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86화 (886/892)

886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여섯 곳

“아.”

호운은 이렇게 대꾸하더니 마대를 들고 조낭과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이자가 예전의 그 황제라는 걸 아는 거로 족했을 뿐, 호운은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해치는 벌써 고구마 하나를 들고 베어 물기 시작했는데, 입에서 오독오독 깨무는 소리가 났다.

“거안소각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노소유가 양종을 바라보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계 선생님, 건원종에서는 대정국에 따로 수사들을 파견하여 종문 말고 또 다른 복지(*福地: 신선이 사는 곳)를 개척할 생각입니다. 그 외에도 제자들을 대정국의 천사처로 보낼 계획인데, 이왕 선생님께서 집에 머물고 계시니 선생님의 의견을 물어보러 왔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건원종이 참 냄새도 잘 맡는다고 생각했다.

“종문 외부에 또 다른 복지를 개척한다는데, 계모(某)가 무슨 의견이 있을 리가요. 다만 이 일은 대정국 조정에도 의견을 물어보는 게 좋을 듯하네요. 천사처에 관해서는, 일단 수행한 세월이 30년이 넘은 수사들은 보내지 않는 게 좋겠어요. 건원종의 기풍이 천사처에 스며들지도 모르니까요. 도원자 도우께 변화에 적응이 빠른 젊고 활력 넘치는 제자들을 보내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려 주세요.”

그러자 내내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있던 양종이 그제야 활짝 표정을 펴더니 정중히 양손을 맞잡으며 답했다.

“예,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아, 개인 수행자들이나 작은 종파 혹은 가족 단위의 수행자들에게는 의견을 묻지 않아도 되지만, 두 곳에는 이 일에 대해 먼저 알리는 게 좋겠어요. 하나는 옥회산이고, 다른 하나는 통천강이에요.”

계연의 말에 양종이 다시 정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계 선생님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옥회산 쪽에는 사부님께서 이미 건원종 장교의 사제(師弟) 신분으로 직접 가셨고, 저희는 일단 먼저 선생님께 의견을 구하기 위해 이쪽으로 온 것입니다. 아마 곧 사부님도 오실 텐데, 통천강 쪽에는 그때 사부님이 직접 방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양종은 예전에 곤선승을 제련할 때 모였던 몇몇 인물들의 관계가 아주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통천강 용왕 쪽에는 분명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때, 노소유가 돌연 이렇게 물었다.

“참! 선생님, 여기 말고 다른 두 곳은 어디인가요?”

그러자 계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노소유를 바라보았다.

“다른 두 곳이라뇨?”

“저희가 여기 오기 전에, 장교 진인께서는 대정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곳이 여섯 곳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단 거안소각과 대정국 조정, 옥회산과 통천강이 포함된 건 알겠는데, 다른 두 곳은 어디인지요?”

“도원자 도우께서 말씀하시지 않던가요?”

그 말에 노소유가 머리를 긁적였다.

“장교 진인께서 본인은 점괘로 여섯 곳밖에 알아내지 못했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도 선생님께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요. 그런데 지금 여기 안 계시니 저희가 먼저 여쭤보려고요.”

‘두 곳이 더 있다?’

계연이 멍한 얼굴로 생각했다. 대정국 내에 자신이 모르는 주요 세력이 또 있던가?

‘양계산? 아니야, 양계산은 이미 해역 밖이지. 대정국과 관계는 별로 없어.’

계연이 이리저리 고민하고 있을 때, 머리 위의 글자들도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 어르신의 대단함을 굳건히 믿고 있었기 때문에, 대정국 안의 모든 곳에 대해 어르신이 전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르신께선 분명 알고 계실 거야!”

“맞아, 분명 아실 거야!”

“만약 모르신다면 그저 잠깐 잊으신 거겠지!”

“맞아! 아니, 아니야. 어르신 같은 선인이 어떻게 잊으실 수 있겠어?”

“그럼 어르신께서 생각지도 못한 데인가 보지.”

“그래, 그래. 그럼 대체 어디지?”

“아, 알겠다!”

“빨리 말해봐!”

“운산관하고 유명정당이야.”

“아아, 맞아, 확실해. 어쩐지 어르신께서 대답을 못 하시더라니!”

“맞아, 맞아!”

백여 개의 글자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는 무척 시끌벅적했는데, 그래도 그들이 도출한 결과는 계연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이를 들은 계연이 그제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 두 곳이라면 내가 떠올리지 못할 만하지.’

“계 선생님, 운산관과 유명정당이 어디에 있는 곳인지요?”

글자 정괴들도 알고, 계 선생님도 그제야 알아차린 듯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그 두 곳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양종이 이렇게 물었다.

계연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곧 이렇게 대답했다.

“유명정당은……. 자, 여길 보세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찻잔을 뒤집자 탁자 위로 찻물이 쏟아졌다. 곧이어 찻물은 서로 모이며 어떤 형상을 만들어냈다.

“이게 현재 대정국의 영토예요. 이건…….”

형상은 계속해서 변하더니 명암의 농도가 드러났는데, 반 정도는 밝았고 나머지는 어두웠다. 게다가 명암이 표시된 부분은 대정국의 영토 범위를 점차 벗어나기 시작하더니 특히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넓어졌다.

“이건 대정국을 중심으로 한 저승 지도예요. 밝은 곳은 성황신이나 토지신과 같은 정신(正神)이 맡은 곳이고, 어두운 곳은 지역을 담당하는 귀신이 없거나 비교적 적은 곳이죠. 그리고 유명정당은 바로 이런 지역을 통괄하고 있는데, 혼백을 저승으로 인도하고 떠도는 망혼(亡魂)을 속박하며 악령을 제거하는 일을 하지요.”

‘저승?’

그들은 이 정도 규모의 저승 세력은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유명정당은 일반적 의미의 신령이 다스리는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유명정당에 백성들이 향을 올리고 절을 하기도 합니까?”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보다는 뭇 귀물들이 경배하는 곳으로, 진정으로 귀도(鬼道)를 닦는 수행자들이 있는 곳이라 결코 얕볼 만한 곳이 아니에요. 아, 몇몇 성황신들은 유명정당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교류를 시작한 곳도 있을 거고요. 건원종에서 직접 조사해보면 되겠네요.”

“예.”

양종은 유명정당이 대정국 조정에서 신령을 책봉하는 일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생각했지만, 일단은 만나보고 나서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운산관은요?”

그 말에 계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운산관은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으니 가지 않아도 될 거예요.”

“예, 모두 선생님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계 선생님께서 이리 말씀하셨으니, 양종은 어쩌면 무슨 금기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더 묻지 않았다. 후에 사부님께 계 선생님의 말씀을 전달하면 사부님이 알아서 결정을 내리실 것이다.

찾아온 목적을 달성하자 양종은 잠시 망설이다가 동전 한 닢을 꺼냈다.

“계 선생님, 이 동전은, 혹시 선생님께서 남기신 것인지요?”

그러자 계연이 동전을 받아 살펴보았다.

“정양통보네요. 음, 예전에 양호와 함께 구경했던 적이 있었어요. 돌아온 후에는 기념으로 남겨주었고요.”

“선생님, 월병을 놓쳤던 저와 달리 호는 선생님께 이 동전을 받았으니, 혹시…….”

그러자 계연이 동전을 다시 탁자에 올려놓고는 양종이 있는 쪽으로 밀었다.

“그냥 기념일 뿐이에요. 도우 생각만큼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건 아니고요. 만약 양호가 그립다면, 경기부의 태묘(*太廟: 종묘)에 가서 보고 오시면 되겠네요. 황제는 음수(*陰壽: 죽은 이가 저승에서 누리는 수명)가 짧다지만, 아직 몇 년 되지 않았으니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예…….”

양종은 약간 낙담한 기색으로 대답한 뒤, 더는 물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떤 말들은 오히려 입 밖에 낼수록 좋지 않았고, 계 선생님도 이만하면 무척 직설적으로 대답해주신 셈이었다.

황제로서 죽었으니 이미 수선자가 될 길은 끊겼고, 귀수(*鬼修: 귀도(鬼道)를 닦는 수행자)가 될 길도 마찬가지로 아득했다. 아들의 짧은 음수가 끝나고 나면 등불이 꺼지듯 혼백마저 흩어질 것이다. 양종이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니, 자신은 오로지 사부님의 신묘한 법력에 의해 다른 삶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그때 그는 아직 귀신이라 칠 수도 없던 상태였다.

“그를 보러 갈 때, 잊지 말고 이 동전도 가져가세요.”

계연이 고구마를 하나 집어 들며 이렇게 말하자 양종이 기쁜 기색으로 물었다.

“선생님께서 제도(*濟度: 불교 용어로, 중생을 고해(苦海)에서 건져내어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해주시려고요?”

‘다음 생에는 어쩌면.’

계연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구마를 이리저리 살피기만 했다.

“고구마가 전부 익었어요!”

곧이어 호운의 신이 난 목소리가 주방에서부터 들려왔다. 그는 조낭과 함께 각기 쟁반을 하나씩 받쳐 들고나왔는데, 하나는 전부 찐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부 구운 것이었다. 곧이어 고구마 특유의 향기가 퍼져나가며, 계연과 해치는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댔다. 계연은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고 해치는 식욕이 돋았기 때문이었다.

군고구마의 맛은 계연의 기억 속의 맛과 똑같았다. 다만 먹는 사람이 많아서 한 사람마다 많은 양이 돌아가지는 못했고, 특히나 해치는 남을 배려하는 성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양종과 노소유는 겨우 맛만 하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양종과 노소유는 고작 한 개를 먹은 뒤에도 무척 예의 있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들은 다시 경기부로 돌아가 대정국 관리들과 이 일을 상의해야 했고, 양종은 어서 가서 양호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떠나자, 해치가 옆에 앉은 호운을 툭 치며 말했다.

“가서 좀 더 사 오거라. 이번에는 넉넉히 백 근(斤) 사오너라.”

“예? 이미 다 팔렸어요. 원래부터 종자로 심으라고 가져온 거라 마차 한 대가 전부였어요. 이젠 못 사요.”

호운도 더 먹고 싶었으나 정말로 더는 구할 방법이 없었다.

“아이고, 평소에는 머리도 잘 굴러가는 놈이! 그럼 어서 방법을 떠올려 보거라.”

해치의 말에 호운이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더니, 계연을 힐끗 보고는 곧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이 말했다.

“그럼, 제가 위씨 상단의 사람을 찾아가 볼게요. 그 사람들이라면 분명 고구마를 더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사부님, 계 선생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호운이 떠나자 해치가 계연에게 자신이 지닌 패를 전부 솔직하게 내보였다.

“계연아, 네가 저 똘똘한 놈을 내게 떠맡겼는데, 아무래도 별로 가르칠 게 없을 것 같다. 요 며칠 지켜보니, 이미 자신만의 수행법이 있고 아직 그리 완만하진 않아도 대도(大道)를 향해 착실히 잘 가고 있더구나.”

그때 조낭이 차를 내와 익숙한 손놀림으로 먼저 계연을 위해 차를 따라준 다음, 다시 해치의 잔에 찻물을 채운 뒤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사 선생께서는 고구마도 맨입으로 먹고, 돈도 그냥 받으신 셈이네요.”

“물론 받은 값은 반드시 할 것이다.”

해치는 대수롭잖은 듯이 씩 웃고는 대추나무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원래 그곳에 쌓여 있던 썩은 복사나무의 잿가루는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에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나무 위에 달린 붉은 대추를 바라보았다.

이를 본 조낭이 계연을 쳐다보자, 계연이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사 선생께 화조를 맛보게 해 드릴게요.”

그러자 해치가 눈을 반짝 빛내더니 서둘러 대답했다.

“나는 안 익은 건 싫다. 내가 먹고 싶은 건 아주 알맞게 익은 화조지. 그러니 몇 년이든 기다릴 수 있다.”

사실 계연은 이미 화조를 다른 이들에게 준 적이 있었지만, 해치도 잘 알다시피 이 대추나무는 사실 완전한 천지영근이 아니었다. 그런 연유로 화조도 완전히 익지 않은 상태였다. 설령 하루 차이일지라도 엄청난 차이가 났으므로, 해치는 괜히 성급히 굴어 이 귀한 것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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