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5화. 돌아가지 않으면 큰일 나겠네
이어서 계연이 좌무극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그가 채 입을 떼기도 전에 좌무극이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요마들로 인한 피해가 비교적 큰 지역이 어디입니까?”
계연은 좌무극이 품은 뜻을 이해하고는 아는 대로 대답해주었다.
“최근에는 당연히 천우주가 있죠. 요마들이 일으키는 혼란의 주요 원인은 이미 해결했으나, 그렇다고 천하가 곧바로 태평해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다음은 남황주입니다. 남황대산에는 요마가 아주 많이 사는데, 그 산이 남황의 수많은 나라와 가까이 있어요.”
“좋습니다, 그럼 저는 천우주에 남아 무도를 조금 더 수련하겠습니다. 그러다 후에 천우주가 태평해지면, 남황주로 가겠습니다. 완벽한 균형을 찾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움직일 때까지 말입니다.”
이는 좌무극이 처음으로 사부들의 곁을 떠나 홀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사부님들, 무극이 더는 사부님들을 모시지 못함을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어차피 사부님들께서 하시려는 일에는 제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녀석!”
“알겠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안위를 살펴야 한다. 모든 일에 무턱대고 덤벼들지 말고!”
“자자, 어차피 이 육지가 천우주에 닿을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어요. 지금 곧바로 헤어질 것도 아니니까요…….”
계연은 세 사람이 깊은 사제의 정을 나누는 것을 잠시 막았다.
“각 선문에서 운영하는 나루터의 위치는 황제였던 그 수사에게 물어보세요. 만약 잘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 달라고 부탁하시고요. 경외심을 갖고 그를 황제처럼 대할 필요는 없어요. 그럼, 세 분 모두 저와 함께 가지 않는다고 하니, 계모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계연이 다시 대문으로 향하자 세 사람이 허겁지겁 쫓아와 인사한 뒤, 계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배웅했다.
한편, 노염생은 구름 위에서 다리 한 짝을 다른 쪽 다리에 올린 채 꺼덕거리며 누워있다가, 계연이 오는 걸 보고 일어나 앉았다.
“하하, 계 선생님도 저들을 제자로 받는 걸 실패하셨나 보군요?”
그러자 계연이 씩 웃으며 얼버무렸다.
“네, 그래도 세 대협의 마음이 무도에 단단히 묶여있다는 건 좋은 일이죠. 속세 백성들의 복이기도 하고요. 계모는 급히 운주로 돌아가 봐야 해서,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예, 이 늙은이도 요즘 일이 많아 얼마간은 건원종을 떠나지 못할 듯싶습니다.”
노염생은 최소한 인축국의 원주민들을 운주로 무사히 데려다준 후에야 떠날 생각이었다.
“아, 양종에게 육승풍과 연비를 찾아가라고 해주세요. 그가 도울 일이 있거든요.”
“하하하, 저도 마침 그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노염생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계연을 따라 동북쪽으로 날다가, 육지의 범위를 벗어나자 계연과 다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계연이 떠나고 얼마 뒤, 도원자가 슬그머니 노염생에게 다가왔다.
“사제야, 계 선생님께서는 이제 어디로 가시는 것이냐?”
그러자 노염생이 고개를 돌려 도원자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아까 직접 와서 묻지 그러셨소?”
이에 도원자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동현(*洞玄: 도교 경전이 동진(洞眞), 동현, 동신(洞神) 세 부분으로 나눠짐, 수행의 단계를 이르기도 함)의 경지에 오른 데다 뇌법으로 세간에 이름난 수사였으나, 계연의 뇌법을 보고 난 후로 얼마간은 계연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했다.
노염생은 사실 사형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자기도 처음에 계연을 만났을 때 그런 마음이 들었으니 말이다.
* * *
중요한 일을 끝낸 계연은 즉시 운주로 길을 서둘렀다. 응약리는 그가 이 세계에서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이들 중 하나였다. 그 옛날에 응약리의 고심관(*叩心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두드려 넘어야 하는 고비)도 자신이 도와 함께 넘지 않았던가. 이치로 보든 도리로 보든, 계연은 절대 그녀가 진룡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그는 가장 빠른 방법인 검둔술로 길을 재촉했고, 하늘의 극한에 있는 난류와 강풍의 힘을 빌려 떠난 지 오래된 고향 땅으로 향했다.
* * *
한편, 운주 대정국의 경기부.
통천강의 수위와 너비는 이미 몇 년 전보다 두 배는 넘게 오르고 넓어진 상태였다. 이전에 유역이 가장 좁았던 지방마저 더는 소나 말을 타고 이동할 수가 없었다.
이때, 용궁 안에서는 응약리가 자신의 궁전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무척 장엄하고 엄숙해 보였는데, 그 주위에는 금방이라도 그녀에게서 분리될 듯한 빛이 났다.
응풍은 틈날 때마다 그녀의 궁전 밖을 지키고 서 있었고, 그의 모친과 응굉은 웬일로 대전 안에 함께 앉아서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다 응굉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딸의 궁전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며 이렇게 탄식했다.
“휴, 계연 자네, 만약 오지 않으면 이 몸이 본때를 보여줄 것이야!”
* * *
그때, 머나먼 어딘가에서 검둔술로 하늘을 비행하던 누군가가 “엣취!”하고 재채기를 했다.
계연은 코를 쓱 문지르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런, 돌아가지 않으면 큰일 나겠네!”
무형의 압박을 느낀 계연은 안 그래도 극한까지 펼치던 비둔술의 속도를 좀 더 높인 덕분에 예상하던 날짜보다 닷새는 빠르게 운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계연이 운주를 떠난 건 고작 몇 년 전이었지만, 계연처럼 도행을 지닌 수행자들에게 있어 몇 년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무척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계연은 떠난 후로부터 아주 오래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에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계연은 지금 당장 영안현의 옛집으로 향할 수는 없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응약리의 상태였기 때문에 경기부에 들르는 것이 먼저였다.
그간 통천강 연안에 일어난 변화는 무척 커서, 계연은 강가에 도착한 후에도 하마터면 같은 강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계연이 경기부의 맞은편 연안에 서서 옛 기억을 떠올리며 주위를 돌아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강물뿐이었다.
“어, 장원 나루터가 아예 사라졌네?”
장원 나루터가 완전히 수면 아래로 잠겼기 때문에, 강변에는 그보다 더욱 큰 새 나루터가 생긴 후였다. 새 나루터는 대부분 완공된 상태라, 정박한 화물선에서 화물을 내리고 있었다. 아직 건설이 끝나지 않은 곳을 제외하면, 모든 기초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고 예전에 있었던 난과(*暖鍋: 강소와 절강 일대의 요리로 훠궈와 비슷함) 식당도 새로 건물을 지어 올려서 영업하는 중이었다.
맞은편 연안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전보다 더욱 넓은 나루터가 생겨나 인파로 북적였다. 하지만 경기부 부성까지 쭉 이어진 대로는 예전과 그대로였다.
계연이 지금 서 있는 곳은 강가 연안에 새로 난 길이었는데, 조금 좁긴 했지만 그래도 마차가 지나다닐 수는 있을 정도였다.
그가 그렇게 통천강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마침 마차가 한 대가 지나갔다. 그 안에 타고 있던 이가 가리개를 젖히며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이 바로 통천강일세. 예전에 과거 시험을 보러 왔을 때 근처 마을에서 얼마간 머문 적이 있었지. 이제는 강신 사당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참 아쉽군!”
“듣자 하니 침몰되었다죠?”
“그렇네. 통천강 유역의 강폭이 적잖이 넓어진 터라, 원래 있던 나루터는 전부 침몰 되고 뱃길이 아예 바뀐 곳들도 있지. 강 유역에 있던 도시들을 피해서 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 때문에 원래 있던 곳이 지류(*支流: 본류에서 갈라져 나온 물줄기)가 되었다지…….”
마차에 타고 있던 이가 강기슭으로 시선을 돌리니,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계연이 보였다. 하지만 그가 시선을 돌려 강가의 풍경을 훑고 난 후 다시 쳐다보니, 그곳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이에 어리둥절해진 마차 안의 사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두리번거렸으나 여전히 아까 그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때 계연은 이미 통천강 안으로 들어와 있었는데, 마침 강을 순찰하던 야차가 그를 발견했다. 야차는 강철로 된 창을 든 채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즉각 소리치려다가 이내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한 얼굴로 얼른 다가왔다.
“소인이 계 선생님을 뵙습니다. 용왕께서 내내 선생님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희에게도 곧 선생님이 오실 수 있으니 항상 주의 깊게 살피라고 하셨었지요.”
“그래서 계모(某)가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나저나 제가 너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것은 아니겠죠?”
계연이 이렇게 묻자 야차가 당치 않다는 듯이 다급히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저를 따라오십시오, 선생님!”
강물이 야차의 움직임을 따라 갈라지자, 이들은 마치 막힘없는 고속도로에 올라탄 것처럼 곧장 용궁으로 향할 수 있었다. 더불어 계연이 아직 용궁에 도착하기도 전에, 물의 족속들에 의해 용궁에 그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곧이어 늙은 용이 앉아 눈을 감은 채 쉬고 있는 대전으로 어느 야차가 다급히 들어왔다.
“용왕께 아룁니다. 계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아마 곧 도착하실 듯합니다.”
“알겠다.”
야차의 말에 응굉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담담히 대꾸했다. 그는 자리에서 느긋하게 일어나, 마찬가지로 옆자리에서 일어난 옛 부인과 함께 궁전을 나섰다. 그의 동작은 무척 느릿해 보였지만 사실 그의 발밑 물살은 아주 빨라서, 응굉은 거의 한 걸음 만에 용궁 입구에 도달하여 계연과 딱 맞닥뜨릴 수 있었다.
“오, 용케 잊지 않고 왔군?”
응굉이 약간의 원망을 담아 투덜대자 계연이 얼른 사과했다.
“이번에는 정말이지 계모의 잘못입니다. 제가 그간 소홀했지요. 응 선생님께서도 들으셨겠지만, 천우주에 큰 혼란이 생긴 데다 노 선생께도 어려움이 닥친 듯하여, 저는 다행히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으니 힘을 보태러 갔었거든요.”
“그 일은 나도 들었소이다. 일단은 약리부터 보러 가십시다.”
늙은 용은 천우주의 일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에게는 이 세상에 자기 딸보다 중요한 건 없었기 때문이다. 계연이 조심스레 그를 살펴보니 안색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왜 그러세요? 약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계연이 살짝 긴장한 채 물으니, 응굉은 아무런 말 없이 계연을 이끌고 걸음을 옮기기만 했다. 이에 계연은 뒤따라온 응풍과 응약리의 모친에게 짧게 인사한 후, 응굉을 따라 급물살을 타고 응약리의 거처로 향했다.
문가를 지키던 응풍은 무료한 얼굴로 기지개를 켜다가, 자신의 아버지와 계연이 나타난 것을 보고 반갑게 예를 올렸다.
“아버지! 계 숙부님! 드디어 오셨군요!”
“약리는 안에 있니?”
“예, 숙부님. 어서 들어가서 한번 살펴봐 주세요.”
계연은 다급한 마음에 사양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돌연 발걸음을 뚝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이제 막 뒤따라온 응굉의 전처에게 말했다.
“부인, 계모가 들어가서 약리를 좀 살펴보겠습니다.”
“어서 들어가 보세요, 계 선생님. 약리가 무사히 진룡이 되기만 한다면, 천첩은 더없이 감지덕지할 것입니다!”
그녀가 정중한 태도로 계연에게 예를 올리며 대답하자, 계연도 그녀에게 인사한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곧 한 겹의 물결과 같은 금제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금제는 계연이 발을 들여놓아도 그를 밀어내지 않았으므로, 계연은 마치 부드러운 물살을 뚫고 지나간 듯 가볍게 금제를 넘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