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55화 (855/892)

855화. 단번에 대어를 낚다

길고 긴 해안선은 시야가 탁 트여 꺼려지기도 했고 정도의 수사들이 중점적으로 순찰하기까지 했다. 그런 연유로 우패천이 지키고 있는 이곳은 격일, 심지어는 매일 요마들이 지나다니게 되었다. 우패천은 규정에 따라 진법을 열어 그들을 차례로 통과시켜 주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 멀리서 은은한 요기가 느껴지는 구름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구름 위에는 몇 척의 커다란 누선(樓船)이 있었는데, 당연히 법보 같은 건 아니었고 특별한 것 없는 나무로 된 배였다. 모든 누선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전부 두려운 기색이 가득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왔구나!’

우패천은 가부좌를 튼 채 수련하던 상태에서 몸을 일으켰다.

상공에 있던 요괴들은 진법의 기운을 읽어내지 못했으므로 대략 여기 어디쯤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들은 상공을 몇 바퀴 돌다가 아래에 있던 우패천이 일부러 약간의 요기를 방출하자, 즉시 방향을 바꿔 진법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진법을 열어 들어가도록 해 주시오!”

아래의 풍경은 여전히 황량한 산기슭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구름 위에 있던 요괴들은 이제 아래에 진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디서 온 형제인가? 어느 요왕의 아래에 있지?”

누군가 이렇게 묻자 구름 위에서 어느 요괴가 즉각 대답했다.

“우리는 문안대왕(紋眼大王)의 수하들이오. 인축(*人畜: 인간 가축)이 될 인간들을 잡아 왔으니 지체하지 말고 열어 주시오!”

‘문안대왕?’

우패천은 잠시 생각해본 뒤 곧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거대한 두꺼비였다. 어느 대요가 사사로이 인간을 납치한 것이 아니라, 요왕의 수하가 나타난 걸 보니 이들은 인축국으로 보내는 인간들인 게 확실했다.

“아아, 금방 열어주겠네!”

우패천이 진기(*陣旗: 진법의 주요 위치마다 꽂힌 깃발)를 조정하자 진법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아래의 새카만 땅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구름이 여러 척의 누선을 태운 채 차례로 내려왔다.

“형제, 배 위에 아리따운 낭자들이 꽤 많군. 혹 내게 조금만 내줄 수 없겠는가?”

우패천이 탐욕에 가득 찬 표정을 한 채 선상의 여인들을 죽 훑었다. 여인들은 대부분 공포에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였는데, 개중에는 오줌을 지린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배 안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끽소리도 내지 않았다. 보아하니 오면서 적잖은 ‘가르침’을 받은 듯했다.

‘흥, 일개 요괴 주제에 감히 대왕의 물건을 넘봐?’

요운 위 누선 곁에 서 있던 팔(八) 자 모양의 축 처진 눈을 한 요괴가 차가운 눈빛으로 우패천을 힐끗 보았다. 하지만 우패천이 뿜어내는 요기는 강하기 그지없었고 온몸에 언뜻 요화(*妖火: 요기의 불길)마저 타오르는 걸 보니 엄청난 실력을 지닌 것 같았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이것들은 모두 대왕께 바치는 거라서. 하지만 한 명 정도는 내가 사적으로 처리할 수 있네.”

요괴는 가장 가까운 누선을 살펴본 뒤 순간적으로 휙 다가가 그중 가장 예쁘장하게 생긴 미인을 잡아 우패천 쪽으로 던졌다.

“꺄아악!”

여인은 놀라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지만, 다행히 우패천이 부드럽게 품에 안아 옆에 내려주었다.

“고맙네, 형제. 그나저나 이곳 땅굴은 곧 봉쇄될 터이니 다음번에는 다른 곳을 이용하게.”

“뭐라고? 좀 더 시일을 늘려줄 순 없나? 아직 몇 번은 더 갔다 와야 하네!”

요괴는 다른 동료들에게 눈짓하여 먼저 배를 이끌고 가라고 지시한 뒤, 다시 예쁘장한 인간 여자를 하나 끌고 와 구름에서 내려섰다.

“형제, 진법을 지키고 서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아네. 자, 정을 나누든 잡아먹든 원하는 대로 하게.”

창백한 얼굴의 미인이 또 한 명 등 떠밀려 오자, 우패천이 거절하지 않고 부드럽게 받은 뒤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요즘 정세가 위험해져서 말일세. 하지만 이 두 미인을 봐서 사흘은 더 여기 있어 주겠네.”

“사흘? 한 번 오갈 시간밖에 안 되는데, 2주는 안 되겠는가?”

그러자 우패천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되네, 안 돼. 그러다간 내가 큰일이 난다고. 절대 안 되네!”

요괴는 벌벌 떨고 있는 여인들을 바라보더니 다시 우패천에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세. 동천 안에 이번에 대왕께서 새로 건립한 인축국이 있는데 그곳에 자네를 초대하겠네. 인축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인간 가축들이 있으니, 그중에 미인을 고르고 싶은 대로 골라보게!”

그러자 우패천이 눈을 반짝 빛내며 물었다.

“자네 말을 믿어도 되겠는가?”

“나는 대왕의 심복일세. 친우 한둘 데리고 즐기는 것 정도는 별것 아니지.”

“그럼 알겠네. 2주까지는 내가 이 진법을 열어주겠다고 약속하지. 하지만 그래도 서두르게!”

“그럼 그렇게 정한 걸세!”

요괴는 흡족한 얼굴로 떠났고, 우패천은 어두컴컴한 땅굴을 바라보며 눈초리를 가늘게 떴다.

‘문안대왕이 새로운 동천 안에 인축국을 건립했다고? 그럼 대체 얼마나 많은 백성을 납치해간 것일까? 게다가 그 동천이 아무리 작다 해도, 일개 요왕의 힘으로 건설할 수 있을 리가?’

그렇다면 그 동천은 협력하여 건설한 것이 틀림없었다. 동천도 크고 세력도 클 테니, 천우주에서 잡혀간 백성들은 전부 거기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 몸이 단번에 대어를 낚게 생겼군!’

우패천이 아직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여인들은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그들은 우패천과 또 다른 요괴의 대화를 잘 듣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곧 잡아먹힐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미약한 울음소리에 우패천은 그제야 여인들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여인들이 한데 몸을 웅크리더니 입을 가린 채 눈물만 줄줄 흘렸다.

“으으흑…….”

그들이 가엽게 우는 것을 본 우패천은 마음이 아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이, 겁먹을 필요 없소. 나는 당신들을 잡아먹지도 않고 해치지도 않을 테니 말이오. 울지 마시오, 울지 마. 일단 좀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내가 요리도 해 주겠소. 배가 고프지 않소?”

우패천은 후각이 뛰어났으므로 두 여인이 놀라 오줌을 지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잔뜩 겁먹은 모양을 보아하니 순순히 협조하진 않을 듯했다.

“내가 보니 일단은 몸을 씻는 게 좋을 것 같소. 이 안에는 방도 있고, 뜨거운 물과 목욕통도 준비되어 있소!”

우패천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입으로 빛 한 줄기를 쏘아 보내자, 그 안에 물이 가득 찬 목욕통이 나타났다. 동시에 물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더니, 김이 폴폴 솟으며 적당한 온도가 되었다. 우패천은 언제나 이런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땅굴 옆에는 돌문이 하나 나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들은 잔뜩 웅크린 채 조금도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자 우패천이 속으로 탄식하더니 일부러 표정을 굳히고 소리쳤다.

“내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요. 나는 낭자들을 잡아먹지 않을 테지만, 만약 계속 질질 짠다면 그때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군!”

그러자 겁에 질린 여인들이 우패천이 건네는 옷가지를 받아들고 석실로 향했다. 그녀들이 사라지자 우패천이 결국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패천은 곧 옆에 있는 건물로 가서 자신이 준비해놓은 식량을 꺼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불을 피우고 재료를 다듬었다. 잠시 후, 그는 백절계(*白切鷄: 닭을 통째로 끓여 조각내 자른 요리) 한 접시와 뜨끈한 김이 솟는 쌀밥 한 솥, 채소 요리 두 종류에 과일을 한 접시를 올려냈다.

우패천은 이제 급할 게 없었다. 문안대왕의 수하는 반드시 이곳을 지날 것이니, 여기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비록 문안대왕의 심복이 자신을 데리고 인축국에 가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자의 말만 믿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진 않을 생각이었다.

약 반 시진(한 시간)이 흐른 뒤, 우패천은 석실 안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듣고는 최대한 온화한 목소리로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낭자들, 물이 다 차가워졌겠소. 어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시오. 요리가 준비되었소.”

안에 있던 여인들은 조금도 지체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뒤 간단히 머리 모양을 내고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우패천은 그들을 기다리고 서 있다가 어딘가를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보시오, 낭자들. 비록 소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럴듯한 식사를 차렸으니 어서 함께 듭시다.”

김이 솟는 따끈한 쌀밥과 요리는 여인들에게 더는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었다. 그들은 지난 2, 3일 동안 물밖에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녀들은 옆에 요괴가 있었음에도 잠시 망설였을 뿐, 이내 자리에 앉아 밥술을 떴다. 그들은 처음 얼마간은 조금 긴장한 듯하더니 뒤로 갈수록 허겁지겁 음식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 * *

하늘이 어두워진 시각.

어디선가 요기가 어린 빛 한 줄기가 날아오자, 우패천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곧장 진법 내부로 상대를 맞아들였다. 그는 바로 황색 장삼을 입은 육 산군이었다.

우패천은 이미 그를 기다린 지 꽤 된 참이었다. 육 산군은 한쪽의 석실을 흘끗 바라보더니, 별말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연심고(*連心蠱: 모자지간인 고충(蠱蟲)을 나눠 몸속에 침투시키면 두 사람 사이에 마음이 통하게 된다고 함)를 이용해 날 부르다니, 뭐라도 발견했나?”

육 산군이 이렇게 말하며 어두컴컴한 땅굴 깊은 곳을 쳐다보았다. 그는 예민한 후각 덕분에 이곳에 얼마간 남은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네, 전에 들었던 소문이 사실이었어. 천우주에서 실종된 사람들 대부분은 모두 인축국으로 보내진 게 확실해. 게다가 그 인축국은 새로 지은 거라는군. 문안대왕도 참여한 이 중에 하나고 말이야.”

“문안대왕? 그 독두꺼비 말인가?”

“문안대왕을 제외해도 참여한 이들이 절대 적지 않을 걸세. 문안대왕의 심복이 두 시진쯤 전에 이곳을 지나갔거든. 그리고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약속도 했지…….”

우패천은 일전에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었다. 육 산군은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는 곧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심이 섰다.

“왕유홍에게는 알렸나?”

“아직. 하지만 자네가 계 선생님께 알리는 것 말고도, 내가 왕유홍에게도 따로 계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할 거야. 만약 흑황에서 온 이들이 완전히 떠나기 전에 선생님께서 돌아오지 않으시면, 왕가 놈에게 천우주 선도의 명문(名門)들에게 알리라고 할 생각일세.”

그러자 육 산군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 좀 더 안전하겠군. 저 방 안에는…….”

“아, 그렇지! 나 좀 도와서 저 두 낭자 좀 어디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게. 아요(阿瑤), 옥정(玉婷), 어서 이리 나와 보아라.”

육 산군이 석실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두 여인이 천천히 걸어 나와 우패천의 뒤에 몸을 숨겼다.

“괜찮다, 괜찮아. 저자가 너희들을 데려다줄 거다.”

“저, 저분은 요괴인가요?”

“저분은 요괴…….”

그러자 우패천이 몸을 돌려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나도 요괴가 아니냐? 요괴라고 해서 모두 사람을 잡아먹는 건 아니다. 저자도, 그…… 음……. 어쨌든 그가 너희들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줄 거야.”

육 산군은 겉으로는 별다른 내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여러 흥미로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두 여인은 조심스럽게 육 산군에게 다가갔고, 떠날 준비를 마친 육 산군이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게 우패천에게 전음을 보내 물었다.

“두 시진(*네 시간)?”

“헤헤, 왜, 육가 자네 궁금한가? 이 몸이 좀 가르침을 줄 수 있네만!”

“흥!”

육 산군은 코웃음을 치더니, 휙 소매를 휘둘러 바람을 크게 일으켜 두 여인을 함께 데리고 날아갔다.

“어이쿠, 낭자들이 연약하고 최근에 큰 충격도 받았으니 제발 조심 좀 하게!”

우패천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육 산군은 대꾸도 하지 않고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바람을 좀 더 부드럽게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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