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0화. 형제가 다시 상봉하다
성문 입구에는 계속해서 수레가 들어오고 있었는데, 크기는 농촌에 있는 일반적인 수레와 비슷했고 한 사람이 밧줄로 그것을 끌고 있었다. 뒤에서는 두 사람이 좌우로 서서 수레의 평형을 맞추고 있었다.
맨 앞에서 징을 울리는 두 사람을 빼면, 그 뒤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수레가 성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무극아, 왜 소나 말이 수레를 끌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좌무극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전부 사람이 끌고 와요. 가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사부님, 저기 저쪽에, 요괴예요!”
좌무극이 입술을 한껏 내밀어 성벽에 붙어서 다가오는 이들을 가리켰다. 이내 세 사람은 그들에게서 옅은 장기(*瘴氣: 불결하고 독성이 있는 기운)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볼 수 있었고, 다른 이들에 비해 표정도 한결 가벼워 보였다.
“연 대협, 육 대협, 좌 대협…… 여러분도 여기 계셨습니까?”
누군가 잔뜩 목소리를 낮춰 이렇게 물어왔다. 세 사람이 고개를 돌려보니 구레나룻이 덥수룩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 주위에는 네다섯 명의 일행이 보였는데 전부 무인이었다. 세 사람은 이들이 누구인지 기억나진 않았지만, 만난 적이 있는 게 분명했으므로 이들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휴우, 이젠 희망이 없는 듯합니다. 저기 웃고 있는 이들은 보아하니 요괴들의 앞잡이인 모양입니다!”
그러자 좌무극이 이렇게 일깨워주었다.
“저들이 바로 요괴예요.”
그 말에 무인들은 목이라도 졸린 것처럼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들이 보기에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는 요괴는 모두 대단한 실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무인들은 누가 진정으로 둔갑한 것이고 누가 환술을 쓴 건지 구분하진 못했지만, 어차피 둘 중 어느 쪽이든 맞서 싸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그 모습에 연비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흥, 성문 쪽의 저놈들은 별것 아니오. 내 비록 무기는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죽일 수 있을 정도요.”
무인들은 그다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 대협이 팔팔할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중상을 입어 얼굴에 혈색도 없는데, 어떻게 둔갑한 요괴들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세 사람은 무인들이 믿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구태여 설명하지 않고 계속 관찰을 이어갔다.
“총 열두 명이네요. 성벽 안에 여섯, 바깥에 여섯이요. 아마 식량을 나르러 온 이들을 감독하러 온 것 같아요.”
좌무극이 느껴지는 감응에 따라 말하자 옆에서 듣던 무인들이 놀라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성문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꽤 되는데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육승풍은 다친 왼손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다 주먹을 쥐어 근육과 뼈의 상태를 확인한 후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먼저 저들을 방심하도록 한 뒤 우리 세 사람이 한꺼번에 공격하면, 저들이 하늘을 날지 않는 이상 30 초식(*招式: 공격이나 방어를 하는 기본 기술을 연결한 연속 동작) 안에 전부 죽일 수 있다.”
예전에 들어 알고 있던 말이든 직접 겪은 경험이든, 그들은 이미 모든 요괴가 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요괴는 비교적 실력이 대단한 놈들이었다.
좌무극도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25 초식 안에도 가능해요. 저 앞에 세 명은 쉬운 놈들이니, 일 합 만에 죽일 수 있을 거예요. 뒤에 남은 놈들과는 정말로 싸우게 될 거고요.”
“대협들, 부디 심사숙고하십시오!”
“맞습니다, 세 분 대협, 다시 생각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희는 지금 저 요괴들의 구역인 인축국에 끌려온 상황이 아닙니까!”
연비 일행은 그들의 말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요괴들에 대해서도 그저 감응에 따른 기운을 읽고 계산을 해본 것일 뿐 진짜 나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인축국’이라는 말에 그들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인축국이요?”
연비가 방금 말한 남자를 향해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식량을 운반하는 이들은 우리처럼 고향에서 잡혀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조상대부터 대대로 여기서 살던 이들이지요. 누군가 저들 중 한 명과 접촉해보니, 이곳이 인축국이라고 했답니다. 요마귀괴(妖魔鬼怪)들이 집단으로 사람을 가축처럼 길러, 먹고 싶을 때 언제든 골라 먹을 수 있는 곳이요…….”
“뭐라고? 우리를 가축처럼 여긴단 말이오?”
육승풍이 놀라 이렇게 소리치자 방금 말한 무인이 얼른 그를 안심시켰다.
“육 대협, 진정하세요. 듣자 하니 요마들도 아무 때나 식인을 하는 게 아니라 가끔가다 사람을 골라간다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늙어 죽을 때가 돼서야 잡아먹는다고 하니, 수십 년은 안락하게 살 수 있다는 소립니다. 심지어 그냥 노환으로 죽는 이들도 있다 합니다. 저희는 아직 장년이니 분명…….”
연비의 얼굴은 무겁게 가라앉았고 좌무극도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 좌무극이 두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빠드득 이를 갈며 두 주먹을 꽉 쥐자 그 기세에 놀란 무인이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가축이 되어 비굴하게 살다가 요괴들에게 잡아 먹힐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입니까?”
좌무극은 명백히 분노가 극에 달한 모습이었으나 목소리는 평온하기 짝이 없어 듣는 이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그때, 연비는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뒤이어 좌무극과 육승풍도 무언가를 감지했다. 이에 세 사람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멀리서 회색 먹구름이 날아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모두 엄청난 요괴가 나타났다는 걸 깨닫고 잠시 가슴 속의 분노를 억눌렀다.
하지만 연비 일행과 달리 다른 이들은 전혀 그 먹구름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 * *
먹구름 위에서는 우패천 일행과 문안대왕의 수하인 몇몇 요괴들이 서서 성문 주위에 빽빽이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패천은 인파 속에서 연비의 기운을 감지하고는 깜짝 놀랐다.
“우 형제, 일단은 저쪽을 한번 둘러보도록 하세. 저 성은 수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으니 분명 자네도 만족할 만한 인간을 고를 수 있겠지!”
“그렇다면 마형 말대로 일단 저쪽 성문 근처로 가서 살펴보는 게 어떻겠소?”
“하하하, 안 될 게 뭐 있겠나!”
말요괴가 호탕하게 웃더니 그들이 탄 구름의 고도를 낮췄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인축국의 규율을 따르자면 사람들 앞에 요마의 본모습을 드러내면 안 되었는데, 이는 최대한 ‘가축’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면 ‘가축’들은 스스로를 속이며 거짓된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우패천은 스스로 찔리기도 했고 연비가 자신을 보고 함부로 입을 놀릴까 걱정스러워 자신에게 약간의 술법을 걸었다.
요괴들이 웃으며 인파를 바라보던 중, 말요괴가 돌연 손가락으로 연비 일행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의 기혈이 왕성한 걸 보니 전부 무인인 듯하군. 무인들의 고기는 쫄깃쫄깃해서 씹는 맛이 있다네. 이번 만요연에서 저런 상품(上品)은 전부 잡아다 대왕들께 바칠 예정이지.”
우패천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등 뒤에 선 흰옷 입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인의 안색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걸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복잡한 심경으로 말요괴의 말에 대충 맞장구쳐주었다.
‘연 형제를 하필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계연은 이때 연비, 육승풍 그리고 좌무극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세 사람을 살펴보니, 특히나 좌무극에게서 아주 희미하지만 특별한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사람의 화기(火氣)나 요기(妖氣) 혹은 기혈과는 다른, 황실 사람들이 지닌 자미의 기운과 비슷한 것이었지만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였다.
이에 계연은 좌무극을 비롯한 무인들에게 일어날 변화가 더욱 기대되었다. 도리로 보든 인정으로 보든, 저 무도(武道)의 천재들이 요마들의 동천에서 요절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계연과 우패천은 연비 일행이 인파 사이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연비를 비롯한 세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그저 더욱 대단한 요괴가 나타났으며, 자기들 사제 세 사람이 주시당하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요괴들은 자신들의 기척을 숨길 생각도 없는 듯이 빤히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연비 일행은 무도의 일정 경지에 오른 이들로서, 영각(靈覺)과 비슷한 감응을 느낄 수 있었는데, 심지어는 여느 수선자들보다 더 민감한 수준이었다. 이에 그들은 요괴들이 내뿜는 압박감과 살의를 낱낱이 느낄 수 있었고, 자신들이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할 거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성문 밖에서는 더는 수레가 들어오지 않았고 인파는 점점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곧 식량을 쟁탈할 시간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댕댕댕댕-!
징을 치던 두 사람은 천천히 옆쪽으로 비켜서더니 이내 동작을 멈췄다. 그러자 귀를 찌를 듯 높던 징 소리가 돌연 뚝 끊겼다.
그러자 누가 가장 먼저 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순식간에 사람들이 수레가 있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으윽!”
“우린 배가 고프다고!”
“밀지 마, 밀지 마!”
조금 전까지는 의욕을 잃은 듯 보였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흥분하며 서로 밀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들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좌무극 근처에 있던 무인 중에도 적잖은 이들이 수레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요괴들의 주의를 끌까 봐 무공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힘으로 우세를 점해 앞으로 나설 수 있었다.
“어이, 어이! 빨리 가서 가져가라고! 누구든 배를 곯아 죽기 직전이 되면, 그놈들을 가장 먼저 잡아먹어 버릴 테니까. 피를 뽑고 가죽을 분리한 뒤 심장을 파내고 골수를 빼먹어 주지!”
갑자기 우패천 옆에 서 있던 말요괴가 이렇게 겁을 주며 윽박질렀다. 그 목소리에는 듣는 이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기운이 담겨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허억…….”
“난 죽고 싶지 않아!”
“내 거야, 이건 내 거라고!”
“저리 비켜!”
“나도, 나도 조금만…….”
말요괴의 말에 인파가 더욱 혼란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서로 밀고 밀리며 서로 간에 적의를 드러냈고 점차 폭력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연비 일행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 구레나룻이 덥수룩한 사내와 그의 동료인 듯한 무인 두 명만은 충동을 억누른 채 연비 일행과 함께 가만히 서 있었다.
“여러분은 안 가시오?”
연비가 그들을 쓱 쳐다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세 사람은 무살원강의 힘을 지니지 않은 일반 무인들이었고, 조금 전 어느 요괴의 말에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그래도 꾹 참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연비의 물음에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가 고프긴 하지만, 아직 버틸 만합니다…….”
구레나룻을 기른 사내가 이렇게 대답하는 순간, 인파 사이에서 갑자기 싸움이 벌어졌다. 체격이 크고 힘이 센 사내 두 명이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더니 흙이 묻은 옥수수 등의 식량을 옷 안에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밀쳐진 사람들은 화가 나 다 함께 그들을 때리기 시작했고, 그들이 챙긴 식량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소동 와중에 잽싸게 땅에 떨어진 식량을 챙기는 이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