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밖의 행운 (1)
“후우··· 다 끝났나?”
하인리히는 가볍게 검을 털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번 전투에 참여한 이들의 수준이 수준인 만큼,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자연이 분노한 듯 거세게 몰아치는 번개 폭풍과 대지에서 솟구치는 가시에 죽어 나가는 몬스터들.
빛의 심판이 부정한 존재들을 불태우고, 놈들이 소환한 거대한 악마조차 오래 버티지 못하고 마계로 쫓겨났다.
‘이게 이 대륙 최상위권의 강자들···.’
물론 이들이 정점인 것은 아니다.
교단에는 공개된 팔라딘만 열 명에 달하고, 전투 사제나 이단심문관 등을 포함하면 이 정도 수준의 강자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으니까.
하이 엘프도 라포리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니 마찬가지고, 그 외에도 비슷한 수준의 강자가 엘븐 킹덤에 더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전 대륙을 기준으로 봤을 때지.’
대륙의 넓이를 따져보면, 결코 이들의 경지를 깎아내릴 수 없으리라.
물론 흑마법사들도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준은 아니었지만, 놈들이 맥을 못 춘 데에는 하인리히의 탓이 컸다.
마물을 소환해서 싸우는 게 주특기인 놈들 틈에 갑자기 나타나 칼을 휘두르는데, 저들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적의 수괴로 보이는 노인이 어찌어찌 거대한 악마를 소환하기는 했으나···.
“커헉—! 교단 놈들이 어떻게 여길··· 컥!”
집중 공격을 받은 악마가 사라짐과 동시에 검은삭월 단장의 검에 유명을 달리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소환계 마법사의 최후였다.
“하인리히 랜드가드 경, 수고했네. 경 덕에 수월하게 놈들을 해치울 수 있었어.”
한쪽에서 신성한 불길로 흑마법사들의 시체를 재로 만들던 라티우스 대주교가 인자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 대주교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성표는 여기 있습니다.”
하인리히가 공손하게 대주교에게 받았던 성표를 그에게 돌려주었다.
바람의 정령의 힘으로 타라크에서 북부 산맥으로 빠르게 날아온 그들.
하지만 하인리히도 목표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지 못했으니, 그들을 제대로 안내할 수 없었다.
그는 「축복 : 도약」을 통해 할리가 인지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을 뿐이었으니.
그래서 나온 방법이, 자신의 신성력을 담은 성표를 하인리히에게 건넨 대주교가 그것을 추적해서 남은 이들을 안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작전은 생각 이상으로 잘 풀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하인리히 때문에 혼란에 빠져, 적들이 외부에서 다가오는 이들에 대한 대비를 미처 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생포해서 심문하지는 않으십니까? 놈들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그 배후도 일망타진할 수 있을 텐데.”
“이단심문관이 아닌 이상, 악마 추종자를 비롯한 흑마법사들은 마주치는 즉시 사살하는 것이 원칙이네. 놈들은 언제 어떤 수작을 부릴지 알 수 없거든. 또 하나같이 금제가 걸려있기도 하고.”
하긴, 워낙 기괴한 수단이 많은 흑마법이니까.
어쩐지 꼼꼼하게 놈들의 시체를 불태운다 싶었다.
“그나저나 저쪽의 엘프 아가씨가 그 하이 엘프 후보인가 보군.”
대주교가 한쪽을 바라보며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작은 엘프와 커다란 야만인이 있는 그곳에, 라포리를 비롯한 엘프 일행이 다가가고 있었다.
“정말 경의 말이 맞았어. 대체 어떻게 안 건가? 성녀님의 말씀이기에 우선 따르기는 했네만···. 정말 별다른 축복도 없이 대상을 찾을 줄이야.”
“하하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불현듯 깨달은 거라서요.”
“정말 주신께서 굽어살피고 계신가 보군! 영광스러운 일이야.”
그렇게 재차 감탄한 대주교가 어느새 다가온 팔라딘들과 함께 잠깐의 기도 시간을 가진 후.
그제야 하인리히는 그들과 함께 엘프들이 있는 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
“감사합니다. 덕분에 세실리 양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 명예로운 전사로서 위험에 처한 이를 돕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너무 신경 쓰지 마쇼. 딱히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니까! 핫핫핫”
“과연, 훌륭한 가치관을 가지고 계시군요.”
잠깐의 통성명 후에 이어진 대화는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라포리는 할리의 외견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하이 엘프.
젊게 보인다 해도 그 나이가 절대 적지 않았으니, 할리의 패션도 그 상식선의 매우 모범적인 남부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 아무런 보답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부족하지만 이거라도 받아 주시지요.”
“이거 참, 곤란하구만! 하핫핫!”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할리는 사양하지 않고 냉큼 그가 내미는 물건을 받아들였다.
라포리의 손목에 걸려있던, 가느다란 나무줄기로 알록달록 빛나는 여러 보석들을 엮은 팔찌.
줄기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싱싱한 상태였다.
“라···라포리 님, 그건···!”
라포리의 옆에 있던 남성 엘프가 당황해서 뭐라 하려 했으나, 그는 할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손만 휘저었다.
“저희의 근거지는 이곳 대륙이 아닌지라, 당장 보답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지금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교단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이지요.”
그 때문에 나중을 기약할 수도 없었다.
당장 그들도 교단을 도와야 하는 만큼, 언제 에나멜 대륙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알지 못했으니.
“물론 추후에라도 뭔가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저희가 최대한 힘이 되어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저희 쪽에서 교단과 협의해 두도록 하지요.”
다른 대륙이 근거지인 그들이 직접 나설 수는 없으니 우선 교단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이후에 엘븐 킹덤 차원에서 교단에 대가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저희 교단의 일을 도운 거나 마찬가지기도 하니까요. 제가 잘 처리해 놓겠습니다.”
어느새 옆에 다가온 라티우스 대주교가 라포리의 말을 받았다.
할리 덕분에 교단의 일이 편해졌으니 그에 대한 보답도 겸하기로 한 것.
엘븐 킹덤 측에서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미 교단의 고위층에 연줄이 있는 할리로서는 당장 손에 들어온 팔찌에 더 관심이 쏠렸다.
그런 그의 기색을 눈치챘을까, 라포리는 곧바로 그 팔찌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속성 친화력과 저항력은 기본에 자연력 증폭, 정령 소환 시 추가 보정까지.
거기다 상징적인 의미로도 이 팔찌 자체가 굉장히 귀한 물건이었다.
이것을 가지고 엘프의 세력권으로 들어가면 상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으리라.
‘하긴 하이 엘프가 직접 사용하던 것이니 당연하겠지.’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 되어 갈 무렵.
라티우스 대주교에게 도움을 받아 목에 채워진 마도구를 해제한 세실리가 깨끗해진 모습으로 할리에게 다가왔다.
그동안의 고생과 전투 중에 튄 피로 지저분해진 걸, 라포리와 함께 온 여성 엘프가 정령을 이용해 씻겨준 것이다.
‘흠흠··· 「괴식」 때문에 앞의 가죽에 흘린 피가 좀 많긴 했지···.’
도저히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다시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리 님이 와 주지 않으셨다면, 전 지금쯤 살아있지 못했을 테니까요.”
“하하핫! 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세실리.
그녀는 고개를 들고 잠시 할리를 쳐다보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저기··· 할리 님? 잠깐 자리에 앉아 주실래요?”
그의 허리께밖에 오지 않는 소녀가 밑에서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
할리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자, 그제야 두 사람의 눈높이가 맞을 수 있었다.
“그대에게 대자연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세실리는 너덜너덜해진 검은 표범의 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화아아—
‘음? 이건··· 세계수에서 느껴지던 기운?’
뭔가가 그에게 깃든 것은 분명했지만, 별다른 시스템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이 엘프가 내려줄 수 있는 가호입니다. 그것도 대자연의 가호면 자주 사용할 수 없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지요.”
옆에서 라포리가 조용히 첨언했다.
개안하지 않은 상태의 세실리가 하이 엘프의 가호를 사용했다는 것에 상당히 놀란 기색으로.
“아직 완전한 하이 엘프가 아니라 원래의 가호보다는 효과가 좀 떨어져요. 제가 개안하게 되면 제대로 다시 해 드릴게요. 할리 님은 몸을 험하게 다루시는 것 같으니까 도움이 될 거예요.”
말을 들어보니 속성 저항력이 올라가는 종류의 가호라는 것 같았다.
그런 거라면 언제든 환영이니, 할리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반응에 뿌듯하게 웃던 세실리.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그때까지 계속해서 손에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할리에게 내밀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기운까지 끌어 써서인지 이젠 생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말라비틀어진 세계수의 가지였다.
“그··· 제가 지금 당장 가진 게 없어서요. 다음에 만나면 좀 더 제대로 된 선물을 드릴게요.”
세실리는 본인도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기운이 다했다고 해도 세계수는 세계수.
공짜로 주는 걸 마다할 리가 없는 할리가 냉큼 그것을 받아들였다.
“세계수께서 그 가지로 무리하게 힘을 행사하신지라 영맥이 끊어졌지만, 주변 공기를 정화하고 기운을 맑게 해 주는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집 안의 화분에 꽂아두고 물만 주시면···, 음···.”
다시 라포리가 거들 듯이 옆에서 조언을 건네다가 멈칫했다.
할리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를 보다가, 다시 그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직도 곳곳에 전투의 흔적이 남은, 맹수 머리를 뒤집어쓴 2미터가 넘는 근육질 거구를.
“음, 인정할 만한 상대를 쓰러뜨린 후 그 앞에 묘비 대신 박아 두시면···. 아니면 땔감 대신 사용하면 화력도 강하고 오래갈 겁니다. 사실 드워프들이 욕심내는 이유이기도 한데···.”
갑자기 라포리가 혼란이 온 듯 횡설수설했다.
‘이 양반 원래 이런 인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무사히 임무를 완수해 마음이 풀어진 탓일까.
할리는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그와, 점점 더 민망해하는 세실리를 도와주기 위해 얼른 감사의 말을 건넸다.
‘이건 지구의 방에 놔두면 되겠지.’
최고의 공기청정기가 될 테니 나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엘프들과의 인사가 일단락되고, 그는 교단의 일원들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만큼 엘프들처럼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교단의 인사들도 할리에게 제법 관심을 보였다.
“자네 눈이 굉장히 특이하군. 혼혈인가? 음··· 아니, 실례했네. 괜한 걸 물었군.”
그의 왼쪽 눈이 주목받기도 했지만, 무슨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딱히 그 주제로 말을 이어가진 않았다.
“오호~ 이거 훌륭한 육체로구만. 우리 하인리히 못지않은데? 너 혹시 성기사가 돼서 이단 놈들 골통 부수러 다닐 생각 없나?”
그렇게 간단한 대화를 나누던 와중 나온 검은삭월 단장의 말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둘이 직접 마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
할리는 야만 전사의 이미지에 맞게 여러 번의 자체 성형을 거친 만큼, 하인리히와는 인상부터가 달랐다.
「초회복」을 이용한 극한의 단련을 통해 육체를 한계까지 강화하고, 마침내 「축복 : 강체」까지 얻은 후에도 하드 트레이닝을 멈추지 않은 하인리히.
지금까지 「괴식」으로 먹어 치운 몬스터만 수십 종, 그중에서도 「돌연변이」와 「육체변이」로 우월한 유전자만을 선별해 이상적인 몸을 만든 할리.
“흐음···.”
“호오···.”
이렇게 직접 비교하게 되니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하인리히가 갑옷을 입고 있어 좀 더 자세히 살피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
“···자네들 뭐 하는가?”
그렇게 자신의 몸에 취해있던 것도 잠시, 라티우스 대주교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너무 심취했군.’
자신도 모르게 몸 이곳저곳에 힘을 주며 근육을 비교하다 흠칫했지만, 팔라딘들은 이쪽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
“라티우스 대주교님, 저희처럼 몸을 쓰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 그럼! 무릇 사내라면 근육이 있어야지! 아, 대주교님보고 뭐라 그러는 건 아닙니다? 크크큭.”
주신교단의 성기사는 모두 초고강도 웨이트 트레이닝의 신봉자들이었으니까.
***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당분간은 이온 대륙에 머물 것 같으니, 그 기간엔 직접 힘이 되어드릴 수 있을 겁니다.”
두 명이 추가된 일행은 바람의 정령을 통해 빠르게 타라크로 복귀했다.
그곳에서 이어진 할리와의 작별.
“할리 님, 그럼 저는 가 볼게요.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구요.”
“하핫핫! 나야 튼튼함 빼면 시체지! 아가씨도 조심히 가라구!”
그렇게 할리는 타라크 시내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하인리히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흠, 저 전사와 뭔가 통하는 게 있나 보지? 초면일 텐데 서로를 많이 신경 쓰는 것 같군.”
“뭔가 좋은 인연이 느껴지는군요. 앞으로 자주 마주칠 것 같습니다.”
“호오~ 하인리히 경의 예감이라면 무시할 수 없지. 교단에서도 좀 더 신경 쓰도록 해보겠네. 용병이라고 했으니, 교단 차원에서 용병 길드를 통해 감사를 전하는 것도 괜찮겠군.”
‘됐다.’
겨우 분위기 좀 잡은 걸로, 신뢰도가 올라간 하인리히의 이름을 팔아 할리의 위상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교단의 이름을 등에 업게 되면 앞으로의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될 터.
‘이 정도면 얻을만한 건 다 얻은 것 같은데.’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
올 때와는 다르게 로셀리아 대신전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한나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도 경로상에 있는 각 신전의 협조를 받고 최대한 당긴 일정.
그렇게 돌아오고 휴식까지 가진 다음 날, 다시 엘프들과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교단 측의 도움으로 큰 문제없이 세실리 양을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하인리히 경께도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라포리의 감사의 말로 시작된 자리는 곧바로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이번엔 교단의 용건인, 불사왕을 추적하는 건에 대하여.
“세계수께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의 뿌리이십니다.”
그는 진지한 어투로 불사왕을 찾을 방도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하이 엘프는 세계수 님의 힘을 빌려, 나무가 존재하는 곳 주변의 기운을 탐지할 수 있습니다.”
일정 이상의 자연력을 품고 있는 나무들을 매개로 지역을 스캔하는 방법.
물론 한계 또한 명확했다.
나무가 없는 지역은 시도조차 할 수 없고, 한 번에 확인 가능한 범위도 제한적이다.
사전 준비도 까다로워 급히 세실리를 찾을 때는 사용하지 못한 수단이었다.
“이온 대륙 전체를 탐지하려면,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군요.”
그나마도 나무가 없는 지역을 제외했을 때의 기간을 추측한 것.
하지만 제약이 큰 만큼 그 효과는 탁월했다.
“놈이 나무가 있는 지역에 숨어 있다면, 장담하는데 절대 탐지를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곳은 대부분 나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일.”
그는 자신만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확실히 저 방법으로도 찾지 못하더라도 그 후보 범위를 좁힐 수 있을 테니 좋은 기회였다.
‘음, 동굴 주변의 나무들을 미리 싹 밀어버려? 어느 범위까지? 너무 많이 없애면 오히려 눈에 띌 텐데···. 그냥 때를 맞춰 소환 해제해야 하나.’
하인리히는 태연한 표정으로 남몰래 고민했다.
결계를 보강해 두기는 했지만, 저 당당한 태도를 보아하니 살짝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라포리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자신만만한 태도에 비해 뭔가 제한 사항이 이것저것 많은 것 같네.’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기운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하는데, 제가 불사왕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시간이 좀 더 소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밀집된 흑마력을 추적할 수밖에 없다 보니, 정확도를 위해 기간이 반년까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물론 어지간하면 그 전에 발견할 수 있겠지만, 운이 나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
“불사왕의 기운에 대한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 그 전에 부디 양해해 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기는 한데···.”
그의 말에 성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하인리히는,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 직후.
“···이번 기회에 하인리히 경도 알아두시는 게 좋겠죠. 저희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뭔가를 고민하던 그녀가 묘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나직이 중얼거린 한 마디.
···순간, 심장이 뛰었다.
얻을 건 다 얻은 줄 알았는데, 진짜는 따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