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0화. 재결합
대신들의 의견이 분분한 사이, 황제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국사, 물길을 탄다는 게 무슨 뜻인가?”
물길을 탄다는 말은 사실 민간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전해지는 말만 듣고 판단할 수는 없었으므로, 좀 더 자세히 파악하고자 두장생에게 물은 것이었다.
“폐하께 아룁니다. 물길을 탄다는 것은 교룡이 진룡이 되는 과정을 일컬으며, 진룡이 되는 단계에서 맞닥뜨리는 겁(劫)을 뜻하기도 합니다. 응 마마의 존함은 응자 약리이시며, 우리 대정국 통천강을 다스리는 여신이시지요. 그분은 도행이 무척 심오한 이교(螭蛟)로, 아주 오랫동안 근방의 물의 족속들을 보호하고 백성들을 위해 바람과 비를 고루 뿌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진룡이 되기 위한 충분한 수행을 쌓으셨기 때문에, 진룡이 되려고 물길을 타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국사, 자네와 천사처의 고인이 술법을 부려 재난을 막을 수는 없는가? 혹은 응 마마께 말씀드려 물난리를 일으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겠는가?”
이를 들은 두장생은 심장이 철렁했다. 자신에게 감히 그럴 능력이 어디 있겠는가? 이에 그가 바삐 대답했다.
“폐하, 응 마마께서는 도행이 심오하시고 뛰어난 신통력을 지니신 데다, 법력도 무궁무진하신 분입니다. 물길을 타고 진룡이 되는 것을 하는 것은 교룡들이 평생 추구하는 염원으로, 신 등이 감히 앞을 가로막는다면 필시 그분의 진노를 살 것입니다. 비록 응 마마의 성정이 온화하다고는 해도, 그렇게 하면 오히려 악연을 맺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강물이 범람하는 것은 어느 한 지역에만 국한되는 재난이 아닙니다…….”
두장생의 말에는 거짓이 조금 섞여 있긴 했지만, 그래도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에 황제가 깊이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이를 대체 어쩌면 좋을지…….”
용상에 앉은 황제가 시름에 잠긴 듯 중얼거리자, 대신들도 진심이든 거짓이든 간에 모두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통천강이 차지하는 면적은 아주 넓었으므로, 물난리가 일어나면 반드시 심각한 사태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많은 논밭이 물에 잠기고, 근방의 백성들은 모두 수재민이 되어 떠돌게 될 것이었다.
이를 본 윤재성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쉰 후, 대신들 사이에서 한 걸음 걸어 나와 예를 올리며 말했다.
“폐하! 노신이 직접 통천강으로 가서 응 마마께 대신 간청드려 보겠습니다.”
“스승님!”
“윤 재상!”
“그런…….”
“재상 대인, 부디 심사숙고하십시오!”
대신들 사이에 서 있던 윤청은 입을 몇 번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관들 사이에 있던 윤중은 즉시 앞으로 나오려다가, 이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윤청의 눈빛을 읽고 동작을 멈췄다.
그러자 두장생의 안색이 일변하더니, 그는 얼른 앞으로 나아가 윤재성에게서 반걸음 정도 뒤떨어진 위치에 함께 선 뒤, 다시 용상을 향해 읍하며 말했다.
“폐하, 그렇다면 신 두장생, 윤 재상과 함께 가겠나이다! 재상 대인께서는 호연정기를 지니고 계셔서 뭇 귀신들조차 공경하는 인물이니, 대인께서 나서시면 강신마마께서도 사정을 봐주실 겁니다!”
황제는 이에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무슨 생각이 떠올라 이렇게 물었다.
“그럼 잘됐군. 짐도 통천강 여신을 한번 만나 뵙고 싶은데, 함께 갈 수 있겠는가?”
“폐하, 아니 될 말씀입니다!”
“폐하, 심사숙고하셔야 합니다!”
“그것만은 결코 아니 되옵니다!”
황제의 말에 두장생을 비롯한 대신들이 모두 화들짝 놀랐다. 교룡이 물길을 탈 때는 무릇 물난리가 일어나는 법인데, 존귀하신 황제께서 그곳에 갔다가 혹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 나라가 어찌 되겠는가?
윤재성도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말을 보탰다.
“폐하, 나라와 사직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황제는 대신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스승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었으므로 순순히 마음을 접었다.
곧이어 대신들은 일단 통천강 유역의 거대한 지역에 일어날 물난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며, 어떻게 수재민들을 구휼해야 할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시도 지체할 수 없던 윤재성과 두장생은 한발 먼저 전각을 나와, 곧바로 통천강으로 가기로 했다.
전각을 나온 두장생은 윤재성을 향해 예를 올리며 말했다.
“재상 나리, 두모(某)가 바람을 부리는 술법을 부리려 하니, 중심을 잘 잡고 서 주십시오.”
그러자 윤재성이 담담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시작하시지요.”
두장생은 최대한 부드럽게 술법을 펼쳐서 자신과 윤재성을 바람으로 감쌌다. 황궁 시위들의 경배하는 눈빛을 받으며 하늘로 솟아오른 그들은 곧장 통천강으로 향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두장생으로서는 응약리의 속도를 따라잡는 게 아예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엄청난 압력을 견디며 헤엄을 치고 있는 터라, 자유로이 바람을 부리는 두장생은 응약리를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두장생과 윤재성이 상공을 날아가는 동안, 주위로는 쉴새 없이 광풍이 불어닥치고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통천강도 불안하게 넘실대며 일렁였으나, 강기슭이 잠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한 시진여가 지나자, 마침내 두 사람의 눈앞에 거대한 파도가 나타났다.
그 파도는 족히 5장(약 15m) 높이는 되어 보였고, 몇 리(里) 넘게 이어져 있었다. 이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수면에 꽂히자, 파도와 물살이 뒤섞이는 폭풍 속에서 때때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위세는 보기만 해도 겁이 날 정도였으나, 위태롭게 넘실대는 강물은 신기하게도 통천강 양쪽 기슭을 뒤덮지 않았다. 고작해야 강기슭 근처 1리(약 390m) 정도만이 침수되었을 뿐이었다.
“국사, 응 마마께서 바람과 파도를 일으켜 통천강 유역에 심각한 물난리가 닥칠 거라고 하지 않았소? 윤모가 보아하니 그렇지는 않은 듯싶소만.”
“그것이, 원래대로라면…… 교룡이 물길을 탈 때는 항상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장생도 어리둥절해 어찌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두장생이 이렇게 대답하는 사이, 두 사람은 이미 그곳에 있던 이들의 주의를 끈 후였다. 응굉과 응굉의 전처, 계연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윤재성이 지닌 호연정기는 언제나 환히 빛나고 있었으므로, 어두컴컴한 폭풍 아래에서는 더욱 눈에 띄었다.
응굉의 전처가 호기심이 어린 얼굴로 바람을 타고 온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응굉에게 물었다.
“굉 오라버니, 저들은 누구죠?”
“이제는 상공(*相公: 옛날, 부인이 자기 남편을 높여 일컫는 말)이라고 부르시오!”
늙은 용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이내 그녀는 작은 소리로 그를 불렀다.
“상공…….”
그 말에 응굉이 찬란한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아래의 두 사람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술법을 펼친 이는 별것 아니고, 누군지는 나도 모르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자는 아주 대단한 인물로, 대정국 조정의 재상 중 우두머리이며 동시에 대학자인 윤재성이라 하오. 문곡성을 타고났으며 호연정기를 지니고 있어,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문인이라 할 수 있다오.”
“그렇게 대단한 문인도 있군요?”
응굉의 부인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문인이라 하면 자신이 살짝 손만 대도 목숨이 끊어지는 이들 아니던가?
“음, 전에는 확실히 없었소. 하지만 이제는 있지. 앞으로는 또 어찌 될지…….”
응굉이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치 구름층을 뚫고 곧장 계연을 볼 수 있는 것만 같았다.
한편 계연은 윤재성이 있는 쪽을 쳐다보다가, 다시 늙은 용과 응굉의 부인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얼굴로 웃었다.
‘여기서 염장질을 하고 있네…….’
두장생이 응약리를 뒤쫓아가려던 순간, 계연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울렸다.
“윤 훈장님, 그리고 두 국사, 만약 응 마마께서 물길을 타는 일로 온 것이라면 굳이 방해할 필요 없어요. 계모(某)가 반드시 물난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계 선생님?’
두장생과 윤재성이 계연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에 기뻐하는 기색을 띠었다. 두장생은 즉시 응약리를 향해 몰던 바람을 멈추고는, 윤재성과 함께 고개를 들어 어느 곳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계연이 법운(法雲)을 타고 천천히 이쪽으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계연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본 응굉도 응굉의 아내와 함께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계 선생님을 뵙습니다!”
두장생은 얼른 공손한 태도로 계연을 향해 예를 올렸고, 윤재성도 기쁜 얼굴로 계연에게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계 선생님, 오랫동안 뵙지 못하였군요!”
계연은 응약리의 일이 해결되면 어차피 곧바로 윤재성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몇 달 후에 천만에 가까운 인구가 대정국에 도달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대정국 입장에서는 이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만 명의 피난민과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이 머물 거처는 물론이고 지급할 양식도 문제였다. 관리를 파견해 이들의 호적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업무였으므로, 이 일은 정말이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왕 윤재성을 만났으니, 계연도 일단 양손을 맞잡으며 이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윤 훈장님, 두 국사, 정말 오랜만이네요!”
늙은 용과 응굉의 아내가 가까이 다가오자, 윤재성이 즉시 응굉을 알아보고 그를 향해 예를 올렸다.
“응 선생님, 이쪽은 분명 응 부인이시겠군요.”
겉으로 그들은 나이 차가 꽤 있어 보였으나, 윤재성은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윤 훈장, 오랜만이구려. 이쪽은 내 부인인 묘려(苗驪)요.”
옛날에 거안소각의 뜰에서 응굉은 윤재성에게 용연향을 마셔 취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윤재성은 머리카락이 새카만 젊은 서생이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대학자가 되어 공명과 관록을 모두 쥐고 있었다.
“윤 훈장.”
응굉의 아내가 윤재성을 향해 만복례(*萬福禮: 여자들이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머리와 무릎을 숙이는 인사)를 올렸다. 굳이 응굉과 계연과의 관계가 아니었더라도, 윤재성 같은 학자에게는 존경을 표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두 분 선배를 뵙습니다. 소인 두장생, 대정국의 국사입니다.”
두장생도 응굉과 묘려를 향해 공손한 태도로 예를 올렸다. 어찌 되었든 그는 대정국의 기운과 연관된 인물이니, 응굉도 그에게 인정할만한 점이 있다 보고 무시하지 않고 대꾸해주었다.
“음, 두 국사.”
응굉은 그를 향해 양손을 맞잡은 채 대답했으나 묘려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 정도만으로도 두장생은 이미 기쁨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언제나 엄숙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그는 이때 저도 모르게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응씨 성을 지닌 이 선생이 마침 이곳에 나타난 데다, 계 선생님과도 친밀한 걸 보니 두장생도 응 선생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저희는 폐하의 명을 받아 응 마마께 물길을 타는 일에 대해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하지만 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이제 안심해도 되겠군요.”
“네, 윤 훈장님과 두 국사께서는 어서 돌아가 계모가 응 선생님과 함께 응 마마를 잘 살필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보고하세요. 그리고 대정국에서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어요.”
“무슨 일입니까?”
윤재성이 이렇게 묻자, 계연은 인축국에 관한 일을 대략 설명해주었다. 그가 그리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상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