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2화. 하룻밤 만에 지는 꽃이 아니었다
좌무극은 창으로 찌르는 듯한 동작을 거둬들이고는 편장을 든 채 꼿꼿이 섰다. 조금 전에 처리한 요병이 최후의 한 명이었으므로 요병 다섯 명이 전부 그의 손에 죽은 것이다.
연비와 육승풍은 내내 싸움을 지켜보며 여차하면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좌무극이 홀로 저 요병들을 능히 쓰러뜨리자, 그의 두 사부는 뿌듯한 동시에 가슴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사위가 다시 쥐 죽은 듯 고요해졌을 때, 육승풍이 대뜸 큰소리로 외쳤다.
“잘했다! 잘 죽였다!”
비교적 점잖고 과묵하던 연비마저 손뼉을 치며 그를 격려했다.
“무극아, 아주 잘했다!”
그들은 언제든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으므로 기혈이 전보다 더욱 왕성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차피 저 요괴들의 주의를 끌었으니 이제는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그들은 제자를 향해 격려와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떳떳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좌무극은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사실 속마음은 두 사부만큼 흥분한 참이었다. 심장이 전보다 몇 배는 빨리 뛰었지만, 편장을 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좌무극은 자신을 향해 포악하게 소리치던 요괴의 눈에 핏빛이 떠오르고, 이내 무시무시한 요기가 실체를 갖춘 듯이 그의 주위로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서서히 범위를 넓히자 그들이 있는 구역에는 어두컴컴한 먹구름이 드리운 것 같았고, 동시에 요괴에게서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자신마저 겁을 먹을 정도의 장면을 바라보며, 좌무극은 상대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에 그는 오히려 기개가 솟아나 그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나 좌무극의 심장을 파먹겠다는 거냐? 네놈도 어서 와서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여라!”
좌무극은 이제 더 두려울 게 없는 것처럼 말요괴를 도발했다.
그러자 말요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요기가 더욱 강력해지더니, 형체 없는 불길처럼 타올랐다. 주위에는 요사한 바람이 ‘휘이잉’ 소리를 내며 불어닥쳤고, 하늘도 더욱 어두워졌다.
좌무극이 겁 없이 대요(大妖)를 도발하자 우패천도 깜짝 놀랐다. 설령 좌무극이 말요괴가 어느 정도 경지의 요괴인지 모르더라도, 자신이 상대하기 어렵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런 말을 하는 건 그야말로 자기 무덤을 파는 짓이었다.
원래 우패천은 기지를 발휘하여 말요괴가 나서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연비 일행 세 사람이 함께 덤빈다면 일반적인 둔갑 요괴는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하하하하…….”
좌무극의 도발에 말요괴는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그의 옆에는 사람으로 둔갑한 수하가 몇 명 더 있었지만, 그는 이제 저들이 나서도록 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 그는 직접 저 세 사람을 처리한 다음, 저들의 심장을 한껏 맛볼 생각이었다.
“우형. 일개 인축이 감히 나를 도발했는데, 내가 나서지 않으면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소?”
이에 우패천은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웃으며 손을 뻗었다.
“어서 가시오, 마형. 하지만 너무 빨리 끝나면 재미없으니, 살살 해주시오.”
우패천은 이렇게 말하는 동시에 은밀히 아리따운 낭자 두 명을 쳐다보았다. 계연과 노염생은 보통 여인처럼 겁에 질린 듯한 척을 관둔 채, 좌무극을 비롯한 세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이 순간 그녀들을 주의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흥, 당연히 너무 빨리 목숨을 끊어줄 순 없지!”
노염생은 눈을 빛내며 전음을 통해 제 생각을 전했다.
“계 선생님, 저 세 사람은 보통 인물들이 아닙니다. 더욱이 몸에는 특별한 기운까지 감돌고 있으니, 절대 여기서 죽도록 놔둘 수 없습니다!”
“노 선생께서는 나서지 마시고 일단 가만히 지켜보세요.”
계연은 담담히 대꾸했으나, 의식 세계 안의 그의 법상(法相)은 소매를 한번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산 정상에 놓인 단로에서 쿠궁! 소리가 나더니 단로의 뚜껑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단로 안의 진화가 하늘을 뒤덮을 듯이 치솟으며 단기가 파도처럼 넘실댔다.
‘관을 쓰려는 자는 반드시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법이지.’
곧 단로 속의 단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한 조각의 구름이 되어 상공의 반짝이는 별들을 향해 치솟았다.
말요괴가 천천히 한 발짝씩 내딛자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땅에 떨어진 식량을 잽싸게 들고 도망치는 이도 있었다.
“하하하…… 축생들은 모두 죽기 직전 미친 듯이 울부짖는 법이지. 겁을 먹고 바보처럼 서 있는 저들을 한번 보아라. 죽음을 보고는 나서지 않고, 음식을 보고는 빼앗으려 하니 무슨 성현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도 결국 자기기만일 뿐, 인축국에서는 모두 진정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지.”
그가 뿜어내는 요기와 주위의 광풍이 더욱 거세지며, 수레들이 바람에 밀려났고 수많은 양식과 과일 등이 땅에서 굴러다녔다. 사람들은 그의 기세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고, 좌무극과 연비, 육승풍만이 꼿꼿하게 제 자리에서 서 있었다.
연비는 예전에 우패천과 육 산군 간에 벌어졌던 싸움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일개 무인으로서 싸움에 끼어들기는커녕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지금 그는 명백히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고, 아마도 여기서 죽을 것이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몽둥이를 고쳐 쥐었다.
두 사부가 마음을 굳게 먹고 침착하게 상대를 주시하는 것과 달리, 좌무극은 두 눈에 핏빛이 번진 채로 편장을 꽉 쥐고 소리쳤다.
“개소리하고 있네-!”
좌무극은 자신의 두려움을 모두 날리려는 듯이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진기가 요동치며 무살원강의 기운이 폭발했다. 그것이 요기와 부딪치자 주위가 진동하며 둥근 빛무리가 떠올랐다.
“성현의 말씀이 만민을 교화한다는 이치는 인간이면 모두 알고 있다. 우리야말로 만물의 영장이지. 너 같이 털이 숭숭 나고 피나 빨아먹는 축생들이 어찌 우리 인간들을 두렵게 만들 수 있겠느냐?”
좌무극이 편장을 발로 툭 차더니, 불어오는 바람을 거스르며 온 힘을 다해 앞으로 편장을 찔렀다. 그 속도는 말요괴마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말요괴는 곧 분노를 담아 편장을 향해 장법을 날렸다.
콰앙……!
편장의 첨단이 말요괴의 손바닥과 부딪치자 한바탕 굉음이 울렸다. 좌무극의 편장은 반달처럼 구부러졌으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부러지진 않았다. 그 순간 연비와 육승풍도 동시에 움직이더니 각기 좌우로 말요괴를 향해 덤벼들었다.
나무 몽둥이는 장검처럼 가벼운 소리를 냈고, 그 위로 순수한 검의와 검기가 맺혔다. 그 날카로운 기운에 말요괴의 태양혈이 마치 꿰뚫릴 것만 같았다. 육승풍의 주먹은 마치 불길처럼, 바람을 뚫고 요괴의 등허리를 노렸다.
챙-!
퍼억!
“하압!”
“썩 꺼져라!”
쿠궁……!
공기가 찢겨나가는 듯한 충격파와 동시에, 좌무극을 비롯한 세 사람은 피를 내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우패천을 비롯한 이들은 말요괴의 몸에도 붉은 자국이 난 것을 똑똑이 보았다. 이내 말요괴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좌무극을 뒤쫓아 오른손을 맹수의 앞발처럼 그러쥐더니, 그의 심장이 있는 곳으로 뻗었다.
“무극아!”
“조심해라!”
연비와 육승풍이 두 눈이 휘둥그레진 얼굴로 소리치자 좌무극은 곧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을 직감했다.
‘꿈도 크군!’
좌무극은 공중에서 편장을 휙 돌리더니, 한쪽 발은 뒤로 뻗고 다른 발로 편장을 지면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편장을 가슴 앞에서 아래로 내리눌렀다. 편장이 거의 보름달에 가깝게 휘자, 무살원강의 기운이 담긴 기세가 뿜어져 나오며 그의 몸과 편장이 마치 몽롱한 달처럼 보였다.
곧이어 바람이 사납게 불어닥치며 상대를 정확히 볼 수 없게 된 순간, 좌무극이 손을 놓았다.
“죽어라!”
말요괴가 분노에 차 소리쳤다. 그는 자신이 펄떡펄떡 뛰는 싱싱한 심장을 손에 쥔 모습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 아주 맛있을 것이다.
휘익-!
잔뜩 구부러진 편장이 무살원강의 기운을 담은 채로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말요괴의 손톱이 좌무극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려던 순간, 편장은 요괴의 뒤통수에 꽂혔다.
퍼억……!
쿵-!
말요괴는 그 엄청난 충격에 둔갑한 모습이 거의 환영으로 돌아갈 뻔했다. 그는 곧 머리부터 고꾸라져 청석(*靑石: 푸른빛을 띤 응회암)이 깔린 바닥에 내던져졌다. 그가 떨어진 청석판에는 균열이 갔고, 그는 지면에 몇 촌(寸) 정도 박히기까지 했다.
좌무극은 상대의 낭패한 꼴을 보더니 비틀대며 뒤로 물러나면서도, 입가에 피를 흘리며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하하하하……. 오늘 이것은 나 좌무극의 최후의 일전이다. 내가 비록 성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희 축생 같은 놈들에게 우리가 지금은 비록 곤경에 빠졌을지라도, 여전히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겠다. 나는 오늘 죽더라도 두렵지 않다! 하하하하…….”
“그럼 죽어라!”
콰앙!
지면의 청석판이 부서지더니 말요괴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의 등 뒤로 요괴의 본모습이 환영처럼 떠오르더니 요괴는 엄청난 기세로 좌무극을 향해 돌진했다.
피할 수 없으리란 것을 깨달은 좌무극은 편장을 손에 꼭 쥔 채, 입은 상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서 미친 듯이 앞으로 돌진했다. 연비와 육승풍도 진기를 움직여 무살원강의 기운을 끌어올리더니 요괴를 향해 덤벼들었다.
‘비록 여기서 죽겠지만, 무혼(武魂)만은 남을 것이다!’
그 순간 계연의 의식 세계 안 상공에서 무도(武道)의 별이 찬란히 빛났다. 단기는 어느새 화염이 되어 하늘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좌무극 사제 세 사람의 몸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더니, 진기와 무살원강이 이 ‘필사(必死)’의 관문에서 서로 섞여들어 안팎의 천지를 관통했다.
하지만 그렇다더라도 실력의 차이는 한순간에 좁힐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죽음의 형세는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찬란한 무도의 광휘도, 결국 하룻밤 만에 지는 꽃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불과했다.
만약 계연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말이다.
“멈춰라(定).”
어느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말요괴의 귀에 꽂혔다.
멈추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그토록 부드럽고 가녀렸으나, 말요괴에게는 죽음을 재촉하는 부적과 같았다.
말요괴는 한순간 자신의 몸이 뻣뻣이 굳더니 눈알마저 움직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에 그는 곧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혔다.
말요괴는 세 무인과 싸우는 도중에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 게 아니라, 인축국 안에 이토록 심오한 경지의 도행을 지닌 고인이 있었다는 점에 놀란 것이었다. 게다가 이 인물은 정도(正道)의 수행자임이 분명했다.
말요괴는 그저 그런 요괴가 아닌 대요(大妖)였고, 우패천 앞에서도 자신이 얼마나 문안요왕의 중용을 받는 인물인지 거들먹대곤 했다. 하지만 멈추라는 말 한마디에 자신의 요력(妖力)마저 말을 듣지 않았다.
‘어디지? 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있나?’
하지만 말요괴는 곧 고인이 있느냐 아니냐는 문제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게 되었다. 그는 정신법(定身法)에 당한 상태였지만, 좌무극, 연비, 육승풍은 아니었고 말요괴가 무슨 술법에 당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설령 알았다더라도, 자신들을 잡아먹으려던 요괴에게 무슨 예를 갖추겠는가?
비록 요기(妖氣)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좌무극은 요괴가 대강 떨어질 지점을 예측하고는 곧 부딪치려는 순간 즉시 ‘파바밧’하고 물러났다. 그 참에 발밑의 청석판이 부서졌지만, 좌무극은 요괴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피할 수 있었다.
피했으니 이제는 기회였다!
“하압!”
그는 어마어마한 강기(*罡氣: 도교 용어로 굳세고 강한 기운을 뜻함)를 내뿜으며 편장을 휘두르더니 요괴의 좌측 얼굴과 귀에 일격을 가했다. 같은 순간, 연비의 목검도 한쪽에 나타나더니 말요괴의 오른쪽 귀에 내리꽂혔다. 육승풍의 장도(*掌刀: 손날)는 말요괴의 정수리에 꽂혔는데, 바로 좌무극이 조금 전에 편장으로 때린 곳과 같은 부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