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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41화 (41/284)

습격 (2)

하인즈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을 둘러싼 흡혈귀들과 정체불명의 복면 집단.

흡혈귀들의 수준은 「간파」로 알고 있었지만, 감지되지 않은 복면 집단도 하나같이 수준이 높았다.

“어떻게 알았지?”

저들의 결계가 발동된 지금은 은신이 무력화되었다지만···.

그 전에, 「은폐」까지 사용한 자신을 어떻게 파악하고 타이밍 맞춰 결계를 발동했는가.

“하회탈을 잡기 위해 여러모로 공을 좀 들였지.”

검은 양복과 포마드로 뒤로 넘긴 머리, 능글맞은 미소까지.

대놓고 악의 조직 간부인 계단 위의 남자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친절하게 설명해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혹시 너희가 번천회인가?”

하인즈는 남자의 부하들로 보이는 복면인들을 살펴보며 물었다.

혈맹의 강경파와 함께 함정을 팔 놈들은 그들밖에 없지 않은가.

“흐음, 그런데 너는 누구지? 어째서 흡혈귀가 놈과 함께하는지 모르겠군. 베타 원, 베타 신, 그쪽에서는 뭔가 아는 게 있습니까?”

양복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되물으며 혈맹 쪽에 시선을 던졌다.

“···우리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소. 수준을 보아하니 족히 7레벨은 되어 보이는데, 완전히 처음 보는 얼굴이야.”

“기운 자체가 굉장히 생소하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최근에 돌아온 녀석인가 본데.”

흡혈귀 무리에서 가장 기운이 강한 두 명이 차례로 대답했다.

‘베타 두 명이 전부 여기에 와 있었군.’

그동안 많은 강경파 흡혈귀들의 기억을 읽으며 파악한 바로는, 그 호칭이 그들의 계급을 지칭한다는 것이었다.

혈맹의 강경파를 이끄는 리더가 알파였고, 그 밑에 두 명의 베타가 있었다.

감마는 그 아래 등급으로 총 열세 명이 존재했었다.

‘이제는 아홉이지만.’

최초로 처리한 감마, 도한수 이후로 셋을 더 사냥했으니까.

이곳에 대한 정보도 마지막으로 처리한 감마에게서 알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은폐」의 힘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내가 동족 포식을 한 건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군.’

결계의 영향으로 약해진 「은폐」로는 은신을 유지하기는커녕 자신의 기세조차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남은 여력으로는 최대한 동족 포식의 흔적을 감추는 데에만 주력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은밀한 비밀인 동시에, 그들의 의표를 찌를 비장의 한 수가 될 테니까.

‘7레벨 베타가 둘. 6레벨 열둘. 6레벨 중에서도 특출난 몇몇이 감마의 칭호를 받았을 텐데, 이 중엔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군. 거기에 로비 바깥에 몰려온 경비들까지···.’

사실 흡혈귀들만 상대한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번천회로 추정되는 복면을 쓴 무리.

무슨 수를 쓴 건지 이 상황에서도 놈들의 기운이 잘 가늠되지 않았다.

“그런데 하회탈은 언제까지 그림자 속에 숨어있을 생각인가? 이쯤 되면 나올 때도 되었을 텐데. 아니면 아직도 우리를 무시하고 있는 건가?”

하인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까지 언급이 없기에 눈치채지 못한 줄 알았더니.

[흐으···, 당돌한 놈이로군. 그렇게 원한다면야.]

지옥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가 공간을 진동했다.

이미 알고 있다면 더는 숨어있을 필요도 없다.

스으으—

한스가 그림자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한기가 감돌았고, 내부를 밝히던 빛이 힘을 잃었다.

딱히 의도를 가지고 마력을 발산한 것도 아니건만,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현상이 강제된다.

주변을 포위하던 흡혈귀들이 흠칫 몸을 떨며 저도 모르게 한 걸음씩 물러났다.

“···흐음. 이건, 생각 이상이로군. 우리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려 했다면 큰일 났겠는데?”

느긋하던 양복 남자의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한스를 직접 마주하고 보니 자신감이 흔들린 것이리라.

“생각 이상이긴 하지만, 대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군.”

하지만 곧 그의 얼굴에 여유가 돌아왔다.

단단히 준비한 수가 있는 모양.

“흑마력과 네크로맨시. 모두 극단적인 힘인 만큼 약점도 극명하기 마련.”

딱—

그의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공간을 울리고.

우웅—

주변을 감싼 결계가 진동했다.

딸랑— 딸랑—

그리고 언제 꺼낸 건지, 2층을 둘러싼 복면인들이 온갖 기물을 들고 있었다.

무당이나 쓸 법한 방울을 흔드는 이, 나무로 조각된 토템을 꺼내 바닥에 박는 이, 노란 부적을 꺼내 사방에 붙이는 이, 그리고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온갖 종교의 상징물을 꺼내든 이들까지.

사방에서 몰아치는 기운에 한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답답한 기운이 사방을 옥죄어 그의 부정한 기운을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제법 준비를 많이 했군.]

확실히 그에게 대응하기 위해 철저히 조사하고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술법의 특성상 자리에 위치한 흡혈귀들도 불편한 표정을 짓기는 했으나, 직접적인 타깃이 된 한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리라.

‘당장 하인즈에게도 큰 영향이 없기도 하고. 좀 답답하긴 하지만.’

오직 한스를 사냥하기 위해 마련된 거대한 함정.

이만한 규모로 힘을 억제당한 상태에서, 번천회와 흡혈귀들이 힘을 합쳐 덤벼 왔다면···.

아무리 한스라도 몸을 뺄 수밖에 없었겠지.

‘한스가 혼자 왔다면 말이지.’

그들의 생각은 잘 알겠다.

하인즈가 7레벨로 보이니 베타 중 하나가 적당히 잡아 놓고, 나머지 전력은 모두 한스를 상대할 작정이었겠지.

“흐읍—”

하인즈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심장이 거세게 뛰며 전신의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혈류증폭」

창백한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근육이 팽창하며 핏줄이 튀어나왔다.

“하아아~”

폐부의 숨을 내뱉었다.

감각이 날카롭게 세워지고, 근처에 있는 이들의 감정까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저들에게는 아쉽게도 그는 보통의 진혈이, 그들의 기준에 맞는 7레벨이 아니었다.

혈마력의 양이나 흡혈인자의 농도 자체는 베타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적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콰앙—!

「가속」

대지를 박찬 그의 몸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뭣?!”

하인즈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그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한 6레벨 흡혈귀 하나.

푸욱—

경악이 담긴 외침과 동시에 하인즈의 손이 그의 등을 뚫고 나왔다.

“크···헉!”

순식간에 심장이 꿰뚫린 흡혈귀가 피를 토하며 바들바들 떨었다.

하지만 그의 놀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피가··· 빨려 들어가고 있어?!’

그의 피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심장부로 빨려 들어갔다.

좀 더 정확히는, 그의 심장을 관통한 상대의 팔이었다.

‘동족 포식?! 팔을 통해서?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인즈는 심장을 관통한 동시에 스스로 손목에 상처를 내 그곳으로 흡혈귀의 피를 빨아들였다.

손목에 난 상처를 통해 미세한 혈액 입자가 상대의 피와 섞이고, 그것을 다시 회수하면서 상대의 제어를 무시한 것이다.

진혈이 되며 압도적인 혈액 통제력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

거기에 상대의 심장에 손을 박아 넣어, 혈류의 중심에 직접 접촉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끄으··· 이놈, 동ㅈ··· 끄아아악!”

마지막 힘을 쥐어짜 동료들에게 경고하려던 흡혈귀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가 각혈한 피가 어느새 아름다운 붉은 꽃이 되어 그 입가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머리를 집어삼킨 「혈화」는 서서히 전신으로 번져 그의 전신을 잿더미로 만들고 나서야 사라졌다.

‘동족 포식을 감추기 위한 눈속임이지만.’

피가 빨려 바짝 마르다 재가 되어버리는 모습을 숨기기 위해 전신을 뒤덮었지만, 그가 태운 것은 놈의 입가뿐이었다.

그의 의지에 따라 태울 것을 선별하는 「혈화」 덕분이었다.

“······.”

고작 몇 초도 되지 않은 순간에 벌어진 일에 자리의 흡혈귀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뒤늦게 반응했던 베타들이 표정을 굳히고 하인즈를 노려보았다.

한 팔을 통해 흡혈귀의 피를 빨아들이는 동안에도 줄곧 그쪽을 경계하며 기세를 내뿜었기에, 그들도 차마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하인즈가 흡혈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심장이 꿰뚫리고 불타올라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하를 빠르게 포기하고 기회를 노린 것이지만.

“네놈··· 어떻게?”

이를 갈며 나직이 읊조리는 베타 원.

그의 물음에는 경계가 가득했다.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신체 능력에 자부심이 있는 그였지만, 하인즈의 움직임은 그의 상상을 웃돌았다.

반응했을 때는 이미 부하의 심장이 꿰뚫린 후.

심지어 당한 부하는 베타 다음으로 강한 감마 중 하나였다.

아무리 예상치 못한 순간의 기습이었다지만, 그런 강자가 당하는데 고작 몇 초.

자신도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

하인즈는 긴장한 흡혈귀들을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기습으로 7레벨을 처리했으면 좋았겠지만···. 직접적으로 공격을 당했다면 어떻게든 반응을 했을 거야. 물론 치명상은 입힐 수 있었겠지만, 다른 놈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 금세 회복했겠지.’

차라리 제일 가까이 있는 감마 급의 힘을 가진 6레벨을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나을 터.

《새로운 흡혈인자를 수집합니다. 특수스킬「혼혈진화」의 영향으로 개체의 마력 제어 능력이 향상됩니다.》

덕분에 저쪽의 힘은 약해지고, 이쪽은 오히려 강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예상치 못한 또 한 가지.

[크크큭··· 대단하군. 이것도 그건가? 여러 세계의 술식을 짜 맞춘 연계?]

한스는 혈맹 강경파의 근거지에서 술법 결합의 연구물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은 생각지도 못했던 발상,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상식을 부수는 결과.

물론 한스도 그동안 다른 세계의 흑마법을 참고하고 이를 반영해 자신의 마법 수준을 크게 늘린 바 있었다.

「사악한 지혜」와 「금단의 지식」의 연계는 흑마법에 한해서 뛰어난 분석력과 습득력을 제공했으니까.

다만, 문득 드는 아쉬움이 있었다.

스킬이 흑마법에만 추가 보정을 부여한다고 해서, 그것에만 의존한 채 아예 다른 시도를 포기하진 않았나.

편한 길만 추구하고 현재에 안주하지는 않았는가.

「사악한 지혜」가 흑마법에 대한 절대적인 이해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마법 자체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다.

「금단의 지식」도 흑마법에 편향되었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하나의 세계에서 누적된 수많은 신비를 품고 있었다.

이를 이용할 방법이 정말 그것밖에 없었을까?

그것이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는 행위는 아니었을까?

물론 한스가 마도의 길에 들어선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봤을 때, 누군가는 괜한 욕심이라고 손가락질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길을 결정하고 이에 매진하기로 결심하는 데에, 시간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적어도 ‘한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후, 한스는 흡혈귀들을 습격하는 틈틈이 계속해서 번천회의 기술을 연구했다.

흡혈귀들의 마법 체계를 관찰하기도 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실험하기도 하며, 가진 스킬들을 다방면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 그리 크다고 할 순 없지만, 약간의 소득은 있었지. 그리고 이건 오히려 기회다.’

쿠웅—

한스가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그의 발밑이 검게 물들며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그 속에서 언데드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를 방해하는 술법의 영향인지 평소처럼 건물 전체를 어둠으로 채울 수는 없었지만.

[어디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보자꾸나. 그 또한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될 테니!]

모르면, 직접 겪어 보면 되는 것이다.

때마침 그 방면에서 제일 앞서 있는 번천회가 공을 들여 세팅해 둔 무대가 있지 않은가?

저들도 흑마법을 사용한다면 베스트였겠지만, 상극의 술법도 나쁘지 않았다.

자신에게 치명적인 만큼, 그 술법을 더 예민하게 느끼고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크하핫! 기대되는구나! 자, 어디 나를 더 즐겁게 해 보아라! 준비한 게 있으면 아끼지 않고 사용하는 게 좋을 거다!]

덤으로 자신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약점을 직시하는 것이야 말로 극복의 첫걸음.

이를 이겨낸다면 그는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우웅—

그들을 감싼 번천회의 결계 위로, 한스가 진입 전에 설치한 결계가 발동했다.

두 겹의 결계로 둘러싸인 별장··· 아니, 이 전장에서는.

이제 누구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데스 매치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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