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43화 (843/892)

843화. 일부러 흔적을 남겨 천기(天機)를 속이다

“참! 만약 도사연이 정말로 옥호동천에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군가는 분명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고 의심할 테지. 그렇게 조사하기 시작하면 혹시…….”

우패천이 일부러 이 화제를 꺼내자 왕유홍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하늘 어딘가를 가리켰다.

“마침 주 부인이 도망친 후에 실종되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시구가 미소 지으며 이제야 깨달은 듯한 얼굴의 우패천을 바라보았다.

“아하, 일리 있군!”

“맞네, 그렇게 된 일일세!”

우패천은 짐짓 걱정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뱉는 말마다 중점을 짚어냈다.

“계 선생님께서 대체 무엇을 하러 가셨는지는 우리가 생각할 일이 아니지. 그러니 내 생각으로는 우리도 빨리 여길 뜨는 게 좋을 것 같군…….”

우패천이 적절히 왕유홍과 시구를 일깨우자 두 사람도 그의 말에 즉각 동의했다.

“맞는 말이오!”

“그렇게 하세. 이 잔만 비우고 우리도 얼른 떠나세.”

우패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얼른 손에 든 술잔을 비웠다. 하지만 곧 성안 어딘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애석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에잇, 이곳의 아리따운 낭자들을 만날 기회를 놓치게 되었군……. 대국을 중시해야 하는 상황이라 남녀 간의 정을 살필 수 없으니 애석하구나. 휴우…….’

“어서 가세. 이보시오, 거스름돈은 필요 없으니 돈은 여기 두고 가겠소!”

시구는 호기롭게 은자 한 덩이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애석한 표정을 짓던 우패천이 그가 내민 은자를 보고 눈을 반짝 빛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성안에서 빛 세 줄기가 치솟더니 둔술을 펼친 한 무리의 요마들이 도망친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 * *

한편, 한발 먼저 주루를 나선 계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제 그는 배후의 인물이 ‘추일’이라 부르는 바둑돌이 도사연임을 확신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 추일이 바로 천우주가 혼란에 잠기게 된 주된 요인이었다. 바둑돌을 쥔 또 다른 인물도 이만하면 탐색을 끝냈을 테니, 이제 추일을 이용한 이번 수도 끝났다고 보는 게 옳았다.

다만 계연은 자신이 추일을 거둬들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계연은 이 ‘추일’을 아예 없애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계연은 노염생과 막역한 사이였고, 노염생은 건원종의 주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제 주 부인까지 만났으니 따져보자면 계연이 천우주에 와서 힘을 보태는 것도 이치에 맞는 일이었다.

“그래도 완벽을 기하는 편이 좋겠지…….”

계연은 인적 드문 성안 어느 곳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더니, 여전히 상공으로 모여드는 중인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시작은 그가 했지만, 지금 모여든 이 먹구름은 더는 술법이 아니었다.

계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온몸의 법력을 끌어올리더니 법전 한 꿰미를 전부 써버렸다. 그리고는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천지화생을 펼쳤고, 곧이어 그가 지닌 무형의 뜻이 천지의 오묘한 기운을 품은 채 천지화생의 술법과 함께 펼쳐졌다.

이내 그에게서 또 다른 ‘계연’이 떨어져나오는 듯하더니, 천지화생의 뜻이 널리 퍼짐에 따라 떨어져 나온 ‘계연’이 무수히 많은 빛으로 변해 흩어져 버렸다.

지금까지는 그 누구든 계연에 관해 점괘를 치면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고, 오직 청송도인만이 약간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계연은 일부러 법력을 펼쳐 천지에 흔적을 남겼다. 앞으로 누군가 계연에 관해 점괘를 치면 여전히 모호한 결과가 나오긴 하겠지만, 도행이 일정 경지에 이른 이들이라면 무언가를 포착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계연도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일개 수사였을 뿐이니 말이다.

“휴우…….”

깊이 한숨을 내쉰 계연은 오히려 우주와 더욱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자조하듯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한 줄기 빛을 내뿜으며 서쪽으로 날아갔다.

* * *

한편, 천우주 어느곳에서 노염생은 자신의 사형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있긴 했지만 둘 다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들의 수행이 아무리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다고 해도 언제나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천우주는 광활하고 세상의 요마는 셀 수 없이 많으니, 정도(正道)가 아무리 우세를 점하고 있다 해도 이 혼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비록 이전에 비하면 형세가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요마들이 벌이는 짓은 여전히 포악하고 음험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속세의 백성들이 놀랄 만큼 강인한 근성을 보여주었고, 인도(人道)에도 모종의 변화가 생겨나기라도 한 듯이 천우주 전체의 기운이 상승하기까지 했다.

노염생은 자신의 사형에게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었으나, 도원자는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렇게 두 사람은 무겁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 앉아있게 되었다.

만약 계연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진선이라 불리는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도원자가 속마음과 달리 표현이 무척 서툴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사제야…….”

“음?”

도원자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노염생의 놀란 듯한 목소리가 아무래도 자신의 부름 때문이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이에 그가 노염생을 바라보니 노염생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본인의 소맷자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가느다란 금빛 끈이 노염생의 소매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계 선생께서 부르신 건가?”

노염생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곤선승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분명 계연 때문이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과연 노염생의 추측대로 곤선승이 스르르 그의 팔목을 떠나더니, 은은한 금빛을 내뿜으며 한 줄기 유성처럼 휙 날아가 버렸다. 곤선승은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둘 다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계 선생께서 갑자기 곤선승을 부른 걸 보니 무슨 강적이라도 마주쳤나? 그건 아닐 텐데…….”

노염생이 곤선승이 날아간 방향을 향해 눈썹을 찡그린 채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보니, 도원자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사형, 왜 그리 쳐다보시오?”

“왜 그리 쳐다보냐고? 방금 그거 곤선승 아니냐? 계 선생님의 곤선승 말이다! 그게 내내 너한테 있었다니, 근데 그걸 나한테 한 마디 알리지도 않아? 너한테 곤선승이 있었으면 왜 진작 나한테도 만져볼 기회를 주지 않았느냐? 그러고도 네가 내 사제냐? 네 마음에 나라는 사형이 있긴 한 것이야?”

그러자 노염생이 잠시 입을 뻐끔대더니, 이내 찻잔을 들고 몸을 홱 틀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없소!”

그러자 도원자가 수염을 파르르 떨며 눈을 부릅떴고, 노염생은 한쪽에서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한 사람은 동현(*洞玄: 도교 경전이 동진(洞眞), 동현, 동신(洞神) 세 부분으로 나눠짐, 수행의 단계를 이르기도 함)의 경지에 이른 수선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진선이라 불리는 수선자였는데도 그들은 천 년이 넘는 수행의 세월을 어딘가로 갖다버리기라도 한 듯이 서로 뾰족한 말을 주고받았다.

도원자는 정말로 화가 난 상태였다. 곤선승처럼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 내내 자기 사제의 손에 있었는데, 그는 어찌 자신에게 만져 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단 말인가?

한편 노염생이 성질을 부리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곤선승은 어찌 되었든 계연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빌려준 것이었다. 그러니 숨기든 내보이든 전부 자기 마음이었다.

‘일개 건원종 장교인 사형이 무슨 자격으로 나와 계 선생에게 왈가왈부한단 말인가?’

그런 연유로 조용한 가운데서도 금방이라도 화약 냄새가 터져 나올 듯한 아슬아슬함이 느껴졌다. 그러다 이내 도원자와 노염생의 뇌리에 옛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주 오랜 예전에도 그들 사형제는 자주 말싸움을 벌이곤 했던 것이다.

잠시 후에 도원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계 선생께서 이왕 네게 곤선승을 빌려주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부르신 걸 보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그러자 노염생이 잠시 생각하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래 이 곤선승은 천우주의 혼란을 상대할 때 유용하게 쓰라며 계 선생께서 인편으로 내게 보내신 거요. 그러니 분명 그것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한 게 틀림없소. 아니면…….”

노염생은 더 말을 잇지 않았지만 도원자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들의 경지에 이르면 굳이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각자 찻잔을 들고 차를 마셨다. 어찌 되었든 계연은 자신들 쪽에 서 있는 인물이고, 이 세상에 계연을 곤란하게 할 만한 일은 별로 없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계연의 도행이 어느 정도의 경지인지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 *

한편, 계연은 비거술을 부려 서쪽을 향해 날아가면서, 법안으로는 천지간의 각종 기운을 읽어내고 있었다. 요마들이 일으키는 혼란, 속세에 일어나는 기운의 변화는 물론 정사(正邪) 세력 간의 싸움도 목격했으나 이중 어떤 것도 계연을 멈추지는 못했다.

며칠 뒤에 계연은 저 멀리에 수택(*水澤: 물이 질퍽하게 고인 못)의 기운이 충만한 망망대해가 펼쳐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하늘 저편에서 금빛이 반짝여서 계연이 고개를 들어보니, 곤선승이 한 줄기 금빛으로 변해 그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금빛이 가까워진 순간 계연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그것이 계연의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 곤선승은 다시 금색 끈이 되어 계연의 손목에서 약간 위로 올라간 위치에 저절로 휘감겼다.

계연은 미소 띤 얼굴로, 만약 이번에 운이 나쁘면 둘 혹은 둘 이상의 천요(天妖)를 상대하게 될 수도 있을 거라 짐작했다. 또한 공격을 주고받을 가능성도 있었으므로, 곤선승이 있으면 계연에게도 일종의 보험이 더해진 셈이었다.

하지만 계연은 충동적인 성격이 아니었고, 옥호동천이 여우족의 성지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옥호동천 내부가 정말로 철통처럼 단단한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그와 일면식을 나눈 도일도 도사연과 뜻을 함께하지 않는 게 확실했다.

계연은 이번에 옥호동천을 방문할 표면상의 이유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 바로 예전에 도일에게 했던 약속을 빌미로 옥호동천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곤선승을 다시 손에 넣은 계연은 강풍이 부는 바람층을 뚫고, 검둔술(*劍遁術: 검을 이용한 둔술)을 펼쳐 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그가 없는 동안 천우주에서는 정사 세력 간의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겠지만, 계연은 천우주의 정도 세력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천우주에서 서역 남주까지의 거리는 남황주에서 천우주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멀었다. 서역 남주는 계역 나룻배를 이용해도 수개월은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계연은 검둔술의 엄청난 속도로 강풍을 뚫고 구천(*九天: 가장 높은 하늘) 위를 날고 있었으므로, 가장 짧은 직선거리를 따라 날면 되었다. 곧이어 주위의 모든 풍경이 흐르는 빛처럼 눈앞에서 휙휙 지나갔다.

그가 부리는 둔술의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랐지만, 이 정도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구천에 오를 수 있어야 하고, 법력을 아끼지 않고 둔술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음(*至陰: 달)과 지양(*至陽: 태양)의 힘의 침범을 막아낼 수 있어야 했다. 계연이 오른 곳은 원기(元氣)가 희박하여 영감이 모호해지기 쉬웠고, 도행이 충분치 않으면 방향도 잃기 쉬워서 수행계에서는 일종의 금기시되는 바람층이었다. 다만 계연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금기라 할 만한 게 별로 없다고 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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