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33화 (833/892)

833화. 요마가 사람을 납치하다

객잔 2층에 있던 연비와 육승풍도 마찬가지로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좌무극이 객잔 후원에서 무공을 수련하는 동안, 그의 두 사부도 각자의 방 창가에 앉아서 몰래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좌무극의 얼굴은 아직 앳되어 보이긴 했지만 이미 이들이 놀랄만한 무예를 펼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연비는 눈을 맞으며 가만히 서 있는 좌무극을 바라보다가 손에 든 장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어쩐지 옅은 좌절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아주 잠시였을 뿐, 이내 연비는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다시 침상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한편, 좌무극을 바라보는 육승풍의 눈에도 복잡한 심경과 대견함이 섞여 있었다. 그는 이내 호리병의 마개를 뽑아 술을 마시려다 주춤하더니, 호리병 안쪽을 들여다보다 다시 양을 가늠하듯이 흔들어보았다. 그 안에는 한입 가득 마실 정도의 양이 남아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육승풍은 호리병을 창밖으로 휙 던졌다. 그것은 기다란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좌무극에게서 1장(약 3m) 거리의 바닥에 떨어졌다. 땅에 떨어지는 순간을 포함한 모든 과정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육승풍은 주먹을 꽉 쥐고는 다시 침상으로 돌아가 누웠다.

동이 틀 무렵, 지평선에서는 어느새 희뿌연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안 곳곳, 요물들의 출현에 놀라 벌벌 떨던 닭장 안의 수탉들이 목을 뻣뻣이 치켜들고는 아침노을을 향해 긴 울음을 터뜨렸다.

“깍, 깍, 꼬끼오-!”

수탉들의 울음소리는 그렇게 연이어 계속 반복되었고, 이내 아침노을이 좌무극의 얼굴로 쏟아지자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몸에 쌓인 눈을 툭툭 털며 고개를 숙였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넷째 사부의 호리병을 발견했다.

“쓰읍……. 마침 추웠는데 잘됐군.”

좌무극은 손발을 가볍게 푼 뒤, 호리병을 들어 올려 마개를 뽑고는 입으로 술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안에 남은 술은 겨우 한입이 전부였다.

중년의 태운종 수사가 이렇게 말하자, 그 옆에 서 있던 조금 더 젊어 보이는 수사 하나가 이렇게 대꾸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진선의 경지에 이른 고인이 온 힘을 다해 법력을 펼치니 정말 무시무시하더군요. 저는 언제쯤 진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

“네가?”

“사형, 어떻게 그런 말을…….”

“하하하하…….”

그러자 다른 태운종 수사들도 웃음을 터뜨리거나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수사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동문(同門)들을 바라보며 의연하게 대꾸해주었다.

“득도하려는 마음도 없이 어떻게 도를 깨우치겠는가. 자네들, 2백 년 안에 내가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따돌려주지.”

“알겠습니다, 사형의 뜻이 참으로 원대하시군요!”

“가르침을 줘서 고맙구나!”

“자, 주의하거라, 곧 도착한다.”

구름을 몰던 중년 수사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이들이 즉시 조용해졌다. 이내 전방에 작은 산이 나타났는데, 그 뒤 전부가 낮게 낀 먹구름에 덮여 있었다. 그래서 구름을 몰던 태운종 수사들은 그쪽 상황을 볼 수가 없었다.

선술로 인한 빛이 산을 스치고 지나는 가운데 ‘뜻이 원대한’ 수사가 인을 맺으며 법력을 펼쳤다. 그런 뒤 두 손을 합장하고 앞으로 뻗더니 정신을 집중해 소리쳤다.

“구름은 갈라지고 안개는 흩어져라(分雲散霧).”

그와 동시에 그는 합장하던 손을 좌우로 벌렸다. 그러자 아래쪽 먹구름이 법력에 이끌려 천천히 양쪽으로 갈라지더니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갈라지거나 흩어진 틈새로 햇빛이 뚫고 내려갔다. 하지만 태운종 수사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모두 구름 위에 서서 침묵에 잠긴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래에는 규모가 그리 작지 않은 도시가 있었는데, 해가 높게 뜬 이 시각에도 성안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거리와 골목에 인파는커녕 개 짖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들은 상공에서도 도시 곳곳이 무너지거나 손상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높은 건물 대부분은 무너졌고, 거리와 건물 곳곳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쩌다 이리된 것인지, 태운종 수사들은 추측해볼 필요조차 없었다.

“시신은 어디로 갔지?”

“내려가 봐야겠다. 각자 흩어져서 주위를 수색하도록 하자.”

“예.”

“알겠습니다.”

법운 위에 올라타 있던 태운종 수사들은 각자 흩어져, 구름을 몰거나 바람을 이용해 성 곳곳으로 날아갔다. 지면에 곧장 내려앉은 이들은 직접 발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원래 구름을 몰던 수사는 남녀 수사 한 쌍과 함께 성황당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땅으로 내려섰다.

사당은 이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 있었는데,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가 보니 이리저리 땅바닥에 쓰러진 신상(神象)들이 보였다. 신상은 모두 손이나 발이 잘리거나, 머리가 부서지거나 몸이 깨져 하나도 성한 것이 없었다.

“휴, 보아하니 요마들이 적잖게 들어온 모양이구나. 최근에 이처럼 요마들에게 공격당한 소도시가 늘어나고 있다더니…….”

“하, 하지만 이 성에는 최소 수만 명이 살았을 텐데요. 이렇게 큰 도시에서…….”

두 수사가 모두 놀라며 탄식하는 와중, 진선이 되겠다는 의지를 지닌 수사는 미간을 굳게 찌푸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돌연 이렇게 말했다.

“이 성에는 수만 명이 살았는데, 이렇게 단시간 내에 요마들에게 모두 잡아 먹혔을 리가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요괴와 마두들의 정말로 뱃속이 무저갱(*無底坑: 끝없이 깊은 굴)도 아니고, 그들도 사람을 잡아먹었다면 당연히 포만감이 드는 존재였다.

“사제, 네 말은…….”

“아마 이곳의 백성들 대부분은 납치당한 것 같습니다.”

“납치?”

그러자 좀 더 젊은 축에 드는 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최근에 나타난 요마들은 모두 흑황과 관련이 있으니, 이 백성들은 아마…….”

수사는 주저하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여수사가 이를 갈며 이렇게 말을 이어받았다.

“인축국(人畜國)……!”

태운종은 수선계에서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은 종파였고, 천우주는 선도의 세력이 창성한 대륙이었으므로 태운종에서 수행한 세월이 비교적 긴 수사들은 몇몇 놀랄만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악명이 자자한 인축국도 바로 그중 하나였다.

동문(同門) 여수사의 말을 듣자, 태운종 수사들을 이끌고 온 우두머리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요즘 천우주는 요마가 날뛰고 있으니, 제대로 된 보호 세력이 없는 곳에서 요마들이 기승을 부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꼭 ‘인축국’과 연관이 있으리란 법은 없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여수사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사형,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이 일이 대체 어찌 된 건지는 점괘만 쳐봐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접어 점을 치는 동시에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 성의 백성들 대부분은 아직 살아있어요. 다만 어디로 갔는지를 모를 뿐이죠. 그러니 요마들에게 곧장 잡아먹힌 건 아니에요. 요마들은 본디 포악하고 종잡을 수가 없는 놈들이니, 납치 같은 건 일도 아니고요. 이 성에 살던 수만의 백성들이 갑자기 사라졌고, 이번에 습격한 요마들은 대부분 흑황에서 온 놈들이에요. 이런데도 이 일에 다른 원인이 있겠습니까?”

“사매! 흑황의 요마들이 천우주로 대거 몰려왔다는 건 가능성일 뿐이지, 아직 실제 증거는 없다!”

그러자 여수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사형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증거가 없다고요?”

“자, 자, 사매야. 인제 그만하거라. 일단은 이곳 저승이 봉쇄되었는지부터 알아보자.”

그들은 어쨌든 동문의 사형매(師兄妹)였으므로 서로의 말싸움은 곧 가라앉았다. 황폐하게 무너진 사당에서 나온 그들은 법력을 펼쳐 음양을 나눈 뒤 곧장 저승 세계로 발을 디뎠다.

그들이 곧장 저승에 발을 들일 수 있다는 건, 귀문관이 봉쇄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저승의 경계에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가자, 아직 남은 귀신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주변에는 음기가 아주 짙었기 때문에 안개처럼 시선을 가릴 정도였다. 이는 저승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죽은 이가 너무 많아서 생긴 것이었다.

세 사람이 움직이는 속도는 무척 빨랐기 때문에 이들은 곧 귀문관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귀문관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곳을 지키고 있어야 할 저승의 귀신들도 없었다.

내부로 좀 더 들어가 보니 저승의 모든 전당(殿堂)이 텅 비어 있었고 귀신들은 종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신위(神位)에도 향불의 기운이 전혀 없었고, 각 전당이 온통 엉망이 된 채 온갖 문서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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