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81화 (881/892)

881화. 강산은 여전한데

“천만 명이요? 정말입니까?”

윤재성과 두장생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대정국 전체 인구가 고작 몇이였던가? 이렇게 되면 대정국에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이 갑자기 생긴 셈이었다.

“확실해요. 만약 대정국에서 그렇게 많은 인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다시 논의해봐야죠.”

그러자 윤재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대정국은 이제 국토도 넓은 데다, 원래 조월국이었던 곳으로 상당한 인구가 이주하여 마침 일손이 필요하던 참입니다. 계획만 잘 짜면 별문제는 되지 않을 겁니다. 나눠줄 식량도 넉넉하고, 논밭을 개간하는 데에 일손으로 쓰면 다음 추수에는 또 그만큼 수확할 수 있으니까요. 이 일은 윤모가 적절히 처리하겠습니다.”

윤 훈장이 문제없다고 하면 정말로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이에 계연은 다시 두 사람과 대화를 몇 마디 더 나눈 뒤, 응약리가 진룡으로 변할 때까지 함께 가야 했으므로 응굉과 응굉의 부인을 따라 떠나갔다. 멀리서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지는 걸 보니, 두 번째 뇌겁이 시작된 듯했다.

계연을 비롯한 세 사람의 모습이 구름을 타고 멀리 사라지자, 두장생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눈썹을 찡그린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윤재성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곧 도착할 새로운 백성들을 어떻게 안배하는 게 좋을지 생각 중인 듯했다.

잠시 후, 윤재성이 다시 두장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국사, 우리도 이만 돌아갑시다.”

“예.”

두장생이 대답과 함께 윤재성을 데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 * *

이들이 다시 황궁에 돌아와 보니, 조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뒤이어 윤재성과 두장생이 가져온 두 가지 소식에 대신들이 술렁였다. 그날 조회에서 황제는 곧장 관련 성지를 내렸고, 조회가 끝난 후에는 여러 법령이 관원들을 통해 하달되었다.

그러자 여러 하급 관리가 소식을 전하려고 서둘러 도성을 떠났고, 천사처의 수사들도 술법이나 보물을 이용해 소식을 곳곳으로 전했으며 직접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다.

새로운 법령을 받아든 대정국 각지는 전쟁 동원령이라도 내려진 것처럼 분주히 준비하기 시작했고, 관리들은 위부터 아래까지 전심전력으로 움직였다.

대정국 조정에서는 후에 관원이나 백성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자 몇 가지 내막을 제외하고 사실 그대로 천하에 공표하기로 했다.

윤재성이 문인들의 우두머리가 된 후로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대정국 조정, 특히나 각 부문에는 뛰어난 중하급 관리들이 배출되었는데, 그들 모두 때마침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품은 뜻이 크고 재능도 뛰어난 젊은 인재들이 드디어 기회를 잡은 것이다.

* * *

한편, 통천강 유역에서는 응약리의 진신인 이교(螭蛟)가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압력과 때때로 떨어지는 뇌겁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일정한 속도로 헤엄치고 있었다. 그녀를 본 물의 족속들은 서둘러 멀리 피하거나, 상대적으로 안전한 거리에 떨어진 채 그녀를 향해 예를 올렸다.

응약리는 심마(心魔)도, 침범하는 외부의 마(魔)도, 때를 틈타 덤벼드는 요마나 귀신이나 선인, 승려의 간섭도 없이 하늘이 내린 좋은 기회와 우월한 지리적 조건, 주변인들의 협력을 모두 갖춘 상황이었다. 시종일관 그녀를 짓누르는 압력과 뇌겁의 고통은 별다른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 고통은 새로 태어나기 위한, 변화의 고통이었다.

열흘여가 지난 어느 날, 이교가 지나는 유역을 따라 통천강 강물이 백 장(약 300m) 높이가 넘게 범람해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위로 올라갈수록 그 너비가 넓고 물의 양이 많았다. 반면 아래쪽 강물의 수위는 여전히 원래 강기슭 부근에 머물러 있었다.

만약 담이 좀 큰 누군가가 폭풍을 무릅쓰고 통천강 유역으로 다가온다면, 엄청난 양의 강물이 머리 위를 지붕처럼 덮고 있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그런 형태의 강물이 수십 리나 이어져 있었다.

열흘 넘게 이어진 진룡이 되는 것의 과정으로 인해, 응약리의 본래 몸에는 상흔이 가득했고 완전한 비늘은 거의 찾아보지 못할 정도였으며 찢어진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물의 족속들은 그녀가 지나간 후면 조금이나마 흘렸을지 모르는 용의 피를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응약리는 강물에 이는 파도를 온 힘을 다해 통제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일으키는 물살을 그대로 이끌고 바다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능지처참에 버금가는 고통을 감내하며 헤엄치던 이교의 맑고 아름다운 두 눈에 마침내 하구(*河口: 하천수와 해수가 만나는 지점)를 비롯해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어흥-!”

이교가 바다로 드는 그 순간, 우렁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와 하늘과 땅을 뒤흔들며 사방에 퍼져나갔다. 이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이끌고 왔던 어마어마한 양의 파도도 동시에 바닷물에 섞여들었다.

그러자 상공에서 그녀를 따라가던 늙은 용과 응굉의 처, 계연, 서둘러 뒤쫓아온 응풍은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마어마한 파도와 함께 바다에 섞여든 이교를 본 순간, 계연은 가장 먼저 응굉과 응굉의 부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따님이 진룡으로 거듭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응 선생, 부인. 약리가 성공적으로 물길을 탔으니 이어질 진룡이 되는 것도 분명 순조로울 겁니다!”

“고맙습니다, 계 선생님!”

“하하하하, 나도 감사하오!”

응굉 부부는 당연히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었고, 응풍도 무척 기쁜 얼굴이었지만, 속으로는 자신도 언젠가 물길을 성공적으로 탈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다.

* * *

대정국의 한 사관은 붓을 들어 기록했다.

《계축년(癸丑年) 가을, 바다를 넘어온 육주(*陸舟: 육지로 된 비행선)가 백성 천만을 싣고 오다…….》

사관은 붓을 떼고 다시 먹물에 적시면서, 흥분된 마음에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만 종이에 붓을 내릴 때는 다시 차분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 * *

이때, 육주는 흑황에서 바다를 건널 때보다 이미 반 정도 더 작아져 있었다. 노염생은 육주의 상공에 떠서 멀리 대정국의 국토를 바라보았고, 그의 옆에는 제자인 양종과 노소유가 서 있었는데, 이 순간 대정국을 다시 눈에 담는 양종의 눈에는 감개무량함이 묻어났다.

“양종, 대정국 조정과 이번 일을 조율하는 임무는 네게 맡기마.”

“예, 사부님! 사형도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좋아, 황궁에는 분명 맛있는 게 많을 테지!”

노소유는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더니 양종을 따라 어풍술을 이용해 대정국 도성으로 향했다.

한편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조정에서는 정중한 대례 의식을 치르며 바다를 건너온 선인들을 궁으로 맞아들였다. 황제와 양옆에 늘어선 문무 대신들은 금으로 된 전각 안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건원종 선장들은 안으로 드십시오!”

태감이 목청껏 소리치자 양종과 노소유가 함께 전각의 문턱을 넘었다. 그러자 황제와 대신들이 시선이 단번에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양종은 어렴풋한 기시감이 느껴져 황제와 대신들이 그들을 향해 인사할 때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사제, 사제!”

“어? 아!”

그 말에 번쩍 정신이 든 양종이 얼른 사형을 따라 황제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건원종 수사(修士)가 폐하를 뵙습니다!”

“건원종의 노소유가 폐하를 뵙습니다!”

“두 분 선장, 어서 예를 거두십시오!”

양종은 자신의 이름을 대지 않고 그저 건원종 수사라고 지칭했으나, 황제는 자연히 그런 사소한 부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양종은 서두르지 않고 용상에 앉은 황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 성이였구나. 내가 죽기 전에는 아직 걸음마도 못 떼던 아이였는데…….’

그리고는 좌우에 늘어선 문무 대신을 살펴보니, 낯익은 얼굴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언상에게 잠시 시선을 던졌다가 마침내 윤재성을 바라보았다.

‘강산은 여전하나 옛사람은 간데없구나.’

어느새 백발이 성성해진 얼굴로 꼿꼿이 서 있는 윤재성을 바라보니 양종은 마음이 무척 흡족하고 안심이 되었다. 그의 주위에 밝게 빛나는 호연정기는 이제 자신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인지도 잘 알게 되었다.

양종은 감개무량함을 느꼈고 노소유는 그저 사제를 따라 함께 온 것일 뿐이므로 자연히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두 선장(仙長)이 입을 뗄 낌새가 보이지 않자, 결국 용상에 앉은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장, 곧 도착할 백성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양종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별다른 큰일은 없으나, 그들은 대대로 요마들의 인축국 안에 살던 이들이라 바깥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점이 우려됩니다. 이미 여러 번 그들을 타이르고 일깨워주었으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초조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폐하와 여러 대신께서도 충분히 대비해두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러자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윤청을 바라보았다.

“친애하는 윤경이 나와 고해보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곧이어 윤청이 앞으로 나와 두 선장을 향해 예를 올리더니 진척 상황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조정에서는 이미 석 달 전에 준비를 시작하여, 각 주와 각 부에 그들이 살 수 있는 특별 구역을 마련하고 경작할 만한 양질의 토지를 구획했으며, 식량과 마실 물은 물론, 각지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의원들을 대기해 놓았습니다. 그에 더해 그들을 전담해 관리할 관원들과 글을 가르칠 훈장들을 엄선했으니, 적절히 안배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윤청의 말은 전후 관계가 명확하고 조리있는 데다, 말에서 여러 방면을 모두 고려했다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곧 도착할 새로운 백성들의 심리적인 문제도 고려하여, 그들을 포용하는 동시에 적응할 공간까지 따로 내주기로 했다.

윤청이 설명을 마치자 윤재성을 비롯한 대신들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용상에 앉은 황제도 무척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선장께서 보시기에 어떠신지요?”

양종은 이때 윤청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윤재성이 이렇게나 대단한 아들을 두었다니 놀라웠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쪽에 선 윤중을 살펴보니, 기혈이 왕성한 데다 최근 무도의 기운이 왕성해짐에 따라 윤중에게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운(武運)이 모여들고 있는 게 보였다.

윤중이 전략에 뛰어난지 어떤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가 용맹한 장수라는 것만은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윤씨 일가는 과연 모두 다 대단한 인재들이었다.

금전에 들어선 후에도 양종은 거의 습관적으로 황조(皇朝)의 각도에서 이 일을 따져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이 일은 그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으며, 그가 이 일에 대해 지닌 감정도 고작해야 옛 고향과 자손에 대해 남은 정뿐이었다.

“윤 대인의 안배가 참으로 적절하군요. 이왕 대정국에서 준비를 마쳤다니 저희도 마음이 놓입니다. 육주는 곧 도착할 예정이니, 조정에서 각 곳에 충분한 인원을 배치해주시면 저희가 법력으로 백성들의 이동을 돕겠습니다. 그런 뒤 육주를 이루던 땅덩어리는 흙으로 흩트려 대지에 뿌리도록 하겠습니다. 음, 윤 대인께서 이 일을 맡아주시면 적당할 것 같군요.”

양종이 가리킨 것은 자연히 윤청이었다. 황제도 어차피 그리 안배할 생각이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이며 윤청에게 지시를 내렸다.

“친애하는 윤 경이 이번 일을 맡은 관원들을 이끌고 함께 육주에 오르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번 건원종 수사들과 조정 간의 왕래는 첫 대면에 의의를 둔 것이었고, 진정한 업무는 그 후에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조회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떠난 뒤에는 이 일을 책임지는 관원들이 남아 사적으로 업무 안배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사실 퇴청하는 순간까지 윤재성은 내내 이름 모를 선장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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