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78화 (878/892)

878화. 갑자기 물길을 타다

계연과 응굉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응굉의 전처는 용궁의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응풍은 응약리의 궁 밖을 지키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그가 무언가를 느끼고 고개를 돌려보니, 응약리의 방문이 열려있었고 그 앞에 응약리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약리 너…….”

“쉬이! 오라버니, 이리 와서 얘기해…….”

응약리가 이상스레 수상쩍게 구는 모습에서는 조금의 위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일각 뒤, 응약리는 계속 방 안에서 수행을 이어갔고, 응풍은 내내 지키던 자리를 떠나 용궁의 주방으로 향했다.

근처에 도착한 응풍은 감정을 다시 끌어올린 뒤 바삐 달려온 듯한 모습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어머니! 약리가 지금 위험한 상황에 놓였고,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수행은 물론 목숨과도 연관되어 있으니, 저도 이제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응굉과 응굉의 전처, 두 용은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으나 성격이 무척이나 고집스러웠다. 응굉의 전처가 특히나 그러했다.

그래서 계연과 응약리는 일단 그들에게 응약리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어떻게 이 사태와 연관되어 있으며,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려주기로 했다. 그런 뒤 넌지시 이 일을 해결할 방법을 일러준 뒤, 반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화해할 수밖에 없도록 압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연이 늙은 용과 함께 강기슭에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응풍과 응굉의 전처는 용궁의 주방에서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순간, 응약리가 머무는 거처에서 돌연 쩌렁쩌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흥-!”

쿠구구구……!

이내 용궁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통천강 수령(水靈)의 기운도 폭풍에 휩쓸린 듯 위태롭게 요동쳤다. 용궁 안의 많은 이들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다.

우르릉……!

갑작스레 하늘에 천둥이 울려 퍼지자 통천강 상공의 먹구름이 완전히 어둡게 변하였고, 구름 사이로 번개마저 번쩍이는 게 보였다. 동시에 운치 넘치던 안개비가 순식간에 장대비로 변하여 쏟아졌다.

“약리가 물길을 타려는 거야!”

늙은 용과 응굉의 전처를 비롯한 이들은 깜짝 놀라는 동시에 상황을 깨달았다.

곧이어 응약리가 머무는 궁전의 금제가 걸린 대문이 활짝 열리더니, 길고 형체 없는 용의 그림자가 울음소리를 내며 용궁을 빠져나갔다. 동시에 응약리의 목소리가 용궁 전체에 울려 퍼졌다.

“오늘부터 진룡이 되는 것을 위해 물길을 탈 생각이니 약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응약리의 목소리는 전보다 더욱 굳건했고 어떤 결연함마저 느껴졌다.

용의 형상은 용궁을 나온 뒤 더욱 크고 길어졌다. 용궁 안의 어낭(*魚娘: 사람과 물고기의 형체가 뒤섞인 시녀)이나 야차 등은 물살에 휩쓸려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조차 없었으므로, 응약리가 용궁을 떠나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약리야!”

응굉의 전처와 응풍은 함께 용궁을 나와서 멀리 사라져가는 용의 형상을 바라보았다. 강물에 올라탄 용의 형체는 점차 실체를 갖추더니, 이내 유리처럼 찬란한 색채로 반짝이는 이교(螭蛟)로 변하였다.

응약리가 이렇게 갑자기 물길을 타리라고는 늙은 용조차 예상치 못했으므로, 그가 계연과 함께 강기슭에 서 있었을 때 빗방울은 갑자기 폭우로 변해 쏟아져 내리더니 바람이 거세지고 강물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멀리 용궁이 있는 방향에서부터 거대한 파도가 일더니 그들이 있는 강 중앙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파도가 지나는 곳의 강물은 항아리에 담긴 물이 흔들리듯 거세게 일렁였다. 이에 폭풍우까지 더해지자, 강물 위의 크고 작은 선박은 모두 그 힘에 떠밀려 양쪽 기슭으로 밀려났다.

콰직- 쿠궁……!

그때, 강물에 벼락이 떨어지며 어두컴컴한 수면을 밝게 비추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수면 아래로 길고 거대한 용의 형체가 드러났고, 우연히 이를 보게 된 사람들은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응약리가 아무리 자제하려 해도, 교룡이 물길을 탈 때는 물에 대한 민감도가 전보다 몇 배는 높아지기 때문에 통천강의 물살은 마치 해일이 이는 것처럼 무시무시했다.

곧이어 응굉의 전처와 응풍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응약리의 뒤를 따라 날아갔다. 이를 본 계연이 늙은 용을 흘끗 쳐다보고는 그를 휙 밀자, 응굉이 살짝 비틀거리다가 결국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이 아직 응굉의 전처 근처로 날아가기도 전에, 계연이 일부러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응 부인, 약리는 아직 물길을 타면 안 됩니다! 여전히 마음의 응어리가 깊고 그것을 떨쳐내지도 못했으니, 지금 진룡이 되려고 시도하면 반드시 위험에 처할 거예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늙은 용을 찰싹 때리자, 그가 살짝 망설이더니 곧 눈치 있게 말을 받았다.

“부인, 사태가 위급하니 계 선생이 아무리 온 힘을 다해 수령의 기운과 겁수(劫數)를 억누르더라도 부인과 내가 힘을 합치는 게 좋겠소. 우리 둘 다 용이고 약리의 부모이니, 약리가 받을 겁수를 일부나마 대신 맞는다면 약리가 다시 용의 기운을 억누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오!”

용족이 물길을 타는 것은 일종의 술법이기도 하고 반드시 겪어내야 하는 겁이기도 했다. 용족은 누구든지 자신의 힘에 기대어 물길을 탔고, 도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모두 자신의 운명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 도움을 주는 건 받을 수 있으나, 만약 누군가 일부러 물길을 타는 용을 도우려 한다면, 겁의 위세가 줄어들기는커녕 돕는 자들도 함께 겁을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핏줄로 이어진 부모나 친족이 나선다면 충분히 가까운 범위 안에서는 자녀의 겁수를 부분적이나마 대신할 수 있었다.

늙은 용은 이렇게 말하며 안개에 휩싸인 용의 형체로 변한 뒤, 강물에서 열 장(약 30m)정도 떨어진 간격을 두고 상공을 날았다. 거대한 용이 꿈틀대자 주위의 바람과 벼락의 기세가 더욱 거세졌고, 용의 꼬리는 강기슭과 선박에 거의 닿을 듯 아슬아슬했다.

이에 응굉의 전처도 두말하지 않고 곧바로 용으로 변한 뒤, 먼저 날아간 이룡을 따라 자신의 딸을 뒤쫓아갔다.

* * *

일단 물길을 타기 시작하자, 응약리는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간 아무리 준비를 단단히 했어도 진룡이 되려고 물길을 타는 것은 무척 중요한 순간이었으므로 그녀는 조금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이제 부모님의 일에 대해서는 그저 계 숙부와 오라버니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통천강은 그녀의 노력으로 최대한 평온하게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 순간 갑자기 거대한 해일이 일기 시작했고, 강 주위로는 장대비가 쏟아지며 수위가 급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최근 통천강의 변화는 모두가 눈으로 보고 있던 터라, 대정국 안의 여러 수행자는 점괘를 친 뒤,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동시에 갖가지 방법으로 황제에게 이 일을 알렸다. 이에 대정국 관아에서는 통천강 연안에 이미 적절한 안배를 마친 뒤였다.

이때 응약리는 마침내 물길을 타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게 되었다. 평소 그녀의 뜻대로 움직이던 강물은 이제 누구의 말도 듣지 않듯이 변했는데, 마치 갑자기 야생마처럼 흉포하게 변한, 언제나 온순하던 말 같았다. 응약리는 평소보다 몇 배의 정신력을 소모한 뒤에야 물살을 강제로나마 제어할 수 있었고, 하늘이 위세를 부리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물로 자신을 압박해오는 것을 느꼈다.

이 순간 강물에 이는 파도와 통천강에 모여드는 물줄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저마다 엄청난 압력으로 무겁게 응약리의 몸을 내리눌렀다. 이에 응약리는 정신적인 방면에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피부가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응약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압력은 거의 통천강 바닥의 진흙 속으로 그녀를 내리누를 듯했다. 이에 응약리는 젖 먹던 힘을 짜내 그리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계속해서 헤엄쳐야만, 간신히 아래로 추락할 듯한 감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흥-!”

그녀의 울음소리는 강 아래에서부터 울려 퍼졌으나 우르릉! 하는 천둥소리에 뒤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곧이어 폭풍과 폭우의 기세가 더욱 맹렬해지기 시작했다.

용의 울음소리가 울릴 때마다 통천강의 물살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고, 거대한 파도가 양쪽 기슭을 쉴 새 없이 때렸다. 이는 물길을 타는 이교(螭蛟)가 천지의 압력을 받으며 최대한으로 부릴 수 있는 어수술의 힘이었는데, 이를 통해 이교는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

응약리는 여러 해 전에 이미 용심(龍心)을 얻었고, 마음가짐의 굳건함도 보통 교룡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른 교룡이 물길을 탔다면 이 순간 성미가 거칠게 변했을 테지만, 응약리는 여전히 평온한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육체의 고통은 그녀의 고요함을 뒤흔들 수 없었고, 그녀는 계속해서 온 힘을 다해 물살을 통제하려 했다.

곧이어 그녀의 신념(神念) 한 줄기가 물살을 타고 앞으로 뻗어 나가더니, 백성들 앞에서만 드러내는 그녀의 차갑고 신성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통천강 유역의 뭇 물의 족속들은 모두 물러나라.”

물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백 리 넘게 퍼져나가면서, 곳곳의 물의 족속들은 이를 듣고 저마다 숨을 곳을 찾아 들어갔다. 수면 아래는 위보다 상황이 나았으나, 그래도 물길을 타는 교룡에 의해 물살에 휩쓸리면 무척 위험할 수 있었다.

한편, 새로운 장원 나루터 상공의 구름 위에는 계연이 가만히 서서 응약리가 물길을 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늙은 용과 응굉의 전처가 함께 용으로 변해 운무(雲霧)에 휩싸인 채 응약리의 뒤를 쫓아가자, 계연도 법력을 펼치던 척을 그만두었다.

사실 조금 전에 수령(水靈)의 기운과 겁수를 억누른다느니 했던 건 그냥 해본 말일 뿐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진룡이 되는 과정 중에 이렇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응굉의 전처는 이를 전혀 몰랐고, 늙은 용의 말을 계연도 반박하지 않았기에 그녀로서는 조금의 의심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폭풍우 사이로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본 계연은 가볍게 미소 지은 뒤, 자신도 더욱 높은 상공으로 날아올라 그들을 뒤쫓았다. 그는 겁수를 억누르긴커녕 더욱 힘을 보탤 예정이었다.

통천강 아래의 용 그림자는 약 반 시진 동안 헤엄친 후에야 경기부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이 마침내 산맥 아래로 흐르는 인적 드문 유역에 들어서자, 하늘에는 먹구름이 점점 더 두껍게 덮이기 시작했다.

계연은 구름 위 상공에 서서는 법안을 이용해 두꺼운 구름층 아래를 나는 용 두 마리와 들끓는 듯 거세게 파도치는 통천강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계연의 손에 다시 한번 칙령 뇌주가 나타났다. 뇌주는 흑황에서 요마들을 처리할 때 거의 모든 힘을 소진해 지금은 빛이 조금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쌓아온 기초는 아직 남아있었다. 게다가 설령 뇌주 자체의 힘이 사라지더라도, 그때는 계연이 법력을 펼치면 되었다.

눈앞에 떠오른 칙령 뇌주에 계연이 왼손을 갖다 대자 그 위로 벼락으로 인해 빛이 반짝이며 사라졌다. 곧이어 그가 검지(劍指)로 검의를 불러일으켜, 벼락을 부리는 술법을 뇌주에 담았다. 그러자 법력이 파도처럼 용솟음치더니 부적 위로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이내 금빛, 보랏빛, 하얀빛이 뒤섞인 벼락 빛이 미약한 전류와 함께 뇌주 표면으로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뇌주가 번개가 흐르는 먹구름과 뒤섞이자, 이미 형성되기 시작한 뇌운(雷雲)이 더욱이 급속도로 팽창하며 소용돌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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