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0화. 이게 뇌법이라고?
우르릉……!
상공을 바라보던 요마들의 눈에 순식간에 하늘이 금빛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이들은 떨어진 벼락의 끝단이 하늘로 솟아오른 대요를 향해 직선으로 곧게 떨어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요마들은 그 대요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요의 몸이 아직 뇌광(雷光)에 뒤덮인 와중에 하늘에서 또다시 벼락이 떨어졌다.
콰지직-!
꽝……! 콰광……! 콰앙……!
“크르릉!”
벼락이 다시 연속으로 세 줄기나 떨어져 내리자 공중에 떠 있던 대요가 고통에 포효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도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고, 그 주인도 뇌광에 휩싸인 채 어느 산으로 추락했다. 그가 추락한 주위에는 흙먼지가 짙게 일었으나, 금세 먼지는 광풍에 의해 어디론가 휩쓸려 가버렸다.
그 순간, 추락한 대요가 떨어진 곳에 또다시 벼락 두 줄기가 내리쳤다.
콰직……! 콰앙! 콰직- 쿠궁!
문안요왕은 놀랍고 두려운 마음에 하늘과 대요가 떨어진 곳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는 저 대요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곧 다른 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수염 끝단이 공중으로 살짝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시에 엄청난 압박감이 머리 위에서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문안요왕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속에서 다른 것보다 크기가 몇 배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보였다. 이내 그의 뇌리에 어떤 깨달음이 전류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이 순간,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요마도 저마다 자신에게 속하는 겁운(劫雲)이 공중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겁운이 짙게 깔린 상공은 마치 천근만근의 무게라도 나가는 것처럼, 요마들로하여금 제대로 설 수도, 편히 숨 쉴 수도 없게 했다. 그들은 거대한 충격처럼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이런! 이건 내 뇌겁이야!’
“여러분, 우리 모두 각자 법력을 써서…….”
어느 요왕의 목소리는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들리지 않게 되었는데, 그가 말을 끊어서가 아니라 엄청난 굉음에 소리가 묻혀버렸기 때문이었다.
콰직- 콰지직- 콰직…… 콰앙! 쾅! 쿠구궁……!
쿠르릉…… 쿠구궁……!
쾅……! 꽈광-! 쾅!
엄청난 위력의 벼락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자,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하늘의 위엄으로 가득했다.
산이 쪼개지며 요괴들의 각종 술법에 의해 거대한 돌들이 목화솜처럼 흩날렸고 나무는 뿌리까지 뽑혀 나왔다. 이내 온 세상이 눈을 찌를듯한 뇌광에 뒤덮였다.
* * *
계연은 자신의 신통력이 만들어낸 결과를 보면서도 가슴속의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눈앞의 이 장면은 영원히 그의 뇌리에 남을 것이다.
술법을 펼친 계연마저 이런 상태였으니, 도원자와 노염생을 비롯한 다른 수선자들은 거의 전율에 떨며 말을 잊은 상태였다.
그들은 모두 뇌겁을 본 적이 있었지만, 모두 한 사람이나 한 요괴에게 떨어지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진, 마치 멸망 직전의 세계와 같은 뇌겁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뇌법의 대가인 도원자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로, 무궁무진한 벼락이 내리꽂히는 장면을 바라보다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뇌법이라고? 이게…….”
한편 노염생은 계연의 놀라운 술법에 어느 정도 면역력이 있었지만, 이 순간 그가 보인 반응은 진선(眞仙)인 그의 사형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노염생이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은 확실히 계연이 뇌법을 부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노염생도 계연이 부리는 뇌법은 그 위력이 무척 대단하리라 생각하긴 했으나, 이건 그야말로…….
“계 선생님, 이 늙은이는, 선생께서 삼매진화를 쓰실 줄 알았습니다…….”
계연은 고개를 숙여 노염생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때 그의 멀어버린 두 눈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계연은 다른 이들보다 더욱 또렷이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노염생의 말에 뿌듯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뇌겁은 일단 만들어지기만 하면 절대 피할 수 없으니까요.”
피할 수 없다!
그의 말대로, 뇌겁은 만들어지면 반드시 적중하게 되어 있었다. 이 벼락은 전부 저 요마들 개개인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러 도우들, 너무 놀라실 필요는 없어요. 이 뇌법이 대단하긴 하지만 사실 요마들 개개인에 달린 문제라, 출중한 실력으로 뇌겁을 견뎌내는 요마도 적지 않으니까요. 뇌겁이 지난 후가 바로 시작입니다!”
계연의 말은 모두가 사실이었고 아주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 말이었다. 사실 계연은 만약 일반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칙령 뇌주를 펼쳤다면, 범위가 조금 작아졌을진 몰라도 위력은 더욱 강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처럼 담담한 태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들도 계연의 말에 담긴 뜻은 알아들었지만, 그래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떨어지는 뇌겁을 견뎌낼 요마가 몇이나 되겠는가? 설령 견뎌내더라도, 뇌겁이 지난 후에 맞서 싸울 힘이 있겠는가?
* * *
한편, 만요연이 열리는 범위 외곽에서 진법을 펼치려고 준비하던 다른 수선자들도 무궁무진한 벼락에 놀란 상태였다. 그들은 벼락이 범위를 넓히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그중 누구도 뇌겁을 맞을 만한 악업을 쌓지는 않았지만, 저런 위력의 벼락을 상대로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곧 계획했던 대로 진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위에는 선인들의 술법으로 만들어진 금제가 깔렸지만, 저 앞의 벼락이 떨어지는 곳 가까이에는 미치지 못했다.
외곽에 있던 요마들은 온 힘을 다해 날아가기 시작했으나, 금제에 가로막힌 데다 천겁이 이미 시작되었으니 도망치는 것으로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수선자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벼락을 맞는 요마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요마들의 반발력은 그들의 예상보다 너무나 약했다.
벼락과 광풍이 반 시진(*한 시간) 정도 지속되었기에, 그 중심에 서 있던 계연을 비롯한 수선자들도 반 시진 정도 같은 위치에 서 있었다. 엄청난 위력의 뇌법이 쉴새 없이 쏟아지는 것도 충분히 경악스러운 장면이었지만, 눈 닿는 곳마다 요마들이 떨어지는 벼락을 맞고 있는 장면을 보는 것도 꽤 다채로웠다.
그러다 눈을 찌르던 벼락의 빛이 천천히 어두워지고, 벼락이 떨어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자 모든 것을 쓸어버릴 기세의 광풍도 점차 약해지더니, 공중에 어지러이 날아다니던 돌멩이와 흙먼지도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주위가 잠잠해지자 고통에 찬 요마들의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으나, 또다시 하늘에서 ‘우르릉’하며 요마들이 있는 위치로 간간이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대지진이 지난 이후의 여진처럼 말이다.
바람과 벼락이 점차 가라앉자 굽이굽이 이어진 산맥도 마침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뇌겁이 쏟아져 내리기 전과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산을 뒤덮은 흙은 전부 불에 그을린 듯 타 있었고, 곳곳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으며, 나무나 덤불이 그을리고 남은 잿가루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온 산을 뒤덮은 요마들의 시체가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어 아예 숯이 된 시체도 있었고 아직 원형을 알아볼 수 있는 시체도 있었다. 물론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것도 있었으나, 그 위에 희미하게 남은 요기(妖氣)와 단백질이 그을린 듯한 냄새를 통해 시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떤 시체는 수십 혹은 백 장(약 300m)에 이르는 지하에 있기도 했는데, 물통만 한 크기의 구멍에서 솟아오르는 탄내와 요기를 통해 그들이 지하에 매장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토둔술(*土遁術: 흙을 움직여 땅을 통해 도망치는 술법)을 이용해 뇌겁을 피해 보려 했던 요마들이었다. 하지만 뇌겁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벼락은 그대로 지면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와 그들을 적중했다. 지면을 통과했으니 그 위력이 줄어들었을 것 같지만, 땅속에서 폭발했기 때문에 그 살상력이 더욱 막강했다. 게다가 요마들은 지하에 있어 움직일 수 있는 데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면 위의 요마들보다 더 빨리, 더욱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오히려 실력이 출중한 요마들일수록 이런 상황에서는 함부로 도망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요마들에게 있어 지난 반 시진은 너무나 길어서, 이 뇌겁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계연이 짚어내고 다른 수선자들도 이미 예상했다시피, 뇌겁을 견뎌낼 수 있는 요마들의 수는 그리 적지 않았다. 그 외에 살아남은 이는 ‘속임수’를 쓴 네 사람뿐이었다.
우패천, 육 산군, 왕유홍, 그리고 시구 넷은 어느 산 중턱의 깊은 구덩이 안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숨은 작은 동굴도 벼락의 힘이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뇌겁이 막 떨어지던 순간, 혼란한 상황에 약간의 상처를 입은 걸 빼면 그들이 있는 쪽으로는 한 줄기의 벼락도 떨어지지 않았다. 천지에서 가장 용납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강시인 시구마저도 그러했다.
이 순간 네 사람은 경악과 두려움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왕유홍과 시구는 물론이고 우패천마저 안색이 창백할 정도였다. 이번만은 연기가 아니라 그의 진짜 감정이었다. 온 하늘을 뒤덮은 겁운(劫雲)과 벼락이 쏟아져 내리던 순간의 참상은 어느 요괴라도 한번 보면 평정심을 갖기가 어려울 것이다.
비록 세간에는 켕기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귀신이 찾아와도 두렵지 않다고들 하지만, 우패천은 아무리 착한 이라 하더라도 귀신이 진짜 찾아오면 마찬가지로 놀라 쓰러지리라고 생각했다. 착한 사람도 귀신을 두려워하는 마당에, 착한 요괴도 벼락을 두려워할 수 있잖은가!
“이, 이게 바로 계 선생님의 뇌법이군…….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위력이야…….”
우패천의 목소리에 살짝 떨림이 묻어나자 왕유홍과 시구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안정되었다. 계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 마침내 저 성질 더러운, 아니, 우마(牛魔)조차 두렵게 만든 것 같았다.
우패천의 진면목을 알게 된 후, 왕유홍과 시구는 마음속에서 다시는 그를 ‘성질 더러운 소’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성질을 부릴 때는 포악하기 그지없고, 음험할 때는 교활하기 그지없으며, 심계도 깊고 실력 또한 출중한 데다 잠재력도 무궁무진했다. 이에 둘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을 느끼고, 우패천이 ‘우마’라는 호칭에 더욱 걸맞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 우마가 계 선생님에 의해 겁을 먹었으니, 앞으로도 계 선생님을 상대로 무슨 짓을 저지르지는 못할 터였다. 그리되면 왕유홍과 시구도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저 우마가 계 선생님을 어찌할 수 있다는 망상에 차 있지만 않다면, 자신들 둘은 같은 배에 탄 이들로서 저 우마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저 우마가 감히 계 선생님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둘은 그런 황당한 가능성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막 한숨을 돌린 찰나, 시구와 왕유홍은 육 산군의 표정을 보게 되었다. 육오는 저 어마어마한 뇌법을 보고도 안색조차 변하지 않았으며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있기까지 했다. 게다가 자신들의 착각일 수도 있었지만, 육오에게서는 감춰지지 않는 옅은…… 흥분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저것은 처참하게 죽은 이들을 본 흥분인가? 아니면 뇌겁을 본 흥분인가?’
그 순간, 왕유홍과 시구는 애당초 천계맹에서 저 두 요괴를 받아들인 것이 그야말로 궤멸에 이르는 초석이었음을 깨달았다. 설령 계 선생님과 맞닥뜨리지 않았더라도, 저 두 요괴는 언젠가 이와 비슷한 일을 벌였을 것이다. 그 깨달음은 마치 벼락같이 강렬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별 의의가 없었다.
“아직 살아있는 옛 친우들이 있군.”
육 산군의 담담한 한마디에 모든 이의 시선이 바깥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산 곳곳에 퍼져 있는 천계맹 일원 중에는 살아남은 이들이 반이나 되어, 다른 요마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하지만 입은 상처가 꽤 심각해 보였다.
어느새 평온을 되찾은 우패천이 성격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뇌겁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여기서 살아나가지는 못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