이 즉시 동작을 멈추더니 엄숙한 얼굴로 물었다.

“큰 사부,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거란 말씀이세요?”

선천의 경지에 이른 고수에게는 특별한 직감이 있었다. 게다가 연비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출중한 무인이었다. 사실 그는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뭔가 이상했다. 육승풍도 미간을 찌푸린 채 방어 기능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당의 오래된 문짝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우리 스스로 살길을 찾는 수밖에 없겠군. 허, 무극아, 한입 마시겠느냐?”

“예!”

좌무극은 웃으며 육승풍이 건넨 술병을 받아 한입 삼켰다. 술이 뱃속으로 내려가자마자 뜨끈한 기운이 퍼졌는데, 탁주라고는 해도 맛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사당 안의 세 사람 중, 육승풍과 좌무극만이 이불을 덮고 누웠고 연비는 모닥불 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이들이 그렇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 마을을 순찰하던 이들도 멀찍이서 사당의 틈새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외지인들은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머리로 한참 생각해야 뭐라 하는지 이해가 가더군. 대체 어디서 온 자들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이렇게 말한 관차(官差)는 순찰대의 대장이었고, 그의 말을 들은 옆 사람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혹시 요괴가 변신한 게 아닐까요?”

“요괴로 보이지는 않던데요.”

“그럼 요괴들을 돕는 세작들인가 보지. 듣자 하니 여러 곳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던데요. 그런 놈들은 자기들이 인간이라 의심받지 않는 점을 이용해 마을에 섞여 들어와서는, 내부에서부터 법사들이 설치한 진법을 부수어 성에 사는 백성 중 절반이 죽었더군요!”

그러자 관차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러니 저들을 성안에 들이지 않은 건 옳은 결정이었네. 그리고 설령 우리와 같은 말을 쓰더라도 외지인이면 조심해야 해. 오늘 밤은 순찰만 마치고 돌아가고, 저 사당 쪽은 잘 지켜보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임(林) 형님!”

“조금도 한눈팔지 않겠습니다.”

“알겠네!”

순찰대는 세 갈래로 나뉘어 성 밖을 순찰했으나, 모두 성벽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게다가 그중 한 무리는 내내 사당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성안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밤새 순찰을 도는 이들이 있었고, 그에 더해 법사 두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밤이 깊어짐에 따라 사당 안의 모닥불도 점차 불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육승풍은 술병을 한쪽에 내려놓은 채 코를 골고 있었고, 좌무극도 이불을 덮은 채 규칙적인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연비는 여전히 모닥불 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장검을 무릎 위에 가로로 올려놓고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휘이잉…… 휘이잉……!

덜컹, 덜컹……!

밤바람이 불어오자 사당의 낡은 문짝이 바람에 계속해서 흔들렸다. 그때 연비가 돌연 눈을 번쩍 뜨자 그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한쪽에 누워있던 육승풍은 오히려 몸의 긴장을 푼 것처럼 보였지만 언제든 떨치고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좌무극도 한 손을 자신의 편장 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은 한동안 불어오다 기세가 약해졌다. 연비는 한참 동안 문가를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았고, 좌무극도 조용히 “싱겁긴.”하고 투덜댄 뒤 잠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는 간밤 내내 별다른 동정이 없어, 이대로 별일 없이 날이 밝을 듯했다. 그러나 여명이 밝아오기 직전, 연비가 다시 한번 눈을 떴고 육승풍도 반 박자 늦게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았다. 좌무극은 사부 두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에 눈을 떴다.

“육형.”

“음, 피비린내가 나는군…….”

좌무극은 깜짝 놀라 마음을 가라앉힌 뒤 집중하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뒤, 과연 아주 옅은 피비린내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나이였지만, 대정국과 조월국 사이의 잔혹한 전쟁을 거쳤기 때문에 저 피 냄새가 아주 신선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연비는 두 사람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육승풍과 좌무극은 차례로 그의 뒤를 따랐고, 세 사람은 무살원강의 기운을 끌어올리고 기척은 지운 뒤, 경공을 이용해 소리 없이 사당을 나섰다. 피비린내를 따라 서둘러 가보니, 30장(약 90m) 거리 밖의 수풀 근처에 시체 두 구가 보였다.

“두 명이나…….”

육승풍은 미간을 굳게 찡그린 채 처참한 시신의 상태를 바라보았다. 둘 다 반쪽 얼굴이 거의 날아갔고, 가슴께는 푹 꺼진 채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보아하니 심장을 파먹은 듯하군. 피도 많이 흘렸고.”

좌무극은 원래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육승풍의 말을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조월국과 교전하던 당시 적진에 법사와 요괴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들 강호 무리와는 마주친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대정국 측의 고인이 나서서 상황 대부분을 해결했기 때문에, 눈앞의 상황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저쪽에 한 사람 더 있네.”

연비가 먼저 다른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좌무극과 육승풍도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20여 걸음 떨어진 산비탈의 수풀 근처에는 연비의 말처럼 또 다른 시체 한 구가 있었는데, 처음에 본 시체와 비슷한 참상이었다.

“순찰대에 있던 사람인가?”

“응, 확실하네.”

육승풍이 고개를 들어 어느 방향을 바라보니, 마침 등롱을 든 사람들이 성 밖의 순찰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가세, 가서 물어보지.”

세 사람은 경공 실력이 뛰어났으므로, 몇 번 뛰어오르자마자 곧 순찰대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펄쩍 뛰더니 저마다 손에 든 무기를 들어 올렸다.

“사람이냐 귀신이냐?”

“누구냐?”

이곳 방언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대략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었으므로, 육승풍이 앞으로 나서서 설명했다.

“놀라지 마시오, 우리는 저쪽 사당에 머물던 외지인이오. 아무래도 당신들 순찰대 중에 누군가 죽은 것 같소!”

육승풍은 자신이 발견한 물건을 잔뜩 경계 중인 이들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원래 가슴께에 달려 있던 패물로 이제는 피가 잔뜩 묻어있어, 순찰대 중 그 누구도 손을 뻗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가오지 말고, 땅에 내려놓아라.”

그러자 육승풍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패물을 앞으로 던졌고, 순찰대 중 누군가가 등롱을 높이 들고 그것을 살펴보더니 안색이 일변했다.

“류노삼(劉老三)이 목에 걸던 거야!”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임 형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그들을 이끌던 관차가 퍼뜩 무언가 알아차린 듯 소리쳤다.

“오호라, 네놈들이 한 짓이구나! 모두 물러나라! 화살, 화살을 장전해라!”

“어서 쏴!”

총 십여 명으로 구성된 순찰대 중, 맨 뒤에 서 있던 다섯 사람이 화살을 날리자 평범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던 화살이 빛나기 시작했다.

솨솨솻-!

화살 다섯 대가 세 사람을 향해 날아오자 그들이 즉시 공중으로 뛰어올라 화살을 피했다. 하지만 화살은 조준에 실패하자 방향을 돌리더니, 다시 파공음을 내며 그들을 향해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챙……!

연비가 어쩔 수 없이 검을 뽑자, 그의 손에서 한 줄기 은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더니 검광이 이리저리 번쩍였다.

챙, 챙, 챙, 챙, 챙!

연비가 화살 다섯 대를 전부 물리친 뒤 그 속도가 잠시 느려진 틈을 타, 육승풍이 얼른 따라붙더니 연이어 장법을 날리며 화살을 전부 손에 틀어쥐었다.

화살은 육승풍의 손아귀에 잡힌 후에도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끊임없이 벗어나려 용을 썼다. 게다가 힘도 엄청났다. 이에 육승풍이 코웃음을 치며 온몸의 기혈과 강기(*罡氣: 도교에서 일컫는 굳세고 강한 기운)를 폭발시키자, 그에게서 쾅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끼기긱-!

이내 소리와 함께 다섯 대의 화살이 빛을 내뿜다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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