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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837화 (837/892)

837화. 기운이 쌍생하는 상

그렇게 며칠간 비행하던 계연은 불길처럼 들끓고 동시에 강물처럼 넘실대는 특이한 기운을 발견하고는 속도를 늦추고 고도를 낮췄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험준하고 좁은 길 위에 울려 퍼졌고, 갑주와 병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 말들이 히히힝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들은 척 봐도 수많은 혈투를 거친 군대였다. 그들의 갑주가 낡고 훼손되거나 피가 묻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차림새는 여전히 색이 또렷하고 병기도 날카로웠다. 그들이 뿜어내는 살기는 이미 그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계연을 신기하게 만든 장면은, 바로 수천에 달하는 군대의 중앙에 적지 않은 요물들이 압송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크기가 그리 거대한 요물들은 아니었지만, 온몸이 털로 뒤덮인 데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것 자체로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이 군사들은 이런 요물들을 보는 게 그리 놀랍지도 않은 듯이 아무런 대화 없이 묵묵히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압송되는 요물들에 대한 경계심은 있어 보였지만, 두려움은 없어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대의 행렬 사이로 수선자 몇몇이 보이는 건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계연이 보기에 그 수선자들은 수행이 무척 얕아, 위원생이나 손아아보다도 못할 정도였다. 느껴지는 선령(仙靈)의 기운도 그다지 순수하지 않았다.

계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도를 내렸다. 그러고는 그저 생각만으로 본인의 형체를 점점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들 군대에서 활활 타오르는 듯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으므로 일반적인 장안법은 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통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군중에 섞인 후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병사들과 요물들은 계연을 보지 못했지만, 계연은 지면에 내려선 뒤 곧장 그들 일행을 따라갔다. 그는 거대한 수갑을 찬 채 끌려가는 요물들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에게서 가장 가까운 몇몇 병사들은 기혈이 왕성했고, 손에는 단단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창을 들고 있었다. 그 얼굴에서는 약간의 피로가 느껴졌으나, 계연은 병사들이 요물들에게 시선을 돌릴 때마다 그 안에 담긴 서늘한 살의를 느낄 수 있었다.

계연은 놀랍게도 이 요물들이 병사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요물들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병사들을 따라 걸었고, 이를 드러내는 요물은 오히려 몇 없었다.

동이 트기 전 군대가 작은 산등성이를 넘자, 길이 훨씬 걷기 좋아졌고 자연스레 군대의 발걸음 소리도 더욱 질서 있게 변했다. 계연이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보니, 규모가 그리 작지 않은 성곽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전방에 욕구성(浴丘城)이 보인다. 이 짐승들을 잘 감시하고, 명령에 따르지 않는 놈이 나오면 곧장 죽여라!”

장수가 큰소리로 이렇게 명령하자, 침묵을 지키며 행진하던 군대 전체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곧이어 전군이 거의 동시에 힘차게 대답했다.

“예!”

주위를 쩌렁쩌렁 울리는 병사들의 목소리에서 엄청난 기세가 느껴져 계연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요물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몸을 벌벌 떨 정도였다.

그때, 압송되는 요물 중 끝자리의 사람 키 반만 한 거대한 산 정괴는 너무 놀란 탓인지, 아니면 일찍이 결심한 건지, 돌연 대열의 측면을 뚫고 나가려 했다. 그러자 그와 쇠줄로 함께 묶여 있던 요물 몇이 함께 끌려나갔다.

“크릉……!”

정괴는 흉포한 기세로 울부짖으며 뛰쳐나가려 했지만, 병사들은 모두 고명한 무예 실력과 수많은 전투 경험을 지니고 있었고, 몸에서는 뭔지 모를 신령한 빛을 내고 있기까지 했다. 근처의 병사들이 순간적으로 몸을 피하자, 곧장 수십 명의 병사가 창과 칼을 들고 다가왔다. 그들이 내뿜는 어마어마한 살기와 “죽여라!”하고 포효하는 소리에 정괴는 놀라 호흡조차 잊을 정도였다.

“죽여라!”

병사들이 내지르는 고함이 주위를 온통 뒤덮었다.

푸욱……! 퍼억! 푹-!

수많은 칼과 창이 찔러오자 정괴는 두꺼운 피부로도 그들의 협공을 막아낼 수가 없었고 곧 피와 살점이 어지러이 튀었다.

그러자 수선자가 재빨리 다가와 부적을 한 장 꺼내더니, 정괴의 혼백을 곧장 뽑아냈다.

“계속 전진한다. 날이 새기 전에 이놈들을 모두 욕구성 밖에서 처형할 것이다!”

“예!”

군대가 다시 전진했고, 계연은 그제야 그들이 요물들을 성 밖으로 압송해 형을 집행하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형 집행은 민심을 진작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으니, 압송하는 요물들은 아마도 그들이 특별히 고른 상대일 것이다.

장수가 말한 욕구성 밖에는 광활한 땅이 펼쳐져 있었는데, 성 밖의 공터 말고도 대형 경작지가 일궈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직 날씨가 풀리지 않아, 땅에 아무런 농작물도 심겨 있지 않았다.

하늘이 부옇게 밝아오자, 흉악한 생김새를 지녔지만 사실 도행은 그리 높지 않은 수십 마리의 요물들이 욕구성 밖으로 압송되어왔다. 그들은 전부 요괴와 정괴였고, 마물이나 귀물은 없었다.

그래도 이 요물들은 모두 수행을 통해 횡골을 닦아낸 이들로, 절대로 무해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만약 일반적인 도시 안에 있었다면, 충분한 해를 끼치고도 남았을 존재였다. 성안에서도 저승 귀신들의 통제에 불복했다면, 아마 잡혀가거나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곧이어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들에게도 악몽을 선사할 만한 흉악한 생김새의 괴물들이 차례로 성벽 아래에 끌려왔다. 요물 하나당 최소 다섯 명의 병사들이 그들에게 무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이내 무게가 꽤 나가 보이는 맥도(*陌刀: 당대(唐代)에 성행하던 무기로 길이가 긴 양날 칼임)를 들고 체격과 기운이 보통 병사들보다 몇 배는 강해 보이는 웃통을 벗은 병사들이 앞으로 걸어왔다.

“꿇어라! 어서 꿇어!”

요물들에게 무기를 들이대고 있던 병사들이 큰소리로 윽박지르자, 전군이 요물들을 노기 띤 눈으로 바라보며 소리쳤다.

“꿇어라! 꿇어라!”

“꿇어!”

그 목소리는 처음에는 제멋대로였다가 뒤로 갈수록 한목소리가 되었다. 그러다 점점 산과 바다를 울릴 정도로 커다란 함성이 되었다.

일반 백성들이 수천 명 모여 함께 소리쳐도 그 위세가 대단할 텐데, 하물며 이들은 일반적인 군대도 아닌 정예병들로 이루어진 군사였다.

계연은 이때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성벽 위로 뛰어올라, 성루 위에 안착했다. 아래의 군사들이 흉악한 기세로 고함치자 전군의 살기가 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지더니, 천지 원기(元氣)와의 특수한 교환이 일어났다. 이는 그간 계연이 마주친 어느 평범한 사람의 군대에서도 보지 못한 현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니, 이건 이미 일종의 수련 상태라고 할 수 있겠어.’

대정국이 조월국을 멸망시켰을 때의 정예병들에게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 보지 못했었다. 게다가 이 현상은 지속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고, 병사 개개인의 기운 변화는 그리 뚜렷하지 않았다.

그때, 계연이 돌연 무언가를 깨닫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서서히 밝아올 때가 되자 더는 별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계연의 법안에서는 무곡성의 빛이 여전히 아른거리고 있었다.

좌무극과 연비 등 계연이 기대를 걸고 있는 무인들이 돌파를 이루면 무곡성이 환히 빛나곤 했다. 그래서 원래 계연은 좌무극과 연비 등이 남들보다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만 여겼는데, 인제 보니 무곡성은 계연의 처음 예상대로 모든 인간의 기운을 움직이는 것이 맞았다. 게다가 이 기운은 무운(武運)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까지 했다. 계연은 최소한 무살원강이 천하에 널리 퍼져야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윤 훈장님으로 대표되는 찬란한 문곡성의 빛도, 마찬가지로 속세의 여러 문인의 기운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는 윤 훈장님의 서책이 대정국 곳곳에 퍼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음은 양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양은 음 없이 자랄 수 없다(孤陰不長, 獨陽不生).’라는 말 그대로였다.

계연이 무곡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문곡성을 바라보니, 빛이 가려져 있지 않았다. 보아하니, 문곡성과 무곡성은 음양이 균형을 이루는 이치에 딱 부합되어 전체적인 기운에 더욱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대정국 서생들의 풍모가 그리 출중했던 것도, 윤 훈장님의 가르침 때문만은 아니었던 거야. 이제부터는 그 풍모가 정신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진 않겠군…….’

계연은 그렇게 생각에 잠긴 얼굴로 성밖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의 사고는 전보다 더욱 폭이 넓어진 상태였다.

이것은 인도(人道)의 기운이 쌍생하는 상이었다.

그 순간, 욕구성의 성문이 열리자 이미 이틀 전부터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던 백성들이 곧 열릴 처형식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성 밖의 공간은 처형식을 열기 충분할 정도로 넓었지만, 백성들의 남다른 열정에 호사가나 한가한 이들을 물론이고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이들마저 전부 구경하러 나왔다. 그러자 성 밖의 드넓은 땅이 온통 새카만 인파로 뒤덮였다.

계연은 백성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담긴 얼굴로, 요물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걸 지켜보았다.

하지만 천천히, 살기가 하늘을 찌르는 위세 등등한 군대가 성벽 앞에 꿇어앉아 있는 수십 마리의 요물들에게 창과 칼을 들이대고 있는 걸 보자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내 백성들은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요물들에게 대놓고 원한을 드러내기도 했다.

처형식의 집행관은 당연히 백성이 아니라 이 군대를 통솔하는 장군이었다. 그는 손에 영전(*令箭: 옛날, 군중(軍中)에서 명령 전달의 증거로 사용한 화살 모양의 수기(手旗))을 들고 있었지만, 그것을 볼 필요도 없이 곧장 군대 앞에 서서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이 요물들은 모두 죽을죄를 지었으니, 즉시 이 자리에서 극형에 처한다!”

그러자 백성들이 나타난 뒤로 엄숙하게 침묵을 유지하던 병사들이, 긴 창을 땅에 내리꽂으며 박자에 맞춰 포효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강렬한 살기가 담긴 목소리가 백성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고, 이내 모든 이들이 병사들과 함께 입을 모아 소리쳤다. 그러자 요물들은 자신들이 이 기세에 짓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는 심리적인 요인뿐만은 아니었다. 계연은 요물들이 꿇어앉은 곳, 무릎 아래가 정말로 살짝 패인 것을 볼 수 있었다.

곧이어 장군이 눈초리를 가늘게 뜨고 요물들을 바라보다, 손에 든 영전을 앞으로 휙 내리꽂으며 소리쳤다.

“전부 참형에 처하노라!”

그러자 병사들이 쇠줄을 더욱 단단히 잡았고, 웃통을 벗은 거대한 체격의 병사들이 앞으로 걸어오더니, 맥도처럼 생겼지만 그보다 훨씬 큰 칼을 동시에 휘둘렀다.

“죽여라-!”

푸욱- 푹! 푸욱…… 푹……!

요물 대부분이 일격에 머리가 잘려 땅에 굴러떨어졌다. 요물들의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자, 시끄럽던 처형장 주위의 백성들이 모두 쥐 죽은 듯 고요해지더니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요물들의 머리통에 땅에 굴러떨어지고, 마침내 피가 샘솟는 요물들의 몸통이 픽, 쓰러지자 백성들이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흥분 등 억눌려 있던 여러 감정이 환호로 바뀌었고, 인간들의 불의 기운이 곧 눈에 보이는 속도로 왕성해지더니 전체 기운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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