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9화. 마작을 쳐도 되겠네
우패천은 상대의 말에 제가 더 뜨끔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색한 몸짓으로 요리를 집어 먹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상대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이내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마침내 우패천의 부자연스러움을 눈치챘다.
“우씨 어르신, 왜 그러십니까?”
“저자는 신경 쓰지 마시고 일단 앉으시죠.”
계연의 평온한 목소리에 남자가 깜짝 놀랐다. 여전히 저렇게 침착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니? 그가 다시 우패천을 바라보니 그의 안색이 무척 어두웠다.
“계모(某)의 그 정도 청도 안 들어주시려고요? 아, 오랜만에 만난 데다 제가 모습을 좀 바꿔서 금방 못 알아본 모양이군요, 시구.”
주루에 나타난 사람은 예전에 계연에게 잡혔다가 다시 천계맹으로 돌아가도록 놓아준 강시(僵尸)의 도를 닦는 시구였다. 계연의 말에 시구는 즉시 무릎이 풀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다행히 계연이 때마침 왼손을 뻗어 그를 부축해주어 망정이었다.
“어서 일어나세요, 의자는 여기 있잖아요. 앉으세요.”
“예, 예…….”
시구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물론 그는 언제나 숨 쉬는 척을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의자에 앉을 때도 엉덩이를 간신히 걸쳤을 뿐, 감히 편히 앉지 못했다.
시구는 이제야 우패천의 안색이 왜 저토록 어두웠는지 깨달았다. 아마 8할은 계연에게 강제로 붙들렸으리라. 그가 다시 우패천을 조심스레 쳐다보니, 우패천이 그를 향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아…….’
“선, 선생님, 조금 전에 제 말뜻은, 오해하지 마시고…….”
“피를 먹는다고요. 저는 청력이 뛰어나니 당연히 오해하지 않았어요.”
‘망했다!’
시구는 마음이 재처럼 바싹 타들어 갔다.
하지만 계연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이어갔고 때때로 술잔에 술을 따랐다.
맞은편에 앉은 우패천은 애써 뻣뻣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아무런 근심 없이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 강시 놈도 계 선생님을 아는 모양이었다.
‘일이 정말 재미있게 되었군.’
돼지고기를 거의 다 해치운 계연이 무어라 말을 하려던 순간, 또다시 계연은 누군가의 기운을 느꼈다. 곧이어 우패천과 시구도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오, 저 성격 더러운 소도 여기 있었군? 정말 생각지도 못했네. 저는 저쪽 기루에서나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누군가의 맑은 목소리가 주루의 문가에서부터 들려왔다. 점소이는 이 손님도 저쪽 식탁의 일행이라는 걸 눈치채고는 굳이 나가서 맞이하지 않았다.
새로 등장한 남자는 떨떠름한 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우패천이 앉은 자리로 걸어왔다. 그는 그제야 시구를 발견한 듯 놀란 얼굴로 덧붙였다.
“오호, 이 썩은 내 나는 놈도 여기 있었군? 쯧쯧, 오래간만에 요리 좀 먹으러 왔더니 아무래도 오늘은 못 먹겠네…….”
두 번째로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왕유홍이었다. 그는 자신의 한껏 도발하는 말에도 시구가 입을 열지 않자, 그제야 둘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둘은 왜인지 아주 단정하고 뻣뻣하게 앉아있었는데, 마치 자리가 불편한 듯했다.
왕유홍은 그제야 그들과 함께 어느 평범한 사람이 앉아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자는?”
‘아마 시구가 고른 식사용 인간이겠지?’
그러자 계연이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왕유홍을 향해 말했다.
“저는 계연이라 합니다, 이렇게 또 만나게 되었군요. 옛말에 사불과삼(*事不過三: 같은 실수를 세 번 해서는 안 된다)이라는 말도 있죠. 그러니 오늘은 도망치지 못할 겁니다. 스스로 자리에 앉겠습니까, 아니면 계모가 친히 앉혀드릴까요?”
대경실색한 왕유홍의 첫 번째 반응은 당연히 곧장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순간, 그는 자신이 절대 도망치지 못하리란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어쩐지 저 성질 더러운 소랑 냄새나는 강시가 나라를 잃은 듯한 표정으로 단정히 자리에 앉아있더라니!’
몰려오는 괴로움과 때늦은 후회에 뒤이어 그는 이제 울음이 차오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머릿속이 아무리 혼란스럽더라도 왕유홍은 계연의 말에 따라 고분고분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빈자리에 다가가 조심스레 앉았지만, 시구와 마찬가지로 간신히 엉덩이만 걸친 채였다.
왕유홍이 동시에 시구와 우패천을 살펴보니, 마침 그들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 세 쌍의 눈이 마주쳤다. 그들의 낯빛은 하나같이 모두 새카맸다.
‘이대로 마작(*麻雀: 네 사람이 상아나 골재에 대쪽을 붙인 136개의 패를 가지고 여러 모양으로 짝짓기를 하여 승패를 겨루는 실내오락)을 쳐도 되겠는걸.’
계연은 술잔을 들어 술을 마시며 느긋하게 생각했다.
계연은 이 상황이 재미있다고 느꼈고, 우패천도 그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구와 왕유홍 둘은 그렇지 않았다. 계연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태도로 대했으니 보통의 요괴라면 그에게서 어떤 압박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이 순간 그야말로 산이 짓누르는 듯한 압력을 느꼈다. 만약 시구와 왕유홍에게 계연이 언제 제일 두려우냐고 묻는다면, 이들은 계연이 가만히 미소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을 고를 것이다.
결국,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입을 뗀 것은 시구였다. 그는 계연의 앞에서 맹세한 적이 있었는데, 정식으로 한 맹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코 어겼다고 볼 수는 없었다. 최소한 엄청나게 위배하진 않았다고 자부했다. 이에 그는 초조한 와중에도 다급히 사정을 설명하고 싶어 했다.
“계 선생님, 저는…….”
시구는 돌연 말을 멈추고 우패천과 왕유홍을 흘끗 쳐다보았다. 이 둘은 천계맹에서 꽤 입지가 있는 이들로, 만약 자신이 선도의 고인과 얽힌 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일이 좀 복잡해질 터였다.
하지만 그는 계연 쪽이 훨씬 더 두려웠다. 이 난관을 넘지 못하면 육신과 혼백이 모두 소멸할 테니, 지금은 아직 미래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 말은 가장 설득력이 없었다. 이에 시구는 이를 악물고 품 안에서 작은 염낭을 꺼냈고, 동시에 계연에게 전음을 보내어 사정을 설명했다.
“계 선생님, 시구는 한순간도 약속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다행히 그간 제 수행의 특성을 이용해 조사에 얼마간 진전이 있었습니다. 살펴보십시오.”
계연이 염낭을 받아보니 그 위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걸 보니, 시구가 여러 겹의 처리를 해놓은 듯했다.
계연이 손에 든 술잔을 살짝 내려놓자, 술잔 안 액체의 중앙에서부터 점점 파문이 일었다. 주위는 여전히 소란스러웠지만, 실은 이제 그들 식탁과 다른 이들 사이에 한 겹의 막이 쳐진 상태였다.
그런 뒤 계연은 곧장 염낭을 열어보았다. 이에 시구는 속으로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우패천과 왕유홍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절대로 저 둘을 여기서 빠져나가게 둘 수 없었다.
염낭 안에는 금가루가 묻은 노란 종이 뭉텅이가 들어있었는데, 중앙에 무언가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계연이 종이를 펼쳐보니 바싹 마른 미꾸라지 같은 게 들어있었다.
“이건 용시충인가요?”
우패천과 왕유홍을 유심히 지켜보던 시구는 이때 그들의 얼굴에서 미묘한 표정 변화를 감지했다. 반면 계연의 모든 주의는 용시충에게 쏠려 있었다.
“따로 무언가 처리를 해뒀군요?”
“선생께 아룁니다, 그렇습니다. 천계맹에서는 아마 제가 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인물일 겁니다. 용시충은 천계맹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낸 건 아니지만, 지금은 천계맹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건 연시술(練尸術: 시체를 제련하는 술법)로 봉해놓은 뒤, 사금(砂金)과 노란 부적 종이로 감싸 기운을 숨긴 것입니다.”
시구는 진지한 표정이 되더니 계연 가까이 몸을 구부려 설명을 이어갔다.
“선생님과 은사(恩師)께서 하신 당부를 시구는 잠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에 용시충을 손에 넣은 후로는 즉시 술법을 펼쳐 그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보관해두었지요. 얼른 선생님께 보내드리고 싶었지만 내내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늘이 도우셨는지 선생님께서 이리 나타나시다니, 마침 이걸 드릴 수 있게 되어 다행이지 뭡니까…….”
이렇게 말한 시구는 다시 쓴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조금 전의 일에 대해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온갖 요마 사이에 있다 보니, 저도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 사람의 피를 먹는 것처럼 티를 내줘야 저도 의심을 받지 않아서요…….”
계연이 차가운 눈빛으로 시구를 바라보자, 시구는 즉시 서리맞은 가지처럼 축 처지더니 이내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용시충에 대해 잘 아나요?”
그러자 시구가 얼른 대답했다.
“천계맹에서 지위가 높은 이들도 저만큼 알지는 못할 겁니다.”
“음?”
“계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천계맹 안의 유일한 강시입니다. 조금 우습지만 제 자랑을 좀 하자면,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강시 중 저만한 경지에 이른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시도(*尸道: 사체에 관련한 도술) 연구도 저에 비견할 자가 없지요. 용시충은 원래부터 사체의 기운이 중요한 생물이라, 천계맹에서도 일부러 제게 그 연구를 맡긴 것입니다. 그들은 용시충을 다른 데 이용하려는 속셈이거든요.”
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해보세요.”
“예, 이 용시충은 대단한 생물이긴 하지만, 용족의 혈맥이나 수행을 통해 용족의 혈맥을 가지게 된 물의 족속과 요물만을 노립니다. 다른 존재는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잘 건드리지 않지요. 또한, 이 용시충은 번식력이 엄청납니다. 이들은 일종의 독주머니를 지니고 있어서 그 독을 통해 자신이 집어삼킨 용족의 살과 피를 용시충으로 바꿀 수 있으며 그 속도도 무척 빠릅니다…….”
시구가 돌연 설명을 멈추자 계연이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죠?”
그러자 시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이곳에 불려온 많은 이들은 구체적인 목적을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제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백성들을 납치하는 것 외에도 이 틈을 타 사람의 몸에 용시독(龍尸毒)을 시험해보려는 생각인 듯합니다.”
“용시충을 사람의 몸에 쓴다고요?”
계연이 놀라 눈을 가늘게 뜬 채 시구를 바라보자, 시구는 간담이 서늘해져 다급히 해명했다.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용시충은 오직 용족에게만 원념(怨念)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일컫는 것은 용시충이 지닌 독소입니다. 시도의 술법을 용시충에게 써서, 그 독소에 용시충의 원념을 약간 담게 하는 것이지요. 그럼 그것은 아주 음험한 시혼고(*尸魂蠱: 전설상의 독충)가 됩니다. 마침 저도 백성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어 고뇌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오셔서 정말 다행이지 뭡니까…….”
우패천은 그의 말을 듣다 속으로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천계맹 안의 모든 이들은 시구를 음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며 그를 혐오하고 있었는데, 실은 천계맹에서 그토록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니. 게다가 보아하니 시구는 계 선생님을 그냥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선생님을 도와 일을 꾸미기로 맹세까지 한 모양이었다.
다만 우패천은 시구가 정말로 계연을 도와 일을 꾸미긴 했지만, 얼마간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도 눈치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