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52화 (852/892)

852화.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도흔 동생, 일단 앉아. 내가 마침 논검을 본 광경을 기록하고 있었거든. 마침 딱 재미있는 부분이니까 다 쓰면 보여줄게. 사흘간 본 논검의 현묘함을 약간이나마 깨우칠 수 있을 거야.”

도막은 자신을 진정시키며 다시 탁자로 돌아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안함 때문인지 그의 글에는 신의가 더는 담기지 않았다. 원래도 그저 그랬던 글이 지금은 더욱 어수선해 보였다. 그저 서체의 아름다움과 그림 실력만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도동도 그와 마찬가지인 상태라 도흔과 함께 계속해서 수각 쪽을 흘낏거렸다.

“참, 언니, 계 선생님께서 언제 주무셨는지 묻는 걸 잊었네.”

“아, 반 시진쯤 전에 주무셨어…….”

도흔이 다시 웃으며 불인명왕을 바라보더니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며 이렇게 물었다.

“이번에는 존자와 계 선생님께서만 방문하신 건가요? 저들이 제게 알려주지도 않지 뭐예요. 정말 못됐어요. 진선과 명왕께서 오셨으니 제가 마땅히 예를 올려야 했는데 말이에요.”

“선재,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번에는 나와 계 선생님 두 사람만 왔습니다.”

“맞다, 계 선생님과 불인 존자 두 분께서만 오셨어. 게다가 선생님께서는 이곳에서 한 걸음도 떠나지 않으셨지. 우리 모두 그분이 술에 취해 잠이 드신 걸 봤다.”

도일은 계연이 골짜기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술에 취한 후 법력을 펼친 어떤 흔적도 없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도동과 도막도 계속 계연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에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그간 도흔이 도사연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설령 계연이 취하지 않고 어떻게든 도사연을 찾아갔다면 그녀가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계연은 지금 취해서 수각 안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구미호 넷과 불문의 명왕 모두 계연의 기운에 시종일관 변화가 없었음을 알고 있었다.

네 구미호의 괴이쩍은 분위기 때문인지, 불인명왕은 그제야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속으로 가만히 도사연에 대해 점괘를 쳐보았다. 그러자 전에는 분명 흐릿하던 것이 지금은 단번에 답이 나왔다.

‘도사연이 죽었다니!’

불인명왕은 놀람을 금치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계연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지는 구미호들과 마찬가지의 의문을 품었다.

‘정말 계 선생이 한 것일까? 대체 어떻게 한 거지?’

탁자 앞에 앉은 이들은 이제 모두 도사연이 죽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게 계연이 한 일이라는 것도 알았으나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 모두 계연이 자신들의 눈을 피해, 도흔이 바로 옆에서 지키고 있던 도사연을 대체 어떻게 죽인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들도 계연의 도행이 아주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상황은 너무나 심오하고 알쏭달쏭해 자신들이 막 수행을 시작했을 당시 선배나 고인을 앞에 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도사연이 죽은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복잡한 심사를 지닌 채 여러 생각을 하면서도 그 누구도 계연을 깨우려 하지 않고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한편, 모두가 적잖은 기대를 품고 있던 논검에 대한 글은 도막의 마음이 불안정한 탓에 다음 날이 되어 서야 대충 마무리 지어졌다.

수각 앞에는 언제나 찬란한 햇빛이 쏟아졌기 때문에, 계연이 단잠을 자는 서재 안에도 항상 햇살 한 줄기가 비추고 있었다.

* * *

하루, 이틀, 사흘…….

아흐렛날 아침, 목탑 위에 누워있던 계연이 마침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정말로 취해 잠들었던 것이기 때문에, 눈을 뜨자마자 도일의 서재 내부를 호기심 어린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기지개를 늘어지게 펴는 동시에 나른한 하품을 내뱉었다.

“하암…….”

수각 밖에서 아흐레나 기다린 다섯 명은 즉시 계연이 깬 것을 알아차리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중에 수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주인인 도일뿐이었다.

수각 서재 안에서는 계연이 목탑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손발을 풀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걸 알았지만, 구미호는 평소에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했기에 온통 도일의 장서에 주의를 쏟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밝은 계연이 춘화가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그림책을 발견했다.

‘잘생기고 늠름한 외양을 지닌 도일도 이런 책을 본단 말이야?’

계연이 막 그 서책을 꺼내 확인하려고 할 때, 도일의 목소리가 서재 입구에서부터 들려왔다.

“계 선생님, 일어나셨습니까? 편히 쉬셨는지요?”

계연은 눈앞에서 그 서책을 꺼내 도일의 반응을 살펴볼까 아니면 이대로 놓아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은 책을 뽑지 않고 그에게 몸을 돌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막 일어났어요. 이렇게 깊이 잔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네요. 게다가 좋은 꿈도 꿨거든요.”

“계 선생님께서 잘 쉬셨다니 다행입니다. 밖에서 도우들이 조바심을 내며 기다린 지 오래거든요.”

도일의 말에 계연이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예? 조바심을 냈다고요? 무엇 때문에요?”

그러자 도일도 얼굴에 미소를 드리운 채 대답했다.

“당연히 계 선생님의 논검에 대한 감상을 듣고 싶어서지요. 어서 가시지요!”

그들은 함께 옥호동천에 소속된 데다 동족이었기 때문에, 도일도 처음에 그저 의리상 그들을 도와 사정을 숨겨준 것이었다. 그러니 도사연의 죽음은 그를 약간 놀라게 했을 뿐, 상심하거나 화가 나진 않았다. 그 여우는 원래 죽어 마땅한 존재였으니 그도 자연히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계연은 도일에게서 달리 숨겨진 악의나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만 봐도 도일은 다른 여우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게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예, 도우. 가시죠.”

계연이 먼저 서재를 나서자, 도일은 계연이 조금 전에 책을 뽑으려 했던 위치를 쓱 보고는 그를 뒤따랐다.

계연과 도일이 수각 밖으로 나오자, 밖에 있던 이들이 모두 일어나 계연을 맞이했다.

“계 선생님, 일전의 논검은 정말로 절묘하고 흥미진진했습니다!”

“맞아요, 선생님의 신선 같은 자태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 흩어지질 않네요.”

“저도 선생님과 일 오라버니의 논검을 꼭 보고 싶었는데, 그때 마침 일이 있어 오지 못했어요. 대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니 너무 아쉬워요!”

다른 이의 말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계연은 도흔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을 원수처럼 대하지 않는 정도라면 몰라도 이토록 숭배하는 모습이라니, 계연은 속으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일단은 겉으로나마 예를 차려야 했으므로, 그도 몇 걸음 다가가 양손을 맞잡으며 유감스러운 듯한 얼굴로 말했다.

“여러분께 우스운 꼴을 보였군요. 논검 도중에 제가 술김을 이기지 못해 취해버렸으니, 원만하게 끝내지 못하게 되었네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속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도일에게는 말이지.’

“하하하, 너무 겸손하십니다, 선생님. 이번 논검이 원만하지 못했다니요. 그보다 더 원만했다간 세상이 모두 질투했을 겁니다. 참,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도막은 여우들 중에서 가장 사리에 밝고 말솜씨가 좋은 이였다. 그래서 그는 대화를 마무리 짓고 다른 주제로 이어가는 게 능숙했다. 계연은 도일과 함께 탁자 앞에 앉은 뒤, 바닥 곳곳에 깔린 빈 술병들을 보며 웃으며 대답했다.

“잘 잤어요, 좋은 꿈도 꿨고요. 이렇게 통쾌하게 술을 마신 지가 무척 오래인데, 아낌없이 술을 내줘서 고맙습니다, 도우. 모두 앉으세요. 도일 도우에게 들으니 모두 논검에 대한 제 견해를 듣고 싶어 하셨다고요. 그럼 저도 마땅히 말씀드려야겠죠!”

불인명왕은 웃음기 띤 얼굴로 계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먼저 자리에 앉았다. 다른 이들도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계연을 따라 탁자 앞에 앉았다.

계연은 정말로 논검을 하며 느꼈던 자신의 감상이나 견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모두 숨김없이 말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어떤 깨달음은 검을 쓰지 않는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계연은 아직 표구하지 않은 도막이 쓴 긴 두루마리를 보면서, 애써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몇 마디 칭찬해주었다. 대략 글씨도 그림도 모두 뛰어나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아주 직접적인 평가로, 달리 말하자면 ‘그 외에는 별 볼 일 없다’는 뜻이었다.

도막이 쓴 글과 그림은 계연의 칭찬을 받았지만, 그의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당연히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어쨌든 이 순간 모든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도사연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옆구리를 찌르고 넌지시 떠봐도 계연은 그에 대해 한 글자도 내뱉지 않았다.

계연은 그저 자신이 운이 없었다며, 도사연이 옥호동천에 없는 걸 알았으니 자신도 더는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 자리에서 불인명왕과 도일은 방관자에 가까웠다. 수백 수천 년간 불법(佛法)을 닦아온 불인명왕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는 속으로 계 선생님의 연기력이 도행에 비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편, 도일은 도사연의 일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분명히 드러내며, 오히려 논검에 대한 계연의 감상을 더욱 귀 기울여 들었다.

하지만 그는 계연이 많은 내용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가장 듣고 싶은 건 최후의 그 일검이었는데, 그것은 계연이 술에 취해 끝맺지 못하고 쓰러졌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 * *

이틀 뒤, 계연과 불인명왕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떠났다. 계연이 지닌 천두호 두 병은 모두 술로 꽉 채워졌는데, 덕분에 도막의 저장고에 손해가 막심했다. 계연은 굳이 그의 요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술이 섞이는 것도 개의치 않고 콸콸 쏟아부었다.

도막은 입으로는 그저 술일 뿐이니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계연이 논검을 펼치는 사흘 동안 마신 양이 상당했고, 깨어난 뒤 이틀 동안도 적잖게 마셨으며, 떠나기 전에는 또 천두호 두 병을 꽉 채우기까지 해, 내심 가슴이 미어졌다.

계연과 불인명왕은 구미호 네 명의 배웅을 받으며 원래 왔던 길을 따라 옥호동천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뒤, 도일을 제외한 다른 구미호들은 저마다 울분을 쏟아냈다.

“휴우! 가증스럽기도 하지, 옥호동천 안에서 대체 어떻게 움직인 거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더욱 밉살스러운 것은 내내 우리 앞에서 도사연의 죽음에 대해 모른 척을 하고 있었던 점이에요!”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잘 잤고, 좋은 꿈을 꿨다고만 말한 게 다인데. 설마 꿈에서 도사연을 죽인 건…… 아니…… 겠지?”

도막은 끝으로 갈수록 황당한 가정이 떠올라 어조가 변했다. 물론 어떻게 한 건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밖에는 연결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아무래도 자신이 현기(*玄機: 깊고 묘한 이치)를 깨달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게 가능해?”

“하지만 그의 원신(*元神: 육체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생겨나, 수행을 시작하면 혼백을 주관하는 역할을 함)이 빠져나왔다면 나는 몰라도 언니와 오라버니들은 알았을 것 아니에요? 설령 신념(*神念: 수행자의 의지, 기억, 생각을 가지며 입정 후에 활성화되는 것으로, 영혼과 비슷함)으로 화신을 만들어냈더라도 분명 무언가 동정을 느꼈을 거예요. 게다가 화신이 어떻게 도사연을 죽일 수 있죠?”

그러자 도막이 멍한 얼굴로 도동과 도흔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꿈속이라고 했잖아, 그의 꿈속…….”

그러자 도일은 이들의 꼴이 우습게 느껴져 코웃음 치며 말했다.

“흥! 하나같이 이제 와 이를 가는 꼴이라니. 왜 계 선생께서 계실 때 직접 묻지 않고?”

“당신…….”

“도일!”

그러자 도막이 쓴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을 제지하더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얼굴로 도일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도사연이 동천 안에 없다고 거짓말을 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계연은 그 도행을 짐작조차 할 수 없고, 불인명왕도 결코 얕볼 수 없는 존재니까요. 게다가 도일 형은 우리를 돕지 않을 게 분명한데, 우리도 계연에게 대놓고 덤빌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랬다간 동천 안의 모든 여우족이 재앙을 당하게 되겠죠.”

“도막, 이젠 네가 알아서 해라.”

도일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 동천 안으로 돌아가 버렸고, 도동과 도흔에게는 곁눈질조차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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