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2화. 문무겸비의 상(像)
좌무극은 두 사부를 따라 길을 거닐다가 그 장면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편장을 꼭 쥐었다. 한편, 세 사람을 발견한 죽은 이의 가족들에게서는 울음소리가 확 줄어들었다. 유가족들은 유심히 그들을 살폈다.
이 무인들은 걸음걸이에 힘이 있고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척 봐도 조금 전에 성안을 돌아다니며 요물들을 죽인 이들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복잡한 눈빛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는 유가족들은 더는 큰 소리로 울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인사를 할 뜻도 없어 보였다. 그저 그렇게 유가족들은 세 사람이 멀어지는 걸 바라보기만 했다.
좌무극은 그 분위기에 짓눌려 한참 멀어지고 난 다음에야 결국 참지 못하고 연비와 육승풍을 향해 물었다.
“큰 사부, 넷째 사부, 저 사람들은 왜 우리를 저렇게 쳐다보는 건가요?”
좌무극은 만나는 이마다 자신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걸 바라진 않았지만, 조금 전 그들이 보낸 눈빛에 마음이 괴로웠다.
“저 사람들은 왜 처음부터 요마들이 성에 침입하는 걸 막지 못했는지 우리를 원망하는 것 같구나.”
연비가 이렇게 말하자, 육승풍이 한쪽에서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무극아, 감사를 표하러 온 이들은 이미 매우 많으니, 가족을 잃은 이들까지 와서 우리에게 감사해할 거라고 기대할 순 없다. 사람의 목숨은 이토록 쉽게 꺾이는 것이다.”
그러자 좌무극이 다시 눈썹을 찡그린 채 고개를 돌려 조금 전 지나온 골목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부터 아련한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관절이 하얘질 때까지 주먹을 꽉 쥐었다.
“무극아!”
연비가 돌연 무거운 목소리로 그를 부르자, 좌무극이 즉각 대답했다.
“예!”
“앞으로 열심히 무공을 닦아, 무도(武道)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육승풍이 술병을 좌무극에게 건넸고, 좌무극이 마시는 걸 지켜보다 웃으며 말했다.
“가자, 객잔에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수련을 하자꾸나.”
성안의 어느 높은 건물 위에는 야간 순시관 한 명이 올라서서, 연비 일행이 객잔으로 향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은 귀신의 눈으로 보기에도 실력이 ‘고강하다’고 일컬을 만한 자들이라, 근처를 지나는 귀신들은 저마다 그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야간 순시관은 다시 시선을 묘사방으로 돌려, 그곳으로 줄줄이 운반되고 있는 요물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사실 이때 평범한 인간들의 육안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귀신들이 구혼삭으로 요마의 시체에서 혼백을 빼내 저승으로 압송하고 있었다.
야간 순시관은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지붕에서 뛰어내려 성벽으로 착지한 뒤 주위를 순찰하기 시작했다. 오늘 밤에 그는 혼자 순찰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동료가 요마를 상대하다 혼비백산(*魂飛魄散: 혼백이 이리저리 날아 흩어진다는 뜻)했기 때문이었다.
* * *
한편 이 시각, 멀리 남황주의 이진사에 있던 계연은 무언가 감응을 느꼈다. 그는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무곡성(武曲星)을 보고는, 잠에서 깨 객사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주랑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오늘은 하늘에 옅은 구름이 껴있어 별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계연은 법력을 펼쳐 구름을 흩트리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방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이미 무언가를 깨달은 얼굴로, 방으로 돌아와 의식 안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의식 세계 안에서는 계연의 거대한 법상(法相)이 우뚝 선 채, 찬란하기도 하고 동시에 몽롱하기도 한 별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실체를 갖추거나 아직 갖추지 못한 바둑돌을 하나하나 전부 느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그의 눈에 띄었다.
계연은 의식 세계 안에서 걸음을 내디뎌 한 걸음 만에 가장 높은 산봉우리 옆에 이르렀다. 그의 법상은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높이가 거의 비슷했는데, 그 정상에는 장엄한 모습의 단로가 놓여 있었다. 단로 안에는 삼매진화가 활활 타올랐다.
계연의 법상이 단로를 향해 손가락을 뻗더니, 하늘 어딘가를 향해 불길을 이끌었다. 그러자 단로의 구멍을 통해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구름처럼 계연의 팔 주위를 감쌌다. 그것은 계연의 팔을 감싸고 춤추듯 몇 바퀴 돌다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하늘로 날아올라 몇몇 별에 녹아들었다.
단로에서 가끔 분출되는 단기는 수많은 ‘별’에 의해 흡수되었는데, 지금처럼 많은 양의 단기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다만 몇몇 별은 단기의 일부를 흡수한 후에는 더 많은 기운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에 남은 단기는 중앙의 가장 밝은 별 하나에 의해 전부 흡수되었다. 이 상황은 계연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었으나, 동시에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했다.
* * *
한편 같은 시각.
저 멀리 떨어진 대정국 병주의 운산관 안, 새로 지은 성전(星殿) 안에서는 양면으로 된 별자리 깃발이 빛나고 있었다. 양면 깃발은 사실 몇 시진 전부터 이미 빛나서, 이 때문에 청송 도인도 하룻밤 내내 깃발 아래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전에 계연이 별자리 깃발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예의주시하라고 당부한 바 있었기 때문에, 청송 도인은 자신의 임무에 조금도 태만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간밤 내내 별자리 깃발 아래 앉아, 때때로 점괘를 치고 있었다.
그러다 성전의 지붕이 몽롱한 빛으로 한 겹 뒤덮이자, 청송 도인은 비몽사몽하게 점괘를 치던 상태에서 깨어나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방석 위에서 일어나 대전 바깥으로 날아올랐고, 그런 와중에도 손으로는 점을 쳤다.
청송 도인은 갑자기 점괘를 내던 동작을 멈추더니, 어느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천천히 대전 안으로 돌아와 별자리 깃발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깃발의 한쪽 면에서 어느 별자리에 빛이 반짝 스쳐 지나가는 걸 발견했다.
‘무곡(*武曲: 북두칠성 가운데 6번째 별로, 무용(武勇), 숙살(肅殺), 권력 등을 상징함)?’
이런 생각이 스치자 청송 도인은 성전의 측면에 걸린 그림 두 폭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도문(道門)의 계유신군인 진자주였고, 다른 하나는 도문의 큰 어른인 계연이었다. 진자주는 자상한 미소를 띠고 있었고 계연은 고요한 얼굴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림 속의 그들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자, 청송 도인의 마음도 절로 차분해졌다. 그는 두 폭의 그림을 향해 공손히 읍한 뒤 다시 별자리 깃발의 아래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작은 향로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청송 도인은 한쪽의 탁자에서 향 한 대를 꺼낸 뒤 윗부분을 두 손가락으로 살짝 붙잡아 불을 붙였다. 그렇게 향로에 향을 꽂은 청송 도인은 다시 깃발 아래 놓인 방석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좌선했다.
향로에 꽂힌 단향에서는 연기가 수직으로 높게 치솟았다. 하지만 별자리 깃발과 같은 위치까지 올라온 뒤에는 더 위로 오르지 않고, 구불구불 휘어지더니 깃발 중 한쪽 면의 무곡성으로 모여들었다.
향로의 단향이 전부 재가 되자 청송 도인이 마침내 눈을 떴다. 그가 천장에 걸린 별자리 깃발을 바라보니, 무곡성에서는 희미한 빛이 나고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문곡성에서도 빛이 나고 있었다.
청송 도인은 그 장면을 보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가, 돌연 무언가를 느끼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얼른 가까이 다가가 읍하며 인사했다.
“진 공(公)!”
언제 왔는지 진자주가 대전 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별자리 깃발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청송 도인의 인사를 듣고는 손을 내저었다.
“어서 예를 거두시오. 청송 도장, 문무겸비라는 말이 있듯 지금은 문곡과 무곡이 서로 호응하는 형국이구려……. 계 선생님께서도 이를 아실 것 같소?”
“빈도(*貧道: 도사가 스스로를 낮춰 일컫는 말)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늙은이가 보기에 선생께서는 분명 알고 계실 듯하구려.”
말을 마친 진자주는 다시 몸을 돌려 떠나갔고, 몇 걸음 만에 그의 형체가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진 공께서는 점점 더 신군(神君)에 가까워지시는구나…….’
청송 도인은 착실히 도행을 쌓고 있었으나, 어쩐지 진자주 앞에서는 맨 처음 그를 만났을 때처럼 편히 대할 수가 없었다. 이는 그뿐만 아니라 청연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마 그 때문인지 진자주는 더는 전처럼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 *
이 밤, 청송 도인은 별자리 깃발의 변화를 시시각각 주시했다.
이 밤, 멀리 남황주의 작은 사찰에 있던 계연은 오히려 편히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
이 밤, 연비와 육승풍은 요마와의 격전을 치른 뒤 그들을 묶고 있던 족쇄에서 어느 정도 돌파를 이뤘다. 무공에 진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도(武道)에 대한 깨달음도 한층 더해졌다.
이 밤, 멀리 동토 운주의 대정국에서는 ‘왕 신포’라 불리는 왕극이 깊은 밤 조서를 받고 입궁해 대정국 황제를 알현했다. 그는 성지를 통해 형부, 대리시, 어사대를 이르는 삼사법(三司法: 세 가지 사법기관)의 순찰사 겸, 세 기관이 각기 2문(門)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6문을 총괄하는 총포두에 책봉되었다.
이 밤, 두형은 칼을 쥔 채 통천강 어느 하류의 강기슭에서 넘실대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야밤에 미친 듯 칼춤을 추었다.
이 밤, 좌무극은 침상에서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요마를 상대로 한 격렬한 싸움과 거리에서 본 가족을 잃은 이들의 눈빛이 좌무극의 뇌리에서 둥둥 떠다녔다. 이에 좌무극은 아예 이불을 걷고 일어나 바지를 걸친 뒤, 편장을 손에 들고 객잔의 후원으로 향했다. 그는 그렇게 한겨울에 웃통을 벗고 미친 듯이 편장을 휘둘렀다.
휘익- 휙-!
훅, 훅!
편장은 좌무극의 손에서 거의 잔상처럼 보였고, 곤법(棍法: 몽둥이를 다루는 무예), 창법, 검법, 심지어는 추법(錘法: ‘추’는 나무 자루 끝에 금속의 원구(圓球)가 달린 옛 무기)까지 자유자재로 썼다. 동시에 손발로는 권법, 장법, 조법(*爪法: 손가락으로 움켜쥐듯 공격하는 기술), 퇴법(*腿法: 다리와 발을 움직이는 기술) 등을 섞어 쓰고 있었다.
모든 무예를 완벽히 체득한 좌무극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차례대로 펼쳤다. 그의 초월적인 재능 덕분에 모든 무예를 통달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야심한 밤이 반이나 지날 때까지도 좌무극은 쉬지 않다가, 마침내 편장을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더니 바닥에 확 내리꽂았다.
퍽……!
추위에 단단히 얼은 땅바닥에는 편장이 꽂히며 얕은 구멍이 파였다. 좌무극의 웃통은 금강처럼 단단해 보였고 붉어진 피부 위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가 내내 쥐고 있던 편장도 만져보면 아주 뜨끈했다.
객잔 후원의 바닥 반 정도는 아주 깔끔해 보였는데, 두껍게 쌓인 눈이 좌무극을 중심으로 깨끗하게 쓸려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어느 반경 밖에서 후원 외곽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었다.
좌무극은 그렇게 편장을 손에 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밤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여 어느새 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눈발은 좌무극의 몸에 닿자마자 즉시 녹아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