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20화 (20/284)

아크리치 (1)

콰지직—!

“크윽!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브로코슬락 클랜 아잔투 지부를 책임지는 위라크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도시 전역에 펼쳐진 경계를 뚫고, 그 한가운데에 있는 은신처가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은 것이다.

범인이 누군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파편을 가지고 숨었던 놈이겠지! 놈이 노리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파편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였다.

‘안 그래도 파편 수색을 위해 도시 전체를 감시하던 중이었다. 어떻게 우리의 감시망을 피했지? 또 어떻게 파편이 숨겨진 위치를 알아냈지?’

온통 의문투성이였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파편을 무사히 지키는 것이었다.

하필 대낮에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경계가 약해진 상태라, 이상을 눈치채고 돌입하는 데 1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죽음의 손가락.]

콰앙!

“젠장할!”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저것들이었다.

한 무리의 언데드들이 건물을 둘러싸고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하필 태양이 있을 때라···. 물론 이것도 놈의 노림수였겠지만. 하지만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긴급 소집을 받은 뱀파이어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었지만, 내부에 있는 티아폴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쿠르르릉···

때마침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생기더니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려 도시 전체를 그림자로 뒤덮었다.

‘젠장! 늦었잖아!’

본거지에 설치된 도시방어용 마법.

예상치 못한 습격이었던지라 발동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이 급한 위라크는 이를 이해해 줄 여유가 없었다.

“바로 진입한다! 길을 열어라!”

[키에엑!]

“밀어붙여라!”

달그닥— 달그락!

위라크의 명령에 뱀파이어들은 오직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 똘똘 뭉쳤다.

도시 상공의 먹구름으로 어느 정도 페널티를 상쇄했지만,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뱀파이어들은 무리한 진입에 하나둘 죽어 나갔다.

[사령의 인도.]

“크허억! 위라크님, 먼저 가십시오!”

그리고 몸을 던져가며 흑마법을 막아낸 부하의 희생을 바탕으로 마침내 그는 건물 내부로 돌입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겠다. 너희는 이곳에서 입구를 막아라!”

지하실의 입구에 도착한 위라크는 함께 들어온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따라 들어온 잔혈의 수는 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실 입구를 막기에는 충분하리라.

‘티아폴! 제발 버티고 있어라!’

지하실을 가로질러 파편이 있는 곳으로 향하며, 그는 간절히 기도했다.

이번 건은 클랜로드가 관심을 두고 직접 명령내린 일이었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안 돼! 그럴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서둘러 질주한 그는 마침내 파편이 보관된 지하실 앞에 도착했지만,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화아악—

결계가 쳐진 방에서 압도적인 흑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늦···었구나.’

그 순간.

끼이익—

서서히 지하실 문이 열리고···.

벌어진 틈새로 심연과도 같은 어둠이 새어나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감각이 예민해진다.

문이 열리는 찰나의 순간이, 위라크에게는 마치 억겁과도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숨이 가빠진다.

시선을 문에서 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지옥문이 열리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는 곧 마주할 수 있었다.

가면을 쓰고 검은 로브를 휘날리며, 칠흑 같은 불꽃을 두르고 다가오는 존재.

강림한 마왕과도 같이··· 절망과 공포를 흩뿌리는 재앙을.

***

<개체 정보>

-개체명 : 한스

-종족 : 언데드 (아크리치)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명경지수」

-개체 특성 : 「부패한 심장」, 「사악한 지혜」, 「금단의 지식」, 「불사」, 「마력 친화」, 「흑마법」

-특이 사항 : ‘불사왕의 파편(2/3)’의 힘으로 격이 상승했다. 내재한 흑마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자신의 근원을 추출해 불사성을 얻을 수 있으며, 보관된 근원이 파괴되지 않는 한 끊임없이 부활한다.

나는 흡수한 힘을 갈무리하며 눈을 떴다.

주변에 남아있던 뱀파이어의 혈마법 결계는 힘의 유동을 견디지 못하고 찢겨나간 후였다.

[와우, 이거 대단한데?]

두 번째 파편을 흡수했다고 단순히 두 배 정도 강해진 게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출력만 최소 다섯 배···. 거기다 새로 얻은 스킬까지 포함하면 무력이 열 배는 강해졌겠는데?’

이번에 얻은 「금단의 지식」의 효과는 간단했다.

이름 그대로 흑마법과 언데드를 비롯한 금단의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것.

‘머릿속에 거대한 도서관이 자리한 것 같네.’

그것도 악마를 소환한다거나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술법 등 사악한 마도서들이 가득한 서고였다.

‘거기다 「불사」까지···. 그 전에 일단 저것부터 먼저 처리해야겠군.’

나는 문을 열고 나가 선 채로 굳어있는 위라크를 마주했다.

어떻게 열심히 언데드들을 뚫고 여기까지 오긴 했다만, 이미 한발 늦었다.

[긴말할 필요는 없겠지.]

뼈를 가리기 위해 가죽 장갑을 낀 손을 들어 그를 가리키자, 사방에서 그림자로 이루어진 손이 튀어나와 그를 덮쳤다.

“크아악! 제기랄! 어디서 이런 괴물이!”

위라크는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그림자들을 찢어발기며 포효했다.

확실히 그는 앞서 처치한 티아폴보다 훨씬 강했다.

혈마법에만 특화되어 있던 티아폴과는 달리,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마법 실력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래 봤자 지금은 좋은 샌드백일 뿐이지만.’

나는 「금단의 지식」을 통해 새로 습득한 흑마법들만 사용했다.

아무래도 뭐든 직접 써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낫이 달린 검은 쇠사슬이 공간을 휘젓고, 유황 냄새가 나는 지옥의 불꽃이 지하실의 공기를 불살랐다.

내 주변에 쳐진 온갖 종류의 방어 결계는 그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쿠궁—!

그는 몇 번이고 틈을 노려 도주를 시도했지만, 이미 이 근방은 내 영역이었다.

사방의 어둠이 공간을 짓이기며 그를 찍어 눌렀다.

“크헉, 젠장··· 젠장! 이 말도 안 되는 마력량은 대체···! 파편을 완전히 흡수했다고···?”

[하인즈! 내가 시선을 끌 테니 어떻게든 빠져나가 클랜에 정보를 알려라!]

위라크의 말과 동시에 한쪽에 숨어있던 하인즈에게 텔레파시가 전해졌다.

나름 잘 숨어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직계혈족이다 보니 완전히 숨길 순 없는 것 같았다.

[하인즈! 안 들리나? 명령이다!]

그래도 계속 가만히 숨어있자 그가 다시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하인즈를 강제하는 금제의 힘이 느껴졌지만, 더는 따를 이유가 없으니 가뿐히 무시했다.

[젠장, 설마 너도 제압당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인가?]

설마 자신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저항하던 위라크는 이내 검은 사슬에 묶여 바닥에 널브러졌다.

쿵!

“허억, 허억. 네놈은··· 누구냐?”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한 듯 체념한 목소리.

하지만 그 두 눈은 여전히 이글거리며 한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듯, 원통한 눈빛.

그것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속으로 실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한스다.]

이름 정도야 못 알려줄 것도 없지.

어차피 본명도 아니고.

[그만 자라.]

더 이상 귀찮아지기 전에 곧바로 흑마법을 사용해 그를 가사 상태로 만들었다.

축 늘어진 위라크의 몸뚱이.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있던 하인즈가 다가와, 그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 넣고 피를 빨아들였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특수스킬「피의 일족 (잔혈孱血)」이 「피의 일족 (순혈純血)」로 진화합니다.》

비쩍 말라가던 위라크가 먼지처럼 부스러졌다.

하인즈는 두 번째 순혈을 흡혈하고서야 비로소 승급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흡혈할 때 어느 정도 손실이 생기는 모양이야. 이제야 간신히 순혈 끄트머리에 도달한 것 같네.’

위라크까지 흡혈하고 순혈이 되었건만, 갓 승급해서인지 아직 티아폴만도 못한 듯했다.

“읏차~ 이제 막 순혈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계속 흡혈하다 보면 더 강해질 테니까.”

동족 포식을 주력으로 삼기로 한 이상, 그 성장 속도는 다른 뱀파이어들과 차원이 다를 것이다.

하인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위쪽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아직 남은 뱀파이어들이 잔뜩 있었다.

도망가지도 못하게 언데드들에 둘러싸여 있는 채로.

***

상황이 정리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항하는 잔혈들을 하나씩 잡아다 피를 빨자, 몸에 내재한 힘의 근원인 흡혈인자의 순도가 증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에퉤퉤, 이건 도저히 못 먹겠는데? 왜 로실리카가 그렇게 말했는지 알겠군.”

나는 서번트의 피를 빨다가 땅에 뱉으며 투덜거렸다.

서번트와 슬레이브는 뱀파이어 취급도 안 해준다고 했었지.

불순물인 변이된 흡혈인자만 가득해서, 피를 빨아봤자 오히려 순도가 떨어질 정도였다.

‘놈들이 왜 그렇게 불완전한지 알겠군.’

이것들은 소량의 흡혈인자를 주입해 체내 세포를 강제로 변이시킨 존재였다.

만들기도 쉽고 소모한 자원에 비해 효율도 높은 만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인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괴된 은신처 건물과 전쟁터가 된 정원.

한스는 부서진 언데드들을 복구하며, 하인즈가 먹지 못한 하수인들의 시체들도 되살렸다.

다행히 아직까지 남아있는 한스의 은폐 결계 덕분에 주민들에게는 소란이 들키지 않은 듯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도시를 떠나 볼까.”

도시를 지배하던 뱀파이어들을 일소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범죄조직들의 목줄을 잡고 있던 이들이 한꺼번에 쓸려나갔으니, 앞으로 치안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떠나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

하인즈는 서둘러 남매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은 먼저 떠날 준비를 하고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대로 그냥 떠나기에는 양심이 좀 찔리는데.’

잠시 생각하던 나는 이내 의미 없는 고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계에 있는 자신의 몸은 두 개지 않은가?

‘그래! 어차피 이제 하인즈도 충분히 강해졌고. 굳이 한스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으니 여기서 갈라지자.’

하인즈는 남매를 데리고 도시를 떠나고, 한스는 당분간 도시에 남아서 다른 일들을 처리할 것이다.

‘역시 몸이 여러 개니까 편하네.’

그렇게 하인즈가 남매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할 무렵, 한스는 이번에 새롭게 얻은 지식으로 흡혈귀들을 구울(Ghoul)로 만들어 음차원 아공간에 수납했다.

[음···. 이거 좀 더 연구하면 지구에서도 열 수 있겠는데?]

이번에 얻은 「금단의 지식」과 「사악한 지혜」의 시너지는 매우 뛰어났다.

덕분에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흑마법들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당장 쓸 수 있는 아공간 마법은 ‘아우테리카 차원’의 이면에 위치한 음차원을 이용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악한 지혜」를 사용해 새로운 지식들을 연구하다 보면, 조만간 지구에서도 열 수 있는 아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남은 것들을 수거하러 가자.]

아직 챙길 것들은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언데드들을 모두 수습한 한스는 그림자 속에 스며들어 빠르게 이동했다.

목적지는 당연히 뱀파이어들의 본거지였다.

‘이번에 순간이동도 쓸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불안하니까 다음에 쓰자. 놈들의 저택에 이동 방지 결계도 설치되어 있을 테고.’

그렇게 이동한 본거지는 이미 전투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지트의 습격으로 긴급 소집이 발령되면서 비상사태로 돌입한 것이리라.

‘물론 의미 없는 발악이지만.’

나는 먼저 저택 전체에 은폐 결계를 둘렀다.

이제부터 제대로 날뛸 생각이었으니까.

[나와라. 나와서 모조리 쓸어버려.]

검게 물든 바닥에서 수백에 달하는 언데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흑마법을 사용해 언데드들을 강화하고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콰지직!

“쿠워억!”

[키에엑—!]

저택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수인들과 언데드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2미터가 넘는 덩치의 박쥐 얼굴을 한 슬레이브와, 그와 같은 형상의 구울이 서로를 물어뜯었다.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서번트가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파괴하고, 다른 언데드에게 반격당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흐음···, 이거 생각보다 많은데?]

하인즈로 있을 때 대충 파악한 숫자보다 많은 수의 슬레이브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지하에 대량으로 동면시켜 놨다고 듣기는 했다만···.

“침입자를 해치워라! 버티다 보면 위라크님이 오실 것이다!”

“크에엑—!”

아무래도 이것들은 위라크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여기서 가장 강한 건 본거지를 지키기 위해 남겨진 잔혈 하나뿐.

‘그럼 더 시간을 끌 필요도 없지.’

나는 서서히 저택 전체에 흑마력을 퍼트렸다.

바닥과 벽, 천장을 가리지 않고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끼에에—!]

“큭! 이건 또 뭐지?!”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모든 영역에 그림자가 퍼졌을 때.

쥐고 있던 해골 지팡이로 가볍게 바닥을 찍었다.

푸부부북—!

푸화악!

“으허억—!”

“쿠워어억!”

순간적으로 저택 내부에 피의 안개가 퍼졌다.

그림자에 잠식된 모든 면에서 검은 가시가 튀어나와 흡혈귀들을 꿰뚫었다.

“끄허억···. 위, 위라크님···.”

전신에 가시가 꽂힌 채 버둥거리던 잔혈은 잠시 버둥거리다 곧 움직임을 멈췄다.

저택에 순간적인 정적이 찾아왔다.

[와우···.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이렇게 한 번에 대량 학살을 저지르고 나니,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실히 체감됐다.

이 정도면 어딜 가도 무시당하지 않으리라.

‘아니, 그건 당연한 일인가.’

피바다에 잠긴 수백에 달하는 시체, 주변에 서서 흉악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수한 언데드들.

그 한가운데서 검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한스.

무시는커녕 당장 도망가야 할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무슨 마왕이냐고···.’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데드로 쓸 수 있는 시체들과 그 너머로 보이는 비싸 보이는 장식품들.

아직 챙길 수 있는 것들은 많이 남았다.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겨야지. 여기 귀중품 보관하는 데가 어디라고 했더라.’

나는 언데드들을 저택 전체로 퍼뜨리며 속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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