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화. 무용해진 공격
“다시, 다시 쏴라! 어서 철수하라!”
순찰대는 법전(*法箭: 법력이 담긴 화살)이 ‘요마’들에게 막힌 것을 보고 경황없는 얼굴로 서둘러 후퇴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시 한번 화살을 쏘려 했으나, 연비를 비롯한 세 사람은 이미 경공을 펼쳐 멀리 거리를 벌린 후였다.
“우리는 요괴가 아니오! 당신들이 본 류노삼을 조심하시오, 그는 이미 죽었소!”
육승풍은 한창때 운각군자라 칭해지기도 했으므로, 강호 사회에서의 교류에 능해 언어를 배우는 능력도 뛰어났다. 그는 짧은 몇 번의 교류 만에 이곳의 방언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으므로, 그가 외친 말은 이곳 방언과 3할 정도 비슷했다. 그러므로 순찰대도 당연히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들은 후퇴하면서도 더는 화살을 쏘지 않았다.
“우리는 요마가 아니오, 멀리서 온 무인들일 뿐이오! 인간이든 요마든 악을 도와 상대를 죽이는 이가 있으니, 류노삼을 조심하시오! 만나면 그 화살을 써서 상대하시오!”
육승풍은 후퇴하는 순찰대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넷째 사부, 저들은 이미 멀리 갔어요.”
순찰대는 모두 일반 백성이 아니라 무공을 닦은 이들이었으므로, 온 힘을 다해 도망칠 때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게다가 그들은 몸에 무언가 지닌 듯, 도망치는 속도가 일반 무인이라 보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빨랐다. 좌무극의 시선에는 등롱이 내뿜는 조그마한 빛만 보일 정도였다.
“요괴를 믿고 사람 말은 믿지 않는군!”
연비가 비웃으며 이렇게 중얼거리다, 뇌리에 그 옛날 자신을 포함한 아홉 명의 소협이 산신당에서 계연을 만났을 때의 일을 떠올리며 자조했다.
“큰 사부, 넷째 사부, 이제 어쩌지요?”
그 말에 연비가 좌무극을 향해 물었다.
“우리가 여기 뭘 하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연비는 한마디를 남기고는 육승풍과 함께 경공을 펼쳐 전방으로 도약했다. 그러자 좌무극도 자신의 편장을 들고 얼른 그들을 뒤쫓았다.
세 사람은 다른 무인들보다 훨씬 강력한 기혈을 내뿜었고, 연비는 더욱이 스스로가 지닌 원기와 천지의 원기가 은밀히 연결되는 걸 느꼈다. 뒤이어 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도 특별한 감응을 느낄 수 있었는데, 어떤 희미한 악취를 내뿜는 기운이 주위를 짓누르는 듯했다.
“아우우-!”
그 순간 저 멀리서 우렁찬 늑대의 포효와 함께, 성에서부터 비명이 들려왔다.
쿠구궁……!
그때 굉음과 함께 미세한 진동이 일어났고, 연비는 어두운 하늘에 밝게 보이던 마을이 일시에 어두워진 것을 느꼈다.
“마을이 왜 어두워졌지?”
“예? 뭐가 어두워졌다고요?”
좌무극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묻자 연비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서둘러 마을로 향한 뒤 경공을 이용해 성벽 위로 올라섰다. 성벽이라곤 하지만 실은 흙으로 쌓은 담장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해, 위에 사람이 서 있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무림 고수에게 있어 그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백성들이 아직 깨지 않았는지 성안은 여전히 고요한 편이었다. 조금 전 비명이 들려온 곳은 안쪽 깊은 곳이었는데, 세 사람은 곧 성안의 병사들이 바삐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곧이어 혼란스러운 소리가 섞여 들리더니, 날카로운 비명과 울음소리, 괴이한 포효가 함께 들렸다.
“가자!”
연비는 이렇게 명령한 뒤 한 마리 제비처럼 가볍게 움직였고, 육승풍과 좌무극도 당연히 그의 뒤를 따랐다.
“무극아, 우리를 바짝 따라와야 한다. 요마는 무인과 달라, 상대할 때는 여유 부리지 말고 손속에 자비를 두지도 말아야 한다. 보통 사람에게는 치명상일 수 있는 공격이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으니까 좀 더 확실히, 힘을 주어 공격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어 마디 나누는 사이에 세 사람은 이미 요마가 있는 곳에 가까워졌다. 요광을 내뿜는 요괴에게서 뾰족한 손톱이 자라나고 있었고, 백성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한편 병사들의 전혀 체계적이지 못한 공격은 어둠 속에 숨은 요마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쉬쉬쉭-!
법력이 담긴 화살들이 빛을 내며 요괴가 숨은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크릉……!
어둠 속에서 돌연 맹수의 발이 튀어나와 화살을 쏜 이들을 향해 휘두르자, 활은 물론이고 궁수까지 그 발톱에 찢겨나갔다. 성안의 토지신은 빛을 내는 나무 지팡이를 휘두르며 또 다른 요괴를 공격하다가, 이 장면을 보고는 노기를 참지 못해 눈앞의 요물을 지팡이로 날려 버렸다.
“빌어먹을 요물 놈들……!”
“크르르!”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요괴 서너 마리가 토지신에게 달라붙었다. 뒤이어 다른 요괴들이 성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으나, 성안의 법사 두 명은 어찌 된 일인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무기를 든 수백의 병사들은 토지신과 함께 전력을 다해 요괴와 싸우기 시작했다.
“도망쳐, 요괴다! 어서 도망쳐! 도망치지 않으면 모두 죽겠어!”
“뛰어……!”
병사들 가운데 평정을 잃어버린 이들이 먼저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하자, 그것이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도망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네 이놈! 어딜 가느냐! 돌아와! 토지공께서 계시는데…….”
푸욱……!
병사들을 이끌던 장수가 노기 띤 목소리로 호통쳤으나,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는 가슴이 뚫려 죽었다. 그러자 장수의 곁에 있던 이들조차 전열이 무너져 내렸고, 요괴들은 이내 도망치는 이들을 뒤쫓으며 죽이기 시작했다.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린 곳에서는 계속해서 날카로운 빛이 뿜어 나오거나 무언가 찢겨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우리가 친히 네놈 요괴들에게 교훈을 주겠다!”
육승풍이 큰소리로 웃으며, 연비와 좌무극과 함께 한쪽에 있던 지붕에서 뛰어내려 싸움터에 섞여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을 향해 검은 그림자가 덮쳐오자, 사방으로 도망치는 인파와 달리 연비는 곧장 검을 뽑아 공격했고, 육승풍은 바람처럼 주먹과 손바닥을 날렸으며, 좌무극은 편장을 춤추듯 유려하게 움직이며 협력해 검은 형체의 요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펑, 펑, 펑!
파앗! 퍽!
세 사람의 밀집된 공격 아래에서 요기(妖氣)가 크게 흔들리며 요동쳤다.
“크릉……!
어둠 속에서 요괴의 성난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마치 광풍이 세 사람을 향해 불어닥치는 듯했다. 이에 연비는 뒤로 세 걸음 후퇴하다 멈춰 섰고, 육승풍은 네 걸음, 좌무극은 여섯 걸음을 물러난 뒤 편장으로 땅을 지지하고 섰다. 이내 세 사람이 눈을 들어 전방을 바라보았다.
“허억!”
“음?”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말도 안 되게 거대한 괴물이었다. 그 괴물은 갑옷을 입고 사람처럼 두 발로 선 표범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권법과 장법, 편장, 심지어는 연비의 검까지, 세 사람이 각자 가장 뛰어난 무공으로 상대했는데도 요괴에게는 깊은 상처를 입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치명상은커녕, 그나마 피를 흘리던 상처에서는 눈으로 보일 정도의 속도로 피가 멈추고 있었다.
좌무극은 경악하여 저도 모르게 육승풍과 연비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모두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자 좌무극도 편장을 손에 꽉 쥐었지만,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등허리에 열이 올라 뜨거워졌다.
“개광(*開光: 불교 용어로, 의식에 쓰이는 도구에 영력을 불어넣는 것)하지 않은 무기로구나? 잘됐군, 하하하하…….”
요괴의 거친 목소리에서는 이들을 짓누르는 압박감과 동시에 강렬한 악기(惡氣)가 느껴졌다.
비록 처음에 날린 공격에 탐색의 의미가 섞여 있었다곤 해도, 눈앞의 상황은 연비 일행의 예상을 훨씬 벗어난 것이었다. 연비는 요괴를 죽여본 적이 꽤 많았고 요물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기 때문에, 장검이 닿는 촉감과 요괴의 목소리만 듣고도 이미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육형, 무극아, 이건 보통 요물이 아니다. 이미 횡골을 만들어내고 남다른 근골을 지닌 요괴야.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연비는 요괴들 사이에서도 서로 큰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 표범은 척 봐도 그중에서 출중한 강자임이 분명했다. 이 요괴는 세 사람에게 있어서도 확실히 엄청나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알겠네!”
“알겠어요, 큰 사부!”
세 사람은 조금도 물러서려는 뜻이 없었고, 좌무극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이를 본 표범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군, 보아하니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좋다, 이왕 그렇다면 네놈들부터 먼저 먹고 그 뒤에 어린아이들을 잡아 먹어주마.”
표범 요괴는 마지막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거대한 몸으로 광풍을 일으키며 연비를 먼저 공격했다. 조금 전에 세 사람이 날린 공격 중에, 가장 위협적이었던 것이 바로 연비였고 또한 그만이 검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괴는 비록 한껏 경멸하는 태도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조금 전에 검에 베인 상처가 유독 뼈를 찌르는 듯 아팠다. 이 세 사람은 절대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었고, 움직임이 민첩한 데다 공격도 유달리 날카로웠다.
‘일단 저 검객부터 죽여야겠어!’
“크르릉-!”
표범 요괴는 맹렬히 포효한 뒤 짐승 특유의 악취가 나는 광풍을 몰고 돌진했고, 연비는 가볍게 걸음을 디뎌 재빨리 후퇴했다. 연비는 요괴가 몸을 움직이는 그 순간, 목표가 자신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육승풍과 좌무극은 각각 좌우에서 요괴를 공격해왔다. 좌무극은 편장을 들어 표범 요괴의 발이 떨어질 지점에 휘둘렀고, 육승풍은 바람처럼 옆으로 접근하며 오른손 손날로 요괴의 등을 가격했다.
“죽여버리겠다! 크르릉……!”
요괴는 움직이는 방향을 바꾸지 않고, 잔상을 만들어내는 꼬리를 둘 중 더 큰 위협인 육승풍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육승풍의 동공이 확 수축하더니, 그는 주먹 쥔 양손을 독수리의 발톱처럼 펼쳤다
.
퍼억……!
육승풍은 채찍처럼 휘둘러 오는 표범의 꼬리를 확 붙잡더니, 꼬리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세 걸음 정도 따라 움직인 뒤, 즉시 무릎을 굽히고는 꼬리를 팽팽히 당겼다. 그러다 요괴의 괴력에 의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지만, 이는 앞으로 돌진하려던 요괴의 기세를 잠시 멈추기에 충분했다.
‘기회다!’
표범 요괴가 육승풍에 의해 멈칫하며 살짝 평형을 잃은 그 순간, 좌무극의 편장이 반달처럼 휘어지며 잔상을 남기더니, 다시 일직선을 그리며 사람처럼 두 발을 딛고 선 요괴의 오른쪽 발가락을 조준했다.
그 순간!
온 힘을 쏟아부은 좌무극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더니, 무살(武煞)의 기운이 순식간에 강기(*罡氣: 도교에서 일컫는 굳세고 강한 기운)로 변했다.
콰직-!
자신의 강점을 살려 적의 약점을 공격하라는 말처럼, 좌무극은 순식간에 표범 요괴의 오른쪽 뒷발의 발가락을 부숴버렸다. 갈고리 같은 발톱이 달린 발가락이 피를 내뿜으며 덜렁 떨어져나왔다.
“크헝-!”
열 손가락이 전부 마음과 이어져 있다(十指連心: 손가락은 감각이 예민해서 열 손가락 중 어느 한 손가락이라도 아프면 마음속까지 그 통증을 느낀다는 뜻)는 말은, 사람은 물론 요물에게도 통용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좌무극의 무살원강은 아직 성숙해지지는 않았지만, 대신 좌무극이 내뿜는 강기와 살기는 압도적이었다. 이에 표범 요괴는 눈앞이 하얘지는 고통을 느끼고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바람에 뒤로 물러났던 연비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고통에 잠식된 요괴의 주의력이 잠시 좌무극에게 향한 사이, 연비는 무릎을 굽혔다가 순식간에 앞으로 돌진했다. 온몸에 흐르던 진기(眞氣)가 그의 기백과 결합했고, 무살원강의 기운이 강렬한 살기를 띤 채 검 끝에 모여들었다.
요괴가 붉게 달아오른 두 눈으로 좌무극을 바라보다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고개를 휙 돌려보니, 연비의 모습이 잔상을 그리며 순식간에 자신에게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허억!”
그 순간, 연비의 검 끝이 파고들었다.
푸욱……!
검 끝은 표범 요괴의 턱 밑으로 찔러 들어가더니, 뜨거운 칼날이 두부를 가르듯 곧바로 두개골로 뚫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