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26화 (26/284)

하회탈 (4)

찰칵! 찰칵!

동트기 직전 새벽의 공원 안.

곳곳에 켜진 환한 조명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이능관리국 범죄수사과 요원인 박한철은 가로등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며 현장을 바라봤다.

공원 한편의 폴리스라인이 쳐진 장소, 내부에는 여러 사람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닥 곳곳에 현장보존 표시가 되어있는 그 중앙에는, 피바다와 함께 한 문장이 남아있었다.

-사형 집행 완료

“사형 집행은 옘병···.”

박한철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쑤셔 넣었다.

터덜터덜 폴리스라인으로 향한 그는 한쪽 구석에서 전화하고 있는 이에게 다가갔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부탁드립니다.”

마침 통화를 마쳤는지 스마트폰을 품에 넣는 모습. 박한철은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뭐 좀 나온 거 있다냐?”

“아, 선배님.”

출동한 119대원들이 현장을 발견한 직후, 사건은 경찰에게 알려졌고 곧이어 이능관리국 범죄수사과에까지 전달되었다.

“일단 사람의 피가 맞습니다. 그것도 순전히 한 사람의 피라더군요.”

“···그럼 확실히 죽었겠군.”

현장에 남아있는 피는 치사량을 아득히 넘어서는 양이었으니까.

현장보존과 증거 수집에 이어 감식을 맡긴 결과가 하나둘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혈액에 다량의 흑마력이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흑마력? 피의 주인이 흑마력 사용자인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흑마력 과다노출로 세포들이 괴사했다고···, 그게 출혈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답니다.”

“···설마 마인인가?”

마인(魔人), 이세계에서 인외의 힘을 얻고 돌아온 귀환자.

처음에는 흡혈귀나 늑대인간 등을 칭하는 말이었으나, 요즘에는 저주나 사령술 같은 힘을 악용하는 이들도 통칭하는 말이 됐다.

아무래도 부정한 힘을 장시간 사용하다 보면, 사용자의 정신도 오염돼서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근처 CCTV 조사 결과는 뭐···, 예상했던 대로 깨끗합니다. 피해자 여성 말고는 나온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렇게 대놓고 일을 벌일 정도면 그 정돈 당연하겠지. 그런데 시체도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군.”

우웅~

박한철의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자가 정신 차렸단다. 겁에 질려있어서 잘 다독이면서 정황을 파악할 예정이라고 하는군.”

“다행이군요. 정보도 없어서 막막했는데.”

현장에서 기절한 채 발견된 여성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지금껏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이제 일에 진척이 생길 것 같았다.

그렇게 사건 현장을 보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현장을 조사하던 감식반 한 명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소지품들과 자택에서 채취한 지문이 일치합니다. 그곳에서 살인의 증거들도 다수 확인하고 분석에 들어갔답니다.”

현장에 남은 물건들.

그중 피해자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스마트폰을 제외한 물품에는 여러 살인의 증거들이 담겨있었다.

피해자들의 비명이 담긴 녹음기와 사진이 찍힌 스마트폰, 그 주인으로 보이는 이의 신분증이 담긴 지갑.

그걸 확인한 즉시 신원과 주소를 파악하고 수사대를 보냈는데, 지금 그 결과가 나왔다.

“연쇄살인마라니, 확실히 죽어 마땅한 놈이었군요.”

“쯧, 아무리 그래도 사적 제재라니. 애들도 아니고 힘을 가진 놈이 영웅 놀이에 빠지는 것만큼 위험한 게 또 없어.”

법치국가에서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신념을 우선시한다.

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테러리스트에 버금가는 위험분자였다.

곧이어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렇군요. 예,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쇼.”

통화를 끝낸 박한철은 전화를 끊으며 현장을 다시 한번 둘러봤다.

“···피해자 진술받았단다.”

“뭐랍니까?”

“뭐, 예상대로지. 공원을 지나던 중 살인마가 나타났고, 살해당하기 직전에 누군가가 나타나 구해준 것 같다고 하는군.”

“구해준 것 같다고요? 확실하지가 않네요?”

“쓰읍, 이게 애매한 게···. 피해자 반응이 영 이상하다고 하네.”

인상을 찡그린 박한철은 머리를 벅벅 긁다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보자마자 정신을 잃었다고 하는데, 진술하는 걸 보아하니 살인마보다 그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눈치였단다.”

“···그렇게 무섭게 생겼답니까?”

“아니, 얼굴은 보지 못했대.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잠시 말을 멈춘 그는 현장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피로 써진 글귀가 남아있었다.

“하회탈 가면 말이야.”

글귀 옆에 그려져 있는 그림.

후배는 잠시 그쪽을 유심히 살피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 저게 하회탈이었군요? 난 또 웬 괴상한 웃는 얼굴을 그려 놨다 싶었는데.”

“나도 방금 전해 듣고 깨달았다.”

“뭐, 한밤중에 하회탈 가면 쓴 미친놈을 보면 무섭기야 하겠죠. 그런데 그게 바로 앞에서 칼을 들이민 살인마보다 더할까요?”

“글쎄···. 그게 당연하기야 한데.”

그들은 대화를 나누다 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보고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오늘도 밤새웠네요.”

“난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어. 잘 시간이라도 좀 줬으면 좋겠네.”

그들은 이내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축 처진 어깨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

한국 귀환자 협회 서울 남부 지부.

“지부장님, 이능관리국에서 협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또? 걔네는 맨날 그러더라. 또 뭐가 문제래?”

지부장 윤지윤은 투덜거리며 비서가 건네는 문서를 받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음? 이거···, 뭔가 익숙한데?”

“관련 자료도 조사해 뒷부분에 첨부해 놨습니다.”

“오! 역시 김 비서. 아주 유능해?”

지부장은 팔랑팔랑 서류를 넘기며 읽다가 잠시 멈칫했다.

“귀금속 강도 3인조 체포 사건···. 확실히 놈들의 진술에서도 그게 나왔었지. 하회탈.”

“동일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래, 그렇겠지. 일단 우리 쪽 자료 넘겨주고, 협조해 달라는 대로 해줘.”

그녀는 서류를 내리며 비서에게 지시하고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비서가 문밖으로 나가자 양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고개를 젖혔다.

‘뭐, 솔직히 나는 하회탈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치안은 계속 어지러워져 가고, 지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게라도 나쁜 놈들을 처벌해서 수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번에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하필 살인을 했단 말이지. 그냥 저번처럼 제압해서 넘겨주는 정도였으면 서로 좋았을 텐데.’

사적 제재로 인한 살인.

상대가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라고는 하나, 국가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활동할 거 우리 가디언에 들어와 주면 좋겠는데.’

정부 기관인 이능관리국에서 그를 찾아낸다고 해도 크게 처벌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당히 사면을 대가로 스카우트하려 하겠지.

능력도 있고 나름의 정의감도 있어 보였으니까, 목줄만 제대로 채울 수 있다면 훌륭한 말이 될 것이다.

“하아, 일해야지. 일.”

그녀는 의자에 바로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최근 치안이 어지러워지면서 할 일이 늘었다.

휘하 가디언들의 불만 사항도 늘고 있고.

‘아, 다 때려 부수고 싶다.’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

“역시, 다 때려 부수니까 속이 시원하네.”

나는 야간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한스를 보고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역 마법의 첫 실전 투입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오직 이동에만 신경 쓰며 최대한 골고루 마법을 걸고 다녔다.

이 마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지망의 완성도가 높아지기 때문.

전염으로 마법에 걸린 개체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고, 그중 도움이 되는 것을 취사선택해 가며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때문에 초기 단계인 지금은 감지 범위를 좁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도 간밤에 사건이 다섯 건도 넘었단 말이지.’

가장 큰 건은 역시 연쇄살인마를 처벌한 것이었다.

나머지는 공포의 저주를 심어주고 적당히 처벌하는 선에서 끝냈다.

강간범을 거세시키는 것 정도야 뭐, 그만하면 적절하지 않은가.

‘죽인 것도 아니고.’

다시 생각해도 자비롭기 그지없었다.

나는 잠깐 한스를 보다가 다시 밖으로 내보내 감지망을 정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한다고 하지만, 직접 손을 쓰면 더 빠르게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서울 전역을 감쌀 정도로는 만들어 놔야지.’

이번 일로 확실하게 깨달았다.

지금 치안이 말도 안 되게 떨어졌다는 것을.

‘그리고 그놈들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다.’

치안이 이 지경이 되게 만든 원인.

세력을 이뤘다는 빌런 조직.

“으차차차~ 그럼 그 일은 한스로 해결하기로 하고. 이제 저쪽 세상도 신경 쓸 타이밍인데.”

나는 기지개를 켜며 하인즈 2세의 상황을 살폈다.

아잔투에서 떠나온 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어린 남매가 있는 만큼 무리해서 이동하지 않았다.

마을과 도시를 지날 때마다 편한 숙소에 묵고, 아이들과 관광도 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이렇게 떠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잔투에서 어느 정도 떨어졌으니, 이제 애들이 정착할만한 장소를 찾아봐야 했다.

마침 남매의 거취를 두고 고민하던 중, 디아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저··· 아저씨. 확실하진 않은데, 저희 작은아버지께서 라펠라 시에서 작은 가게를 하나 하신다고 들었거든요.’

‘그동안은 아잔투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갈 여력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가는 방향에 라펠라 시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생각이 나서···.’

몇 년 전에 부모님께 들은 이야기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잔투에서 멀어지기 위해 무작정 왕국의 중심부로 향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라펠라 시를 목적지로 잡고 이동했다.

아직도 가게를 하고 있을지, 정확한 위치도 모르지만 아무 대책도 없던 상황보다는 훨씬 나았다.

내가 평생 돌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나름 대책이야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피가 이어진 친척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숙부의 가족들이 갑자기 찾아온 조카들을 살갑게 맞이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약간의 경고와 함께 양육비를 두둑하게 쥐여 주면 되겠지. 주기적으로 방문할 생각이기도 하고.’

꼭 장사하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상황을 보고 주기적으로 후원하겠다고 하면, 친자식 이상으로 아껴주지 않겠는가?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맺은 제대로 된 인연이다.

전송진을 이용하면 큰 수고가 드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물론 친척들을 못 찾을 가능성도 있으니 다른 방법도 준비해야겠지만.

나는 밖에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바타를 바라봤다.

「페르소나」와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된 아바타.

“흠···, 이 녀석은 ‘하인리히’로 할까.”

<개체 정보>

-개체명 : 하인리히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페르소나」, 「초회복」, 「명경지수」

-개체 특성 : 「무골(武骨)」

-특이 사항 : 한성현의 네 번째 아바타. 「무골」의 영향으로 단련 시 효과가 증가하고, 육체를 이용한 전투와 기술 습득에 추가 보정이 주어진다.

하인즈 2세로 양지를 돌아다니는 것도 슬슬 한계였다.

애초에 태생이 어둠 속에서 숨어 살아가는 종족.

지금껏 들키지 않은 것도 운이 좋은 거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 적지 않은 수고가 들었지만.

‘아크리치에 뱀파이어라니. 쓸 수 있는 무력들이 전부 음지에 치우쳐져 있잖아. 이번에 보낼 하인리히는 반드시 양지에 어울리게 키워야지.’

그를 위해 생각해 둔 방법도 있었다.

마침 주어진 스킬도 육체파로 키우기 적합하니 금상첨화이리라.

그렇게 하인리히의 투입을 준비하다가, 때마침 라펠라 시에 도착한 하인즈 2세에게 의식을 집중했다.

***

그 시각, 익명성이 보장되는 한 인터넷 게시판.

-한밤중에 하회탈 괴인 본 썰 품.

그곳에서 공포의 하회탈 목격 정보가 하나둘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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