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2화. 그물을 뚫고 도망친 물고기는 없다 (2)
계연이 동천에 들어왔을 때 몇몇 진인들이 본체의 모습을 한 거대한 요괴 두 마리와 한데 엉켜 싸우고 있었다. 온 하늘을 뒤덮은 요기에 바람과 번개가 모이기 시작하자 그 기세가 꽤 무시무시했다.
계연이 검지(劍指)로 목표물을 가리키자 넝쿨검이 소리를 내며 검집에서 나오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날아갔다. 그러자 요괴들은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검의 날카로운 기세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검광은 두 대요(大妖)의 주위를 몇 바퀴 돌다가, 단번에 그들의 머리를 잘라 버렸다. 그러자 거대한 머리통 두 개가 하늘로 날아가더니, 잘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두 대요가 쓰러지자 다른 요물들은 넝쿨검에 한번 반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죽었다. 계연은 이미 바람을 타고 멀리 사라진 후였고, 넝쿨검은 빛을 내뿜으며 이리저리 보이는 요물들을 전부 죽인 뒤 흰 무지개가 되어 계연을 따라갔다. 이에 남겨진 수선자들은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사부님, 저분은 어느 종파의 고인이십니까?”
“글쎄다. 저렇게 대단한 검선(劍仙)이 있었다면 천우주에서 진작 이름이 퍼져야 했는데.”
계연은 처음 나타난 후부터 떠날 때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바람을 몰며 이동했기 때문에, 동천 안의 수선자들이 그를 제대로 보지 못한 사이에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들과 싸우던 요마들도 전부 죽은 뒤였다.
강가에 세워진 성안에 있던 천우주 백성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먼 상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가 멀고 평범한 사람의 시력 문제도 있어서 저쪽 하늘을 덮은 뇌운과 번쩍이는 선술의 빛, 그리고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요괴 두 마리만 보일 따름이었다. 사람들은 긴장된 얼굴로 얼른 저 선인들이 요괴들을 무사히 처리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다 두 요괴의 머리가 날아가고 목에서 피가 솟구치자 백성들이 흥분에 휩싸였다.
계연이 보기에 이제는 요마들을 거의 다 처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동천 안팎의 결과는 자신의 예상과 큰 차이가 없을 터였다.
비록 이번에 선인들이 흑황에 그리 깊이 들어왔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번 결과는 이미 계연이 예상했던 바를 훨씬 뛰어넘었다. 선인들이 무너뜨린 인축국의 수도 아주 많았는데, 그중에는 계연이 음침목(*陰沈木: 홍수나 지진 등으로 오랜 시간 땅 밑에 묻혔던 나무. 삿된 것을 쫓아낸다는 속설이 있음) 목패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인축국도 있었다.
이런 결과를 얻었으니, 계연은 자신이 아는 천우주 수사들이라면 흑황에 더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이곳에 있던 백성들을 모두 데리고 나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천우주의 고인들이 당도하기 전에, 계연은 좌무극과 연비, 육승풍을 먼저 만나려 했다.
이 세 사람은 이미 천우주의 여러 고인에게 눈도장이 찍힌 상태였고, 앞으로 더욱 많은 선도의 고인들과 마주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적잖은 이들이 이 세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어 할 터였다.
사실 계연도 좌무극을 비롯한 세 사람이 선도에 발을 들이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무도(武道)는 이제야 진정한 의미의 돌파를 이루었는데, 저 세 사람이 선도의 불로장생에 미혹되어 본말을 전도하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이렇게 보니 자신은 지금 수선자들을 중생을 유혹하는 마두처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계연은 동시에 물길을 막는 것보다는 흐르게 하는 게 낫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
* * *
이때, 좌무극 일행이 있는 성안의 백성들은 동천 안팎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요괴들이 언제 들이닥칠까 걱정하면서도 때때로 무예를 연마하고 있었다.
좌무극 사제 세 사람은 낡은 건물의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 각자 옥수수, 무, 참외를 생으로 씹어먹고 있었다. 탁자 옆에는 큰 바구니 두 개가 놓였는데, 그중 하나는 이들이 먹는 것과 같은 채소와 과일들이 들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껍질이 가득했다. 이 세 사람이 먹는 속도는 일반인보다 배는 빨랐다.
무도의 경지를 돌파한 지금, 세 사람은 시시때때로 배가 고팠으며 그 짧은 시간 동안 먹을 게 충분치 않아 살이 쪽 빠졌을 정도였다. 여기에서는 생선이나 고기를 구할 수가 없었고, 매일 성에 보내지는 음식도 전부 이런 것들뿐이었다. 그렇다고 감히 성 밖을 나설 엄두는 내지 못했으니 결국 이런 것들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육승풍은 들고 있던 무를 입에 잔뜩 밀어 넣은 뒤, 술이 들어 있던 조롱박을 습관적으로 만지작거렸다. 그가 그것을 두어 번 흔들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자, 옆에 있던 좌무극이 웃으며 말했다.
“넷째 사부, 그냥 이참에 술을 끊으세요!”
“휴우…….”
그 순간, 문가에 맑은 바람이 불어오더니 계연의 모습이 나타났다.
“허, 무도에 돌파를 이루고 대요까지 죽인 대협들께서 이런 걸 먹다니요?”
돌연 계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세 사람은 일제히 문가로 고개를 돌리더니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계 선생님!”
세 사람이 감격한 목소리로 계연을 맞이하며 생각했다.
‘계 선생님이 이곳에 나타났으니, 이제 모두 괜찮다는 뜻이겠지?’
실내에 있던 사제 세 사람이 모두 일어나 인사하자, 계연도 문가에 서서 그들을 향해 인사한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계연이 탁자 주위를 쳐다보니 육승풍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연비와 좌무극은 조금 겸연쩍어했다. 그들은 탁자 주위에 널린 껍질이며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을 치우고 얼른 계연을 맞이했다.
“계 선생님, 어서 앉으세요!”
“선생님께서 여기 오셨다는 건 저희를 구해주기 위해서겠지요? 저희는 그간 요괴들이 대체 어디로 저희를 데려온 건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요괴들이 거리낌 없이 성안에 모습을 드러내질 않나, 성황당이나 신령도 없고 말입니다.”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빈자리에 앉아 세 사람에게도 앉으라고 눈짓했다. 모두 자리에 앉자 계연은 그들을 위해 의혹을 풀어주었다.
“여러분이 있는 곳은 원래 있던 바깥세상이 아니에요. 흑몽영주의 어느 동천 내부죠. 이곳의 평범한 사람들은 요마들에게 식량으로 간주되죠.”
‘동천?’
그들은 원래 자신들이 어느 외지고 찾기 힘든 곳에 끌려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전에 살던 세상에서 아예 벗어난 곳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곳에는 선인이나 신령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된 거로군요. 그럼 만약 선인들께서 바다를 건너오지 않았다면, 저희가 아무리 무공을 수련하고 모든 요마를 죽여 없애도 이곳을 떠나지 못했겠죠?”
연비의 말에 계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천에 어떻게 드나드는지 모른다면 세상 끝까지 도망쳐도 결코 벗어날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죽인 말 요괴는 결코 그저 그런 요괴가 아니었어요. 보통 요마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존재였죠. 그 일을 통해 무도의 길이 완전히 새로 개척됐고, 이제 신묘한 만법(*萬法: 우주의 온갖 법도) 중 하나에 속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더니 계연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수행 중에는 환골탈태라 불리는 현상이 있는데, 수행의 질적 변화를 뜻해요. 무도에서 세 분의 경지에 이르면, 특히나 무극의 경지라면, 조금 다른 점은 있겠지만 변화의 정도만 놓고 봤을 때는 환골탈태라 일컬어도 모자람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런 명칭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무도에 한해서는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게 좋겠어요. ‘응련무백(*凝練武魄: 무인의 정신이 완성된다는 뜻)’ 같은 이름으로요.”
그러자 육승풍이 이렇게 물었다.
“왜죠? 똑같이 환골탈태라고 불러도 좋지 않습니까?”
계연은 육승풍을 보더니 다시 연비와 좌무극을 한번 훑어보고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대답했다.
“계모(某)는 무예를 닦는 이들이 무도에서 성취를 이룬 후에도, 여전히 자신을 인간으로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남들보다 한 단계 높은 존재라고 생각지 말고, 백성들과 자기 자신 사이에 줄을 긋지 않게요.”
온갖 세상사를 겪고 풍찬노숙(*風餐露宿: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에서 먹고 잔다는 뜻으로, 객지에서 겪는 모진 고생을 일컬음)도 적잖게 한 연비와 육승풍은 계연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바가 있었다. 반면 좌무극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그는 무도에 특출난 재능을 지녔지만, 나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계연도 그를 위해 몇 마디 덧붙였다.
“무예를 연마한다고 해서 무도에 발을 들인 거라고 볼 순 없어요. 하지만 무도에 들려면 반드시 무예를 닦아야 하는 법이지요. 또한, 무공은 강호에서부터 변형되어 만들어진 것이지만,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강호가 있죠!”
계연은 다시 좌무극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무성 대인께서는 무인들이 왜 무예를 닦는다고 생각하나요?”
계 선생님께서 자신을 그런 호칭으로 부르자, 이제 겨우 그런 호칭에 익숙해졌던 좌무극은 즉시 부끄러워졌다.
“계 선생님,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이렇게 사정한 그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계연의 물음에 답했다.
“무예를 닦는 목적은 신체를 강하게 만드는 것 외에도, 약자를 보살피고 정의를 지키며 용맹하게 수련에 정진하여 자기 자신에게 도전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대답은 아주 정석적인 대답이었지만, 그가 진심으로 믿고 있는 바이기도 했다. 다른 무인들이라면 대답에 좀 더 개성이 느껴졌을 테지만, 무인들의 이런 ‘구태의연한 사상’이 사실 무도의 정신 그 자체였다.
“옳은 말이에요. 속세를 벗어나면, 그것들은 불완전해지죠.”
계연의 말에 좌무극은 홀로 생각에 잠겼다. 계연으로서는 좌무극이 정말로 깨달음을 얻었는지 어땠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좌무극은 계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계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계연은 속으로 잠시 탄식했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좌무극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이에 계연은 말없이 소매 속에서 백옥으로 만들어진 천두호를 꺼냈다.
“육 대협께서 그간 술이 없어 힘드셨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마침 제가 술을 가져왔으니, 세 분이 무도에 돌파를 이룬 것을 축하할 겸 함께 나눠 마시도록 하죠.”
육승풍은 술병을 보고는 눈을 환하게 빛내더니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계 선생님, 이렇게 작은 술병으로는 저 혼자 마시기도 부족합니다. 아무래도 축하 자리에 나눠 마시기에는 양이 적은 듯하니, 선인이신 선생님께서 술을 좀 더 만들어주십시오!”
계연은 술잔 몇 개를 꺼내 들더니 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이걸로도 충분해요.”
이 천두호에는 옥호동천의 구미호에게서 얻은 온갖 술들이 섞여 있었다. 다행히 그 술들은 천두호가 지닌 신기한 효과에 의해 적절히 융합되어, 술향기는 진하고 순수했으며 술은 영성(靈性)을 지닌 데다 맛도 좋았다. 게다가 이 술은 계연이 앞으로 빚어내려고 생각하고 있는 술의 초기 형태와 비슷했다.
술잔에 술을 따르자 술꾼인 육승풍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코를 대고 향기를 맡았다. 냄새만 맡아도 세간에서 구하기 힘든 귀한 술이라는 게 느껴졌다.
이에 그는 계연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얼른 술잔을 들어 한입 마신 뒤, “정말 좋은 술이군요!”하고 찬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