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화. 무도(武道) (2)
바로 그때, 성 내 어느 곳에서부터 불빛이 자욱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짜 불길이 아니라 무인들이 내뿜는 기혈과 살기가 모여 만들어진 불빛으로, 작열하는 불길처럼 계속해서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오늘 네놈들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내 특수한 활과 화살을 지닌 관병들이 좌우로 진열을 펼치며 다가오더니, 얼마 남지 않은 화살을 활시위에 메긴 뒤 언제든 쏠 수 있게 대기했다. 뒤이어 무인들이 연비 일행을 따라 곳곳에서 지붕을 뛰어넘어 돌진했다. 그들이 내뿜는 기세는 요괴들이 처음 성에 들어왔을 때 보인 황망했던 태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죽여라!”
“요마 놈들을 죽이자!”
“토지공, 저희가 도우러 왔습니다!”
무인들이 저마다 포효하며 앞으로 돌진했고 가장 앞에 선 것은 당연히 연비, 육승풍, 좌무극 세 사람이었다. 이들은 부적이나 그 어떤 호신용 물품도 지니지 않은 채, 오로지 일신의 무공에만 의지해 공격했다.
“백학(白鶴)에 올라탄 듯 호기가 하늘을 찌르고, 취한 채 검무를 추니 백홍(*白虹: 흰 무지개. 태양 둘레에 생기는 백색의 호(弧)를 말함)이 떠오르는구나!”
검을 쥔 채 가장 먼저 아래로 낙하한 연비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시 한 수를 읊조리니, 그 모습이 마치 검선(劍仙)과 같았다. 육승풍과 다른 무인들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무인 특유의 자유분방한 기세로 저마다 담벼락이나 지붕 위에서 아래로 착지했다. 그 여유만만함은 마치 요마가 아니라, 강호의 도적들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요물들은 정예병들이 모인 군대 외에는 두려워할 게 없었는데, 이때 강호객들과 관병들이 발산하는 핏빛 살기에는 저도 모르게 압도될 정도였다. 이에 겁을 집어먹은 요물들이 하나둘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은, 우리 인간의 것이다!”
좌무극이 이렇게 노호하더니 살기와 강기(*罡氣: 굳세고 강한 기운)를 내뿜으며, 손에 든 편장을 가장 가까운 요괴를 향해 휘둘렀다. 편장이 초승달 같은 각도를 그리며 날아가자, 파공음과 거의 동시에 콰앙! 하는 소리가 났다.
두개골 측면을 얻어맞은 요괴는 무살원강의 위력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동시에 구리로 된 거대한 종 안에 갇힌 채 한 대 맞은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거대한 요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릿한 느낌을 느끼며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 순간, 좌무극이 내뿜은 살기와 강기가 순식간에 요괴의 온몸을 관통한 듯 타고 흘렀다. 잔뜩 휘어진 편장이 다시 직선을 그리며 돌아오자, 좌무극은 막대를 창처럼 사용하여 요괴의 목뒤와 머리가 이어지는 부분을 세게 찔렀다.
“하앗!”
퍼억……!
일격을 날린 좌무극이 요괴의 어깨를 휙 뛰어넘자, 뒤에 있던 무인들이 몰려와 요괴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요괴는 비틀거리며 양팔을 정신없이 휘두르다가 땅으로 쓰러졌는데, 요괴의 양쪽 귀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좌무극이 이 정도였으니, ‘돌격대’인 연비와 육승풍은 다른 무인들과의 협력을 통해 가볍게 요괴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이에 활을 든 궁수들은 화살을 쏘고 난 뒤에, 요물의 시체에서 다시 화살을 수거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죽여라!”
“요괴 놈들을 모두 베어버리자!”
이곳의 토지신은 토지신이 된 대부분의 정괴와 달리 체격이 훨씬 거대했다. 그는 이때 등나무 지팡이를 든 채 홀로 4, 5명의 요괴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후방에서 몰려온 무인들, 특히나 맨 앞의 세 사람을 보고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자네들은 성에 침입한 요마들을 소탕하러 가도록 하게! 부디 그놈들이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주게. 이쪽은 나와 저승의 귀신들만으로 충분하네!”
토지신이 백성들을 걱정하며 이렇게 소리쳤다. 이 요마들 앞에서 일반 백성들은 전혀 대항할 힘이 없었다.
하지만 토지신의 염려가 무색하게도 어느 관병이 큰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하, 토지공, 걱정하지 마십시오. 외곽의 요물들은 전부 저희가 처리했습니다. 이곳에 남은 놈들이 마지막입니다!”
챙……!
그때 토지신 근처에서 연비의 검명(劍鳴)이 들렸다. 아름다운 수염을 기른 이 검객은 마치 검선과 같았는데, 그가 휘두르는 장검은 푸른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때 그가 어느 산매(*山魅: 요사스러운 산 귀신)의 입에 검을 꽂자, 검 위에 서린 강기와 살기가 폭발하며 산매가 내뿜는 귀기(鬼氣)를 산산이 깨뜨려버렸다.
‘대단한 경지의 무인이구나!’
토지신은 이 검객의 일검이 외부의 힘은 일절 없이, 완전히 스스로의 무예에 기반한 것임을 알아보았다. 선천의 경지에 이른 무인은 본디 요마와 대등하게 맞붙는 게 가능하다고는 해도, 이자는 토지신이 만난 무인 가운데 가장 강한 자였다.
토지신은 그와 함께 있는 또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출중한 무인임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는 그들을 뒤따르는 무인들의 상태가 일반적인 경지를 초월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이들의 실력을 본 토지신은 아예 뒤로 물러나 법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땅을 푹 꺼지게 하거나 흙으로 된 높은 벽을 세우는 등의 술법으로 무인들을 도왔다. 이에 남아있던 요마들은 무인과 저승 귀신들의 합동 공격에 하나둘 스러졌고, 가까스로 도망친 이는 몇 되지 않았다.
마침내 호랑이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마지막 요괴가 쓰러지자, 관병들과 강호의 무인들이 폭발할 듯한 기세로 함성을 내질렀다. 이 환호성은 전에 그들이 요마를 상대로 방어했을 때보다 훨씬 강렬했다. 이번에는 그들이 주력이 되어 싸웠기 때문이었다.
“후우……. 쓰읍……. 후…….”
좌무극의 머리 위로는 하얀 연기가 솟고 있었는데, 이는 진기(眞氣)를 과도히 운용하여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가 가만히 호흡을 고른 뒤 두 사부를 살펴보자, 연비와 육승풍이 모두 웃으며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눈에는 드물게도 흡족함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네 사람이 함께 제자 하나를 가르치고 있었지만, 좌무극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쳐낼 수 있다면 무도(武道)의 정신을 전승하기 충분하다고 여겼다.
“세 분 대협!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들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소인 마원풍(馬遠風), 세 분의 무예에 존경을 표합니다!”
“소인 이홍(李紅)…….”
“소인 류신(劉訊)…….”
“천만의 말씀이오!”
“어서 예를 거두세요.”
근처에 있던 무인들이 하나둘 몰려와 연비, 육승풍, 좌무극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토지신을 비롯한 귀신들도 세 사람에게 무척 호기심을 느낄 정도였다.
“젊은이, 무예가 대단하더군! 보아하니 여기 사람이 아닌 듯한데?”
토지신이 다가와 세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가까이 다가온 토지신은 이제 세 사람의 몸에 그 어떤 특수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육승풍은 맨손이었고, 좌무극은 편장 하나만 쓰고 있었다. 연비가 쓰는 장검은 그나마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살기와 영기가 약간 서린 것에 불과한 보통 무기였다.
“토지공을 뵙습니다!”
세 사람은 공손히 예를 올린 뒤, 육승풍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는 멀리서부터 요마들을 상대로 무도를 수련하기 위해 왔습니다. 비록 이 성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요마들을 상대한 것은 제 평생 손꼽힐 정도로 기쁘기 그지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저희에게도 참으로 다행인 일입니다!”
“과찬이십니다, 대협!”
강호객들과 관병들이 몰려와 감격에 찬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와중, 연비는 웃으며 좌무극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네 넷째 사부가 왕년에 사람들을 접대하던 솜씨가 여기서 드러나는구나.”
토지신은 세 사람의 내력을 물은 뒤 점괘를 통해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한 후에 웃으며 흥분에 찬 인파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열정적인 대화에 끼지는 않았지만, 생각에 잠긴 얼굴로 멀리서 온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저자가 말한 소위 ‘무도’의 ‘도(道)’ 자는 속세의 용어일 뿐, 수행자들의 눈에는 사실 ‘도’의 언저리에도 닿지 못했다. ‘도’라는 글자에는 깊고도 무거운 뜻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때 토지신은 왜인지 영각(靈覺)을 통해 그 글자에서 강렬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저 무인들은 비범한 존재가 분명하다!’
오늘 밤 요마들을 상대로 한바탕 격전을 치른 무인들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흥분을 느꼈으나, 그 후에는 곧바로 현실을 직면해야 했다. 비탄에 잠긴 성안을 돌아본 그들은 요마들을 물리친 후의 흥분이 절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전투의 결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 밤의 사투가 평범한 인간들에게 있어 얼마나 중대한 의의를 지니느냐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오늘 성안에는 수많은 요마가 몰려들었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정확한 피해자의 숫자를 집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마들이 남김없이 처리되었다는 선포가 떨어진 뒤, 성내는 서서히 울음소리로 뒤덮였다.
연비, 육승풍 그리고 좌무극 세 사람은 휴식을 취하지 않고, 성안의 무인과 관병, 일부 담이 큰 백성들과 함께 요마들의 시체를 처리했다.
거대한 흑곰 요괴의 시체 옆에는 소달구지가 세워져 있었고, 좌무극과 육승풍은 마주 보고 선 채 양손으로 각기 대나무 멜대를 한쪽씩 들어 올렸다. 멜대에는 밧줄로 요괴의 시체가 묶여 있었다.
“하나, 둘, 들어!”
“허업!”
굵은 삼노끈으로 묶인 요괴의 시체가 아래로 축 늘어지며, 대나무 멜대 두 개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둥글게 휘었다. 육승풍과 좌무극은 최소 천 근(斤)은 나갈 것 같은 흑곰 요괴의 시체를 가볍게 들어서 올린 뒤 달구지 위로 옮겼다.
쿵……!
달구지가 크게 한번 요동치자, 마부가 멍하니 흑곰의 사체를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요괴의 입에 달린 날카로운 이빨 중 가장 긴 것은 그의 팔과 거의 비슷한 길이였다.
“어이쿠, 정말 무시무시하군…….”
침을 꿀꺽 삼킨 마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소를 채찍질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요괴의 시체들은 전부 묘사방 거리로 운반되었는데, 먼저 토지신과 저승 기관장들의 검사와 구사(*驅邪: 악한 기운을 쫓는 의식)를 거치고, 약방의 의원들이 약재로 쓰일 만한 것을 취한 뒤, 마지막으로 가죽 등 기타 쓸모 있는 것들을 떼어냈다. 만약 토지신이 어느 시체가 불길하다고 판단하면, 그 시체는 즉각 성 밖으로 옮겨져 불에 태워졌다.
이런 식으로 요물의 시체를 운반하는 작업은 성안 2, 30곳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땅바닥의 핏자국은 백성들이 석회 가루를 뿌려 깨끗하게 지웠다. 동시에 성 곳곳에서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 * *
한창 바쁘게 일하던 연비, 육승풍, 좌무극 세 사람은 이제야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성안에서 가장 좋은 객잔에서 특별히 그들을 위해 상방(上房) 세 칸을 제공했기 때문에, 그들은 더는 성 밖의 오래된 사당에 묵을 필요가 없었다.
“휴, 이번 일로 성안에서 죽고 다친 백성이 셀 수가 없더군.”
연비는 이렇게 탄식하는 동안, 육승풍은 어느 무인이 주었는지 모를 술병을 들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좌무극은 미간을 찌푸린 채 주택가의 담장이 무너져 내린 것을 쳐다보았다. 무너진 담장을 통해서 어느 집안에서 죽은 이를 둘러싸고 가족들이 바닥에 꿇어앉거나 쓰러진 채 울고 있는 게 보였다.
시신 곁에 앉아 울고 있는 가족들 외에도, 한 여인이 길가에 나와 애간장이 끊어질 듯이 울며 소리쳤다.
“여보, 여보, 여기로 돌아오세요, 여기예요……. 흐으윽……. 길, 길 잃지 마시고요…….”
“아버지…….”
“어머니, 인제 그만 우세요. 하룻밤 내내 우셨잖아요…….”
“이씨 아주머니, 잠시만이라도 쉬세요…….”
그들은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가주가 요괴에게 목숨을 잃어 그 시체마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길가에 서서 혼백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