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4화. 사맹(邪盟)의 붕괴 (2)
갑자기 일어난 눈앞의 변화에 모든 이들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하지만 눈앞의 사실이 증명하듯, 옥호동천에 있던 도사연의 진짜 몸은 정말 죽은 것이었다.
“정도의 수행자들은 도사연이 이미 도원자의 뇌법(雷法)에 죽은 거로 알고 있고, 그간 옥호동천에 숨어있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죽을 수 있지?”
“이유가 어찌 됐건 죽었잖나!”
요마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안색이 변했다. 처음의 경악이 어렸던 그들의 눈빛에도 서서히 의심과 두려움이 섞였다.
“설마 이 자리에 배신자가 있는 건 아니겠지?”
그 말에 누군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한껏 비꼬았다.
“그럴 리가, 만약 배신했다면 여기 왔겠나?”
그의 말과 동시에 주위가 다시 고요해졌다. 그때 내내 말이 없던 북목이 무언가 떠올린 듯했다.
북목은 주 부인이 실종된 후 직접 육오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북목이 보기에, 육오의 진짜 몸에 관한 비밀은 오직 그와 육오만이 아는 것이었다. 어쩌면 직감이 유달리 민감한 우패천도 알지도 몰랐다.
어쨌든 육오는 비록 성안에 머물진 않았지만 한번 들어가 본 적은 있었고, 성안에 주 부인이란 요왕이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본능적으로 그곳이 위험하다고 느껴 주 부인이 머무는 구역 가까이는 가지 않았다고 했다.
“왕유홍 자네들도 성안에 백여 갈래의 둔광(*둔술을 쓸 때 흘러나오는 빛)이 치솟을 때 함께 떠났는가?”
도사연의 죽음에 여전히 충격에 빠져있던 왕유홍이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설마 들킨 건가?’
하지만 그는 겉으로는 조금도 티 내지 않고 얼른 대답했다.
“그건 나도 모르겠네, 그땐 모두 급히 도망치기 바빠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그러다 나중에야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지…….”
“북마, 자네 무언가 알아차린 건가?”
그러자 북목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마 그놈들은 도망치던 중에 실종된 게 아니라 그전에 이미 실종된 것 같군…….”
“수선자가 한 짓인가?”
“흥, 주 부인일 수도 있지.”
그러자 땅굴 안이 다시 침묵에 휩싸였고, 누군가 재빨리 인사를 고했다.
“아무래도 이곳에 오래 머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듯하군. 도사연까지 죽었으니 나는 먼저 가보겠네!”
“나도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군.”
“나도 이만 가보겠네!”
“그럼 이만!”
곧이어 땅굴 안에 모여있던 요마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긴장과 흥분을 동시에 느끼던 왕유홍과 시구도 서로 눈짓을 교환한 다음 황급히 떠나갔다.
그렇게 자리에는 죽은 도사연의 화신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 * *
계연이 옥호동천을 떠나던 시각에도 흑황에서 온 수많은 요마는 여전히 속세에서 온갖 해악을 부리며 활개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천계맹 안에서 일정 자격이 되는 왕유홍을 비롯한 천계맹 일원들은 이미 엄청난 변수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우패천은 이때 어느 해안가 도시의 객잔에 머물면서, 보통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객잔의 대청에서 아침밥을 들던 우패천이 무언가를 느끼고는 즉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자 잠시 후 왕유홍이 다급히 들어와 낮은 소리로 말했다.
“흑황에서 온 놈들이 모두 물러나려고 합니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필시 수많은 백성을 납치할 겁니다!”
우패천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간을 찡그린 채로 자리에 앉는 왕유홍을 향해 물었다.
“물러난다니 어디로? 무슨 일이 생겼나?”
우패천 등이 납치된 평범한 사람들을 조사하는 일은 아직 진전이 별로 없었고 이들은 아주 은밀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러니 아직 들키진 않았을 터였다. 설령 누군가 알아차렸다 해도 직접 그들을 찾아오는 게 맞지, 이렇게 물러나진 않을 터였다.
그러자 왕유홍이 우패천을 바라보더니 남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대요(大妖)며 요왕들은 대부분 흑황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남은 놈들은 뭔지도 모르고 다른 이들을 따라온 잔챙이들뿐이니, 아무도 상황 돌아가는 걸 알려주지 않겠죠…….”
왕유홍은 말을 멈추고는,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낮춰 소식을 전했다.
“도사연이 죽었습니다…….”
우패천이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어떻게 죽었나? 자네는 그걸 어찌 알지?”
왕유홍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사실이죠! 일전에 비밀모임이 있었는데, 천계맹 상부의 인물뿐만 아니라 천계맹에 속하지 않는 흑황의 요왕들도 적지 않게 와 있었습니다. 도사연의 분신도 그곳에 있었는데, 도중에 갑자기 요기가 흩어지더니 죽어버렸지 뭡니까!”
우패천은 안색이 연달아 변하더니 객잔 입구를 흘끗 쳐다보다 왕유홍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얼굴 위로 알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그 계 선인께서 옥호동천에 도착했을 시간이군.”
그러자 왕유홍도 왜인지 심장이 철렁여서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분 외에 다른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우패천이 갈등하는 듯하더니, 망설이며 한마디 물었다.
“그 계 선생이 그리 대단한데, 우리도 훗날 도망치기 어렵지 않겠나? 정말로 모반을 일으켜야 할지…….”
그러자 왕유홍의 안색이 아주 달라지더니 왕유홍은 술잔을 쥐고 있던 우패천의 손을 꽉 잡으며 진지하고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만우(*蠻牛: 거칠고 난폭한 소라는 뜻) 당신, 잘 들으세요. 지금 일이 이미 이렇게 됐는데 아직도 빠져나갈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는 겁니까? 내가 경고하겠는데, 만약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거라면 당신은 곧 도사연보다 더 끔찍하게 죽게 될 겁니다. 그 여우는 구미호인데다 옥호동천에 숨어있었는데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비록 비바람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대요라고는 하나, 계 선생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게다가 잊지 마십시오. 계 선생님께서 당신 이마에…….”
그러자 우패천이 꽈드득 이를 깨물었다. 왕유홍은 우패천이 다시 그 순간의 두려움을 떠올리는 걸 알아차리고는 천천히 손을 풀었다. 우패천이 이내 술잔에 있던 술을 한입에 비워버렸다.
“제기랄, 알겠네!”
만약 계연이 우패천의 모습을 봤다면, 이 소 요괴가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다며 감탄했을 것이다. 지금 그는 누가 봐도 어쩔 수 없이 계연을 따르게 된 ‘억울한 요괴’의 모습이었다. 심지어는 왕유홍에게 우패천을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였다.
우패천은 마음을 굳게 먹은 뒤, 지금 막 생각난 것처럼 물었다.
“참, 시구는?”
왕유홍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사실 자신이 이 성질 더러운 소를 제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만약 이놈이 지금이라도 마음을 달리 먹고 자신과 시구에 대해 천계맹에 불어 버린다면, 자신들은 무척 위험한 상황에 놓일 것이다. 천계맹에서는 절대 자신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계연은 시구는 놓아줄지 모르나 자신은 그렇지 않을 수 있었다.
“시구는 한발 먼저 움직였어요. 강시들의 눈과 귀를 이용해 최대한 곳곳의 상황을 관찰하다가 무언가 발견하면 우리에게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뭐? 시구는 우리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고?”
우패천이 놀라 흥분한 목소리로 전음도 쓰지 않고 물었다. 다행히 이때 객잔 안에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계산대에 있던 주인만이 이쪽을 잠시 쳐다봤을 뿐이었다.
그러자 왕유홍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설명했다.
“시구는 시도(尸道)를 닦아 보는 이마다 경멸을 사기 쉬우니, 흑황의 요마들과 한데 어울리기 힘든 존재입니다. 다른 이들도 그에게는 더욱 경계를 세울 테고요. 그러니 대부분의 일은 전부 우리 둘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패천이 속으로 생각해보니 과연 그러했다. 시구 같은 늙은 강시와 가까워지고 싶은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는 썩어 냄새나는 시체인 데다가, 만나는 이들은 이 강시가 혹시나 자기 육신을 노리지 않을까 경계하기 바빴으니 시구에게 좋은 태도를 보일 리가 만무했다.
“휴, 그럼 어쩔 수 없겠군. 참, 나와 육오는 천계맹에 들어오기 전부터 관계가 돈독했으니, 어쩌면 그를 이용할 수 있겠어!”
“육오를?”
왕유홍은 미간을 찌푸린 채, 육 산군의 모습과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험한 기운을 떠올렸다.
“육오를 제대로 아는 이는 몇 없습니다. 게다가 점잖은 겉모습과 달리 실제 성정은 무척 음험하죠. 그는 모질고 위험한 자이니, 확신이 없다면 그를 끌어들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하, 걱정은. 나와 육오는 교분이 깊으니 내가 도움을 청하면 적어도 단칼에 거절하진 못할 거다. 게다가 나는 평소에 잔머리를 굴리지도 않고 직설적인 성격이니, 흑황의 요왕이 내게서 빼앗아간 수백 명의 아리따운 낭자들을 되찾아오고 싶다고 하면, 돕지는 않더라도 절대 날 의심하진 않을 거다.”
그러자 왕유홍이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우패천을 쳐다보았다.
‘이 성질 더러운 소가 남들 눈에 자기가 무식하고 포악하게 보인다는 걸 알고 있었군?’
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우패천이 방금 말한 낭자들을 되찾아오겠다는 핑계가 무척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시도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 왕유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들키지 않게만 조심하십시오. 저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상황을 살피겠습니다. 일단은 설치된 접인 진법들에 대해서 파악하는 게 먼저입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흑황의 요왕들을 찾아갈 방법을 생각해야 하니까요.”
상의를 마친 후, 우패천은 급히 식사를 마치고는 돈을 내고 객잔에서 방을 뺐다. 왕유홍은 그보다 한발 먼저 떠난 후였다.
* * *
2주 뒤, 우패천은 순조롭게 어느 땅굴 입구를 지키고 서 있게 되었다. 그는 진작부터 이곳을 지키던 몇몇 요괴며 정괴들과 가까워진 상태였다.
우패천은 자신이 다른 이들의 눈에 어찌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언제나 그것을 신경 쓰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보기에, 어떤 일은 적당한 정도만 지키면 직접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더 편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포악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는 성질을 부렸고, 형제라고 불러야 할 때는 거리낌 없이 형제라고 불렀다.
우패천은 자신의 화려한 언변을 한껏 발휘하여, 이곳 진법을 지키던 흑황의 요괴들에게 속세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묘사해주었다. 게다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가서 실컷 놀아야 한다고 부추겼다.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멍청한 놈들은 빼고, 다른 이들은 하나둘 발을 빼고 있으니 이제 곧 기회가 없을 거라고 말이다.
우패천은 아주 진심 어린 태도를 보이며, 앞으로도 좋은 형제가 되자며 그들을 대신해 진법을 지키고 있겠다고 했다. 요괴들은 그의 음험한 속내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주저하며 한참 고민하다 결국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다.
물론 이 요괴들이 진법이 깔린 범위를 벗어나 가장 가까운 도시 근처에 이르면 육 산군과 맞닥뜨리게 되어있었다. 이들은 결코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이 땅굴은 원래 거대한 땅강아지 요괴가 파놓은 것으로, 지하 깊은 곳에는 강물이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그 강물은 어느 단단한 지맥 위로 흐르고 있었는데, 바로 그 위에 접인 진법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종류의 진법은 지맥의 힘을 빌려 산과 물의 정령들이 쓰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사람이나 물건을 이동시킬 수 있었다. 이곳에 설치된 진법은 어느 해저까지 이어져 있었고, 바로 그곳이 바로 지맥이 끝나는 곳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지리적 이점을 가진 땅굴은 정도(正道)의 세력에서는 당연히 찾기가 어려웠고, 이에 필연적으로 여러 요마가 이용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이곳은 흑황의 요마들이 몸을 뺄 때 사용하는 길이 되었다.
이와 비슷한 곳은 사실 적잖이 있었기 때문에, 우패천 등은 각자 한 곳씩 맡아 수주대토(*守株待兎: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힘들이지 않고 요행으로 일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을 비유할 때 쓰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