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3)
또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
이번에는 고유스킬과 연관된 하위 스킬인 듯했다.
그리고 정보를 확인했을 때, 드디어 내가 원하던 능력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바타는 나의 또 하나의 육신이나 다름없었다.
몸이 두 개가 된다면 물론 좋은 점이 많지만, 부정적인 점도 없지 않았다.
식비가 두 배로 든다는 것은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아바타의 감각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감정을 여과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치명적이지.’
아바타의 휴면상태를 이용해 감각을 무시하는 것은, 외부의 자극이 적은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절대적인 능력이 아니었다.
‘예컨대··· 죽음이라든지.’
혹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 그 격렬한 감정과 감각을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위험할 때 역소환이 가능한 아바타이기에 괜찮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것만 믿고 아바타를 대신 이세계로 보내려 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위기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거니까. 잠깐 방심한 순간에 죽음에 이를 수 있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지.’
혹은 직접 당하지 않더라도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죽어 나가기라도 하면, 일반적인 현대인보다 나약한 정신을 가진 나는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얻은 스킬은 굉장히 유용한 것이었다.
허브(Hub), 중계기를 통해 아바타를 통한 모든 자극과 감정을 중간에 여과와 취사선택하는 게 가능해졌다.
즉, 차원 멀미를 극복한 것은 물론 죽음을 포함한 모든 정신 오염에 면역이 된다는 의미였으며.
게임을 하듯 아바타를 조종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따뜻하고 안락한 방구석에서!”
《아바타의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성장이 한층 가속화됩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이어서 떠오른 문구.
아바타의 성장에 추가 보정이 주어진다는 의미였다.
‘가만, 아바타는 원래의 나하고 조건이 똑같았을 텐데, 이렇게 되어버리면···.’
본체인 나보다 더 뛰어나고 재능 있어 진다는 뜻이 아닌가?
‘음, 어차피 위험한 일은 아바타가 다 할 테니, 더 강해지면 좋지. 좋긴 한데···.’
밀려드는 미묘한 감정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분신보다 못한 본체라니.
‘아니! 난 두뇌니까 괜찮아. 사령관이 부하들보다 강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건 이제 됐고, 카르마가 얼마나 남았는지 볼까.’
『고유스킬 강화 (500,000)』
『보유 카르마 - 900,213』
그 많던 카르마가 절반이 넘게 감소했다.
소모 카르마의 증가세로 볼 때 이번 강화가 마지막이리라.
욕심인 줄은 알지만 괜히 느껴지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잠깐의 고민 후 마지막으로 『고유스킬 강화』를 선택했다.
다른 능력치를 올리는 것보다 확실히 효율적이었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고유스킬 강화 (600,000)』
『보유 카르마 - 400,213』
《고유스킬이 성장하여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모든 아바타가 무작위 스킬을 한 가지 습득합니다.》
마지막 강화 또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바타의 스킬 각성.
사실상 전투 능력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나 다름없었다.
‘물론 첫 각성 때 주어지는 고유스킬보단 못하겠지만, 지금은 사소한 스킬 하나도 아쉬운 상황이니까.’
거기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세 명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여러 번 강화하며 멀티태스킹은 물론 정신력도 꾸준히 강해졌고, 거기에 「마인드 허브」까지 도움을 주자 혼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앞으로도 아바타가 계속 늘어날 텐데, 나중이 되면 헷갈릴 수도 있겠어. 따로 구별할 방법이 있어야겠는데···.’
쉽게 말해 이름 붙이기였다.
“언제까지 아바타 1, 아바타 2라고 부를 수도 없으니까.”
“작명에는 영 자신 없는데.”
“이름··· 이름이라···.”
분신들과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끙끙거리던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세 개라지만 센스는 모두 동일한지라, 작명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 한스, ‘한스’로 하자. 부르기도 편하고, 어감도 나쁘지 않네. 응.”
나는 처음으로 소환했던 아바타를 가리키며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을 붙였다.
예상치 못한 것은 그 직후.
지잉—
“응? 갑자기 뭐···.”
미약한 울림이 머릿속을 스쳤다.
통증도 없고 이질감도 없었지만, 무언가가 변했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개체 정보>
-개체명 : 한스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초회복」
-개체 특성 : 「마력 친화」
-특이 사항 : 한성현의 첫 번째 아바타.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아바타」 스킬이 성장하며 ‘한스’의 정보가 뇌리에 새겨졌다.
카르마를 사용했을 때 1만큼 진화했다면, 이번 성장은 0.1이 될까 말까.
카르마 상점을 통했을 때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정도였다.
‘사실 이쪽이 통상적으로 능력을 성장시키는 방법이겠지.’
능력의 성장은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이번엔 아바타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그 조건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나한텐 없는 상태창이 아바타에게 생겼네.’
원래 정보를 보는 고유스킬이 없는 한, 따로 상태창이 표시되지 않는다.
이번에 생긴 정보창도 내게 속한 개체를 관리하기 용이하도록 「아바타」가 성장한 결과일 터.
‘저렇게 표기된 걸 보니 더 멋진 이름을 지을 걸 그랬네. 다음 녀석 이름은 좀 더 고심해 봐야겠군. 그런데 「마력 친화」라.’
마력을 쉽게 느끼고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보조하는 스킬.
성장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당장 전투력을 기대할 수는 없게 되었다.
심지어 두 번째 아바타의 스킬은 육체의 내구도가 증가하는 「튼튼함」이었다.
“어째 꽝을 뽑은 기분인데···. 어쩔 수 없지.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꼭 확인해 보아야 했다.
***
“후우··· 후우···.”
나는 한 손에는 쓰레기봉투를 든 채로 현관문 앞에서 심호흡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쓰레기봉투 하나 버리는 것도 고역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는 새벽에 바닥만 보고 빠르게 다녀와야 했으니까.
그렇게 떨리는 몸과 쓰러질 듯한 걸음으로 겨우 나갔다 들어오면, 한동안 식은땀을 흘리며 앓아누워 고생해야만 했다.
이제 「마인드 허브」를 실험해 볼 차례였다.
몇 번이나 확인해 본 능력은 아무 이상이 없을 거라고 알려주고 있었지만, 막상 벌건 대낮에 나가게 되다 보니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 진짜 가보자!’
이내 숨을 크게 들이쉬고 손잡이를 잡아 문을 활짝 열었다.
문밖을 나서는 순간 반사적으로 떨리던 몸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바깥 공기를 마시며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나올 때마다 나를 괴롭히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햇살이 비치는 밖을 태연히 걸어 쓰레기 수거장으로 가서 분리수거를 했다.
쓰레기 분리를 끝내고 주변을 둘러봤다.
수거장 바닥의 담배꽁초와 건너편에서 수다 떠는 아주머니들, 멀리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켜자 쓰레기 냄새가 콧속을 찌른다.
“학생, 여기서 뭐혀? 길 막지 말고 비켜봐 쓰레기 버리게.”
“아, 죄송합니다.”
머쓱하게 고개를 꾸벅이고 집으로 천천히 걸어오며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집 주변의 풍경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집안에서 영화를 감상하듯 지켜보았다.
밖에 있는 것은 틀림없이 나 자신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과 생각하고 말하는 것 모두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공포심은 없었으며, 몸이 떨리지도 않았고 식은땀이 나지도 않았다.
평범하게 대화도 가능했다.
공포와 혼란을 비롯한 온갖 감정과.
아바타를 통해 느껴지는 모든 자극이 필터를 거친 듯,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
삐비비빅— 철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스가 들어와서 태연하게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다가왔다.
검증은 끝났다.
「마인드 허브」는 내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켰으며, 이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이제 이세계로도 갈 수 있을 테고.’
그리고 이렇게 바깥에 익숙해지다 보면, 언젠간 진짜 내 몸으로도 밖에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며칠간 이세계로 가기 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위험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았는데, 내 몸의 안전이 보장됐으니 더 이상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방 안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를 여행해 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은 차치하더라도, 더 빠른 성장이 가능하기도 했으니까.
시간차로 인한 이득은 물론, 그와는 별개로 이세계에서 각성자에게 주어지는 추가 성장 보정까지.
내가 가진 아바타의 성장 가속 특전까지 생각하면 훨씬 빠른 속도로 강해질 수 있으리라.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사회에서는 힘이 전부니까.’
나는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을 애써 억누르며 떨리는 손을 움켜쥐었다.
···힘이 없어 무력한 절망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이세계에 대비해 훈련하며 「초회복」의 진가를 톡톡히 느낄 수 있었다.
무리하더라도 잠시만 쉬면 완벽하게 회복되니 그 효과가 극대화되었고, 이에 쉬지 않고 몸을 굴렸다.
아바타가 단련한 효과는 그 개체에만 적용될 뿐, 본체에까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
생성된 순간부터 별개의 육체나 다름없으니 어쩔 수 없는 문제겠지.
‘뭐, 이세계로 가는 것은 아바타뿐이니 상관없으려나. 성장 가속이 적용되기도 하고. 거기다 카르마 상점의 스테이터스 강화 효과는 아바타를 재소환할 때 공유되는 것 같으까.’
홈트레이닝이 한계인 나와는 다르게 아바타로는 밖에 나갈 수 있었으니, 더 효율적으로 운동을 시킬 수 있었다.
초월적인 회복력 때문에 불필요한 관심을 피하고자 사람이 없는 단지 내 헬스장을 이용해 육체를 혹사시켰고, 좀 오래 하다 눈치가 보인다 싶으면 밖으로 나가 멀리까지 달리며 체력을 길렀다.
극한의 단련에서 오는 고통은 「마인드 허브」를 통해 걸러낼 수 있으니 고된 운동도 지루한 반복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본체는 집에서 인터넷을 뒤지며 낄낄대고 있었으니 진짜로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얼굴을 한 아바타 둘을 동시에 내보내는 것에는 불안감이 있었던지라, 이세계로 보내기로 예정된 한스를 집중적으로 단련시키고 다른 아바타와는 홈트레이닝과 여가생활을 병행했다.
“오-! 벌써 스테이지 보스 클리어!”
“좋았어, 계속 가즈아아!”
그야말로 환상의 호흡으로 2인용 플레이하던 와중, 현관이 열리고 땀에 젖은 한스가 들어와 욕실로 향했다.
극한의 고행을 하고 돌아온 녀석을 보니 뭔가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뭔가 좀 찝찝하긴 한데, 그렇다고 한쪽 팔만 집중 단련하고 몸은 쉰다고 팔에게 미안해하는 것도 그렇고.’
씻고 있는 한스가 나오기 전에 밥상을 차렸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식비가 어마어마하게 깨지고 있었다.
장정 셋이 보통 사람들 이상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고, 그중 하나는 고행에 가깝게 몸을 혹사하고 있었으니 소모되는 칼로리도 상상 이상이었다.
깨지는 식비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바타를 통해 쓸 만한 이세계의 물건을 가져오기만 하면 충분히 돈이 될 테니까.
‘몰래 파는 문제야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의 아바타는 범죄에도 최적화된 능력이니까.’
물론 무고한 이에게 피해를 줘 가며 돈을 벌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 또한 그런 이들에게 피해를 본 입장이 아닌가.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모든 일에 선을 지켜서 행동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세계에 갈 필요성이 있는 거고.’
다른 귀환자들에 비하면 강한 것도 아니었으니, 지구에서는 돈을 벌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당장 생각나는 게 육체노동뿐이었으니.
“그보다 ‘아우테리카 차원’에 대해서는 나오는 게 없군.”
“내가 처음으로 간 곳인가? 아니면 아직 돌아온 사람이 없는 걸지도. 어쨌든 아쉽게 됐어.”
어느새 아바타와 대화를 나누듯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그동안은 대화상대가 부족했으니까···.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차차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처음에 내가 했던 것처럼 중무장한 아바타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그때 내가 썼던 장비는 아니고, 최근에 새로 구한 물품들이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이세계로 가는데, 차마 부모님들께서 준비하신 물건들을 보낼 수 없었기 때문.
만약의 사태를 위해 준비된 것들이었지만, 아마 앞으로도 쓰일 일은 없지 않을까.
“후우··· 이제 진짜 다 된 거 같은데.”
사실 언제든 오갈 수 있으니 이렇게까지 확인할 필요는 없었지만, 긴장을 풀기 위해 여러 번 확인을 마쳤다.
안전하다는 것은 알지만 다른 세계로 간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이 긴장되었다.
“그럼, 진짜 가 볼까. 「이계전송진 소환」.”
그리고 눈앞에 얼마 전에 보았던 전송진이 다시 생성되었다.
***
《아우테리카 차원으로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과정은 간단했다.
이계전송진을 소환하고 아바타로 위에 올라선 후에 발동.
직전까지 했던 긴장이 무색하게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이세계로 올 수 있었다.
전송이 완료되고 눈을 뜨자 얼마 전 보았던 숲의 풍경이 눈앞에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때와는 달랐다고 해야 할까.
높게 솟아오른 나무는 눈에 익었지만 주변 풍경은 잘 보이지 않았다.
“밤이잖아···.”
밤의 숲 한복판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졌다.
시간의 흐름이 열 배가량 차이가 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는 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부러 처음 전송되었던 시간까지 맞춰서 왔는데, 그동안 시간이 지나며 오차가 생겼으리라.
시작하자마자 야간의 숲에서 서바이벌을 해야 하다니, 밝은 숲에서도 자신이 없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일반적으론 야간의 숲을 부주의하게 움직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겠지만···.’
고민은 잠시, 거리낌 없이 발을 내디뎠다.
각성하면서 강화된 신체 능력과 「초회복」을 믿는 것도 있었지만, 위기의식의 결여가 가장 큰 원인이었으리라.
걱정했던 차원 멀미도 「마인드 허브」 덕분에 멀쩡했고, 나는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생각이 위험한 야간산행조차 설레는 모험으로 여기게 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이세계 모험의 낭만에 젖어 밤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별이 아니라 노랗게 빛나는 맹수의 두 눈동자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