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6화. 가장 독한 요괴
그 시각 천우주, 원래 우패천이 지키고 있었던 접인 대진이 있는 곳에서는 땅굴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진법의 전체적인 틀이 무너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도의 진법이 안팎으로 다시 배치되었다. 곧이어 선술로 인한 수많은 광채가 지하의 통로를 통해 지력(地力)의 힘을 빌려 엄청난 속도로 통과하기 시작했다.
지맥과 강줄기를 따라 통과하는 빛만 해도 천 갈래가 넘었으며, 여전히 계속해서 땅굴 내부로 빛이 모여드는 상황이었다.
진법이 이어진 해저에 도달하자, 선인들은 동시에 어수술을 써서 해저에 어두운 통로 하나를 만들었다. 해저에서 흑황까지 단번에 도달하는 길이었다.
수많은 수선자가 해저에서 움직이는 동안, 위력이 엄청난 수십 갈래의 빛들은 구천(*九天: 가장 높은 하늘)에서부터 흑황 근처에 도착한 후였다. 그중에는 건원종 장교인 도원자도 있었는데, 그 외 다른 이들도 각자 종파에서 진정한 고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흑황의 대륙을 굽어보니, 겉으로만 봐서는 그저 풍경이 아주 수려한 곳처럼 보였다.
“저곳이 바로 흑황이로군. 면적이 얼마나 넓은지도 알 수 없고 요마가 얼마나 많은지도 알 수 없다지. 듣기로 흑황 땅 깊은 곳에는 태곳적의 요마들이 묻혀있다더군. 지금 흑황 땅에 자생하는 요마들의 조상이라 들었소.”
“우리가 이번에 힘을 모은 것은 흑황의 요마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요. 설령 태곳적의 요괴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그 목숨을 끊어놓고 말 것이오!”
“맞소이다, 우리의 목적은 천우주 백성들을 구해낸 후에 흑황의 요마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심어주는 것이오!”
다른 수선자가 이렇게 말했다면 듣는 이가 배를 움켜쥐고 웃었을 테지만, 이들은 그간 셀 수 없이 많은 요마들을 제압한 전적이 있었다. 그들은 충분한 자신감과 심오한 도행을 갖추고 있었다.
도원자는 담담히 흑황 땅을 바라보다가, 옆에 서 있던 두 장수옹에게 말했다.
“두 분 도우, 대략적인 위치는 아무래도 두 분께서 나서주셔야겠습니다. 가는 길에 있는 마굴과 요괴의 근거지도 좀 알아봐 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시오, 도원자 도우. 그건 저와 연 도우에게 맡겨 주시오!”
“예,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는 저와 사제가 함께 건원종의 이산법(移山法)을 펼칠 때 함께 법력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도원자는 수행의 경지가 높은 데다 이번 계획의 발기인이었으므로, 자연스레 계획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래도 대의가 먼저였으므로 건원종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수선자들도 그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원자 도우!”
“도우께서 때맞춰 술법을 펼치시기만 하면, 저희도 반드시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렇소, 하지만 일단은 요마들을 전부 죽이는 게 먼저겠지.”
“우리 구악산(邱岳山)에서는 그간 백 명이 넘는 제자를 잃었소. 내 이번에 천우주에서 혼란을 일으킨 저 요마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말 것이오!”
…….
선도의 각 종파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의견의 불일치는 피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그들은 며칠 만에 계획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요마들을 처리하는 것 외에도,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동천을 장악해야 했다.
천기각의 두 장수옹은 다른 수선자들과 함께 가장 먼저 동천에 들어가 온 힘을 다해 동천의 통제권을 빼앗아올 계획이었다. 일단 동천의 중추가 되는 진법을 훼멸한 뒤, 동천 내 천지에 새겨진 요마의 인(印)을 지우고, 천시(*天時: 밤낮, 계절, 더위와 추위 등 때를 따라 돌아가는 자연 현상)의 변화권을 손에 넣는 게 순서였다.
그들은 심지어 동천 안에서 벌어질 요마와의 혈전을 예상하고 있었다.
만약 계연과 노염생이 이곳에 있었다면, 이 고인(高人)들에게 그리 심각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요마들 중에도 각종 묘법(妙法)에 정통한 이들이 있긴 했지만, 동천을 만들고 관리하는 능력은 수선자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다. 게다가 인축국들이 자리한 동천은 어느 한 요왕의 소유가 아니었다. 그렇게 세력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으므로, 요마들은 어느 한 명이 동천을 장악할 힘을 갖게 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 각각이 조금씩 동천 안 천지를 장악하고 있긴 했지만, 이는 선도(仙道)의 동천과는 완전히 결이 달랐다.
* * *
한편, 계연과 노염생은 그동안 이 작은 동천 구석구석을 거의 다 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크고 작은 십여 곳의 인축국을 방문했으며, 누구도 살지 않는 황폐한 도시도 발견했다.
그들은 이제 요마들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원주민들이 사는 구역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때로는 술법으로 모습을 바꾸기도 했고, 때로는 원래 모습 그대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간단히 점괘를 쳐보니, 이 작은 동천 안에는 천우주에서 끌려온 백만여 명의 백성 말고도 원주민이 천만 명이 넘었다.
게다가 계연과 노염생을 깜짝 놀라게 한 발견도 있었는데, 바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깊은 산골에 은밀히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외부 세계와 모든 연결을 끊고, 요괴들의 통제를 피해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다만 요괴들이 정말로 몰랐던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해준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어느 산 정상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노염생이 눈을 번쩍 뜨더니, 옆에 앉은 계연을 향해 말했다.
“계 선생님, 사형과 다른 이들이 바다를 넘어왔습니다.”
이를 들은 계연도 눈을 뜨더니 고개를 들어 상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우리도 이제 슬슬 그 만요연이란 잔치에 얼마나 많은 요마가 왔는지 보러 가봐야겠군요.”
곧이어 두 사람은 한 줄기 둔광이 되어 동천의 출입구 가운데 하나를 통해서 떠났다. 이곳에도 다른 동천처럼 출입구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지만, 대신 위치가 고정적이라 천기각의 것처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이용한 두 번째 출구는 마침 위치가 아주 적당해서, 계연과 노염생이 밖으로 나오니 벌써 어마어마한 요기(妖氣)를 느낄 수 있었다. 희미한 둔광 두 갈래는 출구를 지키는 요마들을 피해 잠시 날다가 비교적 외진 어느 산등성이에 내려앉았다.
계연과 노염생은 용모는 그대로였지만, 옅은 선기가 요기로 바뀐 뒤였다. 물론, 노염생은 원래 입었던 옷을 좀 더 정상적인 의복으로 바꿔야 했다. 그 어떤 요괴도 둔갑한 후에 구멍이 숭숭 난 다 떨어진 옷을 입진 않기 때문이었다.
“하, 아주 시끌벅적하군요!”
노염생이 차가운 얼굴로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감탄사를 내뱉었고, 계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수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는데, 그쪽 하늘이 각종 요마들이 뿜어내는 요기와 마기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고인이 법안으로 이 장면을 본다면, 그야말로 요기와 마기가 하늘과 태양을 가리고 있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방에서 요풍과 마기가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저곳이 바로 만요연이 열리는 장소겠죠?”
계연의 물음에 노염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럴 겁니다. 그 소 요괴는 어찌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가서 보면 알겠죠.”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노염생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렇게 곧바로 가시려고요?”
“안 될 게 있나요?”
계연이 웃으며 되묻자 노염생도 결국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안 될 건 없습죠. 이 늙은이가 오늘 계 선생님과 함께 식견을 넓히게 되겠군요. 수천수만의 요마가 들끓는 소굴이 과연 어떤 광경일지…….”
두 사람은 모습을 숨기는 술법은 쓰지 않고, 그저 둔갑한 요괴인 양 요마들이 운집한 곳으로 자연스레 날아갔다. 하지만 채 일각도 되기 전에 단단히 각오했다고 여겼던 계연과 노염생의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드러났다.
그들이 지나는 곳마다 느껴지는 요기와 마기는 그 숫자든 실력이든 전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만요연이라 해서 정말로 만 명의 요괴만 모이진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계연과 노염생은 곧 굽이굽이 이어져 있어야 할 산맥이 전부 산허리쯤에서 평평히 깎여나간 것을 발견했다. 어떤 산봉우리에서는 거대한 요물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여전히 산을 깎고 있었다.
쿠궁……! 쿠구구구……!
돌과 흙이 주위로 흩날리고 나무들이 차례로 쓰러지더니, 마침내 산봉우리가 점점 평탄해졌다.
한편, 몇몇 천산갑 요괴들은 산기슭에 엎드려 기면서 안쪽으로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돌과 흙을 파내며 동굴을 만들고 있었다.
지면의 요괴들이 계속해서 땅을 파자 때로 지화(*地火: 타기 쉬운 땅 표면의 토양이 연소함으로써 발생하는 불)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들은 연이어 거대한 연회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막 내부를 파낸 산봉우리들은 만요연의 주 무대가 될 예정이었다.
게다가 곳곳에는 부뚜막을 만들어 단로를 걸어놓았고, 바삐 움직이는 요괴들이 보였다. 산속에 만들어진 동굴은 수많은 요마가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그중에는 대요(大妖)나 마두도 부지기수였다.
그 모든 것들이 곧 만요연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 * *
어느 산봉우리 내부의 동굴에 조성된 대청에는 비법으로 제련된 기름 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대청의 크기는 작은 광장과 엇비슷했고, 내부에는 탁자와 의자를 비롯한 온갖 기물이 완비되어 있었는데 그 양식을 보면 천우주에서 온 물건들 같았다.
대청에는 서너 개의 광활한 입구가 뚫려 있었는데, 한눈에 주위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구조였다. 눈앞에 보이는 다른 산봉우리 내부에도 이와 비슷한 대청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었다.
대청 한쪽에 놓인 돌 탁자 몇 개에는 천계맹 일원들이 앉아있었다. 그중에는 육 산군, 왕유홍, 시구 등은 물론이고 우패천도 있었다.
돌 탁자 위에는 술과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종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어쨌든 만요연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신선한 주식’들도 아직 내올 차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때 왕유홍과 시구는 모두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듯한 모습이었다. 때때로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우패천과 그 곁에 앉아 미소 띤 얼굴로 술을 마시는 육오를 힐끔대곤 했다.
‘우패천과 육오는 정말이지 독한 놈들이야!’
왕유홍과 시구는 속으로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천계맹의 일원들은 거의 모두 우패천과 육오가 예전부터 알던 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천계맹에 들어온 것도 하나가 먼저 들어오고 다른 하나를 추천한 형태였다.
처음에 그들은 두 요괴의 천부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 외에도, 우패천과 접촉해 본 요마들은 하나같이 그가 성질이 더럽고 머리가 단순한 요괴라고 여겼으며, 육오는 학식이 있고 사리에 밝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중이 되어서야 육오는 사실 성정이 음험하고 자비가 없어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보다 더 심계가 깊은 것은 단순하다고 알려진 우패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