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111화 (111/284)

#111

광룡 사냥 (3)

막 광룡의 몸속을 파고들기 시작했을 무렵.

할리는 이 작업이 생각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시간 호흡할 수 없다는 건 그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지만, 이 적대적인 공간 자체가 커다란 난관이었던 것이다.

꾸드드득!

사방에서 그를 조여 오는 근육의 압력을 버티고, 쉬지 않고 입을 놀리며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라도 먹는 것을 멈추면 그대로 바깥으로 밀려나 버릴 테니까.

‘재생력을 억제하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냐?’

할리가 직접 물어뜯은 부위는 회복 속도가 극도로 저하되어 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나, 그 외의 부위는 사정이 달랐다.

손상 부위를 직접 재생하는 게 힘들어지자, 놈이 멀쩡한 부위를 암세포처럼 증식시키고 밀어내서 빈 곳을 메우려 드는 것이 아닌가.

이미 일반적인 생명체라고 볼 수 없는 광룡이었기에 가능한 일.

물론 일반적인 재생보다 그 속도가 느렸던지라 「폭식」으로 살점을 먹어 치우며 조금씩 나아갈 수 있긴 했지만···.

‘상식적으로 몸을 이렇게 마음대로 부풀리고 바꾸는 게 말이 돼? 물리법칙 어디 갔어, 물리법칙!’

할리는 내심 투덜거리며 마음대로 변형시킨 자신의 커다란 입과 톱니 같은 이빨로 계속해서 굴을 파고 들어갔다.

3미터가 넘었던 그의 몸 또한, 수월한 굴착 작업을 위해 최대한도로 압축해 늘씬하게 빠진 상태였다.

그렇게 그가 뻔뻔한 불만을 토해내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던 순간.

쿠구궁—!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충격파가 그의 몸을 뒤흔들었다.

광룡의 체내에서 직접 발현된 고밀도의 마력 파동이 강한 살의를 머금고 할리의 전신을 으스러뜨리려 하는 것이다.

뿌드득! 뿌득!

전에 바깥에서 버텼을 때와는 사정이 달랐다.

이번엔 발원지가 그를 둘러싼 사방인 것은 물론, 그 거리도 단순히 가까운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표적을 가리지 않고 주변 공간 또한 괴사할 정도로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지는 끔찍한 압력은, 그를 한 줌 핏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침입자를 배제하겠다는 그 광룡의 의지에, 할리는···.

으적으적!

열심히 입을 놀리며 몸을 회복시킬 뿐이었다.

‘소용없다는 걸 알 텐데. 끈질기기도 하지.’

바깥에서 겪었을 때보다 훨씬 강한 공격이었지만, 그가 입은 손상 정도는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즉, 얼마든 회복할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부상이라는 소리.

그 원인은 그의 달라진 외견, 정확히는 피부에 있었다.

‘광룡의 비늘이 생각보다 더 효과가 좋은데. 마력에 대한 저항력이 상상 이상이야.’

변이한 입과 갈고리 같은 손발톱은 이전 그대로였지만, 추가로 검붉은 비늘이 그의 전신을 빼곡하게 뒤덮고 있었다.

이젠 차마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모습.

진입 전에 다량의 비늘을 섭취한 덕분에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 더 완성도가 높아진 것들이었다.

‘이게 아니었으면 정말 오래 가지 못하고 포기해야 했을 것 같은데.’

광룡의 비늘로 방어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덕분에 지금처럼 뼈가 박살 나고, 핏줄이 터지고, 내장이 으스러지는 정도의 소소한 피해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게 없었으면 회복 속도가 파괴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빈사 상태로 소환 해제를 할 수밖에 없었겠지.

‘지금은 아니지만.’

「폭식」의 효율이 증가해 에너지를 더 빨리 수급할 수 있게 되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이제 놈의 ‘재생력’까지 직접 흡수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최상급 보양식인 용 고기만 있다면, 이 정도 부상은 금방 떨쳐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할리가 열심히 턱을 움직이자, 적대적인 마력에 장시간 노출돼 부서졌던 그의 육체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렇게 파괴와 재생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을까.

그것이, 드디어 어느 임계점에 도달했다.

《개체의 회복력이 한계를 초월했습니다. 스킬「재생」이 스킬「초재생」으로 진화합니다.》

광룡의 ‘재생력’을 끊임없이 강탈한 끝에, 마침내 할리의 재생력도 한 단계 성장한 것이다.

‘오— 좋아.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드디어!’

「초재생」의 효과는 곧바로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사방에서 살덩이가 조여 오고, 마력 파동 또한 필사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계속되고 있었으나.

그의 몸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되었고, 그건 곧 작업 효율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콰드득— 콰득!

부지런히 섭식 행위를 이어가느라 시원한 웃음으로 기쁨을 표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

그리고 좋은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으니—.

‘···드디어, 도착했다!’

마침내 할리는 마주할 수 있었다.

두근—! 두근—!

거칠게 맥동하는 ‘광룡의 심장’을.

사실 놈의 필사적인 방해 때문에 오래 걸렸을 뿐, 그가 이동한 거리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다.

걸린 시간도 10분이 채 안 될 정도였으니까.

‘저것이.’

할리는 자기 상체만한 용의 심장을··· 정확히는 그 한쪽에 융합되어 은은한 붉은빛을 내뿜는 결정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바로 드래곤이 가진 힘의 근원이자 최고의 마석이라고까지 불리는 귀물(貴物).

드래곤 하트였다.

그런데···.

‘대충 예상은 했지만, 역시 저건 매개체로 쓸 수 없겠구나.’

사실 드래곤 하트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확실히 정해두지 않은 상태였다.

할리의 성장을 위해 사용하는 쪽으로 저울이 기울긴 했으나, 그것을 매개로 탄생할 새로운 아바타도 무척 매력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직접 마주하고 눈으로 확인하자 그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스킬이 반응하지 않는군. 역시 심연의 광기에 오염된 게 문제인가?’

이 광룡의 드래곤 하트는 「커스터마이징」의 제물로 쓸 수 없다는 것을.

‘내부의 마력이 완전히 광기와 뒤엉켜서 변질됐어. 이건 드래곤 하트라기보다는 전혀 다른··· 독립적인 ‘광기의 괴물’의 정수라고 봐야 하겠는데.’

거기다 무슨 조화인지, 그것을 중심으로 뿌리가 퍼진 것처럼 놈의 전신에 깃든 광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몬스터들에게선 보지 못한, 훨씬 진보된 방식이었다.

‘···과연, 심장을 매개로 전신의 광기를 중앙에서 제어하고 있는 건가?’

역시 드래곤이라고 해야 할까.

광기에 잠식당한 상태에서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나름의 수단을 강구한 것이다.

그저 몸 곳곳에 안개처럼 퍼트려 놓은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이 방법이라면 광기를 적재적소에 투입할 수 있을 터.

‘오호, 이거 꽤 쓸 만해 보이는데?’

그리고 그건 할리에게도 나쁠 것 없는 소식이었다.

어차피 전부 자신의 것이 될 게 아닌가?

사납게 미소 지은 할리가 심장을 향해 기어가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두쿵—! 두쿵—!

위기를 감지했는지 심장이 한층 더 거세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끔찍한 마력과 광기가 한데 섞여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으나.

“크하하핫! 앙탈 한번 까탈스럽구나! 얌전히 이 몸과 하나가 되어라!”

그는 몸에 가해지는 부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쩍 벌려 변질된 드래곤 하트를 한입에 깨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광룡 헤라토스의 전신에 퍼진 ‘광기’가···.

「폭식」에 의해 서서히 뿌리 뽑히듯 뜯겨져 나왔다.

***

[크허억——!]

쿠웅—!

목에 입은 치명상을 회복하면서도 연신 발버둥 치던 광룡의 몸이 한순간에 정지하고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었다.

놈의 몸속에 침입한 할리가 그 심장을 먹어 치우고 있었으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원체 생명력이 강했기에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놈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무력화된 광룡의 옆에.

“호오···. 이거, 지금이라면?”

어느새 소리 없이 나타난 하인즈가 연신 몸을 꿈틀거리는 놈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놈의 몸에 담긴 광기는 심장과 연결되어 통제되고 있었고, 지금은 할리가 그것을 통해 광기를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고구마 줄기를 캐듯··· 아니, 기다란 면발을 들이키듯이.

촤악!

하인즈의 손이 가볍게 휘둘러지자, 반항하지도 못하고 누워있던 광룡의 목이 베이며 재차 피가 튀었다.

이전보다 확연히 약해진 방어력에 생각보다 더 깊은 상처가 생겨 버렸다.

“재생력도··· 줄었군. 그것도 상당히.”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시급히 확인해야 할 문제가 있었으니.

하인즈는 조심스럽게 뻗은 손끝에 용혈을 묻힌 후, 그대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흠.”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입가에 천천히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극상의 용혈에 만족한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송곳니가 길게 삐져나온 상태였다.

‘할리와의 연계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 정도야 별것 아니지.’

하인즈가 마신 정화된 혈액에는 심장부에서 광기를 제어 중인 할리의 세심한 배려가 담겨있었다.

목의 상처로 가는 혈액을 여러 번 걸러 최대한 깨끗한 피를 공급하도록 손을 쓴 것.

물론 그런 노력에도 광기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퉤.”

처음처럼 완전히 광기에 절여있다면 모를까, 이미 진혈을 넘어선 하인즈에게 이 정도는 쉽게 걸러낼 수 있는 불순물에 불과했다.

[아··· 아아—!]

그때,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지고.

이제는 광기에서 벗어난 드래곤 헤라토스가 가는 숨을 몰아쉬며 눈만을 움직여 주변을 훑었다.

[나는 어째서··· 그리고 불사왕이 부활했다고···? 거기다 너희들은 대체···.]

광기에 잠식된 동안의 기억을 잃지는 않은 모양이었는지, 지금의 상황이 혼란스러운 듯 연신 횡설수설하는 드래곤.

생의 불꽃이 꺼지기 직전에 보이는 마지막 의문에도 하인즈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 목덜미의 상처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오랜만에 실컷 먹어봐야겠다.’

마침 모아뒀던 혈액도 상당히 소모한 상태였으니, 이참에 배 터지게 먹어 치울 셈이었다.

피에 한해서라면 그에게 물리적인 한계 따윈 의미가 없었으니까.

[아아···. 불사왕이··· 다시 돌아왔구나. 이제 이 세상은 어떻게 해야···.]

혼자 중얼거리던 헤라토스의 말이 점차 잦아들었다.

죽음을 앞에 둔 그에겐 미안했지만, 여전히 대답을 할 생각은 없었다.

‘괜히 쓸데없이 입을 놀리다 나도 모르게 정보가 새어 나갈 수 있으니까,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낫지.’

혹시 모르지 않은가.

죽은 줄 알았던 놈이 다른 몸으로 부활한다거나, 환생한다거나, 과거로 회귀한다거나 할 수도 있는 일이니.

[···불사왕···.]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헤라토스의 시선이 하늘 위에 떠서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는 한스에게 향했다.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을 그에게 보내던 레드 드래곤은···.

···눈은 여전히 한스를 응시한 채, 이내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불사왕에 대한 걱정인가. 뭔가 한이 많아 보이는데.’

처음 한스를 마주했을 때도 그렇고, 역대 불사왕과 드래곤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 대의 불사왕은 세상을 멸망시킬 생각이 없으니까, 부디 편안히 잠들기를.’

오히려 세상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자신이 이 자리에 없었으면 광룡이 또 다른 대륙의 재앙으로 성장하지 않았겠는가?

[크흐흣, 확실히 광기의 영향인지 뼈가 굉장히 실하군. 이거 좋은 재료가 되겠어.]

그러니까 네 뼈를 좀 가져다 쓰더라도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아, 거기다 피랑 뿔이랑 비늘하고···.’

아무튼, 좋은 일에 사용할 테니 그도 충분히 이해해 줄 것이다.

***

“후우—.”

눈을 감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할리.

그 전신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쉴 새 없이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근육이 제멋대로 부풀었다 줄기를 반복하고,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지금까지 해왔던 진화와는 그 격이 달랐다.

단순히 드래곤의 유전자를 받아들이기만 했어도 몸에 큰 부담이 되었을 텐데, 광룡에게서 통째로 빼앗은 광기를 고스란히 흡수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를 잡으며 한껏 증가했던 양을 아득히 넘어서는 그것은, 드래곤을 잠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할리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너무 많아서 통제가 힘들어. ···드래곤 하트에 각인되었던 방법을 써야겠군.’

그는 몸에 가득 들어찬 광기를 가닥가닥 엮어 나갔다.

광룡이 몸 곳곳에 뿌리를 뻗어 광기를 통제했던 것처럼, 할리는 자신의 육체에 세심하게 광기가 지날 회로를 깔았다.

그리고 마침내.

《개체의 종족값이 ‘용인(혼종)’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특수스킬「광룡의 심장」을 획득합니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스킬「보석안 : 염동」이 특수스킬「보석안 : 강압」으로 진화합니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특수스킬「광기 제어」를 획득합니다.》

뿌드득! 뚜득!

쉬이익—!

이미 몇 번이나 겪어왔던 육체의 진화.

그 변화에 맞춰 근육과 뼈 등 할리를 구성하는 요소의 질이··· 아니, 격(格) 자체가 급격히 상승했다.

“하아—.”

그가 천천히 눈을 뜨자, 어둠에서 붉은빛과 초록빛의 안광이 터져 나와 주변을 밝혔고.

세로로 날카롭게 갈라진 두 눈의 동공이 가만히 주변을 살폈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던 용이 사망한 자리.

그 용의 몸속에서 마침내 새로운 용인(龍人)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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