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63화 (863/892)

863화. 무도의 성인(聖人)

퍼억-! 퍽!

파앗!

맨 처음 소리는 거의 전후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고, 마지막 소리에 의해 말요괴는 다시 한번 머리부터 땅에 고꾸라졌다.

쿵……!

바닥에 깔린 청석판에 금이 가더니, 말요괴는 엄청난 고통과 함께 의식이 몽롱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땅에 부딪히는 순간, 그는 자신을 속박하던 무시무시한 힘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크릉-!”

‘고인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일단은 이 세 놈부터 죽여야겠다!’

그의 포효에 곧 광풍이 일더니, 마침 일격을 날리고 자세를 가다듬던 좌무극을 비롯한 세 사람이 바람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그들이 서너 걸음 물러선 뒤에 다시 중심을 잡았을 때, 말요괴는 이미 좌무극을 향해 달려든 후였다.

말요괴에게는 세 사람 가운데 좌무극이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였고, 그다음이 목검을 쓰는 자였으며, 가장 마지막이 육승풍이었다. 곧이어 그의 어마어마한 요력이 형태를 갖추더니, 어두운 빛이 되어 좌무극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말요괴의 귓가에 조금 전 들렸던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멈춰라.”

그러자 그의 몸이 다시 한번 굳었고, 자연스레 요력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가 내뿜는 위압감은 여전했으나 한 줄기 빛은 본래의 위력을 잃은 상태였으며, 상대를 적중할 수 있는 통제력도 사라진 후였다.

좌무극은 대단한 위력을 품은 빛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는, 편장을 땅에 꽂아 그 반동을 이용해 뛰어오른 뒤에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요괴를 피했다. 그리고는 팔꿈치로 요괴의 뒤통수를 힘차게 가격했다.

퍼억……!

일격에 성공한 좌무극은 요괴의 몸을 디딤돌 삼아 즉시 거리를 벌렸고, 요괴는 몇 걸음 비틀대더니 다시 중심을 잡고 섰다.

이때, 말요괴는 두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양쪽 귀에서는 피를 흘리며, 얼굴에는 놀람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어째서인지 이제는 미친 듯이 주위를 둘러보는 그에게서 내뿜어지는 요기마저 이제는 약해졌고, 공황에 찬 그 모습과 낭패한 꼴은 모든 사람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사부님들, 저놈의 상처가 깊으니 아예 죽여버립시다! 받아라-!”

좌무극의 천둥 같은 포효에 말요괴는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그는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세 사람과 한데 엉켰다.

그러자 대지가 진동하고 수레가 차례로 부서졌으며, 근처의 몇몇 건물은 싸움의 여파로 무너지기도 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과 요괴는 세 명의 무인이 싸우면 싸울수록 용맹스러워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공격과 함께 내뿜는 포효는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다. 반면에 처음에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던 요괴는 이제…… 누가 봐도 열세에 처한 듯했다.

고통, 분노, 광분, 두려움, 공포……!

싸움의 전반부에 말요괴는 완전한 말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고, 후반부에는 몸을 속박하는 괴이한 힘이 줄어들었다지만, 여전히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는 세 사람에 의해 이미 너무 많이 얻어맞았고, 저들의 공격은 갈수록 위력이 더해졌다.

곧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된 말요괴는 이대로 맞다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온 정신을 집중해 저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는 요괴의 본체로 돌아갈 기회도 없었으며 그럴 수도 없었다.

사실 이치대로라면 저 무인들은 자신의 피부를 상처 입히지 못해야 했다. 또한, 이치대로라면 자신의 공격을 몇 번 맞은 평범한 인간들은 이미 죽었어야 마땅했다. 원래대로라면, 저들의 진기는 자신의 요기와 맞서지 못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상식 밖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무인들의 몸에서는 강기와 살기가 솟구쳐, 자신의 일격을 맞은 뒤에도 피는 흘렸으나 고통을 참으며 계속 맞서 싸울 수 있었다.

‘이길 수 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세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 무인으로서의 긍지를 지니고 있었다. 이제 어쩌면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긴 데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무도에 돌파를 이뤘다는 강렬한 감각이 좌무극, 연비, 육승풍을 고무시켜 더욱 전력으로 싸우게 했다.

동시에 연비와 육승풍은 자신들이 입은 상처가 커 요괴에게 치명상을 가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므로, 어떻게든 좌무극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했다. 그들은 정말로 목숨을 걸고 덤볐고, 그 잔혹한 싸움은 백 초식이나 넘게 지속되었다.

“허업, 죽어라!”

휘익-!

편장이 파공음을 내며 바람을 갈랐고, 좌무극은 평생의 공력을 모아 거의 핏빛으로 빛나는 무살원강의 힘을 끌어올렸다. 지켜보는 요괴들의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의 일격이 말요괴의 머리에 내리꽂혔다.

퍼억-!

말요괴의 머리에 편장이 내리꽂힌 순간, 그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산산이 으깨지더니 피비린내가 나는 살점이 사방으로 폭발했다. 이내 엄청난 요기가 광풍을 일으키며 충격파처럼 주위를 휩쓸었다.

휘이이- 휘이이-!

바람이 점차 약해지며 요기가 흩어지자, 모든 이들은 곧 눈앞의 상황을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연비와 육승풍은 약간 떨어진 곳에 주저앉은 채 피가 새어 나오는 상처를 손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 듯이 아슬아슬해 보였고, 좌무극은 아래로 3척(약 90cm)은 가라앉은 듯한 지면의 중심에 서 있었다. 좌무극은 반으로 부러진 편장을 손에 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옷이 찢겨 훤히 드러난 상반신은 피로 가득했는데, 그의 피와 요괴의 것이 섞여 있었다.

“허억…… 헉…… 헉…….”

한편, 좌무극에게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는 머리가 없는 ‘사람’이 서 있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고요한 정적 속에, 한순간 머리 없는 ‘사람’이 천천히 스러졌다.

쿵……!

시체가 지면에 쓰러지며 흙먼지를 일으켰고, 곧 그것이 점점 팽창하더니 머리 없는 말의 몸통으로 변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좌무극은 모든 힘이 빠져나간 듯이 뚝뚝 끊기는 웃음을 내뱉었다. 그의 웃음은 낮게 시작해 뒤로 갈수록 커졌다. 핏빛을 띤 그의 두 눈이 이상스레 번뜩이더니, 곧 남아있는 요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또 누가 있지? 누가 와서 내 손에 죽어볼 테냐?”

좌무극의 몸에서 무살원강의 기운이 요괴들의 요기처럼 솟구쳤다. 그것은 점점 모여들 뿐 흩어지진 않았고, 이를 지켜보던 요괴들에게 엄청난 두려움과 압박감을 선사했다.

“무극아, 자, 잘했다!”

“아주 깔끔했다…….”

‘결국, 제자가 나를 앞질렀구나…….’

광포한 기세를 내뿜는 좌무극 외에, 가장 먼저 입을 뗀 것은 그의 두 스승이었다. 내심 씁쓸한 와중에도 이들의 눈빛에는 좌무극을 향한 대견함과 기쁨이 가득했다. 이들은 정말로 이 순간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느꼈다.

“사부님!”

좌무극은 편장을 쥐고 연비와 육승풍에게 달려갔고, 말요괴의 수하들도 마침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감히 마통령을 죽이다니!”

“저놈은 이제 힘이 다 빠진 상태니까 지금 당장 죽여야 해!”

“저놈은 실력이 대단하니, 다 함께 덤비자! 절대 살려둘 수 없어!”

요물들이 하나둘 좌무극에게 덤비기 시작했다. 이에 좌무극은 분노가 치솟는 와중에도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었다.

‘결국, 오늘 죽음을 피하긴 어렵겠구나…….’

하지만 그 순간, 흥분을 억누르며 침묵을 지키던 이들이 폭발하듯 뛰쳐나왔다.

“좌 대협,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죽어라!”

“좌 대협, 저희도 돕겠습니다!”

“네 이놈들, 나부터 상대하는 게 좋을 것이다!”

“죽는 게 뭐라고-!”

“저도 좌 대협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습니다!”

…….

무인들은 무공의 실력과 관계없이 하나둘 앞으로 나서서, 진기를 최대로 끌어올려 결사의 각오로 요괴들에게 덤비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덤비는 이도 있고, 부서진 청석판의 돌을 들고 덤비는 이도 있었다. 그러자 일반 백성들도 하나둘 돌멩이를 집어 들고 앞으로 나왔다.

감정이 결여된 듯 보이던 식량을 전달하러 온 원주민들도 곧 가슴 속에 불씨가 당겨진 걸 느꼈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폭발적인 기세에 화기(火氣)가 솟구쳐 오르자 요괴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백성들이 전부 오합지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두려움에 한껏 요기를 끌어올리며 요법을 펼쳤다. 심지어는 평소에 한껏 무시하던 인축들 앞에서 본체를 드러내기까지 했다.

“저 무인들은 분명 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될 겁니다!”

계연의 곁에 있던 노염생이 이렇게 감탄했다. 말투는 그대로였으나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뱉자 조금 괴이쩍게 들렸다.

“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기는 정도가 아닐걸요!”

계연이 웃으며 대답하자, 등 뒤에서 검광이 물결처럼 흘러나왔다. 그것은 바람을 따라 표대(*飄帶: 어깨나 팔에 거는 장식용 띠)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더니, 희미한 소리를 내며 요괴를 비롯한 온 성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자 주위를 뒤덮은 요기가 흩어지더니, 검광이 지나간 곳에서 요괴들이 핏빛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사람들은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이 장면을 보고는 놀라 멍해졌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런 이상을 찾아내지 못했다. 계연을 비롯한 세 사람은 이미 모습을 숨기고 공중으로 날아오른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저, 계 선생님. 이제 말요괴도 죽었고 나머지 요괴도 전부 죽었는데, 어떻게 요마들 무리에 섞여들 생각입니까?”

우패천이 머리를 긁적이며 묻자, 계연이 아래의 인파를 쳐다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인축국은 그리 경계가 삼엄한 곳이 아니니 어렵지 않게 속여넘길 수 있을 거예요. 만요연은 뭐, 조금 소동이 일어도 괜찮고요.”

계연과 노염생은 법력을 펼쳐 성안에 있었던 모든 변화를 덮어버렸다. 천기를 어지럽혔다기보다는, 이곳의 기운을 숨긴 것에 가까웠다.

한편 성문 앞에서는 좌무극이 요괴의 기운이 전부 사라진 것을 느끼고는, 마침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는 “좌 대협!”하고 그를 다급히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 눈을 감았다.

곧 이곳에서 발생한 일은 성안의 모든 이들에게 퍼졌고, 원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 이 소식을 퍼뜨렸다. ‘좌무극이 성현을 대신해 무도의 힘으로 요마 축생들을 교화했다.’라는 말은 명언이 되어 모든 이가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

* * *

사흘 뒤, 성안의 어느 낡은 저택의 침상에서 좌무극이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곧이어 주위에서 기쁨에 찬 목소리가 하나씩 들려왔다.

“무성(*武聖: 무도(武道)의 성인(聖人))께서 깨어나셨다! 무성 대인께서 깨셨다!”

“무성께서 깨어나셨다!”

무성(武聖)께서 깨어나셨다는 소식은 마치 바람처럼 짧은 시간 만에 외부로 퍼져나갔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 소식을 알리는 이들도 있었다.

좌무극이 눈을 뜨니 침상 곁에는 구레나룻이 덥수룩한 무인과 두 사내가 보였는데, 그들 모두 한껏 감격에 찬 표정이었다. 좌무극은 아직 머리가 어지럽고 힘도 없었지만, 벌떡 침상에서 일어나 이렇게 물었다.

“큰 사부와 넷째 사부는요? 그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모두 괜찮으십니까?”

“무성 대인, 안심하십시오. 연 대협과 육 대협께서는 중상을 입으셨긴 하지만, 진기가 충분히 심맥을 보호하여 큰 탈은 없으십니다. 또한, 따로 돌봐주는 이가 있으니 괜찮으실 겁니다. 오히려 무성 대인께서 훨씬 위험한 상황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행히 하늘이 보우하시어 무성 대인께서 깨어나셨군요!”

두 노인은 대화하면서 습관적으로 수염을 쓸었는데, 병의 경과에 대해 줄줄이 늘어놓는 걸 보니 경험이 풍부한 의원들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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