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28화 (28/284)

하인리히 (1)

“통과하시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하인리히는 수도 외성의 경비병에게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하인즈가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 준 덕분에 무난하게 입성할 수 있었다.

‘사실 정말 여기 들어와도 괜찮을까 회의감이 들기는 하는데···.’

수도 인근에서 아무렇지 않게 진혈의 뱀파이어와 마주칠 정도다 보니, 그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탈리아 왕국에 주신교단의 신전은 여기밖에 없어. 사원이나 기도소는 곳곳에 있지만···.’

사제나 성전사를 지망했다면 적당한 사원을 찾아가는 것도 괜찮았겠지만, 특수직에 속하는 성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신전에 올 필요가 있었다.

다른 나라의 신전으로 찾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내가 생각해 둔 방법이 무조건 들어맞으리란 확신은 없었으니까.

‘일단 빠르게 시도해 보고 안 된다 싶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때마침 「아바타」의 사망 쿨타임도 끝나고 새로운 개체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지구의 일은 그쪽에 맡기면 될 터.

하인리히가 이쪽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진 것이다.

나는 길을 물어물어 주신교단의 신전으로 찾아갔다.

수도의 외곽부에 있는 커다란 신전.

성기사 하인리히의 위대한 첫걸음이 시작될 장소였다!

***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주신교단에 소속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신전에 찾아가 전 재산이라며 막대한 성금을 기부하고, 성기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렇게 한 달.

나는 훈련병이 되어 신전 외부의 훈련시설에서 성전사 교육을 받고 있다.

“여~ 하인리히! 오늘 훈련도 끝났는데 한잔 어때?”

“아, 막스.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안 되겠어.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항상 열심히 구만. 하긴 자네는 성기사 지망이라고 했었지? 열심히 해 보라고. 잘 되면 나 잊지 말고.”

이내 막스는 껄껄 웃고는 손을 휘적이며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신전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투 훈련과 함께 공부까지, 배워야 하는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하긴 기사라는 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애초에 기사는 준 귀족 계급이 아닌가.

성기사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거기에 나는 처음부터 신도도 아니었으니 더욱 힘들었다.

내가 성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기본을 갖춰 정식으로 성전사가 된 후, 추천받아 기사 후보로 선발되는 수밖에 없었는데···.

주신교단의 예식과 교리는 물론 역사와 성가(聖歌) 등 하나같이 모르는 것투성이라, 때아닌 공부에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성전사가 되기 위한 기준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나는 그 이후도 생각해야 했으니까.

‘그래도 교리 같은 건 둘째 치고, 전문적으로 전투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다. 일단 한번 배워두면 나중에 두고두고 도움이 될 거야.’

이전처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다른 아바타에 의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상황이 따라주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기본 전투 능력은 꼭 필요했다.

마침 하인리히는 「무골」 덕분에 전투 기술 습득에 유리하기도 했으니까.

‘···그 전에 지금은 교리 공부부터 할까···.’

***

훈련과 공부에 매진하던 어느 날, 갑자기 신전이 소란스러워진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자율 훈련을 마치고 신전 입구로 향하자, 그곳에는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사람들 틈에 막스가 끼어 있었다.

“막스, 오늘 유난히 소란스러운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뭐 아는 거 있어?”

“오, 하인리히! 마침 잘 왔어! 지금 대주교님과 팔라딘께서 오셨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일단의 사람들이 신전 내부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무리의 선두에 안면 있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쪽은 나를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주신교단의 문양이 새겨진 순백의 갑옷을 입은 중년 기사.

성기사들을 이끌고 한스를 몰아붙였던 이였다.

그러고 보니 그의 뒤를 따르는 성기사들 중 몇몇도 낯이 익었다.

“본단에서 오신 라티우스 대주교님과 팔라딘 투스킨 경이시래! 우리 신전의 성기사단과 성전사대를 이끌고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셨다나 봐.”

‘···그 임무가 뭔지 알 것 같은데.’

한스를 잡기 위함이었겠지.

그런데 그가 교단과 충돌한 지 두 달은 넘었는데, 이제야 돌아왔다는 것은···.

‘설마 그동안 계속 한스를 쫓고 있었나?’

그날 이후 아우테리카에서 한스를 소환한 것은 아주 잠깐씩에 불과했다.

아공간의 재물을 지구로 옮기기 위해서.

소환이 해제되고 나면 무슨 수를 써도 추적할 수 없었을 텐데, 그 집념이 무섭기 그지없었다.

“따라갔던 성전사 선배님들도 돌아왔다는데 인사나 하러 갈까?”

그 말에 정보나 얻을 겸 막스를 따라나섰지만, 그들을 만날 순 없었다.

오랜 여정 끝에 지친 그들이 쉴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보안을 위해서인지 만남이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아쉬워하던 것도 잠시···.

다음날, 선임 성전사가 훈련병들을 모아 선언했다.

“조만간 훈련병 중 기준에 통과한 자들에게는 세례 의식이 있을 예정이다.”

웅성웅성—

“조용, 조용!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것은 알지만, 위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너희뿐 아니라 수도사 중에서도 수습 사제를 선발할 예정이라고 하니, 남은 시간 동안에도 계속 정진하도록.”

해산을 외친 선임 성전사가 자리에서 사라지자, 훈련병들은 다시 웅성거리며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직 세례 기간까지는 몇 달 남지 않았어? 우리야 빨리 정식 성전사가 될 수 있으면 좋지만, 이렇게 갑자기?”

“원래의 일정을 이렇게까지 단축하면 부담이 클 텐데. 뭔가 이유가 있나?”

“···갑자기 전력을 늘릴 필요가 있다든지···?”

그래, 아무 이유도 없이 일정이 갑작스레 바뀌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어제 돌아온 토벌대와 연관이 있겠지.

‘어쨌든 내게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기회다.’

이곳 탈리아 신전에서는 반년에 한번 세례 의식을 통해 새로운 성전사를 선발한다.

그래서 원래라면 두 달은 더 있어야 했지만, 갑작스레 상황이 변한 것이다.

‘세례 의식을 통해 체내의 모든 마나를 신성력으로 변환시킨다···. 그것이 성전사로써의 첫걸음이야.’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라면, 성전사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훈련을 계속했고.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하지 않게 세례 의식의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수 있었다.

***

“무리한 부탁이었을 텐데 이렇게 선뜻 받아주어 고맙소, 크롬빌 주교.”

“아닙니다, 라티우스 대주교님. 이게 다 저희 교단에 필요한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저희 탈리아 교구에도 좋은 일이고요.”

세례 의식이 시작되기 직전.

불사왕 토벌대를 이끄는 라티우스 대주교는 탈리아 왕국 전체를 망라한 교구의 책임자, 크롬빌 주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왕국에 뱀파이어들의 세력이 뿌리 깊게 박혀있었소. 그 때문에 수색 과정에서 토벌대의 피해가 커졌지.”

“···송구할 따름입니다. 탈리아 교구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미리 조처해 뒀어야 하는데···.”

“아니, 그게 어찌 크롬빌 주교만의 탓이겠소. 다 미리 신경을 써주지 못한 본단의 책임이지. 앞으로도 교구에 지원을 늘릴 수 있도록 내 힘을 써 보겠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주교님.”

변방의 작은 나라인 탈리아 왕국에는 애초부터 주신교단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신전이라고는 왕국에서 마지못해 허락한 듯, 수도에 달랑 하나.

전국에 배치된 성직자들의 수도 최소한의 기준만 간신히 넘을 따름이었다.

“이번에 생긴 전력의 공백을 막고 뱀파이어들을 견제하며, 불사왕의 후예를 계속 추적하기 위해서는 교단 전력의 증강이 필수 불가결. 탈리아 왕국과도 이야기가 끝났으니 앞으로는 좀 더 편해질 것이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정치적 강압이 있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정치권에도 뱀파이어들의 손길이 닿아있는지 반발이 거셌으나, 대의명분을 앞세운 주신교단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이제 세례 의식을 시작해야겠군. 예정대로 나도 한 손 거들도록 하겠소.”

“···대주교님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토벌대 사제들의 도움이 있다면 의식을 치르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세례 의식이 기간을 정해두고 주기적으로 열리는 이유.

의식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대사제 이상의 성직자가 필요했고, 그들에게도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게 행했다가는 고위 성직자들이 모두 뻗어서 남아나지 않게 되었던 것.

“부끄럽지만 불사왕의 후예를 추적하는 데 실패한 지도 두 달이 넘었소. 그동안 제대로 힘쓸 일도 없었는데, 이렇게라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식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던 그들은 이내 거대한 예배당에 도착했다.

그곳엔 세례를 받을 이들과 의식을 준비 중인 사제들로 한창 북적이고 있었다.

“아! 라티우스 대주교님, 크롬빌 주교님. 오셨습니까. 의식 준비는 전부 마쳤습니다. 언제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진행을 맡은 대사제 중 한 명이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와 말했다.

라티우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예배당의 강단 위로 올랐다.

그곳에서 그는 수백 명의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두 손을 모아 신께 기도를 올렸다.

“주신이시여. 당신을 본받으려는 아이들이 그 의지를 따르고자 이 자리에 모였나이다. ······따뜻한 손길과 은혜를 베푸시옵고, 당신의 아이들에게 은총이 함께하길 기도하나이다. [축복의 성소]”

일 분 남짓한 기도가 끝나자, 그의 전신에서 막대한 신성력과 함께 은빛 휘광이 뿜어져 나와 예배당 전체를 물들였다.

은은하게 빛나는 실내는 내부에 있는 모두를 축복하듯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감탄하고 있을 때, 기도하는 대주교의 옆에 서 있던 크롬빌 주교가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세례 의식을 시작한다. 차례대로 나와 의식을 진행하도록.”

나직이 말했음에도 공간 전체에 퍼진 그의 목소리는 모두의 정신을 일깨웠고, 이내 본격적인 의식이 시작되었다.

강단 앞에 늘어선 십여 명의 대사제들.

의식을 돕는 사제의 인도를 받은 이들이 한 명씩 나와 그들의 앞에 무릎 꿇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테론입니다.”

“주신이시여. 당신의 품에 안겨 세상의 빛이 되고자 하는 이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신의 뜻을 따르며 길 잃은 이들의 길잡이가 되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해 주소서. 테론, 그대는 주신께 귀의할 것을 맹세하는가?”

“맹세하겠습니다.”

“그럼 주신께 기도하라. 신께서 그대의 믿음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대사제들은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기도를 올리는 이들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세례 의식을 진행했다.

그 손을 통해 쉬지 않고 쏟아져 들어간 신성력이 기도하는 이의 체내를 물들였다.

그리고 대주교의 [축복의 성소]는 그 과정을 보조해 세례를 진행하는 이의 부담을 줄여주었다.

십여 명씩 동시에 진행되는 세례 의식.

시간이 지나자 세례를 받은 이들이 하나둘 미약한 신성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든 마나를 신에게 바치고 다시는 마력을 다룰 수 없는 몸이 되는 대신, 신의 힘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생성하는 과정.

의식을 마친 이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비틀거리다가, 의식을 보조하는 사제들의 부축을 받고 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잠깐의 적응 기간을 거친 후, 훌륭한 교단의 일원이 될 것이다.

크롬빌 주교는 의식이 한창 진행되는 예배당을 둘러보았다.

갓 세례를 받은 이들이 내뿜는 신성력은 고만고만했다.

간신히 수습 사제라 칭할 수준.

간혹 세례를 받자마자 사제급 이상의 신성력을 가지게 되는 사례도 있다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앞으로 기도와 정신 수양을 통해 계속 성장할 것이다. 주신에 대한 믿음과 정신력을 기를수록 신성력이 강해질 테니.’

의식을 지켜보던 그는 이내 강단 위에서 성법을 펼치고 있는 라티우스 대주교를 경외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신께 기도를 올렸다.

자신은 교구를 책임지는 몸인지라 갑작스러운 의식을 도울 수 없었지만, 대주교를 보니 애초에 불필요한 걱정인 것 같았다.

···그렇게 의식이 계속 진행되던 순간.

“음?”

갑자기 느껴지는 신성력에 크롬빌 주교는 시선을 돌려 한쪽을 쳐다보았다.

강단 위에서 눈을 감고 성법을 유지하던 라티우스 대주교 또한 어느새 눈을 뜨고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악—

이제 막 세례를 받고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는 이.

그 모습은 앞선 이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으나, 한 가지 명백하게 차이 나는 것이 있었다.

“허, 이제 막 세례를 받은 것이 틀림없는데···. 저 정도의 신성력이라니. 사제장급은 되겠군.”

일반 사제와 의식을 진행 중인 대사제의 중간 수준.

막 세례를 받은 하인리히가 가지게 된 신성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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