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8화. 극상품
‘고명한 수단이야.’
계연은 속으로 이렇게 평가했다. 이것이 욕구성의 집정권자가 생각해낸 방법인지, 아니면 어느 고인의 가르침인지는 몰라도 절묘한 한 수였다. 계연은 이미 인도(人道)의 기운에 미세한 변화가 생겼음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때 군중의 수사 두 명이 마침 성벽 위에 있었기에, 계연은 그들에게 말을 걸려다 이내 그 생각을 뒤로하고는 원래 향하던 곳으로 날아갔다.
계연의 법안으로는 눈에 닿는 곳곳에 여전히 삿된 기운이 만연해 있는 게 보였지만, 조금 전의 장면을 보고 난 후에는 그래도 속세에 대한 걱정을 훨씬 덜 수 있었다. 더불어 자신의 ‘바둑 실력’에 얼마간 자신이 붙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우패천이 있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계연은 인간의 기운이 더욱 왕성해지는 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그곳은 수많은 백성이 모여 사는 큰 성이었고, 성 주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보아하니 천우주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방에 속하는 고장인 듯했다
이렇게 가까이 왔으니, 계연은 자신의 민감한 후각으로 이미 성안에 숨겨진 희미한 요기(妖氣)를 판별해낼 수 있었다.
계연은 자신이 늘 하던 대로 먼저 성밖에 내려선 뒤, 모습에 약간 변화를 주었다. 그러자 그의 생김새가 훨씬 앳되게 변했는데, 마침내는 아직 약관(*弱冠: 남자 나이 20세)이 채 되지 않은 서생처럼 보이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안전해 보이는 고장이었지만 성에 들어가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최근의 세태 때문인지 조건이 무척 까다로워져서, 어디서 온 사람인지도 밝히고 통행증도 있어야 했으며, 성에 들어오는 목적도 밝혀야 했다. 그것을 다 통과하면 짐 수색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절차는 당연히 계연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는 가볍게 성문을 통과한 뒤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인파를 따라갔다. 그러다 성문 안쪽에 자그마한 사당이 세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 안에 모셔진 신상을 보니 이곳의 토지신인 듯했고 향불의 힘도 아주 왕성했다.
하지만 보아하니 이곳의 신령들은 성안에 대단한 요괴들이 숨어있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주 옅어 감지하기 쉽지 않았지만, 계연은 우패천 말고도 여러 개의 다른 요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침 시각이 정오여서, 어느 주루의 대청은 손님으로 바글바글한 상태였다. 그곳에서는 순박한 얼굴의 중년 남자가 홀로 커다란 식탁을 차지한 채 바쁘게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그가 시킨 요리가 너무 많아 공간이 부족할 정도였으므로, 자연히 그의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은 상태였다.
우패천이 술과 요리를 음미하고 있을 때 돌연 맞은편에 누군가 앉았다.
“형님, 제가 여기 앉아도 되겠습니까?”
우패천이 고개를 들어보니, 피부가 보들보들한 어린 서생이었다. 이에 그는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지금 이 식탁이 전부 요리로 뒤덮인 게 안 보이나? 설마 아무것도 안 시키고 내 걸 먹으려고? 뭐, 안 될 건 없다. 이 요리의 반은 자네가 값을 치르고, 나를 우씨 어르신이라 부르면 앉게 해주지.”
그러자 청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씨 어르신.”
그러자 우패천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점잖아 보이는 서생이 이렇게까지 얼굴이 두꺼울 줄은 그도 몰랐던 것이다.
“됐다, 됐어, 그냥 앉아라. 돈도 낼 필요 없다. 꼴을 보니 돈도 얼마 없을 듯한데. 설마 내가 젓가락이랑 그릇까지 가져다주랴?”
“아, 아닙니다. 계속 식사하세요. 제게도 젓가락이 있습니다.”
젊은 서생은 이렇게 대답하더니 왼손을 소매 안에 넣어 대나무 젓가락 한 쌍을 꺼냈다. 마침 술을 마시던 우패천은 그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 경계심이 일기 시작했다.
이자에게서는 어떤 법력이나 영기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보통 사람이, 그것도 서생이, 소매 안에 돈도 손수건도 염낭도 아니고 젓가락을 보관할 리는 없었다. 무슨 괴벽이 있는 게 아니면, 이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자네는 젓가락도 들고 다니는가?”
경계심이 든 우패천이 떠보듯 물었다. 이 서생은 기운으로만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만약 이자가 수행자라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경지를 지녔다는 소리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육 산군이 막 천우주에 도착했을 때 어느 진선(眞仙)을 맞닥뜨렸던 일을 떠올렸다.
이에 우패천은 속으로 ‘설마 나한테도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걸까?’하고 생각했다. 지난번에는 구미호가 앞에 나선 덕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서생이 하필 자기 앞에 앉은 것이다.
“아, 식탁 위에 요리가 너무 많았는지 젓가락 통까지 가져간 모양이에요. 마침 또 제게 젓가락이 있거든요. 저는 따로 그릇도 밥도 필요 없고, 그저 요리만 좀 집어 먹으면 됩니다.”
계연은 전혀 사양하지 않고 곧장 젓가락을 움직여 요리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게다가 가격대가 좀 있는 간판 요리만 골라 먹었다. 식탁 위에는 대부분이 채소 요리였으므로 비싼 건 별로 없었다.
계연의 소탈한 태도에 우패천은 더욱 경계심이 들었다. 그가 만나본 선도의 고인들은 모두 이자처럼 태도가 자유분방했기 때문이다.
우패천은 얼른 정신을 다잡고 연기를 이어갔다.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젓가락으로 음식을 마구 집어 먹더니 술을 한입 마신 후, 쓰지 않은 술잔을 뒤집어 계연에게 한잔 따라주었다.
“동생, 술 좀 마시는가?”
계연은 술잔을 받아 한입에 술을 털어 넣고는 술을 다 마셨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아래로 뒤집었다. 그러자 우패천이 즉시 평정을 잃었다. 찻잔에는 정말로 술이 남지 않았지만, 대신 물기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어수술이었다!
계연은 우패천의 감정 변화를 느끼고, 술잔을 바라보다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평소에 술을 마시던 습관이 나와 우패천의 의심을 사 버린 것이다.
“우둔한 소 같으니라고, 이제 그만하고 먹죠. 음식이 다 식겠어요.”
그 말에 우패천의 표정이 즉시 밝아지더니 웃음기를 띠었다. ‘우둔한 소’라는 호칭은 딱 둘만 썼는데, 하나가 육 산군이고 다른 하나가 계연이었다.
“선생님, 직접 오신 겁니까? 이게 혹시 선생님의 화신은 아니겠지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아니죠.”
그러자 우패천은 즉시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는 조금 전의 두려움을 싹 날려 보냈다. 그는 손바닥을 비비며 즉시 계 선생님을 이끌고 천계맹으로 쳐들어가야 할지 생각했다.
“선생님, 그…….”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예!”
우패천은 그제야 식욕이 돌아와 전보다 더욱 크게 입에 요리를 욱여넣었다.
“어이, 여기 제방(*蹄髈: 돼지의 허벅지살) 두 덩이랑 술 한 병 더 갖다 주게! 제일 좋은 술로!”
“예이! 제방 두 덩이, 술 한 병, 가장 좋은 술이요!”
점소이의 대답에 계연은 웃으며 속으로 이 소가 먹을 줄 안다고 생각했다.
우패천은 한결 긴장이 풀린 얼굴로, 앞에 놓인 채소 요리를 전투적으로 해치우는 동시에 낮은 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아십니까?”
“아뇨, 그래서 물어보러 온 거예요.”
“아, 그러시군요.”
우패천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접시째 요리를 들어 입으로 밀어 넣은 뒤, 몇 번 씹지도 않고 곧장 삼켜버렸다. 이를 보던 계연은 저도 모르게 소 한 마리가 풀을 뜯어 먹는 장면을 떠올렸다.
“선생님, 요마들이 이제 무슨 이득을 보기 어려울 거라는 걸 감지했는지 슬슬 철수할 생각인 듯합니다. 특히 흑황 쪽이 말입니다. 정도 세력과의 싸움이 아직 격렬하긴 하지만, 지금 그들 대부분은 백성들을 납치하는 걸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일단 데려갈 수 있는 만큼 데려가고 남은 이들은 곧바로 먹어 치우거나 죽입니다…….”
계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손님, 주문하신 제방하고 술 나왔습니다!”
점소이가 홍소(*紅燒: 고기·생선 등에 기름과 설탕을 넣어 살짝 볶고 간장을 넣어 익혀 검붉은 색이 되게 하는 중국 요리법의 한 가지) 양념에 버무린 제방 두 덩이가 담긴 커다란 그릇과 술병이 들린 쟁반을 들고 왔다. 우패천은 잠시 말을 멈추고, 점소이가 요리를 내려놓고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맛있게 드십시오!”
점소이가 쟁반을 들고 가자 우패천이 다시 말을 이었다.
“천우주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곳곳에서 요마가 날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놈들 대부분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이곳에 발을 들인 머저리들입니다. 그러니 수가 얼마나 되든 신경 쓸 만한 이들도 아니고, 설령 전부 죽더라도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
“음.”
계연이 이렇게 대꾸하더니, 술을 마신 뒤 화제를 바꿔 물었다.
“도사연은 정말로 죽은 건가요, 아니면 아직 살아있는 건가요?”
“역시 계 선생님이십니다! 그 여우가 죽지 않은 걸 바로 알아보시다니요. 그것이 무슨 사악한 술법을 부렸는지, 전에는 분명 꼬리가 8개였는데 천우주에 나타나니 갑자기 9개가 되었습니다. 일전에 건원종 장교와 맞붙었을 때는, 저희 모두 그 여우가 진선의 뇌법(雷法)에 맞아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살아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계연이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도사연은 지금 어디에 있죠?”
그러자 우패천이 입에 든 음식물을 씹어 삼키더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여기에 모인 것은 그 여우가 내린 지령에 따른 것입니다. 말하고 보니 이상한 것이, 천계맹 안에 그 여우보다 도행이 높은 요마가 없는 것도 아닌데, 진마나 흑화의 요왕들조차 그 여우 앞에서 몸을 바짝 낮추더군요.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구미호로 변한 것도 그렇고요. 설마 구미호에게는 정말 목숨이 아홉 개나 있는 걸까요?”
우패천이 이렇게 중얼거리자 계연은 깊이 생각에 잠겼다.
‘설마 도사연이 정말로 그 추일이라는 바둑돌인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럴 가능성이 꽤 큰 것 같았다. 도사연의 입에서 무슨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을 테니, 계연은 그 바둑돌을 아예 없애버리자고 결심했다. 그것은 힘과 지위를 모두 지닌 바둑돌이었으니 말이다.
‘도사연은 과연 지금 어디에 있을까? 천우주, 아니면 흑황?’
계연이 생각에 잠긴 듯 보이자 우패천은 방해하지 않고 조심스레 식사를 이어갔다.
그때, 계연의 표정이 돌연 변했고 우패천도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계연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우씨 어르신께서 웬일로 흥취가 일었나 봅니다. 여기서 요리를 한가득 시켜놓고 한가로이 즐기고 계시다니요, 하하하…….”
계연에게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주루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보고는 우패천의 맞은편에 앉은 계연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점소이가 얼른 문가로 다가가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손님! 몇…….”
손님은 점소이를 아예 무시한 채 우패천이 앉은 식탁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점소이는 머쓱한 듯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그와 우패천이 아는 사이인 듯 보이자 다시 제 할 일을 하러 갔다.
“하하하, 이 서생은 피부가 허여멀건하니 피도 아주 신선하고 부드럽겠군요. 어르신도 참, 잊지 않고 제게도 식사 거리를 챙겨주시다니요.”
낮게 중얼거린 그의 말은 떠들썩한 주루 안에서 오직 우패천의 주위에만 들릴 정도였다.
계연을 발견한 후 그는 주루 내 다른 손님들을 모두 무시한 채, 계연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곧이어 은은한 피 냄새가 계연을 향해 날아오더니 그의 온몸을 뒤덮어버렸다.
보통 요마들은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그는 상대를 관찰하는 능력이 남달랐고 보는 각도도 남들과 달랐다. 눈앞의 이 서생은 속세의 때가 묻지 않았고 기운도 깨끗하고 맑았다.
‘그야말로 인간 중에서도 극상품이로구나. 피도 분명 신선하고 맛있겠지!’
이 인간의 피를 흡수한다면 몸을 보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맛만은 틀림없이 훌륭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